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논』 — 남성을 사랑하는 우르닝의 성 본성
인물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 오토 폰 비스마르크, 요한 루트비히 카스퍼, 루돌프 피르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용어우르닝, 성적 중간 단계론, 독일 형법 제175조 사건독일 성개혁 운동과 나치의 파괴 (1897~1935)
제2부.
I. 인정의 말들.
1. 독일 법률가 대회 회원인 빈의 법학 박사 카세러가 내게 이렇게 써 보냈다. “빈, 1868년 7월 1일. …. 제가 당신에게 무조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만 올바른 판단을 내릴 만큼 제가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당신이 인간의 신체 발달을 길잡이 삼아 남자와 남자의 사랑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면, 당신은 올바른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싸우는 무기의 탁월함에는 무조건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노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고, 보내 주신 책들도 그들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곧 서론을 뺀 『멤논』 제1부와 제2부다. “그리고 이분들이 역시 우르닝이 아닌데도 당신에 대해 매우 호의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전해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 어쨌든 저는 인간 인식의 모든 진보를 기쁘게 맞이한다는 점에서 당신의 노력에 가까이 서 있습니다 운운.”
2. 슈타이어마르크의 그라츠에 사는 경험 많은 변호사이자 법학 박사로, 지금은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내게 이렇게 써 보냈다. “그라츠, 1868년 7월 3일. 당신의 저작은 특히 해부학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에서 놀라운 해명을 줍니다. 그것을 길잡이 삼으면, 그렇지 않았다면 거의 설명할 수 없었을 일들이 드러납니다. 저 역시 남성의 몸 안에 여성의 영혼과 감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반대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봅니다.”
II. 입법 문제에 대하여.
1. 같은 사람이 이어서 쓴다. “입법은 지금까지 이 대상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이미 결론 난 일로 다루었습니다. 입법의 이 분야도 탐구된다는 것을 학문은 최근에 와서야, 무엇보다도 당신의 자극 덕분에야 얻게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북독일에서보다 당신의 견해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더 많습니다. … 오스트리아에서는 경찰이 지금은 어떤 관계들에 대해 더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털이꾼들이” 『글라디우스 푸렌스』 부록 VI 참조 “그들의 희생자와의 관계를 폭로했을 때, 희생자는 더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반면 그들이 처벌받은 사례도 이미 있었습니다.” 그는 그런 사례 여러 건 등을 내게 알려 준다.
“지금까지의 입법은 그 목적을 이루기는커녕 사기만 거들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몇몇 타락한 자들의 탐욕과 비열함을 부추겼습니다. 털이꾼 짓의 영역에서 이곳에는 뒤마의 소설에서 보았다면 우스꽝스러운 과장이라고 여겼을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새 형법이 이제 이 깨끗한 생업에 제동을 걸 것입니다.” 『글라디우스 푸렌스』 앞의 책 참조. “올해 9월에 그것이 제국 의회에서 심의에 들어갑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 134의 2에 있는 내 알림을 참조하라. 이 서론은 대체로 뒤에 이어지는 본문보다 나중에 쓴 것이다.
2. 법률가 대회에 낸 새 청원(아래 § 134의 3 참조)에서 나는 『글라디우스 푸렌스』의 논의를 근거로 삼아 내 입법 요구에 다음과 같은 문안을 주었다.
“모든 종류의 성행위는 예외 없이 다음 경우에만 처벌한다. 곧 그것으로
직접적인 공공의 추문이 일어났고, 그 추문을 일으킨 것이 해당 인물에게 고의로든 과실로든 책임으로 돌려질 수 있는 경우. 이 경우에는 직권으로 처벌한다.
또는 권리가 침해된 경우[학대나 강제의 사용 또는 위협, 의식 없는 사람·의지할 데 없는 사람·아직 성숙하지 않은(미성년) 사람의 남용, 아직 성숙하지 않은(미성년) 사람이나 백치인 사람에 대한 매개, 간통, 행동으로 들이대는 요구로 persona invita(원치 않는 사람)의 성적 명예를 해치는 것 따위]. 이 경우에는 피해자나 그 법정 대리인의 고소가 있을 때에만 처벌한다. 다만 대리인 자신이 행위자였을 때, 예컨대 후견인이 아직 성숙하지 않은(미성년) 또는 백치인 피후견인을 남용하거나 매개했을 때에는 고소가 있는 것으로 의제하여 직권으로 처벌한다.”
더 나아간 동기로서 나는 § 134에서 든 것들 말고도 다음을 덧붙이거나 명시적으로 강조했어야 했다.
a. “문제의 처벌을 지지하여 (형 포이어바흐, 미터마이어, 프로이센 고등검찰청, 그 밖의 이들이) 내세운 모든 근거가 완전히 근거 없다는 것(『글라디우스 푸렌스』 부록 II에서 증명).
b. “저 추문 유발도 권리 침해도 없는 한 개별 국민의 사적 영역에 대한 강제적 개입을 무조건 금하는 법치 국가의 원칙.
c. “anima muliebris virili corpore inclusa(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의 영혼)에게 그것에 전혀 낯선 남자의 성 본성, 곧 anima virilis virili corpore inclusa(남성의 몸에 갇힌 남성의 영혼)의 성 본성을 법으로 강요하려는 데 놓인 무분별한 불의.” [56]
III. 알림.
1. 프로이센에서의 『글라디우스 푸렌스』 단속. 1868년 5월 14일 카셀의 프로이센 왕국 경찰청은 그곳의 내 서적상 G. 뷔르텐베르거에게 『글라디우스 푸렌스』의 판매를 금지하고, 어기면 벌금 100탈러나 징역 반년에 처한다고 위협했다. 그 밖에 형사 절차도 개시되었다. 베를린의 한 법원의 촉탁으로 카셀 지방 법원이 그를 책임자로서 심문했다. 그는 출판 건으로 내가 그에게 보낸 편지들을 수사 기록에 내놓도록 강요당했다. 그 밖의 조치는 내가 알지 못한다.
베를린의 촉탁서에는 책 한 부가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법적 근거로 내 신념을 설득하려고 이 학술적·입법적 소책자를 베를린으로 다음과 같은 입법 및 법 집행 기관에 보냈었다. 법무 장관 레온하르트, 비스마르크 장관, 전 법무 장관 추어 리페 백작, 연방 참의원 의원들, 그리고 – 아무래도 너무 무심하게 – 고등검찰청과 경찰청장실에!
범죄의 corpus delicti(구성 요건, 범죄의 증거물)를 어디에서 보았는지, 곧 내가
(뮌헨, 1867년 8월 29일) 법률가 대회에서 “짓밟힌 자연의 권리”를 위해 창을 든 것에서인가? 아니면 거기에 이어진 프로이센 형법에 대한 논박에서인가? 이것은 내가 알지 못한 채로 남았고, 어떤 범죄를 찾아냈는지도 마찬가지다.
덧붙이자면 학문적 공격을 금지한다고 해서 법의 존속이 효과적으로 지켜지는 법은 결코 없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고문에 대한 논박을 금지했다. 그런데 고문은 어디로 갔는가? 바로 이 금지 자체가, 그런 버팀목, 곧 강제라는 버팀목이 필요했던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아주 효과적으로 뒤흔든 나머지, 그 제도는 불과 몇 해 뒤에 무너졌다.
2. 나는 『글라디우스 푸렌스』 500부를 법률가 대회 회원들과 그 밖의 학자들에게 보냈다. 그 결과 회원 3명, 곧 슈투트가르트의 전 고등법원 판사 포이어바흐, 빈의 변호사이자 법학 박사 데크리니스와 법학 박사 카세러, 그리고 슈투트가르트의 자이퍼 교수 박사에게서 인정의 편지를 받았다. 반면 “받지 않음”이나 “수령 거부”라는 메모를 붙여 책을 돌려보낸 이들은 바덴바덴의 변호사 감버, 빈의 공증인 리베어, 브라운슈바이크의 고등법원 변호사 호이슬러, 하노버 지방 뢰싱의 군수 폰 뢰싱이다. 돌려보내지 않은 이들은 –
이 네 신사보다 더 무게 있는 이름들이다 –: 오스트리아 황제 겸 국왕 정부의 장관 헤르프스트, 기스크라, 베르거, 헝가리 왕국 법무 장관 호르바트, 빈 하원 형법 위원회 위원 9명, 베를린 연방 참의원 사법 위원회 위원들,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왕자(법률가 대회 회원), 프라하의 법학 박사 루돌프 폰 투른 운트 탁시스 후작, 빈·베를린·드레스덴·카를스루에·다름슈타트·슈베린·올덴부르크·바이마르의 법무부, 함부르크와 브레멘의 시 참사회, 빈·드레스덴·하노버·함부르크·브레멘의 경찰청, 법학 교수들, 의원들, 국립 도서관들 등이다. 1867년 8월 29일의 내 완강한 적수인 드레스덴의 검찰총장 슈바르체조차 수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3. 들은 바로는 누군가가 그라츠의 학생회 「오리온」 도서관에서 내 누만티우스 책 다섯 권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책들은 베른 칸톤 최고 법원 도서관에도 있다고 한다. 흐로닝언 대학 의학부 안에서는 그 내용이 거듭 토론 대상이 되었다.
4. 1864년 우르닝의 사랑을 이유로 9년의 중금고형을 선고받은 불행한 티롤의 사제 호퍼를 위해(『빈딕타』 XX쪽 참조) 나는 올해 6월 30일 오스트리아 황제 겸 국왕 정부 법무부에 사면과 이제는 석방을 청원했다. 그 조금 전에는 앞에서 말한 펠트만을 위해 자유시 브레멘의 시 참사회와 시민 의회에 같은 청원을 했다.
5. 뷔르츠부르크 제9보병 연대의 R. 중위를 한 병사가 우르닝으로서 들이댄 요구를 이유로 중대장에게 신고했다. 그러자 연대장 마일링거 대령이 그로 하여금 즉시 전역하게 했다(1868년 6월 초). 파리 사건에서 프랑스 연대장들이 취한 조치에 대한 내 말(아래 § 134의 6 c)은 이 조치에도 거의 그대로 들어맞는다! 아무 처녀라도 어떤 장교를 유혹을 시도했다고 고발했다면, 사람들은 그 장교에게 전역을 강요하겠는가? 병사가 처녀보다 더 무력하단 말인가? 그는 어떤 요구든 힘찬 “싫다!” 한마디로 물리칠 수 있지 않은가? 대체로 다른 사랑이 문제일 때 연대장들이 유별나게 너그럽지 못하다는 말은 나는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오, 두 개의 저울추로
제게는 너그럽게” 운운.
6. 회슬리의 생각이 얼마나 자주 내 생각과 가까이 만나는지, 그 견본을 여기 하나 든다. 그는 제2권 240쪽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사람이 거들지 않아도 저절로 그 안에서 일어나는 그 사랑을 위해 창조되었다. 또한 어떤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미친 사람의 머릿속에서조차, ‘나는 무엇을 사랑하려 하는가?’라는 물음이 떠오른 적은 없다. 사랑은 결코 자의가 아니요, 언제나 자연이다.” 이와 함께 『인클루사』 제30절, 제47절, 제09절을 참조하라.
7. 회슬리의 책(제2권 235쪽)에서 나는 P. 벨의 『역사 비평 사전』에서 따온 다음 인용을 발견한다.
“일본의 승려에게는 소년애만 허용된다.”
그 밖에도 일본에 우르닝이 대단히 많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성직자에게는 혼인과 여자에 대한 사랑이 금지되어 있는 반면, 우르닝의 사랑은 그들 신분의 유보된 특권이다. 인간의 본성에 따라 그렇게 되면 주로 우르닝만 성직자 신분을 택할 것이다. 기묘한 입법이다. 같은 출처에 따르면 덧붙여 가톨릭교회에서조차 한때 이와 비슷한 것이 적어도 제기된 적은 있었던 듯하다.
“교황 식스투스 4세에게” 어쩌면 성직자들이 “청원서를 올려, 소년애를 허락해 달라고 했다.” 어쩌면 바로 그 성직자들에게.
