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키에게 보낸 두 편지 (1913년 11월)」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막심 고리키,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표트르 스트루베, 블라디미르 푸리슈케비치, 니콜라이 2세,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용어건신주의, 전진파, 청산주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첫째 편지 (1913년 11월 13일 또는 14일)
친애하는 A. M.!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어제 《레치》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두고 일어난 “아우성”에 대한 당신의 답변을 읽고[1] 기뻐할 참이었는데, 오늘 청산파 신문이 왔고 거기에 당신 글의 한 단락이 실려 있었습니다. 《레치》에는 없던 단락입니다.
그 단락은 이렇습니다.
“‘구신주의’는 당분간” (당분간만?) “미뤄 두어야 한다. 쓸데없는 일이다. 둔 곳이 없는 데서 찾을 것은 없다. 뿌리지 않으면 거두지 못한다. 여러분에게는 신이 없다. 여러분은 아직” (아직!) “신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신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삶은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당신은 “구신주의”에 “당분간”만 반대한다는 말이 됩니다!! 당신은 구신주의를 건신주의로 바꾸려고만 구신주의에 반대한다는 말이 됩니다!!
당신에게서 이런 것이 나온다니, 끔찍하지 않습니까?
구신주의는 건신주의나 신 짓기, 신 만들기 따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노란 악마가 파란 악마와 다른 것보다 조금도 더 다르지 않습니다. 구신주의에 대해 말하면서 모든 악마와 신에 반대하고, 모든 관념의 시체 애호에 반대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모든 하느님은 시체 애호입니다. 그것이 가장 깨끗하고 이상적인, 찾은 것이 아니라 세우는 하느님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란 악마보다 파란 악마를 낫다고 말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예 말하지 않는 것보다 백배는 더 나쁩니다.
가장 자유로운 나라들, “민주주의로, 인민으로, 사회와 과학으로”라는 호소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라들(미국, 스위스 등)에서는 바로 이 깨끗하고 영적인, 세우는 하느님이라는 관념으로 인민과 노동자를 특히 열심히 우둔하게 만듭니다. 모든 종교적 관념, 어떤 하느님에 대한 것이든 모든 관념, 하느님에게 추파를 던지는 일조차 모두 이루 말할 수 없이 추악한 것이고, 민주주의적 부르주아지가 특히 너그럽게(그리고 흔히 호의적으로까지) 맞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가장 위험한 추악함, 가장 비열한 “전염병”입니다. 백만 가지 죄악과 비열한 짓, 폭력과 육체의 전염병은 군중이 훨씬 쉽게 알아보며, 그래서 가장 화려한 “관념의” 옷을 차려입은 교묘하고 영적인 하느님 관념보다 훨씬 덜 위험합니다. 소녀들을 타락시키는 가톨릭 사제는(방금 어떤 독일 신문에서 우연히 읽었습니다) 바로 “민주주의”에게는 사제복 없는 사제, 조야한 종교 없는 사제, 하느님을 짓고 만들어 내자고 설교하는 관념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제보다 훨씬 덜 위험합니다. 앞의 사제는 폭로하고 단죄하고 쫓아내기가 쉽지만, 뒤의 사제는 그렇게 간단히 쫓아낼 수 없고, 폭로하기는 천 배나 어려우며, “여리고 애처롭게 흔들리는” 속물 가운데 그를 “단죄”하는 데 동의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소시민의 영혼이 지닌 “여림과 애처로운 흔들림”을 알면서(당신은 러시아인의 영혼이라고 했습니다. 왜 러시아인입니까? 이탈리아인의 영혼은 더 낫습니까??) 가장 달콤하고, 사탕과 온갖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가장 잘 가린 독으로 그 영혼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끔찍합니다.
“자기비판을 대신하는 우리의 자기 모멸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
그런데 건신주의야말로 가장 나쁜 자기 모멸이 아닙니까?? 신을 세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 아니 그런 세우기를 용인하기만 하는 사람도 모두 가장 나쁜 방식으로 자기를 모멸하는 것입니다. “행동” 대신 바로 자기 관조, 자기 도취에 빠지는 것이고, 게다가 그런 사람이 “관조하는” 것은 건신주의가 신으로 떠받드는 자기 “자아”의 가장 더럽고 우둔하고 노예 같은 특징이나 버릇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건신주의는 바로 우둔한 소시민 근성, 여린 속물근성, “절망하고 지친” 속물과 소부르주아의 몽상적인 “자기 모멸”이 자기를 사랑스럽게 관조하는 것입니다(당신은 이것을 영혼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말했습니다. 다만 “러시아인의” 영혼이 아니라 소시민의 영혼이라고 해야 합니다. 유대인이든 이탈리아인이든 영국인이든 모두 똑같은 악마이고, 어디서나 지저분한 소시민 근성은 똑같이 비열하며, 관념의 시체 애호에 빠진 “민주주의적 소시민 근성”은 갑절로 비열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글을 꼼꼼히 읽으며 어디서 이런 실수가 나올 수 있었는지 캐 보아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당신 자신도 인정하지 않은 『고백』의 잔재입니까??[2] 그 메아리입니까??
