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즈민, 『1934년 일기』
인물세르게이 키로프, 막심 고리키, 프세볼로트 메이예르홀트,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아돌프 히틀러, 니콜라이 구밀료프, 미하일 쿠즈민
5월
1934년 5월 16일 (화요일)
토르그신에서 산 이 공책, 유로치카의 공책, 그가 이걸 선물할 때, 여기로 가져왔을 때 그는 말했다. “뭐라도 쓰고 싶어지면, 생각을, 시를 끄적여.” 마치 그게 가능한 것처럼, 마치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데) 마치 그가 그걸 그토록 바라는 것처럼… 내가 그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번역에도 기운이 모자란다. 심지어 독서에도, 연주에도. 시간이 그렇게 배분되어 있다. 올해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요인이다.
1. 운명이 내게 “죽음”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그 개념을 거의 존재하지 않는 먼 곳에서 코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이제 나는 내가 어떻게 죽을지 안다, 만일 미스트리스 돔비처럼 “애를 쓰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나는 모두를 놀라게 하면서 그 애를 써왔다.
2. 올해의 상대적 풍요. 기록 보관소 매각. 셰익스피어 번역과 갖가지 대본이 우리에게 여유를 주었다, 그래서 때로는 유르.조차 만족한다고까지는 못 해도 그럭저럭 자기 처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낼 수 있다. 물론 바흐루신의 돈은 우리가 이미 다 써버렸지만. 유르.가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그를 볼 때마다 늘.
3. 병과 휴양소 덕분에 유르.의 삶의 연대기에서, 아니 삶 전체에서 내가 빠져나온 것. 삶에 내가 참여하던 습관이 사라진 것. 이것이 가장 끔찍하다. 내겐 일종의 연금 배급, 양로원 방문 같은 것이다.
4. 우리 지평선에 바흐루신이 나타난 것. 이것은 물론 주로 O. N.에 관한 것이지만 유르.와 나에게도 해당한다. 이 사람이 어느 정도 고차원적인 생각을 이해할 줄 알고 완전히 원시적인 심리는 아니라는 것은 그래도 다행이고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봄. 이제 모든 것이 피어났고, 창밖 풍경은 골로빈의 눈먼 표지들 같다, 온 공간이 온통 갖가지 색조의 초록 무늬로 가득 차 있어, 열 사젠 떨어져 있는 헛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봉오리가 트고 풀이 자라는 것을 관찰하는 즐거움과 기쁨을 누렸다, 모든 것이 투명하고 가지가 우아하다 (색채에 맞선 소묘). 회복의 인상은 이 봄과 영원히 연결되어 있고, 심지어 내가 햇볕을 쬐며 어울렸던 사람들, 작곡가 지토미르스키 같은 이들과도. 그는 점잖은 사람이고 그다지 재능은 없으며 레비크나 스토리친을 닮았지만, 내겐 봉오리와 벚꽃과 푸른방울새의 노래와 비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유르.와 함께 개울을 건너 첫 꽃이 핀 곳으로 역까지 거닐던 것을 기억한다. 유르.는 내 회복을 기뻐했고 스스로도 좋아지고 있었다. 이제 휴양소는 어쩐지 기운이 빠졌다. 모든 일과 사물에는 한계가 있어, 그것을 넘기면 마치 손님집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 같다.
갖가지. 나는 내 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방대한 번역들에 대해서도. 하지만 「기적들」을 끝내고 「베로니카」를 쓰고 싶다. 내가 그걸 너무 오래 벼르고 다녀서, 「네로의 죽음」처럼 아주 빨리 쓰거나, 아니면 평생 쓰게 될 것이다. 참 웃기다 — “평생”. 내게 그게 무엇을 뜻하는가: 1년, 사흘, 아니면 25년? 게다가 「트로이」도, 물론이고, 유로치카에 대한 빚도, 그건 너무나 많은 다정함, 숭배, 열정의 저수지라 「송어」 세 편을 쓰기에도 충분하다. 거기에 비어즐리도, 옥스퍼드도 흘러들 것이고, 아니 이미 흘러들었다. 그리고 이반 뇌제는? 그리고 양로원의 18세기.
건강. 다만 여기서 일어난 발작 이후에 내겐 회복의 느낌이 있다. 쇠약함도, 힘의 축적도, 모든 사소한 것에 대한 기쁨도, 감사도, 어느 정도의 지루함도, 이유 없는 쾌활함도. 이제 그것은 어쩐지 지나간다. 무언가 아물었고, 마치 빛이 바랜 듯하다.
늙은 여자. 모시코바, 여든다섯 살이다. 피아노를 치고, 바느질을 하고, 외국 서적을 읽고, 체스를 두며, 당구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딸은 파리의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화학을 공부했다. 베르홉스키 가와 멘진스키의 오랜 지인이다. 어머니와 프랑스어로 이야기한다. 딸은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한다. 내 옆방에 살았다. 그런 노년의 모습은 기운을 북돋운다. 나와 함께 칼린니코프의 교향곡과 라프소디 2번을 a quatre mains으로 연주했다. 어린 콤소몰 단원 부나코프가 그녀와 짝을 이루었을 때는 흡사 「스페이드의 여왕」과 게르만 같았다.
집. 집은 달걀 공장 “바라노프와 지페르트”의 주인, 지페르트 가의 소유였다. 높고 비교적 깨끗한 저택이다. 북쪽의 크고 서늘한 방들, 남쪽의 밝은 방들, 당구대가 있는 거대한 지붕 덮인 테라스, 돌출창들, 안쪽 계단들. 채소밭, 작은 정원. 다만 나무들이 창문 바로 앞에 아무렇게나 꽂아 놓은 듯 심겨 있다.
방. 햇빛이 드는 밝은 작은 방, 모슬린 커튼, 레몬색 블라인드, 하늘색 벽지, 스웨덴식 의자, 낮은 초록빛 유리잔에 꽂힌 티 로즈, 작은 거울. 마치 이탈리아나 토르조크에 있는 듯하다. 거의 나란히 놓인 가지런한 침대 두 개. 유르와 함께 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꿈은 오월의 나날에 이루어졌다.
다른 이들. O. N.의 방도 밝지만 이탈리아는 전혀 아니고, 아주 데츠코예 셀로 같고, 어쩌면 옛날식이다. 안주인은 폴란드 여자로, 다소 촌스럽고, 무언가를 바느질한다. 벽지는 어둡고, 다소 방치된 느낌이다. 박제된 새들과 수많은 작은 장들. 어쩌면 나도 유르와 함께 그곳에 살지도 모른다. 성당 광장에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종만 떼어 가지 않았더라면! 다른 곳은 유르의 말에 따르면 호도베츠키의 작은 집에 있었는데, 모스크바 가도의 어떤 거북한 독일인들 집이었고, 그곳에는 사과나무와 염소와 멀지 않은 철로가 있었다.
책. 유르가 나에게 멋진 책들을 사 주었다. 『투탕카멘』, 사이먼스: 이탈리아 여행기, 그리고 이탈리아 초상화에 관한 시제란의 책. 나는 비어즐리의 편지와 『탄호이저』를 읽었다. 유르에게는 모든 것이 훨씬 더 따뜻하고, 넓고, 인간적이지만, 공통점도 많다.
나의 처지. 나의 처지는 마치 내가 없는 듯하다, 내 존재란 것이 그런 셈이다. 여러 대회의 결정들과 비평들, 연설들을 읽다 보면, 산 자는 산 자의 일을 생각하는 법이고, 이 모든 것이 합당하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이런 접근 방식이라면 나에게서는 솜털만 날렸겠지만. 그래도 무언가 나올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했던 대로 넝마주이들의 삶을 다룬 디킨스식 통속 소설 같은 것이? 번역 쪽에서는 나를 그다지 압박하지 않지만,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래도 하사관 미망인 포실렙키나 역할로 나서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옳기는 한가? 나는 파시스트 빗에도 아마 깎이지 않았을 테고, 내 낯짝에 스스로 침을 뱉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수탉. 주인에게는 아일랜드 품종의 수탉과 암탉이 있다. 마당에는 평범한 관청 수탉도 자기 무리와 함께 있다. 그 녀석이 아일랜드종을 줄곧 때리고 자기 암탉에게조차 다가가지 못하게 한다. 아일랜드종은 홀로 돌아다니다가 그렇게 사나워지고 야성이 되어 지나가는 모든 이에게, 특히 여자들에게 달려든다. 때로는 실로 싸움이 벌어진다. 어떤 부인들에게는 이것이 독특한 마조히즘적 쾌락이다.