8. 우르닝 결혼에서 일어난 배우자 살해. 우르닝과 여자 사이의 사이비 결혼에 대한 나의 판단(위 § 38, 39)에 아직 예증이 모자라기라도 하다는 듯, 바로 이 책이 만들어지는 동안 니더외스터라이히의 한 마을에서 한 우르닝이 여자와 결혼하고, 내가 이 책을 다 끝내기도 전에 쇼아죌프랄랭 공작의 범행을 되풀이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57] 라 근처 불첼스호펜의 반농(半農) 요제프 크라프트는 지금 26세의 우르닝인데, 1867년 11월에 “젊고 아름다운” 카타리나 베르네르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아울러 “온유와 선량의 귀감”으로 묘사된다. 1868년 6월 19일 코르노이부르크 법정에서 열린 그의 공판에 관해, 빈의 《프레세》와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의 원보도에 따라 다음을 옮겨 온다. 크라프트는 키가 꽤 크고 어깨가 넓고 근육질이며, 총명하고 다정한 얼굴에 목소리가 힘차다. 그런데도 그는 눈에 띄게 무심하고, 머리가 둔하며, 거의 우둔해 보인다. 리치 판사: 당신은 도대체 왜 결혼했습니까? 크라프트: “부모님이 원했습니다. 어머니가 더는 일을 못 하게 되셨어요. 살림을 거들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리치: 당신은 아내를 좋아해서 결혼했습니까? 크라프트: “저는 그 여자를 전혀 몰랐습니다.” 리치: 그녀는 혈색이 좋았습니까? 크라프트: “저는 그 여자를 한 번도 쳐다본 적이 없습니다.” 이 대답들에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카타리나의 아버지는 이렇게 진술한다. “크라프트가 내 딸에게 청혼했을 때 그에 대해 이런저런 수군거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흔히 별의별 일이 다 있으니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그가 결혼하면 달라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화요일이 혼례날이었는데 바로 다음 월요일에 딸이 벌써 하소연을 하러 왔습니다. 나는 딸에게 ‘그건 달라질 거다’ 하고 말했지요.”(!) 《프레세》: “그는 결혼했는데도 남자 청년들 사이에 불행히도 널리 퍼져 있는 부자연스러운 악덕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깊디깊은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노이에 프라이에 프레세》: “젊어서부터 부자연스러운 정념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어찌할 수 없는 반감.” 재판장이 크라프트에게: 당신은 보통 저녁 8시에서 10시 사이에 집 밖에서 정욕을 좇아 돌아다녔습니다. 이 외출이 정기적인 일이 된 뒤로 당신은 아내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다툼의 빌미를 준 일도 없는데 말입니다. 크라프트: “그 여자가 저를 욕했습니다.” 재판장: 당신의 부도덕을 알게 되었을 때 아내는 당신에게 그저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하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하고만 말했습니다. 《프레세》: “그는 무시무시한 부자연스러운 정념의 노예로, 그 정념 때문에 여성에게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마치 이 완전한 무관심이 사내들과 어울린 결과로 비로소 생긴 것이라는 듯이! “시신 해부 결과 완전한 처녀 상태로 드러났다.” 곧 그는 그녀를 한 번도 건드린 적이 없었다. 카타리나 자신이 이미 어머니에게 그렇게 털어놓았던 바이다. “그와 함께 산 지 며칠 되지도 않아 그녀는 벌써 친척들에게 이 불행한 결혼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더없이 끔찍한 사실들을 털어놓는다. 여자에 대한, 아내에 대한 그의 반감은 어찌나 심했던지, 그는 그녀가 거듭 돌아올 때마다 거듭 그녀를 집에서 내쫓는다. 어느 날 밤 그는 그녀에 대한 증오에 사로잡혀 그녀를 죽인다.” 1868년 2월 8일 그는 그녀를 막대기로 때리고 땅에 넘어뜨린 다음, 한쪽 무릎으로 그녀의 가슴을 누르고 두 손으로 말 그대로 그녀의 목을 졸랐다. 그의 진술로는 “욱하는 성미에”(울컥한 노여움에) 그랬고, 그녀가 먼저 다투기 시작한 뒤였다고 한다. 그녀는 말이 많고 “말솜씨가 좋은” 여자로 묘사된다. 한 증인: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소년들과 젊은 사내들을 꾀어 음란한 짓을 하게 했습니다. 그들을 사탕, 피리 따위로 매수하려고 아버지의 돈을 훔쳤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주 하소연하며 몹시 울었습니다.”(변호인인 빈의 도스탈 박사가 이 사내들의 나이에 관해 나에게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다. 크라프트는 남성형 우르닝인 것 같다.) 재판장이 크라프트에게: “당신의 아내는 당신이 제대로 된 남편이 아니라는 데 대한 무언의 비난이었습니다.” 뒤의 말은 분명 아주 옳다. 그는 그런 남편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웅동체인 그는 사이비 배우자일 수밖에 없었다. 《프레세》: “사람들은 영원히 구제 불능인 자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것은 법의 퀴힐러 씨와 바이스 씨의 기억할 만한 무지인데, 그들은 이렇게 진술한다. “젊은 남자들과 자연에 반하는 교제를 하면 흔히(!) 그 결과(!) 여성에 대한 반감이 생긴다. 이런 자들은 잔인성으로 기운다.”(!) 이것은 예전에 마녀 재판에 불려 나왔던 법의들을 거의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그들에 따르면 마녀는 누구나 몸에 작고 검거나 갈색인 반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들이 법의로 불려 나오는데, 그것도 사형 판결이 걸린 사건에서 그렇단 말인가? 물론이다! 대체 누가 그들의 눈가리개를 벗겨 주겠는가? 재판관들 자신이 이집트의 어둠에 싸여 있는데. 그러니 그 위험한 오류,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헤아릴 수도 없는 오류의 정체를 이제는 마침내 폭로할 때가 아닌가? – 1868년 6월 19일 코르노이부르크 지방 법원은 하르트만, 리치, 슈트라우프, 포글러, 차하르 씨로 구성되었다. 법원은 실제로 크라프트에게 교수형에 의한 사형을 선고했으며, 그러면서 그의 젊은 남자들에 대한 성향을 가중 사유(!)로 쳤다. – 바꿀 수 없는 자연법칙에 따라 그 “아내”는 그에게 혐오와 전율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그녀는 한 번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젊은 사내들은 여전히 건드렸다면, 뒤의 일은 도덕적으로 매우 비난받을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두 가지 점 모두에서 그는 자기 본성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가 자연에 반하여 행동한 것은 결혼했을 때였다. 그런 결혼은 자연에 대한 모욕이다. 그리고 이 파국을 무엇보다도 양심에 짊어져야 할 사람은, 그의 성향을 알면서도 이 결혼에 동의하고 오히려 그것을 몰아붙인 사람들, 곧 양가 부모다. 그리고 그사이에 겪은 온갖 일을 겪고 나서도, 그 무지가 둘을 떼어 놓으려 애쓰기는커녕 거듭 중재해 그녀를 돌아가게 함으로써 무모하게도 자연의 복수를 대놓고 불러들이는 데까지 나아갔으니,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단 말인가? 자연의 규칙을 어기는 일은 무엇이든 자연을 자극해 복수하게 만들며, 크든 작든 격렬한 폭발의 위험을 품고 있다. 훈계, 비난, 위협, 욕설, 그 밖의 온갖 괴롭힘이 가차 없이 뿌리 뽑을 수도 바꿀 수도 없는 자연을 상대로 무슨 효과를 내겠는가? 남자인 남편이라면 가장 거칠고 가장 심술궂은 남편이라도 이런 우르닝의 혐오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독을 품은 비난은 그에게서 너무나 쉽게 격분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불행한 자웅동체, 사이비 배우자의 손이 파국을 저지른다면, 그는 대부분 명령하는, 이를테면 폭군 같은 자연의 힘의 도구로서, 모욕당한 자연의 복수를 섬기는 종으로서 행동할 뿐이다. 그러므로 크라프트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자연에 반하여 자신에게 전율을 일으키는 여자에게 묶여 있던 자웅동체인 그는 살인자의 벌을 받을 만하지는 않다.
하나 더. 판결은 그를 “마을 젊은이들에게 진짜 페스트 종기”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 좀 경솔한 말이 아닙니까? 사내를 꾀는 자를 벌써 “페스트 종기”라 부른다면, 가장 혹독한 표현을 이미 써 버린 다음에 여자아이를 꾀는 자는 대체 무슨 이름으로 부르시렵니까? 아니면 뒤의 자가 더 위험한 자, 훨씬 더 위험한 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In pueris brevis est et fugitiva Venus(소년들에게서 베누스는 짧고 덧없다), 하고 마르티알리스는 참으로 옳게 말합니다. 그런데 뒤의 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 보십시오! 자기 희생자를 혼외 임신과 혼외 출산이라는 치욕의 위험으로 몰아넣지 않습니까? 그리고 통계에 물어보면, 이 둘은 경험상 해마다 임신한 처녀들의 자살을 이러저러한 수만큼 낳고, 그보다 훨씬 많은 낙태 시도와 영아 살해를 낳지 않습니까? 자살도 영아 살해도 없다고 쳐도, 온 세상에 사생아보다 더 불행한 존재가 있겠습니까? 통계는 무엇이라 말합니까? “사생아의 사망률은 적출자의 3~4배.”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여자아이를 꾀는 일 속에 싹으로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사내를 꾀는 자를 페스트 종기라 부를 때 여러분은 이 점을 생각하지 못하셨겠지요. 원하지 않아도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이 말에 이르고 맙니다.
“오, 두 가지 저울추를 지닌 순결이여....”
9. 브레멘에서 다음과 같은 소식이 왔다. 믿기 어려워 보이는 이야기지만 출처가 확실하니 그것으로 균형이 맞는다. 형을 선고받은 펠트만에게 그를 “좋게 보는” 몇몇 원로원 의원 쪽에서 이런 귀띔이 있었다고 한다. “『멤논』이, 아니면 적어도 그 안에 담긴 우르닝 사건에 관한 브레멘 실무 비판이 공개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특히 펠트만 자신을 위해서다. 공개되면 그의 사면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들으시오, 들으시오!) 뭐라고? 『멤논』이 분노하여 저지른 일을 갇힌 사람에게 갚게 하겠다고? 그러나 내가 그 비판을 묻어 버린다면 나는 그 비판의 대상인 브레멘 실무의 공범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라, 『멤논』이여, 인간의 정의에 덮인 백내장을 걷어 내러. 그러면 공공의 정의감이 넉넉히 강해져서, 그럼에도 그에게 감옥의 문을 열어 줄 것이다.
§ 125 다음에 이어진다. 그러므로 아래 글은 § 125를 읽은 뒤에 읽어 주기를 바란다. 인용의 편의를 위해 절 번호를 붙인다.
한 자연 현상과 그 거울상.
§ 136. 우르닝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남성 개체들 사이에는, 여자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남자들 사이에서보다 서로 훨씬 멀리 떨어진 거리점들을 지닌 단계적 서열이 있다. 여자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것은 남성적으로 꽃핀 힘찬 외양을 지니고 대략 18~36세인 남자들이다. (여기서도, 그리고 아래의 나이 표시에서도, 덧붙인 출처가 달리 말하지 않는 한 나는 독일의 나이와 사춘기 사정을 염두에 둔다.) 이것은 우르닝의 한쪽 절반, 여자에 가까운 쪽, 넓은 뜻의 여성형 우르닝에게 들어맞으며, 그것도 눈에 띄게 정확히 들어맞는다. 나는 32~36세의 남자에게도 아직 끌리는 여성형 우르닝들을 개인적으로 안다. 이와 달리 나머지 절반 전체, 남자에 가까운 쪽, 넓은 뜻의 남성형 우르닝 부류는 벗어나 있다. 이들의 성향은 대략 19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 겨우 막 도달한 가장 여린 성숙의 맨 끝 경계, 14세, 13세까지 이르고, 이따금은 성숙 이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뒤의 것을 어떻게 설명할지는 § 139 참조.) 그러나 서로 다른 우르닝들을 끌어당기는 개체들 쪽에서 차이가 놓인 곳은 아마 나이 자체, 곧 한쪽은 더 남성적인 나이, 다른 쪽은 더 젊은 나이라는 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서로 다른 나이에 따르는 서로 다른 특성들, 곧 한쪽은 더 힘찬, 다른 쪽은 더 여리고 부드러운 몸매, 한쪽은 남성적인, 다른 쪽은 더 처녀 같은 얼굴 표정일 것이다.
§ 137. 남성형 우르닝을 끌어당기는, 아주 어린 나이에 여린 얼굴 표정을 지닌 남성 개체의 예는 고전 작가들에게서 매우 자주 볼 수 있다. 『멤논』 § 17. 19 참조. 하드리아누스의 매우 남성적인 마음을 사로잡은 안티노우스에 대해서는, 완전히 소녀 같은 얼굴 표정을 지닌 매우 귀하게 여겨지는 대리석 흉상, 이른바 몬드라고네의 안티노우스가 남아 있다. (폰 레베초 「안티노우스에 관하여」 1810년, 도판 10에 실려 있다.) [그와 달리 브라스키의 안티노우스는 젊고 남성적이다.]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 10, 83)는 우르닝의 사랑에 대해 말한다. – amores
In teneros transferre mares citraque juventam
Aetatis breve ver et primos carpere flores.
(사랑을 여린 사내아이들에게로 옮기고, 청년기에 이르기 전
나이의 짧은 봄과 첫 꽃을 따는 것.)
루키아노스의 『신들의 대화』에서 가니메데스는 여리고 아주 어린, 거의 아직 어린애 같은 소년으로 그려진다. 물론 다른 고전 작가들, 이를테면 마르티알리스와는 다르다. 마르티알리스는(9, 37) 적어도 첫 솜털은 벌써 돋게 한다. 투르크인과 알바니아인이 사랑하는 소년들은 13~18세, 12~17세로 일컬어진다. (『아라 스페이』 VIII쪽, 『멤논』 § 31.) 우라노디오닝들, 그것도 결합형 우라노디오닝들, 이를테면 티불루스의 사랑의 동경 대상인 여린 소년들(『멤논』 주 9와 § 19)과, 분리형 우라노디오닝들의 그것(『멤논』 § 29. § 105)을 비교해 보라. 이어서 브레멘의 시렌베크 형사 사건을 비교해 보라. 10세, 11세, 13세 소년들이다(『멤논』 § 134, 5). 호퍼(『빈딕타』 XXI쪽)와 앞에서 말한 크라프트도 일부는 매우 어린 사내들을 사랑한 것 같다. 짐바흐 암 인 마을 출신의 16세 머슴 슐레하이더는 1866년 12월 30일 7세 소년을 꾀었다는 이유로 1868년 1월 14일 뮌헨 배심 법원에서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다! 여기서와 시렌베크 사건에서는 물론 사랑이 아니라 관능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팔라비치니는 1652년의 『소년 알키비아데스』(Alcibiade fanciullo)에서 정말로 사랑을 말하면서도(물론 이탈리아의 나이 사정을 염두에 두고) 거의 그만큼 아래로 내려간다. 아래(§ 107)에서 언급할 프랑스어 번역본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97, 98쪽).
L'amour mâle est enfant. II est vrai que trop bambin, il manque un peu de saveur. Les plus propres au déduit sont ces beaux jouvenceaux, composés de miel et d’ambroisie, faits pour nous attirer, pour nous convier aux plaisirs, comme les autres pour nous en dégoûter. ... de 9 à 18 ans. Mais la limite est un peu arbitraire, car les uns gardent plus longtemps leur grâces enfantines et les autres défleurissent plus vite. De même voit-on de charmants bambins, rondelets et vermeils, qui vous font ... dès le berceau. (남성의 사랑은 어린아이다. 하기는 너무 어린 아이는 맛이 좀 덜하다. 쾌락에 가장 알맞은 것은 꿀과 암브로시아로 빚어진 저 아름다운 소년들이니, 다른 이들이 우리를 쾌락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처럼, 그들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쾌락으로 부르려고 만들어졌다. ... 9세에서 18세까지. 그러나 이 경계는 다소 자의적이다. 어떤 이들은 어린아이의 우아함을 더 오래 간직하고, 어떤 이들은 더 빨리 꽃이 진다. 마찬가지로 요람에서부터 벌써 사람을 ... 하게 만드는, 통통하고 발그레한 귀여운 꼬마들도 볼 수 있다.) [믿기 어려워 보이지만, 이것은 마르티알리스의 한 증언과 들어맞는다. 그는(1, 9과 9, 7) 늘 그렇듯 과장하기는 하지만 역시 갓 요람을 벗어난 사랑받는 소년들, 곧 pueri vagientes(응애응애 우는 소년들)를 말한다.]
팔라비치니는 다음 말에서(7쪽) 남성형 우르닝의 본성에 관한 또 하나의 전거 구절을 준다.
... cet âge oû la nature industrieuse se fait un jeu charmant de répandre sur des formes divines des traits indécis, oû l’oeil amoureux cherche en vain à distinguer les sexes. Il avait sans doute cet air de jouvencelle, le beau Ganymède, quand il força Jupiter à descendre du ciel sur la terre. (... 솜씨 좋은 자연이 신성한 몸매 위에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이목구비를 흩뿌리며 즐거운 장난을 치는 나이, 사랑하는 눈이 성별을 가려내려 해도 헛된 나이. 아름다운 가니메데스가 유피테르로 하여금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했을 때, 그는 틀림없이 이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그의 이 증언들은 나 자신을 몹시 놀라게 했고, 앞에서 말한 마르티알리스의 증언을 믿게 된 것도 이 증언들 덕분이다. 이 남성형 우르닝의 세계 전체는 나의 개인적 경험에는 낯선 것이다.
§ 138. 아니, 자연이 만들어 낸 젊은 남자 몸의 여림조차 본래의 남성형 우르닝의 감정에는 아직 흡족하지 않거나 겨우 흡족한 것 같다. 그에게는 그 여림에 아직 무언가가 모자란 것 같다. 그에게 그것은 아직 충분히 소녀 같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고대에 어떻게 인공으로 이 자연스러운 여림을 더 높이려는 생각을 했겠는가?(그저 거슬리는 수염이 나고 얼굴 생김새가 남성적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이렇게 인공으로 반쯤 소녀로 바뀐 젊은이가 이를테면 사랑스러운 에아리누스였다. 마르티알리스(『멤논』 제1부 서론 V 참조)와 스타티우스가 그의 아름다움을 기린다.[58] 그에게 쓰인 기술은 스타티우스가(「에아리누스의 머리카락」에서) 점잖으면서도 자세히 묘사한다. 프루덴티우스(『심마쿠스 반박』 1, 273)는 안티노우스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잘못 안 것이다. 이 거세는 로마에서 어엿한 산업 분야가 되었다(『포르마트릭스』 XIII. XIV쪽). 이 남성형 우르닝의 취향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 보여 주기에 충분한 증거다.
