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전투적 유물론의 의의에 대하여」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니콜라이 체르니솁스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피티림 소로킨,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미하일 살티코프-셰드린, 아브람 데보린,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요제프 디츠겐, 아르카디 티미랴제프 용어변증법적 유물론, 변증법, 전투적 무신론자동맹, 철학의 배, 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 자본 (마르크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1] 잡지의 일반적 과제에 관해서는 트로츠키 동지가 제1~2호에서 본질적인 것을 이미 모두, 그것도 훌륭하게 말했다.[2] 나는 잡지 편집부가 제1~2호의 창간사에서 선언한 작업의 내용과 강령을 더 자세히 규정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 창간사에는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 주위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모두 일관된 유물론자라고 쓰여 있다. 나는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의 이런 동맹이 무조건 필요하며 잡지의 과제를 올바르게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공산주의자들의(그리고 위대한 혁명의 시작을 성공적으로 해낸 혁명가들 일반의) 가장 크고 위험한 오류 가운데 하나는 혁명을 혁명가들의 손만으로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반대로 모든 진지한 혁명 사업이 성공하려면, 혁명가들은 참으로 생명력 있고 선진적인 계급의 전위로서만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실현할 줄 알아야 한다. 전위는 자신이 이끄는 대중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실제로 대중 전체를 앞으로 이끌 줄 알 때에만 전위의 과제를 수행한다. 활동의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비공산주의자들과 동맹하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공산주의 건설은 말도 꺼낼 수 없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가 떠맡은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 옹호 작업에도 해당된다. 다행히 러시아 선진 사회사상의 주요 조류들에는 탄탄한 유물론적 전통이 있다. G. V. 플레하노프는 말할 것도 없고, 체르니솁스키를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날의 인민주의자들(인민사회주의자, 사회혁명당원 따위)은 유럽 과학의 이른바 “최신 성과”라는 겉치레에 넘어가고, 그 겉치레 아래 숨은 이런저런 형태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아첨, 부르주아지의 편견과 부르주아적 반동성을 가려내지 못한 채, 유행하는 반동 철학 학설을 좇아 체르니솁스키에게서 뒷걸음질 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 러시아에는 비공산주의자 진영의 유물론자들이 아직 있고, 틀림없이 꽤 오랫동안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 반동과 이른바 “교양 사회”의 철학적 편견에 맞서는 투쟁에서 일관되고 전투적인 유물론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을 공동 작업에 끌어들이는 것은 우리의 무조건적 의무다. 디츠겐 아버지는(허세만큼이나 실패한 문필가인 그 아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3] 부르주아 나라들을 지배하며 그 나라 학자와 평론가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철학 조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관점을 올바르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하여, 현대 사회의 철학 교수들은 대부분 실제로는 “학위를 받은 성직자주의[4]의 하인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선진적이라고 여기기 좋아하는 우리 러시아 지식인들은, 다른 모든 나라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문제를 디츠겐의 말이 내린 평가의 차원으로 옮기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싫어하는 것은 진실이 그들의 눈을 찌르기 때문이다. 현대의 교양인들이 지배적인 부르주아지에게 국가적으로, 다음으로 경제 전반에서, 다음으로 생활에서, 그리고 온갖 다른 방식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디츠겐의 날카로운 규정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 나라들에서 그토록 자주 생겨나는 유행 철학 조류의 압도적 다수를, 라듐의 발견과 연관된 조류부터 지금 아인슈타인에게 매달리려 애쓰는 조류까지 떠올려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면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계급적 입장, 부르주아지가 온갖 형태의 종교를 지원하는 것, 그리고 유행 철학 조류의 사상적 내용 사이의 연관을 그려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전투적 유물론의 기관지가 되고자 하는 잡지는 첫째로, 공식 과학의 대표자로 나서든, 스스로를 “민주적 좌파 또는 이념적 사회주의” 평론가라 부르는 자유 사수로 나서든, 오늘날의 모든 “학위를 받은 성직자주의의 하인들”을 끈질기게 폭로하고 추궁한다는 의미에서 투쟁의 기관지여야 한다.