유로치카. 유로치카는 아주 아름다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 새로운 무언가가 생겼다: 동작의 느림과 세련됨, 어떤 억양과 미소의 의도적인 감미로움, onctuosite. 그러다가 때때로 캡 모자를 흔들 때면 예전의 다정하고 앳된 얼굴이 된다. 아주 여위었다. 당구를 멋지게 친다. 아이들을 다룰 줄 안다. 반쯤 성직자 같은 옷차림을 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예수회원? 어쩌면 최근에 예수회에 관한 책을 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 있을 때보다 누워 있을 때 더 날씬해 보인다. 새 잠옷을 입고 잠들었을 때, 앳된 그는 비어즐리의 그리스도, 아니면 오브리 자신을 닮았다.
의사. 의사 코지민, 내 또래이며 타고난 차르스코예 셀로 사람이다. 자전거를 탄다. 명성도 있고 환자도 많다. 전직 연대 군의관으로 폴란드 왕국과 레벨에 주둔했다. 대단히 위안이 되는 사람이다. 발작 후에 그가 내 방에서 잠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도시. 오랫동안 공원 없이 지내야 했던 나는 아래쪽 대로 너머, 철도 선로 쪽으로, 탸를레보 쪽으로 완전히 새로운 “데츠코예 셀로”를 발견했다. 반 고흐풍의 먼 풍경, 거리 대신 빽빽한 가로수길, 사과나무, 염소, 채마밭, 그리고 1908~12년 양식의 모더니즘 별장들이 있는 곳이다. 아침에 그곳은 좋다. 아침은 언제나 어딘가 유럽적인 성격을 띤다. 아마 유럽에서는 일찍 일어나는데 우리는 10~12시까지 뒹굴기 때문일 것이다. 6시에 일어나는 강제된 우아함을 지녔던 것은 농민뿐이었다.
과거. 이제 모든 것이 무섭게 빨리 과거로 물러난다. 미처 일어나기도 전에 — 이미 과거다. 5월 며칠 동안의 유르.의 체류 — 과거[다]. 그의 도착. 사랑하는 유르.의 도착. 집은 꽉 차서 곧 무너질 것 같았고, 이런 인파는 1년에 한 번, 장날이나 선거 때나 모이는 것이고 평소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다. 처음에 지토미르스키, 부나코프, 가브론스키, 발. 바스.의 체류 — 과거다. 사야노프, 카메굴로프, 코바르스카야, 나트. 니크. — 이미 과거다. 심지어 슈발로바와 그 남편, 리야 슐기나와 올로무츠키도 — 과거다. 나의 병 — 과거다. 그리고 도시, 병원 — 병원 정원의 전망 — 은 일종의 고대다.
정원의 작은 마당. 밖에서 보면 언제나 모든 것이 더 좋아 보이지만, 때로는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우리에게는 황폐한 화단 한가운데, 커다란 붉은 점토 화분이 묻혀 있는 작은 잔디밭이 있다. 벤치가 하나 놓여 있다. 푸른 풀과 수많은 단조롭고 어딘가 납작한 노란 꽃들, 민들레. 푸른 하늘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새들, 성스러운 울타리 안처럼 믿을 수 없는 고요. 철책과 역을 오가는 행인 대신 수도원 담장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니까. 그곳에서 라틴어 같은 것이나 d’Annunzio, [아니면] 셰익스피어를 읽을 일이다.
병. 내가 병들었을 때 모두가 나를 찾아왔고 다들 모두를 내게 데려왔으니, 마치 내가 집안의 명물인 것 같았다. 아주 즐겁고 유쾌했다. 나는 회복되어 가며 꿈속처럼 잠들었고, 혼자 있을 때는 응접실이나 정원에서 떠들썩하게 노는 소리를, 혹은 안나 세묘노브나가 자기 레퍼토리를 연주하는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다. 마스네의 엘레지, 「임모르텔리」, 레비코프의 「월광 소나타」, 존 그레이, 그리고 「Invitation a la valse」의 한 대목. 이것이 10일 동안 계속되었다.
주인. 작고 조용한 공산주의자. 시골 교사처럼 생겼다. 아이 둘과 폐 괴저에 걸린 병든 아내가 있는데, 그녀는 멀리 어디선가 기침을 한다. 성가시지 않게 매우 세심하지만, 최근에는 무언가 걱정이 있는지 건조하고 사무적인 어조가 들린다. 흰 앞치마를 두르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의사인지 정원사인지 모를 꼴이다. 그의 성은 크로힌이다. 그 전에는 어떤 운명적인 여자가 있었다. 언제나처럼 그의 자리를 노리는 음모가 있다.
집. 유르.가 나를 살게 할 집을 하나 물색해 두었다. 성인지 별장인지 모를 집, 붉은 지붕이 있는 하얀 부속 건물들. 사방에 발코니. 내가 작업할 유리 돌출창. 사과나무들. 이 모든 게 좀 날림이지만, 기분 좋다.
유르.의 새 지인들. 유르.는 자기 지인들을 사귄다. 전에도 사귀었다: 소년들, 수집가들, 숭배자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은 O. N.이 내 코앞에서 지인들을 빼앗거나 가로챈다. 이를테면 코지민 부부, 제냐, 스테파노프 부부, 술타노프 부부, 돔브롭스키 부부, 부분적으로는 바기노프도 그랬고, 바토린 부부, 페트로프, 리드. 이브. 아베리야노바. 지금은 사야노프 부부다. 나를 슬그머니 밀어낸 지인들의 무리. 그래도 나는 이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수법: 나와 따로 다니고, 유르.가 나와 함께 다니지 않도록 애쓰는 것, 그런데 그녀와는 물론 함께 갈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혼자서는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오는 것조차 못 하니까. 유르.와 O. N.이 더 유기적인 한 무리라는 인상. 그래도 그 사람들은 내게 온다. 물론 O. N.이 반드시 함께 있고, 심지어 안. 드미.에게도 비슷한 일을 하려 든다. 그러나 그건 너무 무거운 대포다.
5월 16일 (화요일)
형언할 수 없는 우울, 차라리 기차를 타고 떠나 버리고 싶다. 처음에는 죽은 듯한 침묵이었다. 이제는 종일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젊음 때문에, 공산주의 때문에, 유대인이라서 뻔뻔한 유대인 계집애들이 몰려왔고, 내 세미나는 병이 나서, 나는 큰 탁자에 혼자 앉아 있다. 아침에 겨우겨우 산책했다. 유르.가 오기를 도저히 못 기다리겠다. 다텔조차 분위기 탓인지 어쩐지 기운이 꺾였다. 의사가 잠깐 들렀다. 공책에 쓰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뒤에는 공동실에 나가지도 않았다.
앉음새. 아래쪽 대로로 군인들이 타고 다닌다, 그들에게는 레르몬토프처럼, 모든 젊은 군인처럼 멋지게 앉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리고 어떤 소박한 매력은, 어쩌면, 예전에 이따금 그랬던 것보다 더 많기도 하다.
황량해짐. 우리 집이 황량해졌다. 의사의 방문조차 활기를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투신스키도 부르지 않는다. 당구조차 아무도 치지 않는다.
공쿠르 형제. 공쿠르 형제의 글에서 「스키피오의 꿈」에 관한 대목을, 그리고 그것이 불멸의 감각이 선명하게 표현된 것이라는 대목을 다시 읽어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키케로를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 같은 늙은 얼간이로, 그리고 철학자로서는 (로마 철학!) 아주 약한 인물로 여겼는데, 공쿠르 형제의 글에서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나는 『폴리필로의 꿈』과 특히 거기 실린 만테냐의 판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재판본을 꼭 구해야겠다. 아마 있을 것이다.
공공성. 누군가 만족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공성을 멸시하고 증오하지만, 공공성에 대한 욕구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 발달해 있다. 게다가 이 욕구는, 가장 반공공적인 체제 아래에서도 공공성의 조잡한 겉모양을 주기만 하면, 더없이 쉽게 속일 수 있다. 바로 이 속아 넘어간 공공 활동가들은 아마 아주 만족해할 것이다. 진짜 공공성은 다행히도 조금이라도 국가다운 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궁전들. 모두가 알렉산드르 궁전을 욕하고, 나도 그중 하나다. 유르.는 거주 공간으로서, 살림집으로서는 그리 나쁘지 않고 아늑하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다른 문제지만, 많은 착상이 어딘가 초라하다, 특히 지금처럼 칠이 벗겨진 상태에서는.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유르.를 사랑한다. 나는 이것을, 보들레르가 자기 천재성에 대한 단언을 되풀이하라고 권했던 것처럼 되풀이한다.
게다가 날씨도 나빠졌다.