§ 139. 그러니까 남성형 우르닝에게서는 여성적 사랑의 충동이 자연 속에서 유례없는 발달, 특히 여자의 본성 속에서는 그 어떤 유비물도 찾을 수 없는 발달에 이르렀다.
여성적 사랑의 충동이 이렇게 발달한 것과 나란히 서는 것은, 진정한 유비물은 아니지만, 본래의 남자들에게서 남성적 사랑의 충동이 걸어간 발달뿐이다. 남성형 우르닝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처녀 같은 남성 몸매들의 계열에 대응하는 것은, 남자들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처녀 같은 여성 몸매들의 계열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곧 여성 몸매들의 단계적 서열이 남성 몸매들의 단계적 서열에 대한 준(準)유비물을 이룬다는 점이 이 현상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물론 우리는 두 단계적 서열이 서로 결코 정확히 겹치지 않는다는 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남성형 우르닝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처녀 같은 남성 몸매들은, 남자들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처녀 같은 여성 몸매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까지 내려간다. 여자는 예외를 빼면 대개 16~25세에만 끌림을 일으킨다. 이 차이는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남성형 우르닝의 눈에는, 존재하지 않는 진짜 소녀다움을 더 어린 나이가 대신하거나 자연스러운 대용물이 되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 136에서 예고한, 성향이 성숙선 아래로까지 내려가는 이유다.) 그러니까 소녀다움에 대한 남성형 우르닝의 취향을 채워 주는 것은 거세된 자들이거나 아직 성숙하지 않은 자들인 것 같다. (물론 아직 성숙하지 않은 자들을 향한 성적 성향이라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팔라비치니가 그려 낸 것까지 포함해 나는 병적이라고 보고 싶다.)
§ 140. 이에 따라 남성형 우르닝과 여성형 우르닝을 다시 한데 묶으면 다음을 확인해야 한다.
우르닝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꽃핀 남성 몸매들의 단계적 서열에서 맨 끝의 거리점들은(곧 § 139의 수정을 붙여) 남자와 여자에게 끌림을 일으키는 꽃핀 여성 몸매들의 단계적 서열과 꽃핀 남성 몸매들의 단계적 서열을 한데 묶었을 때의 양 끝점만큼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르닝에게 작용하는 끌어당기는 힘의 양극단은, 남자와 여자를 한데 묶어 놓고 거기에 작용하는 힘의 양극단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 141. 이제 우리가 앞서 거듭 확인할 계기가 있었고(『포르마트릭스』 § 115, 『멤논』 § 99 끝부분) 전혀 다른 관찰을 통해 도달했던 한 현상을 떠올려 보자. 그것은 이렇다.
우르닝들에게서는(남성적 기질, 남자 같은 욕구 등을 지닌 극단적 남성형 우르닝 본성, 극단적 여성형 우르닝 본성, 그리고 그 사이 본성들의 단계적 서열) 성적 색채의 거리점들이 여자나 남자에게서처럼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한데 묶었을 때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가 전혀 다른 길로 도달한 두 현상, 곧 이것과 앞서 확인한 것은 서로 더없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 둘은 서로 상호 작용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거울상이다.
그런데 이 자연의 배치는, 우르닝 족속이 창조하는 손에 의해 규칙적인 법칙에 따라 생겨났다는 것을 다시금 웅변으로 증명한다.[59]
우르닝 영혼이 몸에 의존한다는 것.
§ 142. 몸에서 절대적으로 독립된 영혼의 성질이란 생각할 수 없다. 옛 유대 랍비들은 남자의 몸 속 여자의 영혼(위 § 45, II.)을 가지고 영혼 윤회설의 근거를 세우려 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여자의 영혼이 남자의 몸에 그 몸과는 절대적으로 독립하여 깃들어 산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오류다. 우르닝의 영혼도 그것이 깃든 몸에서 절대적으로 독립해 있지 않다. 그 영혼의 여성성은 이 몸이 순수하게 남성적이지 않다는 데 의존한다. 순수하게 남성적인 몸이 있다면, 그런 몸은 결코 여성의 영혼을 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자연이 두 종류의 인간만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섞이지 않은 남자와 섞이지 않은 여자, 곧 젖꼭지도 utriculus masculinus(남성 자궁, 전립선 소실)도 없는 남자와 음핵이 없는 여자이고, 태아의 생명이 처음 깨어날 때부터 남자는 순수하게 남성적이고 여자는 순수하게 여성적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몸과 영혼의 자웅동체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의 이론 anima muliebris virili corpore inclusa(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의 영혼)는 틀린 것이 될 것이다. 우라니즘이 가능해지는 것은 오로지 자연이 인간을 만들 때 다르게, 더 복잡하게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모든 태아에 다른 싹들과 나란히 몸이 여성의 성을 갖출 몸의 싹도 넣어 두었다. 그런데 몸의 여성적 성을 향한 이 단초들은, 그 존재가 더 진행되는 동안 일부는 억눌리고 일부는 남성성으로 발달하지만, 우르닝 안에서 영혼의 싹들이 발달해 이른 여성성에 대해 조화를 이루는 몸의 기체(基體)가 된다. 그것들은 남자의 몸에 깃든 여자의 영혼에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그것들은 우르닝 영혼의 여성성이 의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발달을 마친 우르닝에게서도 억눌린 여성 신체 부위의 잔재들(젖꼭지, 앞서 말한 utriculus 등)이 그의 영혼의 여성적 성에 기체 노릇을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직 우르닝의 영혼이 아직 싹의 상태에 있어 성이 없고 여성성을 지닐 수 있을 뿐이었던 그때에만, 그 단초들이 영혼의 잠든 성적 영역에 기체 노릇을 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고환이 그랬는데, 고환은 그때 원초적 고환(위 § 4, c)으로서 역시 아직 성이 없었고, 그때는 아직 여성성을 지닐 수 있었다. 그러나 영혼이 그 싹의 상태에서 벗어나 실제로 여성의 성을 갖춘 다음에는, 자신과 조화를 이루는 몸의 기체 없이 살아간다. 그 영혼의 성의 자리는 오히려 여전히 고환이다. 고환이 반대의 성, 곧 남성의 성을 갖춘 다음에도 그렇다(위 § 5, 3; § 8, a). 이에 따라 나는 다음과 같은 자연법칙에 이르렀다고 믿으며, 그것을 우라니즘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여겨도 좋다고 생각한다.
태아의 영혼이 여성의 성을 갖출 수 있는 능력은 여성적인, 또는 여성성을 지닐 수 있는 몸 형성의 시초들이 있는지, 곧 몸의 여성적 성을 향한 단초들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영혼이 실제로 여성의 성으로 발달하는 것은 그 시초들이 나중에 어떤 운명을 맞는지와는 무관하다.
그러므로 떠오르는 질문들에는 이렇게 답해야 한다.
우르닝의 영혼은 그의 몸에서 독립해 있는가? 아니다.
우르닝 영혼의 여성적 성은 우르닝의 몸에서 독립해 있는가? 발달을 마친 남성의 몸에서는 독립해 있고, 자웅동체적인 태아의 몸에는 의존한다. 우르닝의 몸도 태아 상태에서 갖추고 있던 몸의 성적 싹들의 이중성에 의존하며, 특히 태아의 원초적 고환의 이중성, 곧 원초적 고환이 여성의 성을 갖출 수 있는 능력에 의존한다.
우르닝의 영혼이 갖춘 여성적 성은 우르닝의 몸이 갖춘 남성적 성에서 독립해 있는가? 그렇다.
그러니까 랍비들은 절대적으로 남성적인 몸을 생각하고 그 안에 다 만들어진 여자의 영혼을 들어가 살게 했지만, 나는 여자의 영혼을 상대적으로만 남성적인 껍데기로 감싸며, 동시에 그 영혼이 이 껍데기에 의존하여 생겨날 뿐 아니라 그 여성적 성도 이 껍데기에 의존하여 갖추게 한다.
그러므로 anima muliebris virili corpore inclusa(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의 영혼)라는 명제는 나의 논의에 따라 두 가지 단서를 붙여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 단서들이 그 명제의 옳음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a. corpus virile(남성의 몸)는 상대적으로만 남성적인 몸이다.
b. 영혼의 여성성은 corpus virile가 함께 있음으로 해서 크든 작든 상당히 변형된 여성성이다(아래 § 122).
자연은 이토록 얽히고설킨 길을 걷는다. –
§ 143. 일부 우르닝의 몸의 여성성에 대해 § 92에서 전한 내용에 따라 § 89에 덧붙여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여성의 몸의 본성이 형태를 빚으며 남성의 몸의 영역으로 넘어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도 앞서 말한 몸의 이중 본성, 곧 돌고래, 고래, 말미잘에 대한 진짜 짝이 있으니, 바로 인간 우르닝의 영역에서다. (내가 인간에게서라고 말하는 것은, 동물에게서는 이런 우르닝적 이중 본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144. 유대인에게서도, 그것도 이미 대략 솔로몬 시대에, 여성적 외양의 한 특징, 곧 여자 옷을 입으려는 저 집착을 증언하는 기록을 만난다. 모세의 책들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남자는 여자의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주께서 가증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하느님께는 이미 수없이 많은 것이 덮어씌워졌으니, 그분은 오래전에 그런 데 익숙해지셨을 것이다.) 그런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런 금지를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에게는 그런 경향이 없다. (공정한 신학 비평은 이제 모세의 책들에 담긴 특별 율법이 솔로몬 시대 무렵에야 생겨났고, 저자들이 거기에 더 큰 권위를 입히려고 날짜를 앞당겼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 145. 위 § 15에서 언급한 유베날리스의 구절은 이렇다(9, 50~53). 여성형 우르닝 비로의 드라우쿠스(draucus)인 나이볼루스가 말한다. 이 비로에게서 우리는 수동적 욕구(아래 § 83)와 국소적 신체 발달의 자극(위 § 16)도 명시적으로 발견한다. 그는 또 mollis(유약한 자)라고도 불린다. 나이볼루스는 비로가 이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비꼬아 말한다.
En, cui tu viridem umbellam, cui succina mittas
Grandia, natalis quoties redit aut madidum ver
Incipit, ut, positus strata longaque cathedra,
Munera femineis tractet secreta kalendis.
“(당신이 그의 드라우쿠스라면) 그의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또는 봄이 시작될 때마다, 당신은 그에게 아주 큰 호박 구슬 목걸이(곧 여자의 장신구)와 초록색 양산을 보내도 좋다. 그러면 그는 푹신하게 덮개를 깐 (여자용) 소파에 몸을 뻗고 누워, 여자들의 칼렌다이 날(아내들의 축일)에 몰래 선물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 (Cathedra만으로는 여자용 안락의자이고, cathedra longa는 여자용 소파다. Munera secreta는 그가 몰래 다루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선물이니, 여자에게 주는 선물이고 드라우쿠스가 보낸 선물이기 때문이다. Kalendae femineae는 3월 1일, 혼인의 수호신 유노의 축일이다. 이날 남편은 누구나 아내에게 선물을 보냈다.)
§ 146. 『포르마트릭스』 § 5. 6.에서, 그리고 이미 『빈덱스』 § 50에서 나는 우르닝의 사랑을 의학적 치료제라는 관점에서 다루었다. 이 점에서 나는 팔라비치니, 그리고 그가 끌어대는 한 이탈리아 의사와 의견이 같다. 팔라비치니는 이렇게 말한다(95. 96쪽).
Le plaisir que nous cause la présence de l’objet aimé, la vue et le contact du beau, délecte et calme tellement nos esprits, que sans fatigue, sans pamoison nous goûtons le soulagement et le eontentement désirés. Des rapports modérés avec des garçons nous apportent la joie et la santé; ce qui a fait écrire á l'un de nos plus fameux médecins cette notable sentence: »Usus et amplexus pueri bene temperatus salutaris medicina.« La privation est une cause d’infirmités, de souffrances, de désordres nombreux. (사랑하는 대상이 곁에 있다는 것, 아름다운 것을 보고 만지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우리의 정신을 어찌나 기쁘게 하고 가라앉히는지, 우리는 지치지도 까무러치지도 않고 바라던 위안과 만족을 맛본다. 소년들과의 절도 있는 교제는 우리에게 기쁨과 건강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이름난 의사 가운데 한 사람은 이런 주목할 만한 문장을 썼다. “Usus et amplexus pueri bene temperatus salutaris medicina.”(소년과의 잘 절제된 교제와 포옹은 몸에 이로운 약이다.) 그것을 빼앗기면 허약, 고통, 수많은 장애가 생긴다.)
질겁할 만큼 경박한 대목들 옆에 학문적으로 중요한 소식을 그토록 많이 담고 있는 기이한 책이다!
§ 147. 『포르마트릭스』 § 120에서 나는 적당히 어두운 곳에서 남성의 αζδοιον(음부)에 나타난 기이한 발광 현상을 언급했다. 1866년 뤼베크에서 완전히 같은 관찰을 전해 왔다. 하등 동물, 곧 딱정벌레, 연체동물 따위 가운데 일부에게서 짝짓기 철에 나타나는 (역시 국소적인) 빛나는 발광 현상도 어쩌면 같은 근본 원인에 바탕을 두고 있을지 모른다. § 148. 남자와 남자의 사랑의 거울상인 여성 우르닝, 곧 여자와 여자의 사랑에 대해 여기서 몇 가지 예를 든다. 여성 우르닝은 몸과 영혼의 자웅동체성의 또 다른 형태다. 우르닝긴은 anima virilis mulieri corpore inclusa(여성의 몸에 갇힌 남성의 영혼)다. 여기에도 남성형과 여성형, 곧 남성형 우르닝긴과 여성형 우르닝긴이 있는데, 다만 위치가 거꾸로다. 남성형 우르닝과 여성형 우르닝의 관계는 여성형 우르닝긴과 남성형 우르닝긴의 관계와 같다. 남성형 우르닝과 남자의 관계는 여성형 우르닝긴과 여자의 관계와 같다. 여성형 우르닝과 남자의 관계는 남성형 우르닝긴과 여자의 관계와 같다.
고전 작가들에게서 나는 지금까지 그런 남성형 우르닝긴을 셋 찾아냈다. 마르티알리스와 루키아노스에게서, 바사, 필라이니스, 메길라다. 세 사람 모두에 대해 그들이 여자와의 포옹에서 성적 만족을 구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에게서 우리는 그 밖에도 남성성의 다른 특징들을 만난다. 마르티알리스는(1, 90) 바사를 fututor(올라타는 자)라고 부르며, 그녀의 정념에 대해 그것이 남성의 성을 가장한다고 말한다.
......Mentiturque virum prodigiosa Venus.
