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공산당이 형법 제175조 폐지를 당의 목표로 삼게 한 공산주의자 성과학자
1929년 제국의회 형법 위원회에서 공산당이 위원회의 성정치 목표를 받아들여 관철한 것은 그의 설득 덕분이었다고 평가된다.
베를린 베딩 출신의 독일 공산당원 성과학자. 적색전선투사동맹과 당 비밀 정보 조직에서도 활동했고, 1926년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29년 공산당이 위원회의 형법 제175조 폐지 목표를 받아들여 제국의회 형법 위원회에서 관철하도록 이끈 것으로 평가된다. 같은 해 히르슈펠트를 사퇴로 몰아넣은 반대파를 이끌고 위원회를 떠났다. 1933년 2월 폐렴으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위원회 서기와 공산당
베를린 베딩에서 태어나 뮌헨에서 자라며 상업 교육을 받았다. 독일 공산당에 들어가 적색전선투사동맹과 당의 비밀 정보 조직(AM-기구)에서도 활동했다. 스물두 살 때 뮌헨에 인권동맹의 지부를 세우려 했으나 바이에른 당국의 탄압에 막혔고, 이때 만난 쿠르트 힐러의 소개로 히르슈펠트의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에 보조 서기로 들어가 1926년 서기가 되었다. 1927년 성형법 정부안에 맞선 대안 초안을 함께 썼고, 1929년 공산당이 위원회의 목표를 당론으로 삼아 제국의회 형법 위원회에서 관철하도록 이끌었다. 같은 해 11월 위원회 안에서 히르슈펠트를 사퇴로 몰아넣은 반대파의 선두에 섰고, 12월 위원회를 떠나 막스 호단 등과 「성과학 기록보관소」를 세웠다. 그러면서도 1929~1930년 히르슈펠트와 함께 피임과 최음제에 관한 책을 냈고, 남성 매춘을 다룬 논집(1929)과 『음모와 사랑』(1931)을 펴냈다. 1933년 2월 방치된 폐렴으로 베를린 리히터펠데의 병원에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