5월 17일 (수요일)
조금 산책했다. 위장 탓인지 무엇 때문인지 다소 몸이 무겁다. 의사가 왔다. 손님은 계속 늘고 있다. 유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나가려던 참에 그가 온다.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서 기대하던(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1000이 아니라 500루블밖에 주지 않은 데 낙담한 모양인지, 아니면 아픈 건지, 아니면 O. N.과 무슨 일이 있는지, 그런데 어쩐지 아주 금방, 거의 곧바로 눈물 섞인 말다툼을 시작했다. 서로 일기를 읽어 주었는데, 그것도 눈물을 쏟으면서, 하지만 이건 일종의 배출구였다. 모퉁이까지 걸어갔고, 그는 약국으로 갔다. 그다음 그를 마중 나갔다. 그렇다, 그는 서운해했다, 내가 왜 지루해졌다고 여기느냐고. 물론 그의 처지는 끔찍하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잊혔고 자연스러움을 박탈당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화해했고, 그는 19일에 이틀쯤 오고 싶어 한다. 팔라다의 어떤 아는 여자와 어울리기 시작했는데, 그 여자는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고 의사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유르를 배웅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리로 아자돕스키가 왔다. 유르가 아주 흥미를 보였다. 그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심지어 내 방에도 들렀다. 늙은 유대인 여자가 도미노 한 판을 상기시키고, 아가씨들 중 하나는 베로치카 크로카우로 밝혀졌다. 아주 기분 좋게 누웠는데, 갑자기 창을 두드린다. “무슨 일이오?” — “환자를 데려왔으니 들여보내 주시오.” — 셔츠 바람으로 일어났다, 당직실에서는 물론 아무도 자지 않고 있고, 안드르. 알렉스.를 찾아냈다. 알고 보니 어떤 휴양객이 더 일찍 올 수 없었던 것이다. 잠이 좀 달아났다. 완하제가 듣지 않았다.
5월 18일 (목요일)
합창. 러시아인들은 합창을 대단히 좋아한다. 학생들, 술 취한 자들, 관리들. 나는 왠지 이 취향을 경멸하며, 조직된 합창(교회, 극장의) 외에는 가정에서 부르는 합창, 또는 Singverein 같은 것을 견디지 못한다. 견학객들은 늘 노래하는데, 아주 형편없다. 특히 여자들이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이 점에서 더 뻔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아래쪽 대로를 따로따로 걸었고 그럭저럭 괜찮았다, 특히 — au moment supreme에는, 그러나 무리 지어서는 볼품없다. 여자들만 노래했고, 더 솜씨 좋은 네 명이 떨어져 나와 서로 끌어안고 기타에 맞춰 노래했다. “그리고 거칠고 정열적인 소리들이 밤새 그곳에 울려 퍼졌다”, 마치 그들의 울부짖는 왈츠가 타마라 여왕 곁에서 울려 퍼지는 듯이. 언젠가 18년인가 19년에 유르와 함께 거리를 걷는데, 어느 대문 밑에서 누르스름하고 악취 나는 거품 섞인 물이 콸콸 흘러나오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마치 백 명의 정열적인 청년과 처녀들이”라고 읊었다, 생략된 뒷말은 오줌을 갈겼다, 말처럼 거세게. 견학객의 나머지는 어떤 긴 서사시 같은 것으로 때웠다.
“근위대 대열에 맞닥뜨려…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벌어졌고…
그리고 젊은 전사는…”
아니면 또 “바다로, 바다로,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를 뽑기 시작한다. 남자들은 그래도 노래 부르기를 부끄러워한다, 수치를 잃지 않았다.
모차르트. 모차르트 작품 대부분은 낮에, 아니면 아침에도 연주하기 좋다. 다만 많은 adagio는 달밤이나 어두운 밤을 요구하고, 오페라는 각광과 무대, 그리고 이탈리아, 스페인, 동방, 로마와 그리스의 뜨거운 숨결을 요구한다. 오히려 모차르트는 아침 햇빛을 견뎌 내는데, 그 빛 아래에서는 이를테면 쇼팽도, 바그너도 — 무의미하다.
병사. 매표소 앞에 병사가 서 있었는데, 몸을 굽히고 휘어 엉덩이를 내밀고, 그렇게 오래 서 있었다. 병사가 아니라 무슨 계급이 있는 자였다, 바지가 파란색이고 장화가 좋았으니까. 아주 오래 서서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내보인 신체 부위가 우아하고 수줍게 아양을 떨었는데, 아주 유혹적이고 자연스러웠다. 이것은(남성의 유혹성은) 고대와 르네상스에 이해되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는 남성적인 것이 분명히 우세하고, 17세기에는 균형, 18세기와 19세기는 미학과 유혹성의 의미에서 여성의 완전한 지배.
집주인들. 의사의 전언. 유르가 나를 살게 하려던 집은 재단사가 지었고; 글린카 거리의 회색 집은 — 은행 일을 하던 자, 추방되었다가 지금은 돌아온 자; 모스크바 가도의 흰 집, 유아 요양원이 있는 곳은 — 프롤로프, 그도 그곳 안채 방에 산다.
오늘 아침부터 왠지 기쁨에 찬 하루다. 이곳에서는 휴일이 명절처럼 느껴진다. 손님들이 오고, 음식을 더 잘 만들고, 아이스크림을 마련하고, 차에는 빵이 나온다. 몸이 무겁기는커녕 적극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완하제가 그다지 듣지는 않지만 아주 좋다. 아자돕스키와 어울렸고, 다텔과 작별했으며, 아가씨가 저녁에 슈베르트, 쇼팽, 베토벤, 심지어 드뷔시의 「La plus que lente」까지 연주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어딘가 정신없다. 바람에 쫓기는 속도감과 완전한 방종. 산책은 적게 했고, 아침에 면도한 뒤에만 했다. 모두 종일 크로케를 한다.
웃음. 멀리서 들리는 웃음은 즐거운 삶의 표지로서, 또는 적어도 즐거운 시간 보내기의 표지로서 매우 매혹적이거나, 아니면 같은 표지이면서도 자신이 침울하거나 불행할 때는 성가시고 모욕적이다.
아자돕스키. 이콘니코프와 데셰보프의 잡종. 시베리아 출신. 그림 형제, 푸시킨의 동화, 연극, 책, 프루스트에 관한 이야기, 물론 모든 것이 적절하지만은 않게, “Academia”에 관해서, 셰익스피어에 관해서, 베르콥스키, 스미르노프, 지르문스키에 관해서. 방금 나는 유르.에게 지루함을 털어놓았다.
5월 22일 (화요일)
날씨가 나쁘다. 유르.는 계속 그림을 그린다. O. N.이 다녀갔으나 어딘가 늘어졌고 나는 좀 힘들었다. 모두 집에만 있었다. 우리는 비를 맞으며 산책하러 나갔다. 우리 사람들을 배웅하고, 이어서 아가씨들과 앉아 있었고, 그다음 우리 폭탄 아가씨가 내 점을 쳐 주었다. 어제 아침에는 날씨가 멋졌다. 그러다 어머니와 보바가 왔다. 감동적이다. 유르.는 그들을 카메론 갤러리로 데려가 먹였다. 그곳이 더 아름답지만 높고, 좀 비싸고, 그다지 맛있지 않다. 바스마노프 부부를 만났고, 우리에게는 메이셀만이 왔다. 아가씨들과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유르.가 그들을 배웅했다. 저녁 식사 후 아가씨들과 어울렸고, 유르.는 베로치카에게 자기 그림까지 보여 주었으며, 파니와 레노치카도 달려왔다. 잘 잤다. 아자돕스키와 베로치카는 떠났다. 마지막 날들이다. 왠지 아쉽기도 하고, 이제 떠나고 싶기도 하다.
잎 위의 비. 비 온 뒤 해가 나오면 모든 덤불이 다이아몬드와 수정으로 반짝이고, 가벼운 바람 아래서 호프만적인 마법 같은 것이 숨 쉬는 듯하다. 이상하게도 이 모든 것은 내가 안경 없이 바라보는 동안에만 계속된다. 안경을 쓰면 모든 물방울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잎 하나하나가 따로따로 삐죽 솟아 있고, 아무런 가슴도, 아무런 숨결도, 아무런 요정도 없으며,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악마가 내 눈에 거울 조각을 넣어 둔 것 같다. 안경은 합리성과 염세주의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근시는 이상주의와 좁은 의미의 회화의 토대다.
