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 러셀

Dora Russell
독립 활동 사회민주주의자 영국 잉글랜드 1894–1986 ○ 자연사

노동자 산아 제한 운동을 벌이고 세계 성개혁 연맹 런던 대회를 꾸린 영국의 페미니스트·사회주의자

1929년 노먼 헤어와 함께 세계 성개혁 연맹 런던 대회를 조직해 회계를 맡았다.

런던 근교 크로이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거튼 칼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한 작가. 1920년 혁명기 소련을 찾아 공감했고, 1921년 버트런드 러셀과 결혼했다(1935년 이혼). 1924년 노동자 산아 제한 그룹을 세우고 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으며, 1927년 남편과 비컨힐 학교를 세웠다. 결혼 제도가 여성을 종속시킨다고 보고 남녀 모두의 성적 자유와 피임권을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모스크바에서 나온 영국 정부 신문 일을 했고, 전후 핵무기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1986년 콘월에서 숨졌다.

다른 이름: 도라 블랙

주요 활동과 소속

산아 제한, 성개혁, 평화 운동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출세한 프레더릭 블랙 경이었다. 케임브리지에서 전통 권위와 종교 교리를 의심한 「이단자 협회」에 들어가 페미니즘 사상을 키웠다. 1차 세계대전 중 버트런드 러셀의 징병 반대 운동을 도왔고, 1920년 그와 함께 소련을 찾았는데 레닌에게 실망한 러셀과 달리 많은 영국 사회주의자처럼 그곳에서 미래 문명의 모습을 보았다. 코민테른 2차 대회에 가려고도 했다. 1921년 임신 7개월의 몸으로 검은 옷을 입고 결혼했는데, 처음에는 결혼이 여성을 종속시킨다며 청혼을 거절했었다. 마거릿 생어의 피임 안내서를 펴냈다가 기소된 이들의 항소 비용을 남편, 케인스와 함께 댔고, 1924년 노동자 산아 제한 그룹을 세워 노동계급 여성에게 피임 상담을 제공했다. 노동당 안에서 피임 진료소를 요구했으나 가톨릭 표를 잃을까 두려워한 지도부가 1925년 당대회에서 이를 뒤집자 당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했다. 1925년 여성 교육의 불평등을 다룬 『히파티아』를 냈다. 1929년 노먼 헤어와 세계 성개혁 연맹 런던 대회를 조직해 회계를 맡았고, 대회에서 「결혼과 자유」를 발표했다. 남편과 열린 결혼 생활을 했으나 다른 남자와 두 아이를 낳으면서 갈라섰다. 비컨힐 학교는 2차 세계대전 때까지 혼자 운영했다. 전쟁 중에는 정보부를 거쳐 모스크바에서 나온 영국 정부 신문 《영국 동맹》 일을 했고, 전후 핵 군축 운동(CND) 창립 회원이 되어 1958년 여성들과 「여성 평화 캐러밴」을 이끌고 모스크바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