그런 잡지는 둘째로, 전투적 무신론의 기관지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 일을 관장하는 부처, 적어도 국가 기관들이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극도로 굼뜨고 극도로 불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의 진정 러시아적인(소비에트적이기는 하지만) 관료주의라는 일반적 조건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해당 국가 기관들의 작업을 보완하고, 바로잡고,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전투적 유물론의 기관지가 되는 과제에 몸 바친 잡지가 지칠 줄 모르는 무신론 선전과 투쟁을 벌이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모든 언어로 된 관련 문헌 전체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이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가치 있는 것은 모두 번역하거나 적어도 요약 소개해야 한다.

엥겔스는 오래전에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자들에게, 18세기 말의 전투적 무신론 문헌을 번역하여 인민 속에 대량으로 보급하라고 권했다.[5] 부끄럽게도 우리는 아직 그 일을 하지 않았다(혁명의 시대에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그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수많은 증거 가운데 하나다). 때로는 우리의 이런 굼뜸과 무위와 무능을 온갖 “고상한” 고려로 변명한다. 이를테면, 18세기의 낡은 무신론 문헌은 낡았고, 비과학적이고, 순진하다는 따위다. 현학이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완전한 몰이해를 가리는, 이런 겉으로만 학문적인 궤변보다 나쁜 것은 없다. 물론 18세기 혁명가들의 무신론 저작에도 비과학적이고 순진한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저작들의 출판자들이 그것을 줄이고, 18세기 말 이래 인류가 이룩한 종교에 대한 과학적 비판의 진보를 지적하고 관련된 최신 저작들을 소개하는 짧은 후기를 붙이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는다. 현대 사회 전체에 의해 어둠과 무지와 편견에 갇힌 수천만의 인민(특히 농민과 수공업자) 대중이 순수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인 계몽이라는 직선을 따라서만 이 어둠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오류이자 가장 나쁜 오류일 것이다. 이 대중에게는 무신론 선전을 위한 가장 다양한 자료를 주고, 삶의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나온 사실들을 알려 주며,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가가서 그들의 관심을 끌고, 종교적 잠에서 깨우며, 가장 다양한 측면에서 가장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흔들어 깨워야 한다.

지배적인 성직자주의를 재치 있고 공공연하게 공격하는 18세기 옛 무신론자들의 활기차고 생생하며 재능 넘치는 논설은, 사람들을 종교적 잠에서 깨우는 데에, 우리 문헌에 넘쳐 나는, 솜씨 있게 고른 사실로 거의 뒷받침되지 않은 지루하고 메마른 마르크스주의 해설(솔직히 말해 이런 해설은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하는 일이 잦다)보다 천 배나 더 알맞은 경우가 허다할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조금이라도 큰 저작은 모두 우리에게 번역되어 있다. 옛 무신론과 옛 유물론이 우리에게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가한 수정으로 보완되지 않은 채 남을까 걱정할 근거는 단연코 전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고 우리의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적인, 그러나 실제로는 마르크스주의를 불구로 만드는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흔히 잊는 것은 바로, 아직 전혀 발전하지 않은 대중이 종교 문제에 의식적인 태도를 갖고 종교를 의식적으로 비판하는 데 관심을 갖도록 만들 줄 아는 일이다.

다른 한편, 오늘날 종교에 대한 과학적 비판의 대표자들을 보라. 이 교양 있는 부르주아지의 대표자들은 거의 언제나 종교적 편견에 대한 자기 자신의 반박에, 그들을 곧바로 부르주아지의 사상적 노예로, “학위를 받은 성직자주의의 하인들”로 드러내는 그런 논의를 “보충”한다.