아가씨들. 아가씨들은 예의가 없고 뻔뻔한 듯하지만, 실은 잘 믿고, 감정을 잘 드러내며, 자기 관심사와 견해로 가득 차 있어서 그것들과 남에게서 들은 것 가운데 자기들에게 더 흥미로워 보이는 것을 서둘러 말하려 한다. 그러나 분별은 있다. 의사와 붉은 교수를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아자돕스키에게는 순종적이고 다정하며, 나를 존경하고 유르.를 두려워한다. 이 모든 것은 같은 아양떨기의 변종들이다.
박물관. 본치-브루예비치와 불쾌한 일이 있었다. 그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자료에 값을 너무 많이 치렀다는 것인지, 아니면 한 해의 한 부분을 잇따른 값비싼 구입으로 과하게 채웠다는 것인지, 그를 비난한다. 물론 바흐루신이 여기에 어느 정도 관련되어 있고 내 아카이브 구입도 그렇다. 그는 이미 이 일에 관해 편지를 썼지만 나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청했다. 그에게는 레닌그라드와의 서신을 중단하라는 요구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박물관 일과 무관하게 두 여자와 편지를 주고받는다고 말하고서는 서신을 중단하기를 거부했다. 그 구입품들의 전시회까지 마련되었는데, 구입품의 가치를 눈으로 보여 주는 시연이다. 나는 이 일을 아자돕스키에게서 알았다.
점술. 나에게 점을 쳐 준 내용은 이렇다. 예상치 못하게 돈을 받거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 그러나 내 어떤 계획에는 지연이 생기거나 아예 성사되지 않을 텐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나에게 호의적인 여자가 병이 들었거나 떠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풍요롭고 부러울 만하며 요란했다. 이제는 병이 모든 것을 방해하고, 곧 기분 좋은 모임, 젊은 남자, 돈 등. 모든 것은 뜻밖의 일로 끝난다. 어떤 편지(서류 ?) 때문에 생기는 예상치 못한 번거로움.
형. 병원에서 한 여자(간호사나 여의사)가 어린 남자아이 둘과 함께 걸어 나왔다. 하나는 열 살쯤, 다른 하나는 다섯 살쯤이었다. 아이들은 말놀이를 하고 있었다. 동생이 얼마나 황홀하게, 동경하듯 바라보던지. [어머니]는 아직 대외 정책 면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돈을 구하고, 관리인을 쫓아내고, 전기를 고친다. 그런데 형은 네가 아직 못 하거나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줄 안다. 나무에 오르고, 개구리에게 돌을 맞히고, 그는 궁리꾼이고, 재주꾼이고, 미남이며, 아직 네게는 닿지 않지만 네 본성에 맞는 성공들이 그에게는 닿아 있다. 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할 텐데, 여자들은 너무 시기심이 많다. 참으로 비열하고 깊이 고귀하지 못한 감정이다.
5월 23일 (수요일)
종일 비. 겨우 반 시간을 내어 산책했다. 유르 생각에 몹시 안쓰럽고 그립다. 그의 궁리와 일이 잘 풀리기를 바란다. 그는 그렇게 애쓰고 있으니. 몹시 바란다. 저녁에는 모두 무슨 바보 같은 놀이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린스키 극장에서 「카르멘」을 가지고 반주자 드미트리예프가 어떤 아가씨와 함께 나에게 찾아왔다. 이것이 그 예상치 못한 번거로움 아닐까? 잘 잤다. 이제 나는 불을 바로 끈다.
주변. 보바를 데리고 그 어머니가 온 것이 어머니와 함께 다차에서 지내던 일과 시내로 나가던 일을 떠올리게 했다. 모든 것이 비좁고 작고 답답해 보인다. 도시의 봄을 지낸 뒤의 환경 변화가 반갑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레스노예 근처 어느 작은 섬의 다차도. 나에게는 우델나야, 포클론나야 고라, 오제르키(당시 꽤 유행했으나 몰락한 곳)와 얽혀 있다. 고모와 안드레이 이바노비치의 다차. 재판정 — 집 나누기, 작은 방들. 여름 아침 — 거리. 『갈 곳 없음』 어딘가에서도 넉넉지 않은 다차에서들 살고, 누이들도 살았다. 니즈니 근처, 초르노예, 유르키노, 바실의 다차들은 이미 더 넉넉한 규모였다.
포스코친. 이곳의 귀부인 중 한 사람이 그레구아르 포스코친을 알았다. 그는 그녀에게 남편의 죽음과 아들들을 통한 “명예”를 정확히 예언했다. 그녀는 자기 나이와 지위에 비추어 미신을 믿는 것이 좋은 격식이라고 여긴다. 나는 끝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사람을 떠올렸다. 18~20년 무렵 그는 크게 인기를 끌었다. 페르시츠, 스몰리치, 벨렌손. 벨렌손이 일이 년 동안 도망치려 했던 일. 그야 뭐, [랸]다우, 레미조프 부부, 프롤로프는 도망쳤으니까, 마리야 오시포브나는 어처구니없는 다이아몬드 때문에 국경을 넘다가 죽기까지 했다.
5월 24일 (목요일)
손님. 비. 폭탄 테러범 여자에게 호감 가는 남편과 손자, 그리고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하고 드뷔시와 스크랴빈을 좋아하며 모차르트에서 쉬는 젊은 남자 유라가 왔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들을 좋아한다. 사랑하는 유로치카가 왔다. 밀라솁스키가 『돈 후안』에 관해 쓴 편지, 세료자의 인사, 스미르노프가 함께 키슬로보츠크에 가자고 한 제안. 유르는 나를 조금 그리워했다고 말한다. 진창길을 조금 걸었다. 정원에 앉아 있었다. 내일은 베로치카 크로카우가 그에게 온다. 팔라디나의 지인도 전화했다. 이사 갈 마음이 이미 잡혔다. 우리 아가씨들에게는 어머니들이 왔고, 아가씨들은 꼬리를 사렸다. 모두 베란다에서 맴돌았는데, 마치 호도베츠키의 그림처럼 아이들, 카드꾼, 자수하는 이들, 음악가, 사냥꾼, 개들이 한 상자에 가득 차 있었다. 사랑하는 유르를 배웅했다. 사전과 외투를 가져갔다. 31~32년도 《Querschnitt》를 많이 샀다.
정원 쪽 현관 계단. 집 가까이에 빽빽하고 가지각색인 초록.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전나무와 보리수, 꽃 핀 인동덩굴, 몹시 그늘진 오솔길. 라일락이 차양을 이루고, 그늘마저 라일락빛인 듯하다. 벌들의 윙윙거림, 나비들의 날갯짓. 그리고 바로 이 초록 속으로 두 번 꺾인 높은 현관 계단. 위로는 하늘이 몹시 높다. 까막까치밥나무 그늘에 조각상이나 연못이라도 있었으면 싶을 정도다. 내 취향과는 달리, 이것은 그 자연스러운 무성함으로 내 마음에 들었다.
시모네타. 시제랑의 글에는 시모네타 베스푸치에 대한 사랑스러운 묘사가 있다. 물론 이는 시제랑의 웅변이 아니라 시모네타 자신의 탓이다. 젊음 전부와 자기 삶 전부를 7년(16~23) 만에 달려 지나간 소녀, 거의 환영이고 상징이며 인간이 아닌 존재, 보티첼리가 도처에서 비너스와 마돈나와 봄의 모습으로 그려 낸 이, 로렌초의 연인, 폴리치아노가 노래한 이, 열광적이고 기쁘게 놀라며 모든 것과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이, 가볍고 달아나는 옆얼굴. 모든 이에게 기쁨과 삶의 사랑스러움을 가져다주며, 자신이 맨 먼저 그것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는 이. 그리고 아무도, 그녀 자신조차 보지 못하는 것, 그녀의 운명 지어진 파멸을 보는 보티첼리. 모두의 순간적인 숭배, 게다가 누구나 그녀의 관심 전부가 자기 한 사람에게만 향해 있다고 느낀다, 그토록 충만하고 꾸밈없고 가벼운 그녀의 사랑스러움이다. 영원토록 덧없이 스러지는 젊음의 상징. 성격에서뿐 아니라 이목구비에서도, 바로 시모네타에게 가장 특징적인 것 — 눈빛에 이미 O. N.와 공통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에는 큰 ‘그러나’가 있다. 첫째로, 다행히도 O. N.는 스물세 살에 죽지 않았고, 둘째로 그녀는 자기 자신에, 경쟁에, 어쩌면 질투에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 열광적이고 구름 한 점 없는 삶의 향유를 지니고 다니며 모든 것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수 없다. 어쩌면 여기에는 창조적이고 의지적인 원리가 죄가 있을지도 모른다, 유르.가 생각하는 대로(물론 시모네타는 예술과 삶의 전형적인 영감을 주는 자이자 소비자이지 창조자가 아니다), 어쩌면 김나지움 여학생 같은 허영심과 클레오파트라, 로트실트, 미국 영화의 가장 하찮은 오줌싸개 계집애와의 셈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러나 그 누구와의 유사성보다 큰 유사성이 있다, O. N.에게는 시모네타와, 시모네타에게는 O. N
라일락. 라일락을 꺾었다. 위생적인, 거의 예방적인 작업. 아래쪽 가지들은 물론 오래전에 행인들과 아이들이 꺾어 갔다. 문제는 위쪽의 손 닿지 않는 호화로움이었다. 하인들이 작업반을 꾸려 이 일을 했다, 진지한 일처럼, 포도 수확처럼. 두 처녀가 가지에 매달리고, 세 번째 처녀가 갈퀴로 줄기를 기울이면, 마당지기가 큰 가위로 보라색 꽃송이를 잘라 냈다. 나무들은 곧바로 이전의 곧은 자세로 돌아가지 않는다. 탁자마다 커다란 꽃다발. 꽃송이를 잘라 주지 않으면 꽃이 씨앗으로 넘어가고, 말라 버리고, 얼어 버리고,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해에는 피지 않는다.