아니면 다른 것입니까? 이를테면 프롤레타리아의 관점 대신 일반 민주주의적 관점으로 몸을 굽히려는 서투른 시도입니까? “민주주의 일반”과 이야기하려고 (표현을 용서하십시오) 아이들에게 하듯 혀 짧은 소리를 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속물들에게 “대중적으로 설명하려고” 잠시 그의 또는 그들의, 곧 속물들의 편견을 받아들이고 싶으셨던 겁니까??
그러나 그것은 모든 의미에서, 모든 면에서 잘못된 수법입니다!
앞에서 저는 민주주의 나라들에서라면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민주주의로, 인민으로, 사회와 과학으로” 호소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면 우리 러시아에서는?? 그런 호소는 꼭 맞지는 않습니다. 그것 역시 어딘지 속물의 편견에 아첨하기 때문입니다. 흐릿할 만큼 일반적인 호소여서, 우리나라에서는 《러시아 사상》의 이즈고예프조차 두 손 들어 서명할 것입니다.[3] 당신이야 이즈고예프 식과 훌륭하게 구별하지만 독자는 구별하지 못할 그런 구호를 왜 쓰십니까?? 왜 독자 앞에 민주주의의 베일을 씌우고, 소시민(여리고, 애처롭게 흔들리고, 지치고, 절망하고, 자기를 관조하고, 신을 관조하고, 신을 세우고, 신을 감싸 주고, 자기를 모멸하고, 어수선하게 무정부주의적인 — 멋진 말입니다!! 기타 등등)과 프롤레타리아(말로만이 아니라 꿋꿋할 줄 알고, 부르주아지의 “과학과 사회”를 자기 것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구별할 줄 아는 사람들)를 분명히 가르지 않으십니까?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지독하게 속상합니다.
당신의 V. I.
추신. 소설은 등기 소포로 보냈습니다.[4] 받으셨습니까?
추추신. 정말이지 더 진지하게 치료하십시오. 겨울에 감기 걸리지 않고 여행할 수 있도록요(겨울에는 위험합니다).
당신의 V. 울리야노프
둘째 편지 (1913년 11월 후반)
…[5]신과 신적인 것,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에 관한 문제에서 당신에게는 모순이 생깁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가 카프리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야기하면서 제가 지적했던 바로 그 모순입니다. 당신은 “전진파”와 결별했지만(또는 결별한 듯했지만) “전진파 사상”의 관념적 기초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6]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속이 상한다”, “어떻게 ‘당분간’이라는 말이 끼어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쓰십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신의 관념과 건신주의를 옹호하십니다.
“신은 종족과 민족과 인류가 만들어 낸 관념들의 복합체로서, 사회적 감정을 일깨우고 조직하며, 개인을 사회와 결합하고 동물적 개인주의를 억누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이론은 분명히 보그다노프와 루나차르스키의 이론 또는 이론들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분명히 틀렸고 분명히 반동적입니다. 당신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사회주의” 가운데 가장 나쁜 종류이자 가장 나쁜 왜곡)처럼, (당신의 더없이 좋은 의도와는 상관없이) 성직자주의의 요술을 되풀이하는 수법을 쓰고 있습니다. 신의 관념에서 그 안에 역사적으로, 생활 속에서 실제로 있는 것(한편으로는 잡귀, 편견, 무지와 억눌림의 신성화, 다른 한편으로는 농노제와 군주제의 신성화)을 치워 버리고, 역사적이고 생활적인 실재 대신 선량한 소시민적 문구(신 = “사회적 감정을 일깨우고 조직하는 관념”)를 신의 관념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것으로 “선하고 좋은 것”을 말하고, “진실과 정의” 같은 것을 가리키려 하십니다. 그러나 당신의 그 선한 바람은 당신 개인의 것, 주관적인 “순진한 바람”으로 남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써 버린 이상 그것은 대중 속으로 들어갔고, 그 의미는 당신의 선한 바람이 아니라 사회 세력들의 상호 관계, 곧 계급들의 객관적 상호 관계가 정합니다. 그 상호 관계 때문에 (당신의 의지와 달리, 당신의 의식과 상관없이) 당신이 성직자파, 푸리시케비치 무리, 니콜라이 2세, 스트루베 씨 일당의 관념에 색칠을 하고 설탕을 바른 꼴이 됩니다. 실제로 신의 관념은 그들이 인민을 노예 상태에 묶어 두는 것을 돕기 때문입니다. 신의 관념을 꾸밈으로써 당신은 그들이 무지한 노동자와 농민을 묶어 두는 사슬을 꾸민 것입니다. 사제들과 그 일당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보라, 이것(신의 관념)은 얼마나 좋고 깊은 관념인가, 민주주의자 양반들, “당신네” 지도자들조차 인정하지 않는가, 그리고 우리(사제들과 그 일당)는 이 관념을 섬긴다.