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R. 비페르 교수는 1918년 『그리스도교의 발생』이라는 작은 책(파로스 출판사, 모스크바)을 냈다.[6] 현대 과학의 주요 성과를 소개하면서 저자는 정치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무기로 삼는 편견과 기만과 싸우지 않을 뿐 아니라, 이 문제들을 비켜 갈 뿐 아니라,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는 두 “극단” 모두를 넘어서겠다는 정말로 우스꽝스럽고 지극히 반동적인 주장을 대놓고 내세운다. 이것은 근로인민에게서 쥐어짠 이윤 가운데 수억 루블을 온 세계에서 종교를 떠받치는 데 쓰는 지배적 부르주아지에 대한 아첨이다.

유명한 독일 학자 아르투어 드레브스[7]는 『그리스도 신화』라는 책에서 종교적 편견과 동화를 반박하고 그리스도란 존재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면서도, 책 끝에서는 종교, 다만 새로 손보고 말끔히 다듬고 교묘해져서 “나날이 더욱더 거세지는 자연주의의 물결”에 맞설 수 있는 종교를 지지한다고 말한다(1910년 독일어 제4판 238쪽). 이 자는 낡고 썩은 종교적 편견을 새롭고 더욱 추잡하고 비열한 편견으로 바꾸도록 착취자들을 공공연히 돕는, 직접적이고 의식적인 반동가다.

그렇다고 드레브스를 번역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공산주의자들과 모든 일관된 유물론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진보적 부분과 어느 정도 동맹을 실현하면서도, 그들이 반동성에 빠질 때에는 끈질기게 폭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18세기, 곧 부르주아지가 혁명적이었던 시대의 부르주아지 대표자들과의 동맹을 꺼리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유물론을 배신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지배적인 종교적 몽매주의자들과 싸우는 데에는 이런저런 형태, 이런저런 정도로 드레브스 같은 자들과의 “동맹”이 우리에게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전투적 유물론의 기관지가 되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 잡지는 무신론 선전, 관련 문헌의 개관, 이 분야에서 우리 국가 사업의 엄청난 결함을 바로잡는 데 많은 지면을 내주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은, 현대 부르주아지의 계급적 이해관계 및 계급 조직이 종교 기관과 종교 선전 조직과 맺고 있는 연관을 보여 주는 구체적 사실과 대비를 많이 담은 책과 소책자를 활용하는 일이다.

종교와 자본의 공식적, 관제적, 국가적 연관이 덜 드러나는 북아메리카 합중국에 관한 모든 자료는 극히 중요하다. 그 대신 거기서 우리는 이른바 “현대 민주주의”(멘셰비키, 사회혁명당원, 그리고 일부 아나키스트 따위가 그토록 어리석게도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가 부르주아지가 설교하기에 이로운 것을 설교할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더 분명히 알게 된다. 그런데 부르주아지에게 설교하기 이로운 것은 가장 반동적인 사상, 곧 종교, 몽매주의, 착취자 옹호 따위다.

전투적 유물론의 기관지가 되고자 하는 잡지가 우리 독서 대중에게 무신론 문헌의 개관을 제공해 주기를 바란다. 어떤 저작이 어떤 독자층에게 어떤 점에서 알맞은지를 설명하고, 우리나라에서 무엇이 나왔는지(나온 것으로 칠 수 있는 것은 그런대로 봐줄 만한 번역뿐인데, 그런 것은 많지 않다), 그리고 무엇이 더 출판되어야 하는지를 밝히는 개관 말이다.