도착. 오늘 오랜 병을 앓은 키 큰 금발 여자가 도착했는데, 그녀와 똑같이 키 큰 여자, 곧 어머니와, 개량된 마야콥스키 같은 젊은 남자가 그녀를 데려다주었다. 아무도 없을 때 도착했고, 나는 식당에서 밀로의 「브라질 춤곡」을 치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를 혼자 남겨 두고 갔다. 유르.가 나를 데려왔을 때 얼마나 불쾌했던가. 그때도 이렇게 기다렸고, 나는 점심을 거절했다. 베개를 3개 주었다. 부나코프는 옷을 벗고 누워 쉬었다. 모든 것이 기괴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창으로 유르.가 떠나는 것을 보며 울었고(즉 내가), 혼자 남았다.
얼굴들. 프롤레타리아 가족. 사납고 광적인 아내, 범죄적인, 백치 같은 계집아이, 그리고 아버지 — 한쪽 어깨가 다른 쪽보다 높고, 눈은 사시로 서로 다른 때에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다. 게다가 영원한 크레틴 같은 웃음과 손은 내내 뭔가를 더듬고 있다. 신문에 실린 초상들은 — 범죄자와 정신병자들의 얼굴이다, 정말로. 우수 노동자들이란 온통 추바로프 패거리 같은 자들이고 집털이꾼들, 둔한 짐승들이다. 하기야 부르주아들의 얼굴도 그리 나을 건 없고,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면 시대가 그런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귀족 부인 소피야 솔롬이 한 프롤레타리아와 카람볼을 칠 때, 그자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5월 25일 (금요일)
마지막 날. 줄곧 비. 조금 산책했다. 새로 온 여자는 로제스트벤스키의 전처였다. 그녀의 오빠와 올케. 성이 헝가리식으로 크스테니 같은데, 예술[학자]이고, 페트로프를 알며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이 집에서의 첫인상은 — 내가 오랜 결핍 끝에 큰 응접실에서 밀로를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키가 크고 음악가 같다. 저녁에는 도미노를 하고 점을 쳤다. 내가 떠나는 걸 아쉬워한다. 이곳 의사가 전화해서 오겠다고 했다.
귀족 가문. 이 표현을 처음 만난 것은 골리체르에게서였다. 우리에게는 아는 사람이 많았다: 물론 칸네기세르들, 페르시츠, 투마르킨들, 란다우. 명료하고 아주 특별한 종족과 스타일과 습속, 블로흐 가. 그리고 또 유대인들의 심미적·학문적 가문들이 있는데, 이들 역시 러시아인들과 다르다. 유대인들의 유럽주의란 그들에게 러시아적인 것, 즉 그들이 사는 나라의 민족성이 없다는 데 있으며, 그들의 억양도 마찬가지다. 벽 너머로 파이가와 엠마의 대화 — 그것은 독일, 이탈리아, 그 마지막 것들, 즉 독일계, 이탈리아계, 폴란드계 유대인들이지 러시아가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 다소 집 없는 매력이.
자연의 소리. 가장 불안하고 불쾌한 소리는 — 강풍에 나무들이 내는 소리, 그다음 바다의 소리, 더구나 그것은 규칙적이어서 다음 파도가 부서지기를 기다리게 된다, 마치 벽 너머 이웃이 옷을 벗을 때 두 번째 장화를 기다리듯이. 마음을 진정시키는 소리들(때로는 우울하기도 한) — 뻐꾸기, 비둘기들의 구구거림, 시냇물의 졸졸거림, 빗소리, 개구리들의 울음, 장작 켜는 소리, 새들의 노래 — 즐겁고 활기찬 것. 뇌우 — 역시 순진하고 꽤 아이 같은 겁주기다. 모든 장엄함은 먹구름과 번개에 있지, 요란한 소음에 있지 않다. 어두워짐이나 소리의 증폭에 있지, 소리 자체에 있지 않다, 물론 여기에도 스포츠적인 흥미가 더 많긴 하지만.
나의 연주. 내가 결코 피아노를 위해 쓸 줄 몰랐던 것처럼,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할 줄도 모른다. 그것은 기교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연주의 성격 자체다. 띵땅거리는 처녀가 피아니스트 같은 인상을 줄 수도 있지만, 나는 설령 탄탄한 기교를 가졌더라도 피아니스트처럼 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나에게는 너무 지나친 어림잡기와, 오로지 람플리사주를 위해, 소리를 위해 음들을 잔뜩 쏟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음들을 무더기로 다룰 때면 언제나 음들이 아깝고 서운하다, 그래서 대위법도 투티도 나에게는 흥미롭지 않고, 합창도 집단주의도 그렇다. 피아노는 끔찍하게 평균율로 조율된 악기이고, 부정확한 울림이 있어 이웃 음들과 비슷하다.
5월 28일 (월요일)
무사히 이사했다. 프리덴탈 정착촌에서 산책했다. 그곳의 초원이란, 그 시내란. 의사가 알약을 처방하고 마지막 당부를 했다. O. N.도 왔다. 시내에서는 모든 것을 낯설고 흥미로운 것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게 마음에 든다. 집도 그렇다. 쪽매바닥이 바랬고 차가 좋지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잘 잤다.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가 일거리를 가지고 왔고, 스토리친이 전화했다. 날들이 더 빨리 흘러가고, 시간은 줄었다. 마루 닦는 사람이 왔다. 유르.는 멋진 꿀과 사과, 오를로프의 책을 샀다. 오스메르킨과 레프 리보비치에게 거듭 전화했으나 헛수고였다. 연락이 닿은 건 나타샤뿐이었는데, 그녀는 옴스크로 간다, 그곳에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었다. 유르.는 아냐 페트로바에게 다녀왔다. 시제란을 읽는다. 프로만과 바이센베르크를 만났다. 후자가 나를 바래다주었는데, 어딘지 드레스덴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에서 공부한 칸카로비치를 닮았기 때문이다. “붉은 작센”. 동맹과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받아주지 않을 수도 얼마든지 있다. 투신스키와 약속을 잡았다.