(괴이한 베누스가 사내를 가장한다.)
그녀에게는 mas(사내)도, moechus(간부)도, vir(남편)도 다가가지 못했다고 한다.
필라이니스가 처녀들에게 품은 정념을 그는(7, 67) maritus(남편)의 정념보다 더 사납다고 말한다. 그녀의 성적 쾌락을 그는 철저히 남성적인 것으로 그린다. Φοιωιχισμός(입으로 하는 음행)를 그녀는 남자에게는 하지 않는다. putat hoc parum virile(그것은 별로 남자답지 않다고 여긴다). 그러나 처녀에게는 한다. hoc putat virile(그것은 남자답다고 여긴다). (근본적 오류다! 마치 그녀가 아주 남자다워 보이려고 사랑을 남자들에게서 돌려 처녀들에게 향했다는 듯이! 그녀의 영혼이 본성상 남성적이기 때문에 여자만이 그녀에게 끌림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며, 바로 거기서 다른 남성성 증상들도 함께 설명된다.) 그녀는 젊은 남자처럼 검술 학교와 레슬링 학교에서 격투 훈련을 한다.
... gravesque draucis
Halteras facili rotat lacerto;
Et, putri lutulenta de palaestra,
Uncti verbere vapulat magistri.
힘센 사내들에게도 꽤 무거운 납 아령을 그녀는 가벼운 팔로 휘두른다. 그리고 기름이 흥건한 레슬링 학교에서 검술 교관이 이따금 낭창거리는 회초리를 들고 기름 바른 생도들 사이를 휘젓고 다닐 때면 그녀도 봐주지 않는다. – 그런데 아주 특별한 것은, 마르티알리스가 필라이니스에 관한 경구시를 아예 그것으로 시작하는데, 그녀에게 소년을 향한 정념까지, 그것도 능동적 성적 쾌락을 동반한 정념을 돌린다는 점이다. 나는 읽고, 놀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른 여러 의심을, 그것도 바로 마르티알리스의 기록에 대해 거두어들인 적이 있다. 이것도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일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사례는 여성 자웅동체 영역에서 결합형 우라노디오니즘을 보여 주는 매우 주목할 만한 예가 된다. 여자의 몸 안에, 여자를 사랑하고 그와 나란히 소년을 (아마 소녀 같은 소년을) 사랑하는 확고히 남성적인 영혼이 있으며, 그것도 소년들에 대해서도 여자의 수동적 욕구가 아니라 남자나 남성형 우르닝의 능동적 욕구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기이한가! 여기서도 우리는 전혀 뜻밖에 남성 자웅동체성의 영역에서 이미 보았던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과 마주친다. 곧 우라노디오니즘에는 남성형 우르닝의 본성과 닮은 점, 맞닿는 점이 있으며, 우라노디오니즘은 호라티우스와 티불루스에게서처럼 여기 필라이니스에게서도 바로 확고한 남성형 우르닝의 본성과 결합해 있다는 것이다. – (그런데 우르닝 족속의 영역에서 그토록 귀중한 관찰을 남겨 준 마르티알리스가 여성형 우르닝(위 주 22)과 우르닝긴을 오로지 조롱거리로만 삼는 것은 소년처럼 철없는 짓이다. 루키아노스는 전혀 다르다. – 그리고 바사와 필라이니스는 틀림없이 가명을 쓴 실제 인물이다.)
세 전거 가운데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은 메길라에 관한 루키아노스의 구절이다(『유녀들의 대화』 5). 그 구절은 이야기하는 이의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주는데,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쓴 우리의 학식 있는 자연 연구자들과 의사들이 그를 부러워해도 마땅할 정도다. 이 구절은 나의 이론과 거의 글자 그대로 일치하여 나의 이론을 확고히 뒷받침한다. [메길라는 분명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당시 우르닝긴들을 자연 그대로 충실하게 그린 초상이다.] 이 구절은 첫머리에서 바로 일반적인 언급을 한다. ... τοιαςταας γυναίχας, ύπύ άνδρων μέν ούχ έδελούσας αύτό πάσχειν, γυναιξι δέ αύτάς πλησιαζούσας, ωσπερ άνδρας “그런 여자들은 남자가 끌어안는 것은 견디지 못하면서, 스스로는 남자처럼 여자를 즐긴다.” 메길라에 대해서는 특히 이렇게 말한다. ή γυνή δεινώς άνδριχή έστιν, “그 여자는 무섭도록 남성적이다.” 그녀는 확고한 남성형 우르닝긴이다. 그녀는 키타라 타는 여자 레아이나를 사랑한다(έράν). 메길라와 또 다른 우르닝긴 데모나사는 어느 날 저녁 아무것도 모르는 레아이나를 키타라를 타 달라고 불러들였다. 선물에 길들여진 레아이나는 noctem praebet(밤을 내준다). 그 밤에 대해 레아이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들은 나에게 입 맞추고 나를 끌어안고 남자들이 하듯 내 젖가슴을 주물렀는데, 데모나사는 깨물기까지 했어. 갑자기 메길라가 머리에서 머리 모양 전체를 벗겨 냈어. 가발이었던 거야. 그러자 그녀는 운동선수들 가운데 아주 사내다운 이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모습으로 나타났어. 그녀가 나에게 말했어. ‘나만큼 아름다운 젊은 남자를 본 적 있니?’ 내가 대답했지. ‘하지만 여기에는 젊은 남자가 안 보이는걸, 메길라.’ 그녀가 말했어. ‘나를 여자로 만들지 마. 내 이름은 메길로스야. 여기 데모나사와 나는 예전에 결혼했고, 그녀는 내 아내야. Τό πάν άνήρ είμι. 나는 온전히 남자야. Έγεννήδην μέν ομοια ταίς άλλαις ύμίν ή γνώγη δέ χαι ή έπιδυμία χαι τάλλα πάντα άνδρός έστι μοι. 나는 너희 다른 여자들과 똑같이 태어나기는 했지. 하지만 영혼과 욕망과 그 밖의 모든 것은 내 안에서 남자의 것이야.’ 그러자 나는 그녀를 남자처럼 끌어안았어. .... 그러는 동안 그녀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고, 한없이 황홀해하는 것 같았어.” – 이것과 그 밖의 비슷한 매우 적확한 견해들은(이를테면 저 랍비들의 견해) 남성의 영혼에 남성적 성격이라는 덧붙임을 분명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내 입장과 꼭 같지는 않다. 반면에 나에게는 여자(또는 남자)에 대한 단순한 성적 사랑만으로도 다른 아무것 없이 영혼의 성에 대한 온전한 증거가 된다.
『인클루사』(§ 80, 주)에서 언급한 카셀의 우르닝긴에게서도 남성적 외양이 드러났다. 몸가짐과 태도에 남성적으로 고상한 데가 있었다. 직접 본 나의 제보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장교 같았다.” 그러니까 어디서나 한 여성형 우르닝이 한 말(아래 § 92)의 정확한 거울상이다. “마치 우리가 모두 여학교에서 자란 것 같다.”
1866년 나는 예전에 낸 책자들을 계기로 헤센다름슈타트의 한 우르닝긴에 관해 편지로 의견을 요청받았다. 그때 남성성의 특별한 표지는 전해 듣지 못했지만, 남자의 포옹에 대한 확고한 혐오는 전해 들었다.
1864년 하노버의 A.에서 나는 당시 39세쯤 된 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우르닝긴이라고 들었다. 그녀에게서도 나는 특별한 남성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일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처녀 시절 권유에 못 이겨 약혼했으나 혼례 날을 거듭 미루었다.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자 그녀는 갑자기 정신이 이상해졌다. 여러 해 동안 그 상태로 있었으나 꽤 오래전부터는 완전히 다시 나았다. 혐오가 이보다 더 날카롭게 드러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모욕당한 자연의 복수의 새로운 형태다.
V. 『멤논』 제1부에서 이미 말한 것을 되풀이한다. 아래에서 주제를 다루는 데는 곤란한 면이 있다. 군데군데 순전히 성적인 사항들을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고 넘어가서도 안 되었다. 학문이 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학문은 에두르는 표현과 서술 방식의 품위는 허락했다. 그러나 자연과학적으로 결정적 의미를 지닌 행동 방식이 도덕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경박하고 비난받을 만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 내가 그런 행동 방식도 군데군데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앞에서는 이를테면 네로, 헬리오가발루스, 블랑크의 행동, 아래 제XX절에서는 살아 있는 몇몇 우르닝의 행동), 나를 이끈 것은 물론 오로지 그 행동들의 자연과학적 의미뿐이었고, 그것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도덕 비판에서 나는 그것을 배척하는 독자와 같은 입장에 선다. 나의 원칙은 『아라 스페이』 § 152에서 밝힌 대로다. 신분의 차이와 예법의 격식은 경멸하되 도덕과 수치심은 높이 받든다. 『포르마트릭스』 주 3에서도 같은 취지의 설명을 했다. 자연과학에는 도덕적으로 깨끗한 행동에서도, 비난받을 행동에서도 얻을 것이 있다. 꿀벌은 벨라돈나의 독 있는 꽃에서도 꿀과 밀랍을 거두지 않는가? 내가 본래의 성적인 일들을, 또는 성적 사랑의 표현 가운데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것들만이라도 서술에서 아주 빼 버리려 한다면, 그것은 학문에 적지 않은 손해가 될 것이다. 우라니즘은 어쨌든 특별히 성과학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것을 다루는 일 자체를 그만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Difficilior haec explanatio est simul et pudorem et artis praecepta servantibus. Nec tamen ea res a scribendo deterrere me debuit”(수치심과 의술의 규칙을 함께 지키려는 이에게 이 설명은 더 어렵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글쓰기를 단념해서는 안 되었다), 하고 나는 코르넬리우스 켈수스와 함께 말한다(『의학』 제6권, 18, 1). 그래서 나는 꾸밈없는 진실을, 그 전부를 말했다.
VI. 무엇으로 우르닝 족속을 공공의 도덕으로 이끌 것인가?
제XX절을 보고 우르닝 족속이 대체로 관능과 방종이라는 낮은 영역에서 움직인다고 결론 내리는 일은 아무도 없기를 바란다. 우르닝의 마음은 본래 남자의 마음과 똑같이 예의 감각과 도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남자와 똑같이 힘차게 자기 정념을 수치심, 도덕, 풍속의 계명 아래 굽힐 줄 안다. 물론 지금의 박해와 경멸의 체제는 우르닝의 사랑을 공공의 도덕으로 이끄는 일을 철저히 소홀히 했다. 게다가 이 체제의 압박은 우르닝과 명예로운 유대를 맺는 일을 거의 불가능할 만큼 어렵게 만들었다. 반대로 그것은 한편으로는 거짓, 배신, 밀고, 갈취를, 다른 한편으로는 Venus vulgivaga(뭇사람의 베누스)와 가장 저열한 매춘을 부추겼다. 그런데도 – 기쁘게 말하거니와 – 그런데도 우르닝 족속의 도덕적 정점, 곧 존중과 신의에 바탕을 둔 사랑의 결합은 이상으로 남지 않고, 지금의 노예의 멍에 아래에서도 이미 여러 곳에서 현실이 되었다. 이를테면 『아라 스페이』 § 48에 실린 북독일 도시 B.(베를린이 아니다)의 소식을 참조하라. 독일, 스위스, 헝가리 등지의 다른 예를 여럿 덧붙일 수도 있다. 그렇다, 이런 결합은, 그것도 어쩌면 가장 뜨거운 결합은 흔히 완전히 깨끗한 약혼자 사이의 관계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자유를 쟁취한 우르닝 족속은 결코 더 깊이 가라앉지 않을 것이며, 반대로 자유와 함께 더 큰 도덕과 품위로 나아갈 뿐이라는 것을 믿어도 좋다. 다음을 생각해 보라.
공공의 도덕으로 이끄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공공의 존중을 정당하게 베풀고 또 깎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인에게 인간다운 처신으로 그 존중을 얻고 지키도록 하는 박차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교육 수단을 너희는 그 전제 조건을 잘라 버림으로써 우르닝에게는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 존중을 얻을 가능성을 너희는 미리 그에게서 빼앗았다. 그 대신 너희는 우르닝 족속 전체를 한 번에 영영 경멸받아 마땅한 것으로 선언했다. 너희는 몽둥이질로 교육할 수 있다고 믿느냐? 이 어설픈 수단이, 이런 표현을 용서하라, 쓰였다. 잘 알아 두라, 그것도 참되고 뿌리 뽑을 수 없는 본성, 동시에 자기가 정당하다는 의식을 주는 본성을 상대로. 그러니 너희가 의도한 것에서 너희가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그 반대였다. 이 수단을 씀으로써 너희는 우르닝의 도덕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모든 가능성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너희가 한 번에 영영 우르닝에게 찍은 낙인, 곧 모욕당한 천민, 그를 무엇이 북돋아 아직도 동료 인간들의 존중을 구하게 하겠느냐? 무엇 때문에 그가 겉의 예법으로 자기 사랑을 억제하고, 무엇 때문에 그것을 도덕적 세계 질서에 걸맞게 다스려야 하겠느냐? 아무리 억제하고 다스려도, 부당하게 빼앗긴 명예를 너희가 결코 돌려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너희는 두 가지 잣대로 재면서, 정당한 본성을 뿌리 뽑고 완전히 억누르라고 요구하지 않느냐! 잘못을 저질러 잃은 명예 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자들이 있듯이, 무도하게 빼앗긴 명예 때문에 가장 저열한 Venus vulgivaga에 빠져 버린 우르닝들이 있다. 아니, 이것은 해악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오, 이 경멸이여! 그것이 정신의 모든 비상의 날개를 어떻게 꺾는가, 그 아래에서 영혼의 모든 싹틈과 꽃핌이 사막 열풍의 입김 아래처럼 어떻게 말라 죽는가! 무엇인가가 인간 가슴의 고귀한 핵심을 증언한다면, 참으로 그것은 이 숨 막히는 압박 아래에서 실제 일어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우르닝이 기력을 잃고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도덕적으로 완전히 몰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르닝에게 그의 인간 존엄을 돌려주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토록 효과적인 도덕 증진 수단인 저 이로운 외적 박차를 너희는 그에게도 준 셈이 될 것이다. 그는 이 교육 수단에 결코 귀를 닫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이 수단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순간, 너희는 우르닝 족속에게 이롭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 지금까지 내버려 왔던 그 가능성을 되찾을 것이다. 우르닝을 북돋아 공공의 존중을 진심으로 구하게 하는 일이 너희 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나아가 너희가 우르닝의 사랑의 숭고한 면을 거리낌 없이 인정한다면, 우르닝이 사랑하는 이에게 바치는 신의, 헌신, 희생정신이 너희에게서 편견 없는 평가를 받는다면, 그 까닭으로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의 결합이, 그것도 이런 바탕 위에 세워진 결합이 생길 것이다.
이처럼 지금 우르닝 족속에게서 부도덕하거나 경멸할 만한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 위에 지운 폭압적 압박 탓이다. 이미 콘스탄티우스 황제 시대에 우르닝 족속의 적수였던 아우렐리우스 빅토르가 이것을 똑똑히 보았다. 당시 우르닝의 사랑은 남용된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잔혹한 족쇄에 묶여 있었다. 성령의 이름으로(『테오도시우스 법전』 「간통에 관한 율리우스법」 편 1. 3. 6. 참조) 그것은 불과 칼로 박해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미 『빈딕타』 주 14에서 인용했다.)