* * *

공산당에 속하지 않은 일관된 유물론자들과의 동맹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전투적 유물론이 해야 할 작업에 중요한 것은, 유물론으로 기울고, 이른바 “교양 사회”를 지배하는 관념론과 회의론 쪽으로의 유행하는 철학적 동요에 맞서 유물론을 옹호하고 설파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현대 자연과학의 대표자들과의 동맹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 제1~2호에 실린 A. 티미랴제프[8]의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에 관한 글은 잡지가 이 두 번째 동맹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준다. 이 동맹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대 자연과학이 겪고 있는 급격한 단절에서 반동적인 철학 학파와 학파 나부랭이, 조류와 조류 나부랭이가 툭하면 태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연과학 분야의 최신 혁명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살피고, 철학 잡지의 이 작업에 자연과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전투적 유물론이 결코 전투적일 수도, 유물론일 수도 없는 과제다. 티미랴제프가 잡지 첫 호에서, 티미랴제프의 말로는 유물론의 기초에 맞서 아무런 적극적인 공세도 벌이지 않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이미 모든 나라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대표자들의 엄청난 무리가 매달렸다고 단서를 달아야 했다면, 이것은 아인슈타인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19세기 말 이래 자연과학의 위대한 개혁자들 다수에게, 아니 대부분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을 무의식적으로 대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탄탄한 철학적 기초 없이는 어떤 자연과학도, 어떤 유물론도 부르주아 사상의 공세와 부르주아 세계관의 복귀에 맞선 투쟁을 견뎌 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 투쟁을 견뎌 내고 끝까지 완전히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자연과학자는 현대의 유물론자, 마르크스가 대표하는 유물론의 의식적인 지지자, 곧 변증법적 유물론자여야 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의 필자들은 유물론적 관점에서 헤겔 변증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일을 조직해야 한다. 곧 마르크스가 『자본』에서도, 역사적·정치적 저작들에서도 실제로 적용한 그 변증법, 그것도 대단히 성공적으로 적용하여, 지금 동방(일본, 인도, 중국)에서 새로운 계급들이 삶과 투쟁에 눈뜨는 하루하루가, 곧 지구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며 그 역사적 무위와 역사적 잠으로 지금까지 유럽의 많은 선진 국가에서 정체와 부패를 낳아 온 수억 인류가 깨어나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민족들과 새로운 계급들이 삶에 눈뜨는 하루하루가 마르크스주의를 점점 더 확증해 주고 있는 그 변증법을 말이다.

물론 헤겔 변증법을 이렇게 연구하고, 해석하고, 선전하는 작업은 극히 어렵고, 이 방면의 첫 시도들은 틀림없이 오류를 동반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만이 틀리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유물론적으로 이해된 헤겔 변증법을 어떻게 적용했는지에 기대어, 우리는 이 변증법을 모든 측면에서 발전시킬 수 있고 또 발전시켜야 하며, 잡지에 헤겔의 주요 저작에서 뽑은 대목을 싣고, 그것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하고, 마르크스에게서 변증법이 적용된 본보기들로, 또 경제적·정치적 관계 분야에서 변증법의 본보기들로 주해를 달아야 한다. 그런 본보기를 최근의 역사, 특히 오늘날의 제국주의 전쟁과 혁명은 아주 많이 제공한다.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의 편집자와 필자 그룹은, 내 생각에, 일종의 “헤겔 변증법의 유물론적 벗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의 자연과학자들은 (찾을 줄 알고, 우리가 그들을 도울 줄 알게 된다면) 유물론적으로 해석된 헤겔 변증법에서, 자연과학의 혁명이 제기하는, 그리고 부르주아 유행을 숭배하는 인텔리겐치아가 거기서 반동으로 “빗나가는” 철학적 물음들에 대한 여러 답을 찾아낼 것이다.

이런 과제를 스스로 세우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수행하지 않고서는 유물론은 전투적 유물론이 될 수 없다. 셰드린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싸우는 쪽이라기보다 얻어맞는 쪽으로 남을 것이다.[9] 그렇지 않으면 위대한 자연과학자들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자주 자신의 철학적 결론과 일반화에서 무력할 것이다. 자연과학은 너무나 빠르게 진보하고 있고, 모든 분야에서 너무나 깊은 혁명적 단절의 시기를 겪고 있어서, 어떤 경우에도 철학적 결론 없이는 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철학 분야에 속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사회 문제 분야, 곧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가 역시 관심을 기울이려는 분야에 속하는 예를 하나 들겠다.

이것은 오늘날의 이른바 과학이 실제로 가장 조야하고 가장 비열한 반동적 견해의 전달자 노릇을 하는 예 가운데 하나다.