안나 드미트리예프나. 아주 가깝고 아주 창조적이다. 나의 모든 결점과 그녀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를 극소수의 사람만을 사랑하듯 사랑한다. 그리고 나에게 [그녀는] 언제나 소녀, 거의 프시케다, 비록 미켈란젤로적 규모일지라도. 속물적 관점에서 보면, 어쩌면 그녀는 허풍쟁이이고, 자기만족에 빠져 있고, 어수선한 장군 부인일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은 하찮은 일이고, 그녀의 창조적 총체 속에서는 눈에 띄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아주 적절하게 눈에 띈다. 그녀의 외모, 영감에 차 있고 쾌활한 그녀의 눈, 그녀의 목소리, 어느 정도의 effronterie와 함께하는 그녀 내면의 소심함,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의미 있고 가깝고 순수하게 만드는 깊고 유기적인 창조적 기예. 그녀는 원한다 해도 하찮은 것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요란하게 실패할 수는 있어도, 자신을 헐값에 쓰거나 날림으로 일할 수는 없다. 그리고 갖가지 경박함도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뒤제에 대한 선정적인 폭로가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설령 그쪽에 수백 건의 연애가 있었다 해도. 파블로바에 대해서도, 심지어 덩컨에 대해서도 그런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안. 드미.에게서는 갖가지 거친 말이나 심지어 음란한 말도 아주 순수하고 유기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리스적인 바탕 외에도, 가장 중요하고 깊은 것들에서 A. D.에게는 이탈리아적 서민성 또는 민중성이 있다. 이탈리아 예술(라틴도 로마도 아닌, 바로 이탈리아 예술)에는 언제나 민중적 흐름이 있다(가장 탐미적이거나 스콜라적인 시인, 음악가, 화가에게도). 단눈치오도, 심지어 페트라르카나 폴리치아노도, 푸치니도, 몬테베르디도, 키리코도 — 이 모두가 전민중적이고, 뒤제도, 카발리에리도, 파티도 — 이 모두가 전민중적이다, 이탈리아 민중이란 더없이 부드럽고 더없이 다정한 매력이자 예술성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안. 드미.에게는 스타일화 없이 있고, 다른 누구에게도 없다; 뱌체슬라프에게도, 안넨스키에게도. 그래서 그녀는 benedetta이고, 그래서 그녀는 은총이며, 그래서 나는 나의 모든 결점과 그녀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한다. 내게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은빛 하늘. 평원 쪽 하늘은, 특히 평원이 나무들 사이로 보일 때는, 잿빛 날씨도 견뎌 낸다. 부드럽고 온화해지며 은빛이 된다. “코로의 은빛 삶!” 아주 우아하다. 그러나 숲이나 빽빽한 정원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무 전체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괜찮다.
다시 제비들. 나는 도시에서 그들을 보게 되었다, [데츠코예 셀로]에서는 그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많지 않고, 해 질 녘에 느릿느릿 난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친척으로 여기고, 어째서인지 쿠즈마 프루트코프를 떠올린다:
병사의 엉덩이를 마다하지 않는 자,
그에게는 우익병도 조카딸이 될 수 있다.
5월 31일 (목요일)
29일에는 O. N. 집에 갔다. 오스메르킨, 스테파노프, 돔브롭스키가 와 있었다. 별일은 없었고, 다만 다들 남의 그림을 보기 시작하자 오스메르킨이 어쩐지 술에 취해 누워 자 버렸다. 스테파노프는 발레 공연 같은 무해한 오락거리를 구상했다. 다음 날에는 늦지 않게 일어났다. 아무 데도 아프지 않고 위도 괜찮다. 스토리친과 샤드린이 왔다. 연맹 일이, 어리석게도, 신경 쓰인다. 오늘 우리 식구들은 데츠코예로 갔고, 나는 면도를 하고 저녁을 위해 이것저것 샀다. 물론 우리 식구들은 몹시 늦었다. 페트로프도 불렀다. 그는 레부시카 바로 뒤에 나타났다. 모두 그럭저럭 넘어갔다. 내일은 교환권을 찾아와야 한다. 그리고 5일에는 유르.가 데츠코예로 떠나고 싶어 한다. 의지할 데가 없다. 오늘 석유풍로, 프라이팬, 비누, 소다, 말린 버섯, 풋완두를 옮겨 왔다.
옆 마당의 소녀. 우리는 그 애를 벌써 십오 년쯤 보아 왔는데, 그 애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 여덟 살쯤이었으니 지금은 스물이 넘었을 텐데, 보기에는 열두 살이다. 그 애가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그 모든 몸짓의 비상한 우아함과 가벼움과 자연스러움 때문이었다. 신성한. 그 애는 뛰고, 껑충거리고, 공을 던지고, 춤을 추었는데, 마치 왕의 딸처럼, 나우시카이아처럼, 프시케처럼, 여신처럼. 그리고 마당의 모든 여자아이들이, 나이 많은 아이든 어린아이든, 아마도 그 애를 그렇게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 애의 태도는 소박하고 고르고 명랑해서 ‘거만을 떠는’ 것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그 애가 단 아무리 하찮은 리본도 우아해 보였다. 모두들 제 힘껏 서투르게나마, 그러나 노예처럼 그 애를 따라 했다. 그 애의 얼굴은 둥글고, 매끈하게 뒤로 빗어 넘긴 머리칼은 인피 같은 두 가닥 땋은머리였고, 핏기 없이 납작한 얼굴에, 밝은 색의 넓게 벌어진 눈, 예쁘지는 않지만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이 가득했다. 어느 멋진 가을날 그 애는 갑자기 단번에 아낙네가 되어 돌아왔다. 몸이 내려앉고, 엉덩이가 넓어지고, 얼굴은 둔하고 자신만만해졌다. 그러나 우아한 몸가짐은 그대로였는데, 다만 이제는 어딘가 우아한 기교처럼 되어 있었다. 그 애의 운명은 여덟 살 소녀로 남는 것이다. 그들은 창문이 세 개인 집에 산다, 엄마가 바실리옙스키섬에 살던 집 같은 곳이다. 아버지, 어머니, 그 애, 그리고 남동생 콜랴. 때로는 그들이 앓아서 창문으로만 마당을 내다본다. 식당에는 노란 갓을 씌운 매다는 등이 있다. 여름이면 어디론가 떠난다. 그 애의 어머니는 우스울 만큼 키가 작다. 남동생은 진작 그 애를 키로 앞질렀다. 예쁘장하지만 응석받이에 어딘가 퇴폐적인 모습의 사내아이로, 사촌 오레스트 티젠하우젠 같다. 지독한 싸움꾼이자 겁쟁이라 자주 얻어터진다. 좋아하는 싸움 방식은 침을 뱉고 돌을 던지는 것, 특히 남의 마당(즉 우리 마당)을 향해서. [검열 1: 2문장] 자라면서 더 흔하고 퇴화한 녀석이 되었다. 어쩌면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도 우아함이 있지만 어딘가 계집아이 같은 것이어서, 누이가 지녔던 그런 신의 기적은 아니다.
하늘. 우리는 높은 데 살기 때문에, 나는 도시에서 시골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을 만큼 많은 하늘을 본다. 그리고 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무도, 강도, 풀도, 산도 없다. 모든 주의가 하늘로 쏠린다. 모두들 하늘이 자연의, 따라서 자연 풍경의 막강한 일부라는 사실을 잊는다.
담배. 질서를 잡아 주는 요소로서 흡연이 필요한 느낌이 나에게는 아직도 남아 있다. 특히 무언가를 기다릴 때, 또는 먹는 데 매여 있지 않은 채 식탁에 앉아 있을 때 느껴진다. 레스토랑에서 요리와 요리 사이의 막간에.
자연의 위대함. 젊은 부나코프는 구름과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계의 공간을 상상하면, 그가 말하듯, “인간 사고의 무력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천둥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목조 건물 안에 있을 때는.
6월
6월 1일 (금요일)
시작이 신통치 않다.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서도 구린 실패가 나를 덮쳤다. 겨우 30루블. 금고에서 잔액을 받았다. 이상한 사람들을 보았다: 프로닌, 드미트리예프, 피오트롭스키, 조셴코, 포포프, 솔레르틴스키. 또 미하일롭스키 극장을 위한 이탈리아인들 이야기다. 지쳤고, 실패와 갈리나 미흐.의 무례함에 속이 상했다. 유르.는 댜디콥스키와 고골리친네 집에 다녀왔고, 옐신이 전화했다. 내 생각에 이 새로운 일기 체계는 큰 공간에는 맞지 않는다. 유르.는 페테르부르크 쪽에서 부나코프네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녀가 그를 쫓아와서는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한다고, 베로치카 크로카우네 집에서 그의 그림들을 보았다는 둥 말했다.
6월 2일 (토요일)
밖에 나가지 않았다. 날씨는 맑고 추웠다. 유르.는 토르그신에서 약과 그릇들을 사들였다: 샐러드용 숟가락과 포크, 통조림용 칼, 그리고 스웨덴제 찻주전자. 나는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 방문과 전화가 잔뜩 있었다. 『일리아스』 건으로 리도치카 추콥스카야. 울고 아양을 떤다. 독일인 여성 번역가는 그녀를 칸카로비치에게 보냈다. 스미르노프, 마르푸샤. 그러다 갑자기 넬디헨이 들이닥친다. 많이 늙었지만 그에게는 어떤 시적인 엉뚱함이 있다. 그다음 리프시츠와 이야기했다. 프룸킨도 왔다. 저녁에 포도주를 조금 마셨다. 그러나 기침이 나고 목이 쉬기 시작했다.
비둘기. 잿빛 하늘에 옅은 푸른 틈들이 있는 가운데 희고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마치 아래에서 비추는 듯이, 날아갔다. 홍수 시대에서 튀어나온 어떤 현상 같았다. 지붕 위의 사람들이나 나는 새들을 보면, 그들이 내게 그토록 커 보인다는 게 놀랍다, 이탈리아 원시파들의 축척은 결코 그렇게까지 과장된 게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들을 물고기 모양으로 그린다.