Verumtamen manet. Quippe, loci conditione mutata, pejoribus agitatur flagitiis. –
(그럼에도 그것은 남아 있다. 다만 처지가 바뀌자 더 나쁜 추행으로 들끓을 뿐이다.)
“자유로운 인간 앞에서 떨지 말라!” 되찾은 인간 존엄은 우르닝들을 도덕으로 북돋을 것이다. 지금 우르닝 족속 뒤에는, 사실이 그렇거니와, 비열함과 vulgivaga(뭇사람의 베누스)가 무성하다. 그러나 vulgivaga와 모든 비열함이 번지는 것에는, 도덕으로 북돋는 자유가 가장 날카로운 압박이 언젠가 할 수 있을 것보다 더 성공적으로 고삐와 재갈을 물릴 것이다. 압박이 싹트게 한 flagitium(추행)에서 자유는 양분을 빼앗을 것이다. 옛날 자유가 그토록 훌륭하게 낳았던 인류에 걸맞은 사랑의 결합과 사랑의 행위를 자유는 오늘의 세대에게도 낳아 줄 것이다. 에파미논다스와 카피소도로스, 카리톤과 멜라니포스,[60]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우스 같은 결합을, 디오가 이야기하듯 목숨을 걸고 적의 추격자들이 쏘는 화살에서 사랑하는 이를 구해 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의 저 로마 백인대장의 행위나, 전투에서 서로를 위해 싸우다 죽은 저 두 그리스인의 행위 같은 것을
(이미 『포르마트릭스』 § 59에서 언급했다).
“δέαμα έμδοξόν τε χαι ύπερήφαωον.”
(영광스럽고도 장엄한 광경.)
VII. 꾸며 낸 무인도에서 사제 없이 맺은 우르닝의 사랑의 결합을 나는(아래 § 111)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선언했다. 남자와 여자가 실제의 무인도에서 사제 없이 맺은 혼인은
(§ 111), 내가 알기로 가톨릭 교리로도 도덕적으로 정당할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그대로 유효하다. Qauties parochi proprii praesentia haberi plane non potest, .... contrahentes coram duobus saltem testibus consensum matrimonialem enuncient oportet.(자기 본당 사제의 입회를 도무지 얻을 수 없을 때마다 …… 혼인 당사자들은 적어도 증인 두 사람 앞에서 혼인 합의를 표명해야 한다.) (아이히너 『교회법』 551쪽).
VIII. 내가 『멤논』 제1부와 제2부를 (서론은 빼고) 보낸 빈의 궁정 고문관 의학 박사 로키탄스키는 (1868년 7월 8일 빈에서) 나에게 편지를 보내, 한편으로는 “내가 이 주제를 파악하고 탐구한 방식에 대해 근거 있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주제가 “중요하고 매우 흥미롭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썼다. 로키탄스키 같은 이름이 내가 이 주제를 탐구했다고 증언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하다.
IX. 여기에 《네무스 사크룸》을 위한 나의 서류철에서 몇 편을 더 붙인다.
(이 글들은 이미 특별한 운명을 겪었다. 프로이센의 “하노버 총독” 폰 포이크츠레츠 장군은 1867년 4월 나를 나의 정치적 법 견해 때문에 행정 처분으로 두 번째로 하노버의 거주지 부르크도르프에서 민덴 요새로 끌고 가게 했다. 동시에 프로이센 경찰이 내 집에 들이닥쳐, 정치적 내용의 문서 말고도 우라니즘에 관한 나의 서류를 모조리, 곧 원고, 메모, 편지, 시 따위를 가져갔는데, 그 가운데는 특히 《네무스 사크룸》을 위한 나의 서류철 전체와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우스에 관한 역사 연구의 풍부한 원고 성과도 들어 있었다. 1867년 7월 내가 민덴과 프로이센 지배 지역을 떠난 뒤, 1867년 8월 하노버의 프로이센 경찰국은 그 서류 가운데 일부를 이곳 뷔르츠부르크로 돌려보냈다. 그 가운데는 위의 시 「목마르다」와 「돌로레스」, 그리고 아래의 「잘 있거라」가 들어 있었지만, 「줄기에…」와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우스에 관한 원고는 들어 있지 않았다. 이 두 가지를 앞의 총독은 압류해 둔 다른 서류들(그 가운데는 1857년 내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한 시들까지 있었다)과 함께 베를린의 외무 장관에게 보냈다. 나머지를 마침내 돌려 달라고 거듭 손을 썼지만, 특히 1868년 4월 30일 이 장관에게 낸 청원서도 지금까지 아무 성과가 없었다. 「줄기에…」라는 시는 그 전에 우연히 사본 한 부를 스위스로 보내 두었는데, 그것이 그곳에서 이곳 나에게로 되돌아왔다. 나머지는 원천에서 새로 길어 올려야 했다.)
1. 안티노우스라는 이름은 우라니드 족속에게 불멸의 기억이다. – 스파르티아누스는 하드리아누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하드리아누스 전』 14)[61]. Antinoum suum, dum per Nilum navigat, perdidit. Quem muliebriter flevit.(나일강을 따라 배로 가던 중 그는 자기의 안티노우스를 잃었다. 그리고 그를 여자처럼 울며 애도했다.) 아우렐리우스 빅토르에 따르면, 그리고 디오의 아주 단정적인 주장에 따르면, 안티노우스의 죽음은 하드리아누스를 위한 자발적인 희생의 죽음이었다. 비잔티움 사람 수이다스[62]는 παδιϰἁ 항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드리아누스는 그가 죽은 뒤 곳곳에 입상을 세워 그를 기렸다. Καί τἑλος ἀστἑρα τινἁ (φασἰ) δοϰεῖν ἐν τῷ, ον Άντίνοον ἕλεγεν είναι ϰαἰ ἐλέγετο εἰς τον οὐρὀν ἀφορᾱν.” “마침내 하늘에 별 하나가 나타났는데, 그는 그것이 안티노우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별에 대해, 그가 하늘을 우러러본다고 말했다.” 수이다스의 오래된 이절판 판본에서 라틴어 번역자는 여기에 아름다운 말을 덧붙인다. ut stellam illam contemplaretur ejusque contemplatione animum oblectaret.(그 별을 바라보며 그 바라봄으로 마음을 달래려고.)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수학 집성』 제7권)에 따르면 안티노우스는 별 하나가 아니라 별자리이며, 별 여섯 개로 이루어져 있다. “οί περί τόν άετόν, έφ ων ό Αντίνοος,” “독수리자리 둘레의 (별들), 이것들로 안티노우스가 (이루어져 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더 자세히 가리킨 이 별자리(독수리자리 옆)는 우리에게도 아직 이 이름으로 불린다. (『아라 스페이』 부록 참조:)
…… 우라노스의 푸른 들판에
…… 그에게 위안으로 별자리 하나, “안티노우스”라 불리니……
보석과 신전이 무너지고, 슬퍼하는 사랑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탄식하며 세운 대리석 상들이 부서져도,
여전히 그의 빛나는 모습이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도록.
우리 족속에게 하나의 언어가 되어, 불멸의 이름을 알리며,
그리움을 달래고 또 일깨우며, 우르닝의 사랑의 증언이 되어,
땅이 사라지고 별들이 빛을 잃을 때까지.
안티노우스에 대한 기억이 고대로부터 대리석 예술 작품으로나 문헌 기록으로나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이 전해 왔지만, 그 가운데서 시는 거의 헛되이 찾게 된다. 프루덴티우스의 그리스도교 시(『심마쿠스 반박』 1, 274–277)에는, 이교도의 생각으로는 신격화된 안티노우스가
non cyathos Dis
porgere, sed, medio recubantem cum Jove fulcro,
Nectaris ambrosii sacrum potare Lyaeum;
(신들에게 술잔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피테르와 함께 침상 한가운데 기대어 누워, 암브로시아 같은 넥타르의 신성한 술을 마신다고)
그리고 그가 in templis vota exaudire(신전에서 기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아테나이오스의 소박한 말(15, 21)은 나를 크게 사로잡았다. 안티노우스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는 이집트의 꽃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는”(알렉산드리아) “안티노우스 화관이라 불리는 화관이 있다. 그것은 그곳에서 이른바 연꽃이라 부르는 것으로 만드는데, 이 꽃은 여름에 그곳의 고인 물에서 자란다. 이 꽃은 두 가지 빛깔로 피는데, 장미를 닮은 빛깔과 눈처럼 흰 빛깔이다. 장밋빛 연꽃으로 엮은 화관이 안티노우스 화관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렀을 때”(틀림없이 안티노우스가 죽은 뒤, 그 숙명적인 나일강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내가”(아테나이오스) “직접 알았던 그 고장 시인 판크라테스가 황제에게 장밋빛 연꽃을 보여 주며, 이 꽃은 안티노우스 연꽃이라 불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막 땅에서 돋아났다는 것이다. 하드리아누스는 몹시 기뻐했다. 판크라테스는 그 시에서”(그러니까 그는 황제에게 시 한 편을 낭송한 것이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Ουλμν έρπυλλον, λευχόν χρινον, ήό ύάχινδον
Πορφυρέην, γλαυχού δέ χελιδονίοιο πέτηλα
Και ρόδον είαρινοίσιν άνοιγόμενον ζεφύροισαν
Ουπω γάρ φύεν άνδος έπωνυπον Αντιόοιο.”
“…(대략: 땅은 싹 틔웠다) 곱슬곱슬한 백리향을, 흰 백합을, 자줏빛 히아킨토스꽃을, 청록빛 애기똥풀의 잎을, 그리고 봄의 서풍에 피어나는 장미를. 그러나 아직 땅은 낳지 않았었다, 안티노우스의 꽃이라 불리는 그 꽃을.”
2. 두 그리스인에 대한 위의 이야기도 — 아쉽게도 그 이름은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 나는 수이다스에게서 길어 왔는데, 수이다스는 그 나름으로 아일리아노스를 인용하고 있다(우리에게는 사라진 아일리아노스의 책이다).
(παιδιχιών 항목:) Τελευτών άπεσφάγη χαι αυτος, χαι έχειτο πλησιον παιδιχών, δέαμα ένδοξόν τε χαι ύπερήφανον. “마침내 그 자신도 죽임을 당했고, 그는 사랑하는 이 곁에 누워 있었다. 영광스럽고도 장엄한 광경이었다.”
3. 아테나이오스(13, 17)는 이렇게 말한다. “(라트모스산의 마법 골짜기에서) 잠든 엔디미온은 리킴니오스에 따르면 그를 품에 안고 있는 힙노스(잠의 신)에게 사랑받는다. 그래서 힙노스는 이 잠든 이의 눈을 감기지 않고, 속눈썹을 뜬 채로 사랑하는 이를 잠재운다. 바라보는 달콤함을 끊임없이 누리려는 것이다. 리킴니오스는 이렇게 말한다.
Yπος δέ, χαίριον όμμάτιυν
Αυγαις, έχσίμιζεν χόρον
Οσσοις άναπεπταμένοις.
“그러나 힙노스는 그 눈의 광채를 기뻐하며, 속눈썹을 뜬 채로 그 젊은이를 잠재웠다.”
잘 있거라!
그러니 잘 있거라! 이 땅 위에서는
어쩌면 너와 나 사이에
나를 기이하게 너에게로 이끈
하느님의 손가락이 끝내 밝혀지지 않으리라.
오 에버하르트!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구나.
어린 장미들에게 하소연하련다,
초록 봄 숲에서 불그레 피어나는 장미들에게.
아니다! 내 눈물을 억누르련다!
너의 이름을 쇠로 지져 지우련다!
그 이름은 가엾은 가슴속 너무 깊이 자라 들어왔구나.
그러나 언젠가 너는 나와 함께 서리라,
올바른 심판을 내리시는 그분 앞에.
나는 다시 만날 날을 바란다.
나는 너를 최후의 심판정으로 불러낸다.
하지만 어찌? 내가 너에게 분노를 돌려야 하는가?
나는 너에게 라트모스 골짜기에서
영원한 젊음의 넥타르 꽃을 바치고 싶은데.
너의 눈에서 용기와 힘과
지복을 빨아들이는 일은 그토록 달콤했다.
마지막으로 너에게 인사를 보낸다!
(B....하임, 1863년 3월 18일. 뒤렌 출신 에버하르트 Br.에게, 경기병.)
늙은 너도밤나무 줄기로.
Certum est in silvis, inter spelaea ferarum,
Malle pati moestique meos incidere amores
Arboribus. Crescent illae: crescetis, amores!
(숲속에서, 들짐승의 굴 사이에서 차라리 괴로움을 견디며, 내 사랑을 어린 나무들에 새기기로 마음먹었다. 나무들은 자라리라. 너희도 자라리라, 내 사랑이여!)
베르길리우스[63]
오라, 오 오라, 고요한 한밤중에,
내 안식의 달콤한 원수여,
달이 어린 가지 사이로 내다볼 때,
늙은 너도밤나무 줄기로.
우리 자리는 바로 그 곁이 제격이다.
나무껍질은 일곱 상처를 지니고,
아파하며 자랐다. 너의 이름을 지니고.
이름은 우리 사랑과 함께 자랐다!
거기서 손에 손 잡고 쉬자,
거기서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자.
못된 자들 없는 그곳에서 내 팔은
너의 어깨를 감싸도 되리라.
그리고 내 손은 너의 뺨을
살며시 다가가 쓰다듬어도 되리라.
거짓된 엿보는 자는 보지 못하리라,
이 복된 비밀을.
우리를 엿볼 것은 은빛 눈 하나뿐,
달, 우리의 벗!
제비꽃 눈빛의 금발 젊은이여,
짙푸른 그 눈으로
너는 내 안식을 앗아 갔다.
내 평화를 내게 돌려다오!
부르크도르프, 1865년 5월 27일 밤.
누마 누만티우스.
뷔르츠부르크, 1868년 7월 23일.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
보충
XIII. 우르닝의 특수한 본성은 우르닝의 가장 이른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추적할 수 있다.
자연과학적 논증에 덧붙여.
§ 73. 위의 자연과학적 서술 안에 우르닝의 사랑이 타고난 것이라는 내 이론의 증명은 이미 담겨 있다. (§ 45의 첫머리 말에 이것을 덧붙여 두어야겠다.) 나는 자연이 태아에게 얼마나 서로 다른 싹, 곧 발달 가능성을 갖추어 주었는지 보여 주었다. 여기서 끌어낼 결론, 곧 저 타고남이 가능하다는 결론은 이제 우르닝의 사랑이라는 실제 현상에서 확증된다. 바로 거기서 둘 사이, 곧 저 싹의 놓임과 우르닝의 사랑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내 이론이 옳다는 것이 드러난다. 내 이론이야말로 둘을 서로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우르닝이 아직 태아였을 때 그는 다른 모든 태아와 마찬가지로 본디 자기 안에 여성적 발달의 싹을 지니고 있었다. 일부는 몸의, 일부는 영혼의 여성적 발달의 싹이었고, 특히 여성적 사랑의 싹도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때 그 안에서 아직 잠들어 있던 사랑의 충동의 싹은 본디 나중에 여성적 사랑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 성인 우르닝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는가? 그의 몸은 저 여성적 발달이 아니라 남성적 발달을 이루었는데도, 우리는 실제로 그에게서 여성적 사랑을 발견한다. 그러므로, 하고 나는 결론짓는다, 그의 이 사랑은 바로 저 본래의 사랑의 싹이 펼쳐진 것일 수밖에 없다.
