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 StGB · 1871.01.01–1994.06.10

독일 형법 제175조

Paragraph 175

남성 사이의 성행위를 처벌한 독일 형법 조항. 1871년 북독일 연방 형법과 함께 시행되어 1994년 통일 독일에서 폐지될 때까지 모두 14만 명가량의 남성을 처벌했다. 1897년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가 결성된 뒤 바이마르 시기까지 동성애자 해방 운동의 중심 표적이었고, 1935년 나치가 처벌 범위를 크게 넓혔다.

상세

원문은 남성 사이나 사람과 짐승 사이의 「자연에 반하는 음행」을 징역으로 다스린다고 했고, 법원은 이를 성교와 비슷한 행위로 좁게 해석했다. 1897년 히르슈펠트의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가 6000명의 서명을 모은 폐지 청원을 냈고 이듬해 사회민주당 의장 아우구스트 베벨이 제국의회에 올렸으나 실패했다. 1907~1909년 오일렌부르크 사건 뒤 유죄 판결이 늘었고, 1909년 정부 초안은 처벌을 여성에게까지 넓히려 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도 좌파 정당의 폐지 시도는 과반을 얻지 못했고, 1925년 중도우파 정부는 오히려 처벌 범위를 넓히는 초안을 냈다. 1929년 제국의회 형법 위원회에서 공산당·사회민주당·독일민주당이 15대 13으로 성인 남성 사이의 단순 동성애 처벌 조항을 빼는 데 성공했지만, 공산당 3표만 반대한 가운데 「가중 사례」를 처벌하는 새 조항이 함께 채택되었다.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는 이를 「한 걸음 전진, 두 걸음 후퇴」라고 평했고, 1930년 3월 독일·오스트리아 형법 통일 의회 위원회가 23대 21로 처벌 조항을 되살렸다. 나치는 1935년 6월 28일 법(9월 1일 시행)으로 「자연에 반하는」이라는 말을 지워 모든 「음란한」 행위로 처벌을 넓히고, 「중대한 경우」에 최고 10년 징역을 매기는 제175a조를 새로 만들었다. 유죄 판결은 1932년 801건에서 1937~1938년 8000건 넘게 열 배로 늘었고, 1933~1945년 5만 명 가까운 남성이 판결을 받았으며 수천 명이 분홍 삼각형을 달고 강제수용소에 갇혔다. 동독은 1950년 1935년 이전 조문으로 돌아가 1950년대 말부터 성인 사이의 행위를 처벌하지 않았고 1968년 새 형법에서 이를 확인했으며 1988년 남은 조항까지 없앴다. 서독은 나치 시기 조문을 20년 동안 유지하다 1969년과 1973년에 고쳤고, 통일 뒤인 1994년 6월 10일 조항이 완전히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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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de.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