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정기 동성애자 잡지 《데어 아이게네》를 펴내고 아이게네 공동체를 이끈 독일의 출판인·활동가
1907년 오일렌부르크 사건 와중에 총리 뷜로를 동성애자라고 폭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1년 6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베를린의 출판인·활동가. 1896년 정기적으로 나온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잡지 《데어 아이게네》를 창간해 1932년까지 펴냈고, 1903년 아이게네 공동체를 세워 남성다운 남성 사이의 사랑을 이상으로 내걸며 히르슈펠트의 성적 중간 단계론에 맞섰다. 이름난 인사의 동성애를 공개하는 방식을 썼다가 1907년 총리 뷜로를 겨냥해 징역형을 받았다. 1933년 나치의 압수로 활동을 접었고 1945년 연합군 공습으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데어 아이게네》와 아이게네 공동체
베를린 게준트브루넨에서 사무실 사환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사가 되려 했으나 반종교 문서를 가졌다는 이유로 교사 양성 학교에서 쫓겨났다. 1896년 《데어 아이게네》를 창간해 1932년까지 펴냈는데, 정기적으로 나온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잡지였다. 1899년에는 다른 사건을 알리려고 제국의회 의원 에른스트 리버를 개 채찍으로 때려 징역 1년을 살았다. 1903년 베네딕트 프리틀렌더·빌헬름 얀젠과 아이게네 공동체를 세워, 남성다운 남성 사이의 사랑과 그리스식 소년애를 이상으로 내걸고 히르슈펠트의 성적 중간 단계론을 거부했다. 형법 제175조 폐지 운동에서만은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와 손잡았다. 이름난 인사의 동성애를 공개하는 방식을 썼고, 1907년 오일렌부르크 사건 중 총리 베른하르트 폰 뷜로가 동성애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해 1년 6개월 징역형을 받았다가 11개월 만에 달아났다. 1차 세계대전 때 2년간 군에 복무했고 1920년 결혼했다. 말년에는 반유대주의 경향을 보였고 공개서한으로 나치와의 공존을 꾀하기도 했으나, 1933년 나치가 책과 자료를 압수하자 잡지를 접고 파산했다. 1945년 2월 베를린 빌헬름스하겐의 집에서 연합군 공습으로 아내와 함께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