§ 74. 그러나 이런 결론 끌어내기 없이도, 우리는 우르닝의 사랑의 실제 현상과 우르닝의 태아 시절 싹의 상태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이른다. 순수한 관찰의 길로 말이다. 둘을 서로 잇는 보이는 실, 끊이지 않는 외적 연속성을 이 길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관찰해야 할 것은 A. 성적 성숙의 첫 전조들, B. 이 전조들이 나타나기에 앞선 시기다.
A. 성적 성숙의 첫 전조들.
§ 75. 우르닝의 끌림은 실제 성적 성숙 자체가 나타날 때에야 비로소 남성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첫 전조들이 나타날 때부터, 사랑의 충동의 흔적이 처음 드문드문 드러날 때부터, 성적 그리움이 처음 깨어날 때부터 남성을 향한다. 이것은 실제 성적 성숙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까지 거슬러 추적할 수 있다. [64]
여기서는 많은 예 대신 남부 독일과 북부 독일에서 하나씩 두 가지 예만 든다. 둘 다 아주 자세히 그린다. 왜 그러는지는 아래에서 드러날 것이다.
§ 76. 지금 살아 있는 한 빈의 우르닝, 뚜렷한 여성형 우르닝이 이렇게 쓴다.
“나는 열 살 소년이었다. 나는 거의 수도원 같은 엄한 가르침 속에서 자랐다. 나는 단 한 번도 바르지 못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게 누나의 약혼자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찾아왔다. 프랑스어 과제에 나는 이렇게 썼다. ‘……씨는 멋진 남자다. 그의 수염이 마음에 든다. 그의 눈은 황홀하게 아름답다.’ 착한 어머니는 그것을 보고 웃으셨다. 아, 어머니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도 못 하셨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의 기적을 느낀 것은 열네 살 때였다. 형은 경기병 사관 후보생이었다. 형의 휴가를 청하러 나는 아직 알지 못하던 형의 기병 중대장에게 찾아간 적이 있다. 그는 어둡고 잘생긴 남자였고, 몸매가 훌륭했으며, 서른 살쯤에 콧수염을 기르고 금발이었다. 그가 말할 때 나는 쇳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그는 다정하게 나더러 앉으라 하고 내 곁에 앉았다. 그가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건네자 나는 그가 더는 그렇게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나를 꿰뚫듯이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길을 견딜 수 없었다. 그가 내 손을 건드렸을 때 나는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내게 더 바싹 다가앉았을 때는 환희의 전율로 이가 그야말로 딱딱 부딪쳤다. 마침내 그는 내 입술에 입맞춤을 누르고는, 왜 그렇게 겁을 내느냐고 물었다. 그것으로 나는 끝장이었다. 나는 울면서 그의 가슴에 몸을 던졌다. 새로 입맞춤할 때마다 나는 뼛속까지 저릿한 전율을 느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를 내 우상으로 가슴에 품었다. 내 생각은 오직 그뿐이었다. 그의 곁에서 내게 사랑의 지복이 꽃피었다. 그것이 내 장밋빛 사랑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참된 상호 사랑에 바탕을 둔 두 우르닝 사이, 남성형 우르닝과 여성형 우르닝 사이의 사랑의 맺음을 보는 것이다.
§ 77. 여기에 이어서 나 자신에게서 사랑의 첫 흔적들이 어떻게 드러났는지에 대한 나의 증언을 싣는다. 그 세부는 아직도 충분히 또렷이 기억난다. 나는 하노버 사람이며, 남성형 우르닝과 여성형 우르닝 사이에서 거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첫 몽정이 내게 완전한 성적 성숙이 시작되었음을 알렸을 때 나는 열다섯 살 10개월 반이었다. 그에 앞서 우르닝의 방식으로든 다른 방식으로든 어떤 충족도 있었던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 시작은 전적으로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내 안에서는 한편으로 여린 그리움이, 다른 한편으로 막연하고 목표 없는 관능의 불길이 깨어났다. (그렇지만 이 시기 내내 둘은 서로 떨어져 있었고, 결코 한 젊은이를 향해 함께 일어난 적이 없다.)
이 목표 없는 관능의 불길은 외로운 시간에 자주 나를 괴롭혔다. 아무리 맞서 싸워도 소용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열네 살 3개월에서 열네 살 반쯤 되었고 데트몰트의 김나지움 학생이었을 때 다음 두 가지 모습으로 처음 떠올랐다.
a) 건축 소묘용 본보기 판화 한 장(노르망의 『기둥 양식』에 실린 것)이 벌거벗은 아름다움으로 서 있는 그리스 신 또는 영웅의 형상으로 그것을 일깨웠다. 이 그림은 백 번 밀어내도 백 번 다시 내 마음에 떠올랐다. (물론 내 안에 우라니즘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이 그림은 아무 죄가 없다. 그것은 이미 잠든 채 있던 우라니즘을 일깨웠을 뿐이다. 다른 어떤 계기라도 똑같이 그렇게 했을 것이다.)
b) 내가 작은 방에서 공부할 때, 또는 잠자리에 누워 잠들기 전에, 자주 느닷없이, 밀어낼 수 없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 병사 하나가 창문으로 기어올라 내 방으로 들어온다면!”
그러면서 내 상상은 스무 살에서 스물두 살쯤 된 어떤 멋진 병사의 모습을 그려 냈고, 그러면 내 안에서 불처럼 타올랐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전혀 목표점이 없었다. 그 생각은 조금도 어떤 특정한 향락을 향하지 않았다. 이 모든 흥분은 오히려 그런 남성의 모습이 가까이 있다는 단순한 생각, 곧 살아 있는 살과 피로 그가 실제로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내게 불러일으킨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불타는 아픔 속에서 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병사와 어떤 식으로든 접촉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병사와 말 한마디 나눠 본 적도 없었다. 건축 그림에서는 드러난 남성의 부분을 보는 것이 나를 몹시 자극했지만, 이 상상들에서는 벗은 몸에 대한 생각이 아주 먼 것이었다.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아무런 개입 없이, 아무런 외적 작용 없이 생겨난 상태였다. 게다가 나는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나 소년애에 대해 들어 본 적도 읽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그것은 뚜렷이 관능적이되 그 목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상태였다. 나는 분명히 빈에 사는 나의 더 행복한 벗과 같은 상태(나이도 같았다)에 있었다. 더 너그러운 운명은 그에게 경기병 중대장 안에서, 내게는 거절한 것을 베풀어 주었다. 내 상상은 그것을 내게 눈앞에 어른거리게 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내 그림이 살아나 살과 뼈를 갖추고 내게 다가왔다면, 나 또한 얼마나 환희의 전율에 떨었을 것인가!
(한두 해 뒤에야 나는 어느 때 한 병사와 접촉하게 되었다. 여행길에 나는 혼자 역마차를 타고 있었다. 마부가 한 병사를 얼마간 함께 태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젊은이와 마차 안에 단둘이 앉게 되었는데, 그의 바로 옆에, 그것도 꽤 비좁게 앉았다. 가까운 접촉은 내 안에 격렬한 관능의 불길을 일깨웠다. 이제 그 불길은 이미 어떤 특정한 목표점을 갖게 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허벅지를 덮은 바지 위에 내 손바닥을 얹고 싶다는 그리움에 지나지 않았다. 이 그리움마저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보였기에 나는 탄탈로스의 고통을 견뎠다.)
반면에 사랑의 첫 순수하고 여린 그리움은 내가 아직 열 살도 되지 않았을 때 내 안에서 깨어났다. (이것도 빈 사람과 꼭 같다.) 그 대상은 아우리히 김나지움에서 나보다 두세 살 많은 동급생 에두아르트 d’H....였다. 다만 그는 나보다 높은 학년에 다녔다. 그는 콰르타, 나는 퀸타였다.[65] 또 우리 부모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그래서 나는 그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를 끈 것은 그의 아름다움이었다. 그의 몸매는 튼튼하지는 않았지만 싱싱했고, 얼굴은 창백한 편이었으며 이목구비가 곱고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소녀 같은 데가 전혀 없었다. 입가에는 달콤한 마력을 내게 미치는 선이 있었다.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그리움이 나를 그에게로 끌었다. 관능적 감정은 흔적도 없었다. 내가 열 살이 되는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그도 초대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을 나흘 앞둔 1835년 8월 24일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초대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먼 채로 남았다. 단 한 번 그는 내 부탁으로 아우리히에서 가까운 우리 농장 베스터펠트까지 나와 함께 갔다. 반년 뒤 내가 동프리슬란트를 떠날 때 그는 내 기념첩 한 장을 써 주었다. 나는 이 장을 다른 장들보다 더 귀히 여겼다. 헤어진 뒤 나는 즐겨 그를 생각했다. 학교 편지 쓰기 연습을 나는 “사랑하는 에두아르트!”로 시작하기를 가장 좋아했다. 나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이름을 생각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몰랐다. 전에는 알지 못하던 감정이 나를 끌었다. – 이 끌림은 나중의 끌림들에게 정열의 격렬함에서는 크게 뒤졌지만, 애틋함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에두아르트의 얼굴은 지금도 조금 흐려졌을 뿐 잊히지 않고 내 마음 앞에 서 있다. 나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B. 성적 성숙의 첫 전조들이 나타나기에 앞선 시기.
§ 78. 열 살보다 훨씬 이른 때에 이미 우르닝에게는 여성적 외양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곧 아이가 도대체 어떤 성정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바로 그 무렵이다. (물론 여성형 우르닝과 중간 단계들에게만 그렇다. 뚜렷한 남성형 우르닝에게서는 몸의 남성적 성의 힘이 영혼의 영역으로 넘어 들어와 성정의 이 측면을 밀어내 버렸다. 위 § 11 참조.)
“소녀에게서 소년은 당당히 떨어져 나간다.”[66] 그렇다. 다만 우르닝 소년은 그렇지 않다. 그의 온순한 성정은 거친 소년들을 꺼리고 피한다. 그는 소녀들을 놀이 친구로 찾아가고, 그들에게 퇴짜를 맞으면 괴로워한다. (『인클루사』 § 15 참조.)
서너 살 아이였을 때 나는 여자아이 옷을 입었다. 부드럽고 보드라운 천에 연분홍 꽃무늬가 있는 예쁜 옷 한 벌을 나는 “내 숙녀 옷”이라고 불렀다. 우리 시골 영지에 숙녀 손님들이 올 때면 나는 그 옷을 입었던 것이다. 그 옷은 내게 특히 소중했다. 처음으로 “사내아이 옷”을 입어야 했을 때 나는 몹시 마음 아팠다. 나중에 사람들이 들려준 바로는, 그 첫 어린 시절에 나는 자주 하소연하며 항의하듯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싫어, 나는 여자아이가 될 거야.”
그때 나는 아직 너무 어려서 “메트헨”(여자아이)이라는 말조차 발음하지 못하고 대신 “메트센”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내아이들 곁에서 나는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다. 한번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나를 아우리히의 어느 광장에 데려갔는데, 거기서는 내 또래 동네 사내아이들이 노래하며 놀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그들과 함께 거기 혼자 두고 갔다. 그들은 나를 조금도 괴롭히지 않았는데도 나는 그들 곁에서 정말로 섬뜩했고, 아버지가 돌아와 나를 구해 주었을 때 적잖이 기뻤다. 그 인상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어린 시절에 대한 그 밖의 이야기: 『인클루사』 § 17.) 나중에 사람들은 나에게 남성다움의 겉모습을 길러 넣었다. (이 길러 넣기에 대해서는 『인클루사』 § 15, 『포르마트릭스』 § 39 참조.)
이로써 우르닝 본성의 증상들이 가장 이른 어린 시절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 79. 그런데 이 연속성과 함께, 타고남에 맞서 내세워 온 우라니즘의 기원에 관한 모든 가설이 무너진다.
처음에 사람들은 한 남자가 오늘 의식적으로 자연에 반항하기로 결심한다고 생각했다. 내일이면 그는 아마 자연으로 돌아오고, 나중에 다시 바꿀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우라니즘을 더는 그렇게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우라니즘이 지속적인 영혼의 감수성이라는 것, 결심에 따라 바뀌지 않으며 뿌리 뽑을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감수성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도 그것을 타고난 것으로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어이 획득된 무언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그것은 우르닝의 방식으로 일찍 맛본 관능적 향락에서 생겨났다고들 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관능적 향락보다 이미 앞서 있다.” 그러자 이제 그것은 “다정한 우정의 감정에서 생겨난다. 그런 우정은 어린 소녀들 사이에서도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그것이 어느새 사랑의 정열로 넘어가는 듯하다”는 것이다. 『포르마트릭스』 § 77에서 언급한 성직자가 그렇게 말한다. 이미 초케가 그의 글 『에로스. 사랑에 관한 대화』(1821)에서 아주 비슷하게 말했다.
이 가설은 공상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대로 우라니즘의 증상들이 가장 이른 어린 시절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으로, 또 앞서 말한 대로 실제 삶에서 우라니즘이 깨어나는 방식으로 반박된다. 바로 이 공상에 맞서려고 나는 위에서 저 깨어남을 그토록 자세히 그렸다.
실제 삶에서 우르닝에게 사랑은 성적 성숙의 첫 희미한 전조들과 함께 곧바로 우르닝의 방향으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감정이 바뀐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거기서 한 젊은이에 대한 사랑은 언제나, 앞서 어떤 우정도 없이, 갑자기 압도적으로 그의 가슴에 들어왔다. 그리고 거꾸로, 우르닝이 젊은이들과 본래적인 우정을 나눈 곳에서는 바로 사랑이 덧붙지 않았다.
게다가, 그런 바뀜으로 대체 무엇이 증명된다는 말인가? 고작 그 벗을 향한 바뀜일 뿐이다. 알렉시스에 대한 너의 우정이 사랑으로 바뀌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 뒤로 남성 전체가 너를 끌고, 여자에 대한 너의 본래 사랑의 감수성이 혐오에 자리를 내주게 된단 말인가?
이런 공상은 우정이 무엇이고 사랑이 무엇인지를 놓치는 사람만이 품을 수 있다. 우정이 사랑으로 넘어가는 것은 우정의 본성 때문에도, 사랑의 본성 때문에도 절대로 불가능하다.
사랑은 그것을 느끼게 하는 상대에게 일정한 몸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느냐에 달려 있고, 우정은 그것을 느끼게 하는 상대에게 일정한 성정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느냐에 달려 있다. 영혼은 사랑받을 수 없다. 오직 몸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영혼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가르침은 망상이다. 사랑의 무조건적 전제는 일정한 몸의 꽃핌이다. 아름다움과 여림의 방향이든, 풍만함과 힘의 방향이든 말이다. 네 안에 사랑을 낳는 것은, 네가 그것을 위해 태어난 성에 속하는 존재를 그저 바라보는 일이다. 그 존재가 너의 사랑의 감수성이나 사랑의 필요에 맞는 몸의 꽃핌을 갖추고 있기만 하면 그렇다.