변두리. 마치 낯선 도시 같아서 아주 상쾌하다, 낯선 집 하나하나를 바라보게 된다, 마치 병을 앓고 난 뒤나 난파를 겪은 뒤처럼. 전차의 종점들을 한 바퀴 돌아볼 만하겠다. 끔찍하다던 리곱카는 넓은 거리로 드러났고, 주민들은 불안정하지만 거리는 추하지 않으며, 노동자 구역들보다 낫다, 오브보드니 운하는 역들로 이어지고, 역들은 리가와 바르샤바로, 리가와 바르샤바는 다시 비엔나와 이탈리아로 이어진다. 오래된 집들도 있고, 이곳이 아직 아주 조용했던 시절에 지어진 집들도 있다. 사랑스러운 라스트렐리풍 교회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저녁노을.
아파트. 투신스키의 아파트는 마치 그가 어릴 때부터 거기서 살았고 모든 것이 아이의 체격에 맞춰 설계된 듯하다. 그의 열 살짜리 아들의 학습 책상은 마치 투신스키 자신으로부터 남은 것 같다. 그에게는 책이 (특히 “Academia” 책이) 너무나 많고, 어머니와 고모와 조카딸들이 너무나 많으며, 그 자신은 그토록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집안에 매인 듯 독립적이지 못한 어조라서, 그는 결혼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6월 3일 (일요일)
날씨가 좋다. 어머니는 묘지에 가지 않고 우리에게 밥을 먹였다. 조용히 면도를 했다. 몸이 그리 좋지 않은데, 저녁을 위해 아껴 둬야 한다. 미하일로프가 왔다. 유르.는 부엌 물건들을 사들인다. 「리어」를 고치는 데 푹 빠져 있다. 라들로프 부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미하일로프가 왔다. 유르.는 같이 간 김에 투신스키에게 진찰을 받았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불쑥 내뱉을까 몹시 두려웠는데, 그는 아무것도 없다고(간을 생각하고 있었다) 했다, 보크에게 갈 필요는 없고,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과로와 신경과민이라고 했다. 신선한 공기, 안정, 채소. 나는 대단히 기뻤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별것 아닌 병을 앓는 게 무슨 즐거움이겠는가. 우리는 즐겁게 집으로 갔다.
6월 4일 (월요일)
유르.와 함께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 갔다. 얼마나 가기 싫었는지. 헤신은 없었지만, 완전히 예상 밖으로 내 수입을 계산해 주었는데, 꽤 많았다. 게다가 나는 당첨금까지 탔는데, 그건 좀 터무니없는 일이긴 하다. 채권이 내게 있는데 그들이 어떻게 받을 수 있었을까. 즐겁게 배급소로 가서 장화를 사고, 토르그신에서 장갑을 사고, 꿀과 사과를 샀다. 집에 돌아오자 그는 곧바로 달아났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또 레비크가 내게 300루블을 지불했다. 모두를 만났다, 레비크, 이바놉스키, 티호노프, 세묘노프, 구스타브손. 아가씨는 친절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리어」를 고치고 있다. 안. 드미.는 7일에 온다. 세료자는 여기 있다. 라간스키, 프로만, 스테니치, 글레보바도 만났다. 그녀는 괜찮아 보인다. 내일 O. N.에게 데츠코예로 간다.
6월 5일 (화요일)
유르.가 떠났다, 어쩐지 원했던 때가 아닌데 떠났다. 자기 살림을 가져갔다. 그게 그를 사로잡고 있다. 신혼부부 같다. 단번에 텅 비고 저녁까지 쓸쓸해졌다. 전러시아 극작가위원회에서 그에게 마땅히 줘야 할 것을 다 주었다. 드라니시니코프와 스미르노프에게 전화했다. 모스크바에서 「시인의 심장」이 계속 상연되고 있다. 잠을 잘 못 잤다. 약까지 몇 가지 먹었다.
6월 6일 (수요일)
멋진 날씨. 기분이 아주 좋다. 다시 다른 도시에 온 것 같다. 새로운 처지. 처음으로 여름을 기쁘게 생각한다. 면도를 하고 세르반테스를 들고 몇 가지를 샀다. 새 양복과 새 장갑을 착용하고 다녔다. 두 번 잤다. 코스탸는 률랴 없이 왔다. 어딘가 시큰둥했고, 내내 앓는 소리를 했다. 그가 있을 때 스미르노프가 오고, 그가 있을 때 유르.가 도착했다. 스미르노프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어쩐지 다르게 나를 위로했다. 무엇보다 그가 슈페트의 소견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유르.는 거북이와 새끼 고양이, 물이 새는 양동이, 안주인, 저녁 산책에 대해 정답게 이야기했다. 아마도 그것이 그를 기분 전환시켜 줄 것이다. 저녁에 와인을 조금 마셨는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리엔고프와 라팔로비치 부부가 체포되었다.
소녀 이야기. 스토리친은 어린 피아니스트 마네치카 메클레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쇼팽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그녀의 전반적인 재능의 증거로 여자 친구와 나눈 대화를 엿들었다며 전했다. 마네치카의 목소리는 아이 같고 과장되게 열광적이며 감상에 젖어 있다. 어느 음악원 사내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 사내아이, 있잖아, 이 사내아이가 시를 지었는데, 아, 얼마나 멋진 시를 스스로 지었는지.
“엄마가 (유난히 천상처럼) 다리를 벌리면,
아빠가 소리굽쇠를 꽂을 거야.”
바로 이 마네치카를 가족들이 학대하고 착취한다, 여느 신동처럼, 돈의 측면에서, 심지어 명성의 측면에서도. 그들은 유대인답게 명성을 야무지게 챙기며 그 안에서 같은 돈으로 가는 길을 본다. 무잘렙스키와 함께 연회를 열었는데, 서평을 받아내려고 그를 구워삶은 것이다. 라팔손과 함께 연주회를 열었는데, 이자는 그냥 13세도 아니고 이미 18세인 유대인 녀석이다. 둘의 공통점은 둘 다 유대인이고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이다. 사정을 바로잡으려고 무잘렙스키는 그녀의 나이를 올리고 그자의 나이를 내려 14세와 17세로 했지만,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세가 붙은 여자들. 아주 특별하다. 미인도 아니고 창녀도 아니지만, 미인에게서도 창녀에게서도 토르그신에게서도 뭔가가 있다. 그러나 어떤 “부양”을 겨냥해 노선을 잡았다는 것이 대번에 보인다. 시모니치 자매, 테르나브체바 자매, 라브레네프의 아내, 사야노프의 아내, 릴랴 브리크, 이제는 글레보바도 그렇게 되었고, 마리나 보크 — 분명히 시세가 붙어 있다. 더 아름답고 더 부유한 여자들도 많은데, 그런 여자들은 값비싼 미인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저 여자들은 흔히 거의 추물이다.
6월 18일 (월요일)
이번에는 모든 게 어쩐지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나았는지도 모른다. 병실 사람들이 작별 인사를 했다. 교사는 심지어 나를 위해 건배를 제창하기까지 했다. 비둘기들이 창문을 쪼았다. 그러나 날씨가 나빠졌다. 집은 모두 예전 그대로다. 왠지 아픈 게 부끄럽다. 별다른 귀환 같은 것도 없다. 게다가 지금 내 손에는 돈이 한 푼도 없다. 스미르노프, 안. 드미., 스토리친, 코르순이 전화했다. 유로치카와 함께 면도를 했다. 내내 비가 온다. 사비노프가 우리 집에 왔다. 나는 누워서 이따금 이야기를 나눴다.
6월 19일 (화요일)
치료법 때문에 조금 다퉜다. 그러다 유르.가 나가서 차와 재스민을 사 왔는데 아주 금방 돌아왔다. 안. 드미.는 늦게 왔는데, 아주 발그레하고, 분홍 스카프를 두르고, 꽃 대신 이뇨제를 가져왔다. 사랑스럽고 상냥하다. 그녀는 시페트와 화해했다. 그녀에게 글을 읽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온통 무슨 찬사로 가득 차 있어서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토막들을 더 이상 떠먹일 수는 없겠으니, 뭔가 다른 걸 궁리해야겠다. 몸 상태는 좋다. 유르.가 일찍, 아주 일찍 돌아왔다.
