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
독립 활동 사회민주주의자 영국 잉글랜드 1872–1970 ○ 자연사

분석철학을 세운 영국의 철학자·수학자로 반전·핵 군축 운동을 이끈 평화주의자

1차 세계대전 때 반전 활동으로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쫓겨나고 1918년 6개월 옥살이를 했으며, 1920년 소련을 방문해 레닌을 만난 뒤 볼셰비즘 비판서를 썼다.

영국 총리를 지낸 존 러셀 백작의 손자로 태어난 철학자·수학자. 화이트헤드와 『수학 원리』를 써 분석철학의 기초를 놓았다.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해 투옥되었고, 1922·1923년 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으며, 도라 러셀과 함께 비컨힐 학교를 세웠다. 『결혼과 도덕』에서 혼외 성관계와 피임, 성교육을 옹호했고 1958년 동성애 처벌 개정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서명했다. 2차 세계대전 뒤 핵무기 폐기와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이끌었고,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70년 웨일스에서 숨졌다.

주요 활동과 소속

반전, 사회주의, 성개혁

1차 세계대전 때 드물게 적극적인 반전 활동을 벌여 1916년 국토방위법 위반으로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쫓겨났고, 1917년 반전 사회주의자들의 리즈 대회에 연사로 나섰으며, 1918년 미국 참전 반대 강연으로 브릭스턴 교도소에서 6개월을 살았다. 1914년 「사회주의자가 세계의 희망」이라고 썼고 길드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며 공산주의 실험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1920년 영국 정부 사절단과 함께 소련을 찾아 레닌과 한 시간 동안 대화한 뒤 실망했고, 『볼셰비즘의 실천과 이론』을 써서 비판했다. 같은 시기 따로 소련을 찾은 연인 도라 블랙은 혁명에 열광했다. 1921년 도라와 결혼해 중국 강연을 다녀왔고, 1922·1923년 첼시에서 노동당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1927년 함께 진보적인 비컨힐 학교를 세웠고, 1929년 『결혼과 도덕』에서 서로 사랑하는 미혼 남녀의 성관계를 부도덕하지 않다고 보고 「시험 결혼」, 공개적인 성교육, 피임의 보급을 주장해 미국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세계 성개혁 연맹 대회에도 연사로 나섰다. 도라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으면서 1932년 별거해 이혼했다. 1932~1939년 인도 독립 운동 단체 인도 연맹의 의장을 지냈다. 나치에 대한 유화를 지지하다 1943년 생각을 바꾸었고, 전후에는 핵무기 폐기 운동을 이끌어 1955년 아인슈타인과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냈다. 1958년에는 남성 동성애 처벌 개정을 요구한 공개서한에 서명했고, 그 법은 그가 살아 있던 1967년 일부 고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