우정도, 의지력도, 향락도, 그 밖의 어떤 것도 아니라 오직 이것만이 사랑을 낳는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그것도 자연법칙의 무조건적 필연성으로 사랑을 낳는다. 몸만이 아니라 영혼도 자연법칙의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지배 아래 있기 때문이다. [67]
앞에서 세운 자연법칙에 따르면 사랑이 일깨워지려면 그 개인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하고, 그 전제 조건으로 그 성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번 여자를 위해 태어난 사람은 한 젊은이에게 절대로 우정밖에 느낄 수 없다. 그리고 그 우정은 – 아무리 애틋하고, 그 젊은이가 안티노우스처럼 아름답다 해도 – 결코 사랑으로 넘어갈 수 없다.
사랑을 좌우하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우정은 완전히 독립해 있다. 사랑은 위의 자연법칙에 따른 결과로서, 몸의 꽃핌이 시들면 함께 시들거나 이른바 정열 없는 사랑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더는 사랑이 아니다. “정열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아야 한다”는 말은 시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우정은 가장 못생기고 가장 시든 사람에게도 느낀다. 우정은 가장 늙은 나이까지 이어진다. 그런데 또 다른 자연법칙에 따라, 사랑은 자연이 정해 준 일정한 순환을 다 돌고 나면, 그 대상이 아직 꽃핌을 잃지 않았더라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같은 사랑은 덧없다거나, 그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고 말한다. – 사랑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도 의지력은 무력하다.
불같은 사랑만이 참으로 사랑이다. 다른 사랑은 없다. 이 불은 우정에게는 낯설다. 우정은 그것을 모른다. 우리 내면에 꼭 맞는 몸의 꽃핌으로 빛나는 존재를 보고 그 곁에 있을 때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이 떨림, 이 두근거림, 이 형언할 수 없는 불안을.
§ 80. 그건 그렇고, 타고남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걸음씩 물러나는지 주목할 만하다. 처음에는 자연에 대한 산발적이고 의식적인 반항이었다. 다음에는 지속적인 영혼의 상태이되 일찍 맛본 우르닝의 향락의 결과였다. 마지막에는 청년기에 우정이 무의식적으로 사랑으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에서 나오는 결론은, 우르닝의 사랑을 관찰하려는 사람은 첫 청년기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더 멀리, 계속 더 멀리 뒤로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그 참된 기원에 이르러야 한다. 먼저 열 살 무렵까지, 성적 성숙의 첫 전조들까지 내려가고, 그다음에는 바로 어린 시절에 벌써 그토록 뚜렷이 드러나는 여성적 외양의 가장 이른 국면들까지, 그것도 가장 여린 나이까지 거슬러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이른 향락”이니 “우정의 바뀜”이니 하는 모든 가설을 참으로 비웃는 시기다. 그리하여 검토하는 사람은 이 순수한 관찰의 길로도 마침내 어쩔 수 없이 태어나기에 앞선 삶의 시기, 개개 인간이 지어지고 싹이 놓이는 시기에 이르게 된다. 곧 – 나의 이론에.
XIV. 우르닝과 우르닝화된 남성 사이, 그리고 거꾸로 남성과 남성화된 우르닝 사이의 구별 표지.
『인클루사』 § 70. 『아라 스페이』 § 01. 위 § 40.
§ 81. 우라니즘의 기원은 타고남이고, 우르닝화의 기원은 여자의 부족, 습관 또는 자기 강제다.
기원의 이 차이에 맞게 이제 나타나는 모습에도 차이가 있다.
1) 우르닝화는 결코 지속적인 영혼의 상태가 아니다. 우르닝화된 남성, 곧 우라니아스터는 남성이며 남성으로 남는다. 그의 남성 본성은 잠시 뒤로 밀려나 있을 뿐이다. 여자에 대한 그의 남성적 사랑의 감수성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여자의 몸과 성적으로 접촉하는 것에 대해 결코 우르닝의 혐오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기회가 생길 때마다 그 안에서 여자에 대한 사랑이 다시 터져 나온다. 예컨대 캉레르가 든 사례에서 그랬다. 프랑스 외인부대의 우르닝화된 병사들이 사막의 외로운 진영에서 알제 시로 돌아와 여자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그랬다.
2) 타고난 우르닝에게서 너는 한 젊은이를 향한 성적 사랑의 참된 정열을 본다. 몽상적이고 애틋한 그리움이든, 관능의 불같은 열기든 말이다. 우르닝을 몰아가는 것은 언제나 참된 성애다. 젊은이는 그에게 참으로 사랑받는다. 우르닝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있다.
우라니아스터에게서는 한 젊은이를 향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볼 수 없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이가 없다. 그를 그렇게 부른다 해도 말이다. 그는 그를 사랑할 수가 없다. 그를 한 젊은이에게로 몰아가는 것은 그 젊은이를 향한 사랑의 그리움이 아니며, 그 젊은이의 모습이 그에게 미치는 압도적 마력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그를 끌 수 있는 것은 오직 여성적 존재뿐이고, 남성적 존재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오히려 적어도 충족의 임시방편이라도 바라는 그 자신의 성적 욕구만이 그를 그 젊은이에게로 몰아간다. 그를 몰아가는 것은 “너”가 아니며, 도대체 “나” 바깥의 어떤 존재도 아니고, 바로 “나”다. 이것이야말로 우르닝과, 또한 사랑하는 모든 이와 정반대되는 점이다. 그 바깥의 존재, 곧 아름다운 젊은이야말로 우르닝을 몰아가고 자극하는 것이다.
3) 그러므로 우라니아스터는 자기가 향락하는 상대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향락한다. 그의 향락은 충족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의 향락에는 상대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기적 발산을 빨아들이는 일이 빠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 발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기분 좋은 접촉의 향락, 기분 좋게 하는 살아 있는 몸의 느낌이 빠져 있다.
4) 저 보이지 않는 힘을 빨아들이는 일, 기분 좋게 하는 살아 있는 몸을 느끼는 일은 우르닝에게서 상대편 몸의 남성 부분을 접촉할 때 정점에 이른다. 바로 이 부분들이 대체로 그에게 가장 큰 감각적 자극을 미친다. (『포르마트릭스』 §§ 9.–16.) 반면 우라니아스터에게는 이 부분들이 전혀 아무렇지 않다. 그것들은 그를 전혀 무덤덤하게 내버려 둔다. (여기서는 특히 『포르마트릭스』 § 16 참조.)
우라니아스터에 대한 이 묘사에서 독자는 아마 자기가 우르닝에게서 찾던 바로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사람들은 우르닝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르닝은 가장 본질적인 표지에서 바로 이 묘사된 모습과 다르다.
타고난 남성과 남성화된 우르닝 사이의 구별 표지는 네 가지 점 모두에서 거꾸로 꼭 같다.
§ 82. 앞서 말한 것에서 다음이 나온다.
어떤 개인이 우르닝인가 하는 물음에서는 그가 우르닝의 방식으로 향락하는지 아닌지는 본질적이지 않다. 반면 다음 네 가지가 결정적이다.
그는 남성적 존재에게, 그리고 오직 그런 존재에게만 정열적인 사랑의 그리움을 느끼는가? 몽상적이고 여린 그리움이든, 불같고 관능적인 그리움이든.
그는 여자와의 성적 접촉에 대해 혐오를 느끼는가? [68]
그는 꽃핀 남성의 몸과 접촉할 때 기분 좋은 자기적 발산을 느끼는가?
끌림의 자극이 그 몸의 남성 부분에서 정점에 이르는가?
이 가운데 몇 가지를, 아니 하나라도 발견하는 곳에서 너는 참된 성애를, 그러므로 또한 본성을, 꾸밈없는 타고난 본성을 발견한다. 어떤 자기 극복도, 설령 황금과 에메랄드를 위해서라 할지라도, 어떤 습관도, 어떤 여자의 부족도 이 네 가지 가운데 단 하나라도 마술처럼 불러낼 수는 결코 없다.
(위에서 몇몇 사람을 우르닝으로 분류할 때도 이 점들이 내게 결정적이었다. 예컨대 마르티알리스가 그렇다. 그에게서 나는 우르닝이 아닌 방식의 향락도 보았지만, 참된 사랑의 그리움은 오직 젊은이들을 향한 것만 보았기 때문이다.)
XV. 남성형 우르닝과 여성형 우르닝에게서 성적 욕망의 방식의 대립.
위 § 23.
§ 83. 성적 욕망의 방식은 남성형 우르닝에게서는 남성적이고, 여성형 우르닝에게서는 여성적이다. (위 § 14. a. 및 b. 참조.)
성적 욕망의 남성적 방식은 사랑하는 몸을 꿰뚫고자 하는 남성 본성의 욕망이다. 이 능동적 욕망을 우리는 남성형 우르닝에게서나 남성에게서나 완전히 같은 정도로 만난다.
성적 욕망의 여성적 방식은 사랑하는 몸에게 꿰뚫리고자 하는 여성 본성의 욕망이다. 이 수동적 욕망을 우리는 여성형 우르닝에게서 여자에게서와 꼭 같이 만난다. [69] [70] [71] [72] [73]
§ 84. 사랑하는 몸과 서로 꿰뚫고자 하는 이 욕망은 남성에게서나 여성에게서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도덕률 앞에서 정당하다는 것이 다툼 없이 인정된다. 이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여기서도 수치에 어긋나기에 틀림없이 배척받아야 할 것이리라. 그런데 그와 꼭 같이 이 욕망은 남성형 우르닝에게서나 여성형 우르닝에게서나 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도 도덕률 앞에서 정당하다.
이 욕망은 인간의 모든 성의 부류에 공통된 것, 순전히 인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 성의 부류, 곧 우르닝에게서만 이를 두고 죄니 악덕이니 말하는 것은 그저 자의다. 하기야 호감과 반감은 아주 어느새 두 가지 잣대로 재게 만든다.
(앞서 말한 것으로 한편으로는 『포르마트릭스』 §§ 8.–12., §§ 107.–112.의 우르닝의 성적 욕망에 관한 자연과학적 서술이, [74] 다른 한편으로는 위 §§ 50.–57.의 그 방식의 정당화에 관한 논증이 보충될 것이다. 우르닝 사이에서 지배적인 실제의 자족(위 주 38)과, 앞서 말한, 나와 다른 이들에게 있는 개인적 거부감은 물론 원칙의 문제를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은, 내 생각에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벗에게나 적에게나 똑같이 가차 없이 분명하다고. 정당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본성, 자연 존재들의 있음이다. 그리고 자연 또한 모두에게 같은 권리를 요구한다.
XVI. 한 성의 힘이 다른 성의 힘의 영역으로 넘어 들어간다는 이론에 덧붙여. 우라니즘의 두 가지 자연의 기적. 우르닝과 남성 사이에 일정한 신체적 구별 표지가 있는가?
위 §§ 10–24.
§ 85. 내게 의심할 여지 없어 보이는 것은, 우르닝의 한 부류 전체에서 몸의 남성적 성의 힘이 영혼의 순수한 영역으로 넘어 들어가 꼴을 짓거나 덧씌운다는 점이다. 남성형 우르닝의 영혼은 그 여성적 성과 어긋나게 세 가지 점에서 뚜렷이 남성적인 각인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성정, 사랑의 그리움의 방식(소녀 같은 겉모습의 젊은이들을 향한다), 그리고 성적 욕망의 방식(위 § 83)이 그것이다. 반면 여성형 우르닝의 영혼은 그 여성적 성에 맞게 바로 이 세 가지 점에서 꼭 그만큼 뚜렷이 여성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덜 확실해 보이는 것은 거꾸로 된 현상도 같은 정도로 일어나는가, 곧 영혼의 여성적 성의 힘도 몸의 순수한 영역으로 그렇게 효과적으로 넘어 들어가는가 하는 점이다. 움직일 때 얼굴 표정의 여성적 표현, 여성적 몸짓, 몸놀림과 버릇은 이에 대해 내게 결정적이지 않다. 그것들이 신체적 원인에 바탕을 두는지 영혼의 원인에 바탕을 두는지, 근육과 관절의 여성적 구조에 바탕을 두는지 아니면 영혼의 표현에 바탕을 두는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것은 여성적 각인을 지닌, 의심할 여지 없이 신체적인 점들뿐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점들이 나타나기는 한다. 그러나 우선 그것들이 저 거꾸로 된 현상이 보여 주는 만큼의 범위와 규칙성으로 나타나는지, 아니면 몇몇 경우에만 나타나는지 내게는 의심스럽다. 또 맨 먼저 예상할 법한 현상들, 예컨대 수염이 없다든지 골반이 넓다든지 하는 것은 적어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 86.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에는 내가 관찰한 다음과 같은 예들이 있다.
a) 드물지 않게 소녀 같은 살결, 소녀 같은 얼굴빛, b) 이따금 여성적으로 여리게 생긴 손(『포르마트릭스』 § 41.),
c) 이따금 쉬고 있을 때, 예컨대 잠잘 때나 사진에서 얼굴 표정의 소녀 같은 표현.
d) 『포르마트릭스』 § 42. c.에서 언급한 여성형 우르닝은 목소리가 자주 완전히 여자 목소리로 바뀐다. 이는 특수한 신체 구조를 짐작하게 한다. 그의 기관 구조는 아쉽게도 확인되지 않았다.
e) 뮌헨에서 나는 서른두 살쯤 된 한 우르닝을 만났는데, 그는 겉모습이 대체로 여성적이었으나 짙은 수염이 그것을 남성화하고 있었다. (§ 15에서 언급한 “백작 아가씨들” 가운데 하나다.) 그의 기관은 바깥에서 보이는 한 완전히 여성적으로 생겼다. 이른바 울대뼈는 적어도 겉으로는 흔적도 없다. 반면 목소리가 보통 남자 목소리와 다른 점은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열여덟 살까지 나는 아주 아름다운 메조소프라노 목소리를 가졌고, 자주 즐겨 노래했다. 그러다 변성기가 왔는데, 아주 힘들었고 두 해 넘게 이어졌다. 그 뒤로 말할 때 목소리는 낮아졌지만 조금 쉰 듯해졌고, 노래하는 목소리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혼자 있을 때 자주 ‘가성으로’ 노래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지치게 한다. 그 대신으로 나는 ‘휘파람’을 연습했는데, 전에는 할 수 없던 것이었다. 연습은 완전히 성공했다. 다만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휘파람만은 내지 못한다. 그건 진짜 남자들만 할 수 있다. [75] 그런데 이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는 내게 너무 귀청을 찢는 것이어서, 길에서 자주 ‘아, 내 신경!’ 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 87. 나는 이 물음을 던졌을 뿐이다. 열린 물음으로 이것을 앞으로의 연구에 맡긴다.
