원문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보낸 편지 (1869년 6월 22일)

인물프리드리히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 요한 바프티스트 폰 슈바이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페르디난트 라살레, 해리 화이트, 카를 라데크, 마리뉘스 판데르루버 용어독일 형법 제175조, 전독일노동자협회, 소련 남색죄

편지

맨체스터, 1869년 6월 22일

친애하는 무어[1]에게

자네들도 거기서 우리처럼 날씨가 좋은지 모르겠네만, 여기는 햇빛이 어찌나 바닥났는지 일 년 중 가장 긴 날에 오후 4시부터 가스등을 켜야 했다네.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는 판에 읽기고 쓰기고 악마나 하라지.

투시[2]는 아주 명랑하다네. 오늘 아침에는 온 가족이 장을 보러 나갔고, 내일 저녁에는 극장에 간다는군. 『헤르만과 도로테아』[3]는 끝까지 읽었는데, 목가적인 속물들의 수다 때문에 애를 좀 먹었지. 이제 『신(新)에다』[4]를 주었는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편 들어 있고, 다음에는 『고(古)에다』에서 시구르드와 구드룬의 노래들을 읽을 수 있을 걸세. 피아노도 부지런히 친다네. 덴마크의 「켐페비세르」[5]도 함께 읽었네.

그러니까 라살레파의 남녀(男女) 계열과 온전한 여자 계열[6]이 하나로 합쳤다는 것, 그게 빌헬름[7]이 거둔 성과의 전부로군! 대단한 걸 얻어 냈어. 물론 슈바이처가 다시 뽑히겠지. 일을 저렇게 서둘러 밀어붙이니 말이야. 그러면 그는 또다시 보통선거로 뽑힌 자가 되는 거지. 빌헬름도 이 일에는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있네.

자네가 보내 준 그 「우르닝」[8]은 참 기묘한 물건이로군. 이건 그야말로 지극히 반자연적인 폭로일세. 남색가들이 머릿수를 세기 시작하더니, 자기들이 국가 안에서 하나의 세력을 이룬다는 걸 알아냈다는 거야. 조직만 없었는데, 이걸 보면 그것도 이미 은밀히 있는 모양일세. 그리고 옛 정당이든 새 정당이든 모든 당에, 뢰징[9]에서 슈바이처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대단한 인물들을 거느리고 있으니 그들의 승리는 떼어 놓은 당상이지. 이제는 “보지에는 전쟁을, 똥구멍에는 평화를”[10]이 구호가 되겠군. 우리가 개인적으로 너무 늙어서, 이 당이 이기더라도 승자들에게 몸으로 공물을 바치게 될까 겁낼 필요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일세.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나저나 이런 녀석이 나타나 그 추잡한 짓을 이론으로 바꾸어 놓고 “들어오라(introite)” 운운하며 초대하는 것도 독일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아쉽게도 그는 아직 자신이 “그것”[11]이라고 드러내 놓고 고백할 용기는 없어서, 여전히 공중 앞에서는(coram publico) “앞에서부터”, 그가 한번 실수로 말한 것처럼 “앞으로 들어가서”[12]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을 벌일 수밖에 없지. 하지만 새 북독일 형법[13]이 엉덩이의 권리(droits du cul)를 인정할 때까지 기다려 보게. 그때는 아주 딴판으로 나올 걸세. 그러면 앞쪽 사람들인 우리 가련한 족속, 여자를 좋아하는 유치한 취향을 지닌 우리는 꽤나 곤란해지겠지. 슈바이처가 무엇엔가 쓸모가 있다면, 이 기묘한 양반에게서 높으신, 가장 높으신 남색가들의 신상 정보를 캐내는 일일 걸세. 그는 정신적 동류이니 분명 어렵지 않겠지.

쇼를레머[14]가 이번 주말에 그림즈비와 로테르담을 거쳐 4주 동안 독일에 간다네.

이곳 면방직 공장들의 파업[15]은 오늘 아침 올덤 노동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서 끝났네. 그러니 이제 과잉생산에는 아무 한계도 없는 셈이지.

우편 마감일세. 안부를 전하며

자네의
F. E.

주석

  1. 마르크스의 별명 ‘모어(Mohr)’. 검은 머리와 거무스름한 얼굴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무어인’이라는 뜻이다. ↩
  2. 마르크스의 막내딸 엘리너 마르크스(1855~1898)의 애칭. 그 무렵 맨체스터의 엥겔스 집에 머물고 있었다. ↩
  3. 괴테의 서사시(1797). ↩
  4. 원문은 ‘젊은 에다’. 13세기 스노리 스투를루손이 쓴 『산문 에다』를 가리킨다. 뒤의 ‘옛 에다’는 신화·영웅 노래를 모은 『운문 에다』다. ↩
  5. Kjæmpeviser. 덴마크의 민중 영웅가요. ↩
  6. 1869년 6월, 요한 바프티스트 폰 슈바이처가 이끄는 전독일노동자협회와, 하츠펠트 백작부인의 영향 아래 갈라져 나갔던 라살레파 분파가 다시 합쳤다. ‘남녀 계열’은 1862년 소년과의 추문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는 슈바이처 쪽을, ‘온전한 여자 계열’은 백작부인 쪽을 비꼰 말이다. ↩
  7.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그는 슈바이처에게 반대하는 라살레파를 끌어오려 애썼는데, 그 결과가 오히려 두 라살레파의 재통합이었다는 비아냥이다. ↩
  8.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가 동성애자를 ‘우르닝’이라 부르며 그 권리를 옹호한 연작의 여덟째 권 『인쿠부스』(라이프치히, 1869). 그해 1월 어린 소년을 성폭행하고 몸을 훼손한 혐의로 고발된 베를린의 퇴역 장교 카를 폰 차스트로 사건을 계기로 써서 5월에 탈고했다. MEGA와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의 편집자는 그 증보판 『아르고나우티쿠스』로 보지만, 이 책은 9월 말에야 완성되어 이 편지보다 늦다. 엥겔스가 비꼰 울리히스의 오기(주 12)도 『인쿠부스』에 나온다. ↩
  9. 1830~1840년대 독일 민주주의 운동에서 활동한 브레멘 상인 요하네스 뢰징. 『인쿠부스』에도 이름이 나온다. ↩
  10. 원문은 프랑스어 “Guerre aux cons, paix aux trous-de-cul”. 프랑스 혁명기의 구호 “궁전에는 전쟁을, 오두막에는 평화를(Guerre aux châteaux, paix aux chaumières)”을 비튼 말이다. ↩
  11. 원문은 중성 대명사 “Das”.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라고 비꼬는 말로 읽힌다. ↩
  12. 울리히스가 ‘처음부터’라는 뜻의 von vornherein을 von vorn hinein으로 잘못 쓴 것을 성적인 뜻으로 비튼 말장난이다. 이 오기는 『인쿠부스』 9쪽과 50쪽에 나온다. ↩
  13. 그 무렵 심의 중이던 북독일 연방 형법. 1870년에 제정된 이 형법은 남성 간 성행위 처벌을 유지했고, 이 조항이 1871년 독일 제국 형법 제175조가 되었다. ↩
  14. 맨체스터의 화학자 카를 쇼를레머(1834~1892).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친구였다. ↩
  15. 엥겔스는 1869년 5월 10일 편지에서도 맨체스터 일대 면방직 공장의 파업을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