최근에 누군가 나에게 “러시아 기술협회” 제11부가 펴내는 잡지 《에코노미스트》 1922년 제1호를 보내 주었다. 이 잡지를 보낸 젊은 공산주의자는(아마도 잡지 내용을 살펴볼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경솔하게도 이 잡지를 대단히 호의적으로 평했다. 실제로 이 잡지는, 얼마나 의식적으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과학성과 민주주의 따위의 망토를 걸친 현대 농노주들의 기관지다.

P. A. 소로킨[10]이라는 어떤 양반이 이 잡지에 「전쟁의 영향에 관하여」라는 방대한, 이른바 “사회학적” 연구를 싣고 있다. 이 학술 논문은 저자 자신과 그의 수많은 외국인 스승과 동료들의 “사회학적” 저작들에 대한 학술적 인용으로 얼룩덜룩하다. 그의 학식이란 이런 것이다.

83쪽에서 나는 이렇게 읽는다.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지금 혼인 1만 건당 이혼이 92.2건이다. 환상적인 숫자다. 게다가 해소된 혼인 100건 가운데 51.1건은 지속 기간이 1년 미만이었고, 11%는 1개월 미만, 22%는 2개월 미만, 41%는 3~6개월 미만이었으며, 6개월 넘게 지속된 것은 26%뿐이었다. 이 숫자들은 오늘날의 합법적 혼인이 본질적으로 혼외 성관계를 감추는 형식이며, ‘딸기’[11] 애호가들이 ‘합법적으로’ 제 식욕을 채울 수 있게 해 주는 형식임을 말해 준다”(《에코노미스트》 제1호, 83쪽).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양반도, 잡지를 펴내고 거기에 이런 논의를 싣는 그 러시아 기술협회도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지지자로 여기고 있으며, 누군가 그들을 실제의 그들, 곧 농노주, 반동가, “학위를 받은 성직자주의의 하인들”이라고 부르면 그것을 더없는 모욕으로 여길 것이다.

혼인, 이혼, 혼외자에 관한 부르주아 나라들의 법률과 이 점에서의 실제 사정을 아주 조금만 알아도,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늘날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들에서조차, 이 점에서 바로 여성과 혼외자에 대해 농노주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멘셰비키, 사회혁명당원, 일부 아나키스트, 그리고 서방의 그에 상응하는 모든 정당이 민주주의와 볼셰비키의 민주주의 침해를 계속 외쳐 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바로 볼셰비키 혁명이야말로 혼인, 이혼, 혼외자의 지위 같은 문제에서 유일하게 일관되게 민주주의적인 혁명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인구의 절반 이상의 이해관계에 가장 직접적으로 닿는 문제다. 오직 볼셰비키 혁명만이, 그에 앞서 일어나 스스로를 민주주의적이라고 부른 수많은 부르주아 혁명들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이 점에서 반동성과 농노제에 맞서, 그리고 지배 계급과 유산 계급의 흔한 위선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벌였다.

소로킨 씨에게 혼인 1만 건당 이혼 92건이 환상적인 숫자로 보인다면, 남는 추측은 둘 중 하나다. 저자가 그런 곳이 있다고는 거의 아무도 믿지 않을 만큼 삶과 담을 쌓은 어떤 수도원에서 살며 자랐든지, 아니면 이 저자가 반동과 부르주아지의 비위를 맞추려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든지. 부르주아 나라들의 사회적 조건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제 이혼(물론 교회와 법률이 승인하지 않은)의 실제 숫자가 어디서나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것을 안다. 이 점에서 러시아가 다른 나라들과 다른 점은, 러시아의 법률이 위선과 여성과 그 아이의 무권리 상태를 신성화하지 않고, 공공연히 국가 권력의 이름으로 모든 위선과 모든 무권리에 맞서 체계적인 전쟁을 선포한다는 것뿐이다.

