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독립 활동 미국 유대계 독일인 1879–1955 ○ 자연사

상대성 이론을 세운 독일 태생 물리학자로 평화주의와 사회주의를 주장한 지식인

1914년 독일 지식인 93인의 전쟁 옹호 선언에 맞선 반전 선언에 서명했고, 히르슈펠트의 형법 제175조 폐지 청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독일 울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공부한 이론물리학자. 1905년 특수 상대성 이론 등 네 편의 논문을 내고 1915년 일반 상대성 이론을 세웠으며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14년 베를린으로 옮긴 뒤 1차 세계대전에 반대했고, 1918년 독일민주당 창당 선언에 서명했으며 독일 인권연맹에서 활동했다. 1933년 나치 집권으로 미국에 남아 1940년 미국 시민이 되었다. 원자폭탄 개발을 권하는 루스벨트 앞 편지에 서명한 것을 훗날 후회했고, 1949년 「왜 사회주의인가?」를 썼다. 1955년 프린스턴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평화주의, 시오니즘, 사회주의

1896년 병역을 피하려고 뷔르템베르크 국적을 버렸고, 1901년 얻은 스위스 국적은 평생 유지했다. 1914년 베를린의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로 옮기며 다시 독일 국적을 얻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의 전쟁을 정당화한 「93인 선언」과 거리를 두고 반전을 호소한 「유럽인에게 보내는 선언」에 서명한 몇 안 되는 독일 지식인이 되었다. 1918년 좌파 자유주의 정당인 독일민주당 창당 선언에 서명했고, 독일 인권연맹 회원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에 힘썼으며, 히르슈펠트의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가 30년 넘게 모은 형법 제175조 폐지 청원에도 서명했다. 세계 성개혁 연맹 대회와도 연락을 주고받았다. 1933년 미국 방문 중 나치가 집권하고 게슈타포가 베를린 집을 거듭 수색하자 독일 국적을 버리고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자리 잡았으며, 유럽 유대인의 망명을 도왔다. 노동 시오니즘과 유대인·아랍인 협력을 지지했으나 팔레스타인 분할에는 유보적이었고, 1952년 이스라엘 대통령직 제안을 사양했다. 레닌의 방법은 비판하면서도 사회 정의에 헌신한 인물로 존경했고, 1949년 《먼슬리 리뷰》에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를 주장한 「왜 사회주의인가?」를 실었다. 평생 평화주의자로 자처했지만 1939년 나치의 핵무기 개발을 경고하며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에 서명했고, 이를 「일생의 큰 실수」라고 후회했다. 전후에는 러셀과 함께 핵실험 중단 운동을 벌였고, 죽기 며칠 전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에 서명했다. FBI는 그에 관한 1,427쪽짜리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