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성개혁 연맹
World League for Sexual Reform
1928년 코펜하겐 대회에서 마그누스 히르슈펠트의 주도로 세워진 국제 성개혁 단체. 남녀평등, 결혼·이혼의 세속화, 산아 제한, 동성애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 합의한 성인 사이의 성행위 처벌 폐지, 성교육 등 열 가지 요구를 내걸었고, 히르슈펠트가 죽은 1935년 해산되었다.
상세
1928년 7월 3일 코펜하겐의 제2회 국제 성개혁 대회에서 공식 출범했고, 1921년 히르슈펠트가 베를린에서 연 대회를 제1회로 셌다. 창립 회원으로 막스 호단, 헬레네 슈퇴커, 산아 제한 운동가 마거릿 생어, 노르웨이 주재 소련 공사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도라 러셀, 노먼 헤어 등이 참여했다. 히르슈펠트·해블록 엘리스·오귀스트 포렐이 첫 공동 의장이 되었고, 1930년부터 노먼 헤어와 덴마크의 레운바크(Jonathan Leunbach)가 활동이 뜸한 엘리스와 포렐을 대신했다. 본부는 베를린의 성과학 연구소에 있었다. 요구 사항에는 「후손에 대한 우생학적 영향」도 들어 있었다. 1933년 무렵 30개 국가 지부가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였고, 1930년 개인 회원 182명에 과학적 인도주의 위원회·모성보호·성개혁 동맹 등 가맹 단체를 통해 13만 명가량이 속했다. 런던(1929), 빈(1930), 브르노(1932)에서 대회를 열었으나 모스크바(1931)와 파리(1933) 대회는 무산되었다. 1933년 5월 성과학 연구소가 약탈당하면서 기록 상당수가 사라졌고, 1935년 히르슈펠트가 죽은 뒤 헤어와 레운바크가 연맹을 해산했다.
참여자의 폭도 넓었다. 대회 연사로 버트런드 러셀과 도라 러셀, 조지 버나드 쇼, 산아 제한 운동가 마리 스톱스, 임신중절권을 주장한 스텔라 브라운, 작가 베라 브리튼과 에설 매닌,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막스 호단, 트랜스젠더 의학의 선구자 해리 벤저민, 1931년 연구소에서 성확정 수술을 한 펠릭스 아브라함, 남성 복장 개혁당을 이끈 정신분석가 J. C. 플뤼겔 등이 나섰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대회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1929년 런던 대회는 노먼 헤어가 사무총장, 도라 러셀이 회계를 맡아 꾸렸으며, 브리튼은 「일부일처제의 실패」, 브라운은 「임신중절의 권리」, 나오미 미치슨은 지식인의 피임에 관한 글을 발표했다. 독일어권에서는 히르슈펠트 외에 포렐과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루돌프 골트샤이트가, 프랑스에서는 작가 빅토르 마르그리트가 함께했고, 1932년 브르노 대회는 후고 일티스가 주최했다. 고고학자 프랜시스 터빌페트르처럼 연구소에 머물며 활동한 외국인도 있었다. 영국 지부가 특히 활발해 연맹 해산 뒤에도 성교육 협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