마르크스주의 잡지는 이런 오늘날의 “교양 있는” 농노주들에 맞서서도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아마 그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돈까지 받고, 청년을 계몽한다며 국가 공직에 있을 것이다. 그런 목적에 그들이 적합하기로는, 알려진 아동 추행범이 어린이 학교의 감독관 역할에 적합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데도 말이다.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권력을 쟁취할 줄은 알았지만 아직 그것을 사용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동계급은 이런 교사들과 학회 회원들을 벌써 오래전에 부르주아 “민주주의” 나라들로 정중하게 보내 버렸을 것이다. 거기야말로 이런 농노주들이 있을 진짜 자리다.

배울 것이다. 배우려는 마음만 있다면.

N. 레닌
1922년 3월 12일

주석

  1. 《마르크스주의의 깃발 아래(Под знаменем марксизма)》.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창간된 철학·사회경제 월간지로 1944년까지 나왔다. 1920년대 후반에는 아브람 데보린을 중심으로 한 변증법파의 거점이었고, 1931년 데보린파가 「멘셰비키화하는 관념론」으로 단죄된 뒤 편집진이 바뀌었다. ↩
  2. 창간호(제1~2호 합본)에 실린 트로츠키의 편지 「이론에 주의를(Внимание к теории)」. 소비에트 국가에서 자라나 결론을 완성된 형태로 받아들이는 젊은 노동자들이 관념론 철학 학파들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들에게 유물론적 세계관을 교육하는 것을 잡지의 과제로 꼽았다. ↩
  3. 독일의 노동자 철학자 요제프 디츠겐(Joseph Dietzgen, 1828~1888)과 그 아들 오이겐 디츠겐(Eugen Dietzgen, 1862~1929). 오이겐은 미국 시카고에서 제도 기구 회사를 세운 사업가로, 아버지의 철학을 알리는 책을 쓰고 펴냈다. ↩
  4. 포포프시나(поповщина). 러시아 정교회 사제를 낮춰 부르는 「포프(поп)」에서 나온 말로, 성직자의 지배와 종교적 몽매를 함께 가리킨다. 이 문서에서는 「성직자주의」로 옮겼다. ↩
  5. 엥겔스는 1874년 6월 《폴크스슈타트》에 연재한 「망명자 문헌」의 두 번째 글(뒤에 「블랑키파 코뮌 망명자들의 강령」으로 제목을 바꿈)에서, 프랑스 노동자들이 아직 유물론자가 아니라면 지난 세기의 빛나는 프랑스 유물론 문헌을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보급하면 된다고 썼다. ↩
  6. 로베르트 비페르(Роберт Юрьевич Виппер, 1859~1954). 모스크바 대학의 역사학자. 1924년 라트비아로 떠났다가 1941년 소련으로 돌아왔다. ↩
  7. 아르투어 드레브스(Arthur Drews, 1865~1935). 카를스루에 공과대학의 철학 교수. 『그리스도 신화(Die Christusmythe)』(1909~1911)에서 역사적 예수의 존재를 부정했다. ↩
  8. 아르카디 티미랴제프(Аркадий Климентьевич Тимирязев, 1880~1955). 모스크바 대학의 물리학자로, 식물생리학자 클리멘트 티미랴제프의 아들이다. 뒤에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관념론이라며 배격한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
  9. 러시아의 풍자 작가 미하일 살티코프-셰드린의 표현. 원문은 「сражающийся」(싸우는 쪽)와 「сражаемый」(맞고 있는 쪽)를 맞세운 말장난이다. ↩
  10. 사회학자 피티림 소로킨(1889~1968). 1917년 임시정부 총리 케렌스키의 비서를 지낸 사회혁명당원으로, 당시 페트로그라드 대학 교수였다. 이 글이 나온 그해 9월 소비에트 정부가 지식인들을 국외로 추방할 때 러시아를 떠났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 사회학과를 세웠다. ↩
  11. 러시아어 「클루브니카(клубника, 딸기)」는 속어로 음란한 쾌락이나 외도를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