6월 20일 (수요일)
유로치카가 데츠코예로 떠났다. 거기서 파블롭스크까지 걸어갔고, 산책하고, 들장미 열매를 땄다. 모두 내게는 닿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날씨는 훌륭하다. 낮에는 좀 심심했다. 말키나와 아카데미아 출판사에 전화했으나 허사였다. 차 시간부터 손님들의 침공이 시작됐다. 폴랴코프, 벤, 스미르노프, 미트로힌, 모두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다 이미 유르.가 있을 때 돔브롭스키 부부가 왔다. L. 리보비치도 전화했고, 스토리친은 오겠다고 안달했다. 유르.는 곧장 말문이 트이고 젊어졌으며, 돔브롭스카야 앞에서 자기 새 옷가지들을 자랑했다. 사야노프 부부에게 전화했는데, 또 그의 생일이었다. 언젠가 입을 잘못 놀렸는데, O. N.는 그걸 평생 기억하고 있다, 브베덴스키처럼.
제자리에. 지금의 일기 쓰는 방식에서는 사생활의 사건들이 무슨 열 번째쯤의 뒷전으로 물러나는데, 어쩌면 그게 옳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의미가 더해지지는 않는다. 연대기에서처럼 — 시시한 자질구레한 일들의 나열, 차를 마셨다, 칼이 부러졌다, 산책하러 나갔다, 그렇게 이제는 시시한 생각과 이미지의 무더기 — 나날의 상상의 흐름이다.
병원의 비둘기들. 나는 빵으로 그들을 길들였다. 비둘기와 참새를. 그들은 아침부터 부리로 쪼아 대고 짹짹거렸다. 식사 시간을 알고 있었다. 간병인은 그들에게 먹이를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창문을 더럽히니까, 차라리 남은 조각들을 마당에서 일부러 그들을 먹이는 어떤 여자에게 주라고 했다. 비둘기들이 배부른지가 내게 퍽이나 중요하겠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내 창가로 날아오는 것이다. 미학이지, 결코 자선이 아니다.
6월 21일 (목요일)
종일 비. 유르.는 출판사에 다녀왔고, 나는 아카데미아 출판사에 전화했으나 소득이 없었다. 브레먀 출판사에서도 전화가 왔다. 유르.에게 푸칠로가 왔다 — 조각가로, 타슈켄트에 살았던 적이 있고, 데니케와 니콜라예프를 아는 사람이다. 내게는 모로조프와 하를라모프가 왔다. 모로조프는 무겁고 둔한 아저씨고, 하를라모프는 그래도 사람이지만, 그들 뒤에 온 음악가 드미트리예프는 아주 훌륭하다. 아사피예프와 함께 화성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아주 흥미롭다. 꽤 오래 앉아 있었다. 유르.는 페트로프에게 다녀왔고 거기서 내게 전화했다. 료부슈카는 전화하지 않았다. 넝마장수들 말고도 이반 뇌제에 대해서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22일 (금요일)
날씨가 아주 좋다. 유르.는 데츠코예로 갔다. 나는 면도하러, 그리고 브레먀 출판사에 갔는데, 내가 없는 사이 우편배달부가 두 번이나 왔다. 돈이면 좋겠지만, 아니면 소환장이거나, 어떤 은인이 5루블을 보냈거나. 스토리친이 왔다. 마르샤크가 전화했다. Tout me rapelle aux douces habitudes de la vie. 미친 짓이지만, 기분은 좋다.
6월 23일 (토요일)
돈을 기다렸다. 내내 니힐리스트들에 관한 것을 읽었다. N. 우스펜스키와 슬레프초프가 내 관심을 끌었다. 누군가 우리 집에 왔다, 어쩌면 안 왔는지도. L. 리보비치가 25일에 온다.
6월 24일 (일요일)
면도했다. 날씨가 개었다. 첼류스킨호 대원들을 맞이하고 있다. 치체린이 나를 찾아왔고 그다음 미하일로프, 돔브롭스카야도 왔다. 유르.는 열 번이나 어딘가로 뛰어나갔다. 안. 드미. 댁에 갔었다. 드미트리예프가 우리와 함께 올라갔다. 심지어 나를 안아서 올려다 주겠다고까지 했다. 어쩐지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 그리고 그곳에서 으레 그런 것만큼 좋지는 않았다, 드미트리예프 말고는 아무도 없기까지 했다. 날씨는 좋다.
비둘기 같은 감미로움. 파라오 아메노피스 4세의 모든 모습과 행동과 사상은 어떤 기독교적인 감미로움으로 가득하다. 유일신교, 제물의 부재, 민주성, 새로운 신앙,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수도, 비둘기, 아이들, 왕과 왕비의 젊음과 아름다움, 백성이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것. 인도주의와 어떤 거세파 같은 것, 거의 예수회주의가 그의 치세에 기이하고 매혹적이며 다소 역겨운 시체의 매력을 부여한다.
6월 25일 (월요일)
날씨가 기막히지만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았다. 유르.는 내내 뛰어다녔다, 내 생각엔 O. N.과 함께. 페트로프와 미하일로프가 왔다. 저녁에는 L. 리보. 레온티예프에 관해 쓰고 싶어 안달이다, 자기 이단설들은 내팽개쳤다. 문제는 과연 이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마시고 먹었다. 기분은 좋다. 『일리아스』 건으로 전화가 왔다, 내가 구술해 주기를 바랐다. 「카르멘」을 보내왔고, 스미르노프가 전화했다.
6월 26·27일 (화요일·수요일)
날씨가 기막히다. 유르.는 핍박을 받으며, 줄을 서며, 굴욕을 당하며 나에게 휴양 이용권을 구해 왔다. 나는 곧 울적해졌다, 더구나 내가 모스콥스카야에 살게 될지 시로카야에 살게 될지 모르니. 「카르멘」은 꿈쩍도 않고, 나는 그저 카드 패만 떼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 재난이 되어 간다. 스미르노프가 내게 전화했다. 내 생각엔 나는 투신스키에게도 대지 못하고, 수리할 벽지를 사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프룸킨이 왔다. 저녁이 기막히다. 나는 왜인지 오래 앉아 있다, 마치 불구자처럼. 그런데 흥미로운 책이 잔뜩 있다. 책상은 끝내 정리하지 못했는데, 수리가 예정되어 있다.
6월 28일 (목요일)
무덥고 좋은 날씨. 유르.는 데츠코예 셀로에 갔다. 휴양소에 들렀다. 그곳에서는 나를 기꺼이 받겠다며 3일에 와 달라고 한다, 1일에는 그들이 이사하니까. 나를 동종요법 의사 가브릴로비치와 같은 방에 묵게 할 것이다. 그리 의지할 데 없게만 느껴지지는 않기 시작했다. 카드 패 떼기에서만 벗어나면 좋으련만. 하를라모프가 전화했고, 스토리친이 왔다. 아침에는 출납 창구에 다녀왔다. 창구는 위층, 은행 본점으로 옮겨졌다. 그래도 송금은 되어 있었다. 넵스키 거리를 걸었다. 목발을 짚은 티냐코프와 하름스를 만났다. 마르샤크가 그들 모두를 작가동맹에 들여보냈다, 브베덴스키까지, 자볼로츠키까지. 이것은 여권 때와 비슷하다. 소란은 어마어마했지만, 이렇게든 저렇게든 여권을 받지 못한 사람을 나는 내 눈으로 (그리고 누구도) 본 적이 없다. 프룸킨도 왔다 (내게 그럭저럭 괜찮게 지어 준다).
6월 29일 (금요일)
뇌우가 올 듯한 무거운 날씨. 나가지 않았다. 실제로 뇌우도 있었다, 다만 시원찮았다. 저녁에는 유르.에게 일기를 읽어 주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회고를 통째로 덩어리째 넣는 것도 가능하다. 선조들, 사라토프의 지인들, 누이, 카자코프 등등, 마르지 않는 세기들. 유르.가 마스네와 베를리오즈를 내게 끌어왔다.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아니다. 스미르노프가 『리어』를 가지고(리라를 가지고) 왔다, 나는 안. 드미.에게 전화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만나고 싶어 한다.
6월 30일 (토요일)
줄곧 뇌우가 올 듯하다. 『리어』도 「카르멘」도 넘겼다. 기분은 좋다. 저녁에 유르.와 함께 「아스토리아」에 갔다. 여름 저녁에 거리에 나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좋은 작용을 했다. 모든 것이 내게 흥미로웠다. 그다음 음악도 없는 완전히 텅 빈 「아스토리아」에 유르.와 둘이서, 아직 사람이 많은 거리를 지나 돌아온 것, 이 모든 것이 내가 좋아하는 그대로였다. 잠은 그럭저럭 잤다, 잠깐 더워지고 뭔가 불안해진 순간이 있었지만. 회고에 대한 계획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