신이 사회적 감정을 일깨우고 조직하는 관념들의 복합체라는 것은 틀렸습니다. 그것은 관념의 물질적 기원을 흐리는 보그다노프식 관념론입니다. 신은 (역사적으로도 생활 속에서도) 무엇보다 외부 자연과 계급 억압에 짓눌린 인간의 둔한 억눌림에서 생겨난 관념들의 복합체이고, 그 억눌림을 굳히며 계급투쟁을 잠재우는 관념들입니다. 역사에는 신의 관념이 그런 기원과 그런 실제 의미를 지녔는데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한 종교적 관념이 다른 종교적 관념에 맞서는 싸움의 형태로 벌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습니다.
이제 유럽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신의 관념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하는 일은 모두, 가장 세련되고 가장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도 반동을 정당화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정의는 전부 속속들이 반동적이고 부르주아적입니다. 신 = “사회적 감정을 일깨우고 조직하며, 개인을 사회와 결합하고 동물적 개인주의를 억누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관념들의 복합체.
왜 이것이 반동적입니까? 동물성을 “억누른다”는 사제적·농노제적 관념에 색칠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동물적 개인주의”를 억누른 것은 신의 관념이 아니라 원시 무리와 원시 공동체였습니다. 신의 관념은 언제나 산 것을 죽은 것으로 바꿔치기하며 “사회적 감정”을 잠재우고 무디게 했고, 언제나 노예 상태(가장 나쁘고 출구 없는 노예 상태)의 관념이었습니다. 신의 관념은 결코 “개인을 사회와 결합”하지 않았고, 언제나 억압받는 계급들을 억압자들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으로 묶어 두었습니다.
당신의 정의가 부르주아적인(그리고 비과학적이고 비역사적인) 까닭은, 그것이 특정한 역사적 시대의 특정한 계급들이 아니라 뭉뚱그린 일반적인 “로빈슨식” 개념 일반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미개한 지랸인 같은 이들(반미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의 신 관념과 스트루베와 그 일당의 신 관념은 서로 다릅니다.[7] 두 경우 모두 이 관념을 떠받치는 것은 계급 지배입니다(그리고 이 관념이 계급 지배를 떠받칩니다). 하느님과 신적인 것에 대한 “민중의” 관념은 “민중의” 우둔함, 억눌림, 무지이며, 차르에 대한, 숲귀신에 대한, 아내의 머리채를 잡아끄는 일에 대한 “민중의 관념”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신에 대한 “민중의 관념”을 “민주주의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철학적 관념론이 “언제나 개인의 이익만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틀렸습니다. 데카르트가 가상디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염두에 두었습니까? 아니면 피히테와 헤겔이 포이어바흐보다 그랬습니까?
“건신주의는 개인과 사회 안에서 사회적 원리가 더 발전하고 축적되는 과정이다”라니, 이건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러시아에 자유가 있었다면 부르주아지 전체가 이런 것들 때문에, 순전히 부르주아적인 유형과 성격의 이 사회학과 신학 때문에 당신을 떠받들었을 것입니다.
자, 이만하면 됐습니다. 그러잖아도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다시 한번 손을 꼭 잡으며 건강을 빕니다.
당신의 V. I.
주석
- 고리키는 1913년 9월 22일 《루스코예 슬로보》에 「카라마조프 근성에 대하여」를 써서, 모스크바 예술극장이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무대에 올리는 데 항의했다. 부르주아 언론이 극장을 옹호하자 고리키는 10월 27일 같은 신문에 「다시 카라마조프 근성에 대하여」로 답했다. 《레치》는 10월 28일(11월 10일) 이 답을 마지막 단락만 빼고 크게 옮겨 실었고, 다음 날 청산파의 《신노동자 신문》 제69호가 레닌이 인용한 마지막 단락까지 전부 실었다. ↩
- 고리키의 소설 『고백』(1908). 신을 찾아 떠돈 주인공이 신을 세우는 것은 민중 자신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는 이야기로, 건신주의를 문학으로 옮긴 작품이다. ↩
- 알렉산드르 이즈고예프(1872~1935). 입헌민주당(카데트)의 평론가로 잡지 《러시아 사상》의 필자였고, 1909년 혁명적 인텔리겐치아를 비판한 논문집 『이정표』에 글을 실었다. ↩
- 고리키가 편집에 관여하던 잡지 《프로스베셰니예(계몽)》에 실을 V. 보이틴스키의 소설 원고. ↩
- 이 편지의 앞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 ↩
- 「전진파(впередовцы)」는 1909년 말 보그다노프를 중심으로 꾸려진 볼셰비키 안의 분파 「전진」의 성원들이다. 루나차르스키도 그 일원이었고, 고리키는 1909년 이들이 카프리섬에서 연 당 학교를 후원했다. ↩
- 지랸인은 코미인의 옛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