그런데 만일 몸에 여성적 형성이나 덧씌움을 전혀 지니지 않은 여성형 우르닝이 정말로 있다면, 그들에게는 물론, 내가 § 12를 쓸 때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것, 곧 두 맞선 힘이 그 영역들의 순수한 경계선을 따라 갈라져서, 한쪽이 다른 쪽의 영역으로 넘어 들어가는 일이 전혀 없는 상태가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몸에 관한 모든 것은 남성적이고, 영혼에 관한 모든 것(성정, 사랑의 그리움의 방식, 성적 욕망의 방식)은 여성적인 상태다. 나는 실제로 이런 갈라짐이 여성형 우르닝에게 나타난다고, 그것도 오히려 규칙으로 나타난다고 받아들이고 싶은 쪽이다.
그렇다면 넘어 들어감은 언제나 남성형 우르닝에게만 나타날 것이고, 여성형 우르닝에게는 예외적으로만 나타날 것이다. 몸의 성의 힘은 영혼의 성의 힘보다 훨씬 강할 것이며, 다른 쪽이 넘어 들어오는 것에 맞서 버티는 데도, 스스로 넘어 들어가는 데도 더 능할 것이다. 영혼의 성의 힘은 기껏해야 제 영역을 지키고 그 영역을 모든 방향으로 채우는 데 성공할 것이다. – 몸의 여성성이 없는 여성형 우르닝. 몸의 영역으로 넘어 들어가는 데는 예외적으로만 성공할 것이다. – 몸의 여성성이 있는 여성형 우르닝. 반면 밀고 들어오는 몸의 성의 힘에 제 영역에서 저항도 못 하고 밀려나는 일은 아주 흔할 것이다. – 남성형 우르닝. 싸움은 대체로 몸의 영역에서는 예외적으로만 벌어지고, 대개는 영혼의 영역에서만 벌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 우르닝들은 승부가 나지 않은 싸움의 결과일 텐데, 그 싸움 또한 두 영역 모두에서가 아니라 오직 영혼의 영역에서만 벌어진 것이리라. 적어도 그들 가운데 영혼의 남성성뿐 아니라 몸의 여성성도 지닌 이들만이 두 영역 모두에서 벌어진 싸움의 결과일 것이다.
§ 88. 그러니까 우라니즘의 영역에서 우리는 서로 유비 관계에 있지 않은 두 가지 자연의 기적 앞에 서 있다. 여성형 우르닝에게서는 몸의 남성적 성과 남성적 외양 곁에 영혼의 여성적 성과 여성적 외양, 곧 여성적 사랑의 충동, 여성적 기호, 온갖 여성적 영혼의 삶이 있다. 남성형 우르닝에게서는 여성적 사랑의 충동(곧 영혼의 여성적 성)이 있는데, 거기에 사랑의 그리움의 방식과 성적 욕망의 방식에서 완전히 남성적인 각인이 찍혀 있다. 이 둘 가운데 뒤의 것이 더 놀랍지 않은지 나는 모르겠다.
§ 89. 위의 넘어 들어감의 이론을 읽은 한 비우르닝이 그것을 뒷받침할 생각으로, 개개의 자연력이 이웃한 영역으로 넘어 들어가는 일은 자연의 다른 영역에서도 만난다고 내게 일러 주었다. 다만 그는 다윈에 따라, 동물계와 식물계에서 종들과 개체들의 차이가 눈에 띄지 않게 서로 맞물리고 서로 넘어간다는 것만 들었다. 실제로 우리는 넘어 들어감을 백 번이고 만난다. 비록 맞서 있는 신체의 힘과 영혼의 힘 사이에서 일어나는 예는 지금 내가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이를테면 물고기의 본성은 꼴을 지으며 젖먹이동물의 본성으로 넘어 들어간다. 돌고래와 고래는 말하자면 한 몸 안의 젖먹이동물이자 물고기, 곧 물고기 모양을 한 젖먹이동물이다. (『인클루사』 § 11. a. 주.) 잎의 본성은 꼴을 짓고 나아가 빛깔까지 지으며 가지의 본성으로 넘어 들어간다. 날개선인장(cactus alatus)의 가지는 잎의 꼴과 빛깔을 지닌다. 그러니까 잎 모양을 한 가지다. 아니, 식물의, 나아가 식물의 꽃의 본성까지 꼴을 지으며 동물의 본성으로 넘어 들어간다. 창조자인 자연의 참으로 놀라운 작품인 말미잘은 식물처럼 바다 밑바닥에 굳게 서 있으며, 꽃잎과 꽃받침과 수술을 갖춘, 피어 있는 진짜 아네모네를 감쪽같이 닮았다. 그런데도 그것은 동물이다. 꽃 모양을 한 동물이다! 겉보기의 꽃은 그 머리이고, 수술은 그 촉수이며, 꽃받침은 그 목구멍으로, 그것으로 더 작은 생물을 삼킨다! 바다 패랭이(See-Nelke)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 개개의 이중 본성 안에서도 틀림없이 다시 저 자연력의 넘어 들어감이 일어날 것이다. 고래의 생명에서는 물고기 본성의 자연력이 꼴을 지으며 젖먹이동물의 영역으로 넘어 들어가고, 또 그 거꾸로도 일어날 것이다.
§ 90. 앞서 말한 것에는 동시에 다름슈타트의 (§ 45, IX.에서 이름을 든) 랑하인츠 박사의 견해에 대한 대답이 들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우르닝과 비우르닝을 두고, 있을 수 있고 아마도 존재할 신체 구성 부분의 해부학적 차이에 대해 엄밀한 연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이에 근거하여 둘의 본성에 의심할 여지 없는 신체적 차이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것들을 찾아봐야 헛일일 것이다. 모든 우르닝에게 되풀이되는 이 일정한 신체적 구별 표지, 우르닝의 몸이 남성의 몸에서, 이를테면 여성의 몸 쪽으로 벗어나는 일정한 차이 말이다. 그런 신체적 벗어남은 언제나 드문드문, 서로 아주 다르게, 그리고 대체로 여성형 우르닝에게서도 예외적으로만 나타날 것이며, 남성형 우르닝에게서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점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우르닝의 몸의 영역에서 발견되는 모든 여성적인 것은, 그 자체로는 완전히 남성적으로 조직된 몸의 영역으로 영혼의 여성적 성의 힘이 넘어 들어간 작용일 뿐이다(남성형 우르닝에게서는 바로 이 넘어 들어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적 몸의 형성은 저 넘어 들어감으로 어느 한 점에서라도 유기적으로 여성적인 것으로 바뀌어 빚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며, 여성적 색조, 덧씌움 이상의 것을 결코 띠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단순한 덧씌움조차, 말했듯이, 결코 규칙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여성형 우르닝에게서조차 그렇다.
§ 91. 그건 그렇고, 이처럼 드문드문 나타나는 신체적 여성성 또는 여성 닮음의 현상들은 여성적 영혼의 힘이 꼴을 짓거나 덧씌우며 넘어 들어간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길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곧 그것들을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래 신체 소질 가운데 살아남은 잔재로 바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할 수도 있다. 그 소질은 (태아에게서) 남성적 구성 부분 못지않게 여성적 구성 부분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들은 이 신체 소질 가운데, 다시 빚어내는 자연의 억누르는 손(위 § 3)을 벗어났거나 그 손에 저항한 부분들일 것이다. 따라서 신체적 여성성의 부분들을 지닌 우르닝들은 그 나타나는 모습으로 보나 그 생겨남으로 보나 순수한 우르닝에서 우르닝 자웅동체(위 § 9)로 넘어가는 이행 단계를 이룰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이 신체적 여성성의 잔재와 여성적 영혼의 힘 사이에는 역시 직접적 연관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진짜 남성형 우르닝과 남성에게서는 신체적 여성성의 부분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오직 a) 영혼의 성의 힘이 여성적이고(따라서 남성에게는 없다), b) 게다가 영혼의 이 여성적 힘이 강하고 생명력 있는 곳(따라서 여성형 우르닝에게만 있고 남성형 우르닝에게는 없다)에서만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혼의 여성적 힘이 생명력 있으면 본래의 신체적 여성성의 저 부분들이 억눌림에 더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이 설명 방식에 따라도 영혼의 여성적 성의 힘의 넘어 작용함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비록 돕는 작용일 뿐이고, 독자적으로 작용하며 스스로 꼴을 짓는 작용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반면 거꾸로 된 현상, 곧 남성형 우르닝의 영혼의 남성성 또는 남성 닮음을 나는 실제로 남성적 몸의 힘이 꼴을 지으며 넘어 들어간 작용, 곧 스스로 작용하여 여성적 사랑의 충동에 꼴을 부여한 넘어 들어감의 작용으로 여기며, 이를테면 본래의 영혼의 남성성의 잔재로 여기지 않는다. 영혼은 몸과 달리 본래 남성적인 구성 부분을 도무지 지니지 않으며, 본래 여성적인 구성 부분도 마찬가지로 지니지 않고, 본래는 오히려 그저 성이 없기 때문이다. – 연구에는 아직 넓은 들판이 열려 있다.
§ 92. 이것을 써 두었을 때(위에 있는 그대로이며, 나중에 어떤 고침도 가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 문의에 대한 답으로 다음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소식을 받았다.
“런던, 1868년 3월 31일.” (필자는 중간 우르닝이며,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수백 명의 우르닝과 교류했다.) “이런 완전히 여자다운 모습을 나와 다른 많은 이들은 우르닝에게서 자주 관찰했다. 깨어 있을 때뿐 아니라 잠잘 때도 그렇다. 완전히 여성적인 이목구비, 소녀 같은 살결, 여자처럼 가냘픈 팔다리, 아니 수염이 전혀 없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을 나는 함께든 따로든 거듭 발견했다. 여성형 우르닝보다는 오히려 남성형 우르닝으로 보아야 할 사람들에게서도 그것을 발견했다. 여성형 우르닝에게서는 물론 훨씬 더 자주 발견했다.”
“빈, 1868년 4월 9일.” (필자는 위 § 76의 여성형 우르닝으로, 그 역시 빈에서 무척 많은 우르닝과 교류해 왔다.) “제가 우르닝들에게서 순전히 몸의 여성스러움을 보았느냐고요? 그렇습니다. 곧 여성형 우르닝들에게서, 또 부분적으로는 중간형 우르닝들에게서도요. 남성형 우르닝들은 겉모습 전체로는 디오닝(곧 본래적 남성)과 전혀 구별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이를테면 여성형 우르닝의 몸은 더 부드럽고 가냘프게 생긴 데 비해, 남성형 우르닝의 몸은 대개 억세고 튼튼합니다. 앞의 사람들은 얼굴 표정이 대개 여자처럼 온순한 데 비해, 남성형 우르닝 가운데는 그야말로 무인처럼 생긴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니 여성형 우르닝에 관해, 아울러 중간형 우르닝에 관해서도, 여기 다음과 같이 알려 드립니다. 그것도 제가 몸소, 여러 번, 주의 깊게 관찰한 바에 근거해서입니다.
“몸 전체 생김새는 대개 디오닝보다 둥글고, 근육의 살은 부드러우며, 피부는 눈부시게 희고 털이 없습니다. 예컨대 가슴이 그렇고, 다른 어떤 부위들도 적어도 보통의 디오닝보다는 털이 적습니다. 머리털이 금발인 사람에게는 이것이 언제나 들어맞을 것입니다.
특히 젖꼭지가 디오닝보다 훨씬 큰 경우를 자주 보았고, 가슴도 좌우로 대체로 더 풍만하고 둥글며 살집이 있었습니다. 목욕할 때면 우리는 이 때문에 디오닝들을 꽤나 자주 놀라게 합니다. 여기 빈에는 그야말로 훌륭한, 정말 “젖가슴”이라 할 만한 것을 지닌 사람도 몇 있습니다.
목젖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드물기는 해서, 이를테면 여기 빈의 두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숙녀 옷을 입고 무도회에 갈 때 가슴과 어깨를 드러낸 옷을 입는데, 온전히 여자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또 팔도 그만큼 아름답고 둥급니다.
대부분의 여성형 우르닝에게서 손은 여전히 작고, 가냘프게 생겼으며, 모양이 고왔습니다.
안색은 대개 더 곱고, 말하자면 투명하며, 디오닝보다 더 혈색이 돌고 더 장밋빛입니다. 다만 그렇게 고운 안색을 이따금 디오닝에게서도 보았습니다. [76]
수염: 성긴 경우가 매우 흔합니다. 아예 없는 경우도 있는데, 물론 드물어서, 이를테면 여기 빈의 한 우르닝이 그렇습니다.
여자 목소리: 매우 흔하며, 대부분의 여성형 우르닝이 소프라노로 노래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몇몇은 솜씨가 그야말로 거장급입니다.
주요한 표지 하나는 걸음걸이입니다. [77] 대부분은 여자들처럼 그 자세로 걸어 다니며, 걸음이 짧고 땅을 별로 굳게 딛지 않는 등입니다. 또 걸을 때 여자들처럼 저도 모르게 허리 아래를 특이하게 비틀고 돌리는 일이 많습니다. [78]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를 드러내는 것은 눈입니다. 그 표정과 움직임은 온전히 여자의 것입니다. 저 온순한 눈길, 무슨 계기만 있으면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다시 교태를 부리는 눈길, 추파, 눈을 치켜떴다 내리깔았다 하는 것 등. [79]
손의 움직임도 거의 그만큼 정체를 드러냅니다. 여성형 우르닝은 꾸민 투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그러면서 손으로 교태를 부리고 꾸밉니다. 특히 인사하며 손을 내미는 모양도 여자 같습니다. 남성형 우르닝에게서조차 손놀림은 대개 여자 같았습니다. 저는 손놀림만 보고 이미 여러 사람에게서 우르닝을 알아보았는데,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은 언젠가 이렇게 툭 내뱉었습니다. “마치 우리 모두 여학생 기숙학교에서 자란 것 같아.”
빈 사람의 말은 여기까지다.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순전히 몸에 관한 영역에서 어느새 다른 영역, 아마 마찬가지로 마음 상태의 표현일 수도 있는 영역, 예컨대 눈의 표정, 걸음걸이, 손놀림으로 미끄러져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는 둘이 얼마나 긴밀히 한데 속하는지 보여 주는 새로운 증거일 것이다. – 나 자신은 그 밖에도, 우르닝이 헛기침해 가래를 뱉을 때 남자처럼 짧고 힘차게 내뱉지 않고 여자처럼 느릿느릿 머뭇거리며 뱉는다는 것을 관찰했다.
고전 작가들의 증언도 아주 비슷하다. 예컨대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뚜렷한 남성형 우르닝 마르티알리스가 그 못지않게 뚜렷한 여성형 우르닝 카르메니온에게 보낸 풍자시(10권 65편)가 그렇다. 시인은 이 사람에게서 “형제”라고 불리기를 사양한다.
Cum te municipem Corinthiorum
Jaetes:
Cur »frater« tibi dicor ex Iberis
Et Celtis genitus?
An vultu similes videmur esse?
Tu fiexa nitidus coma vagaris:
Hispanis ego contumax capillis.
Laevis pumice tu quotidiano:
Hirsutus ego cruribus gonisque.
Os blaesum tibi debilisque lingua:
Nobis sibila fortius loquuntur.
Quare desine, me vocare fratrem:
Ne te, Carmenion, vocem sororem!
“너는 코린토스 시민이라고 뽐내면서, 왜 켈티베리아 사람인 나를 ‘형제’라고 부르느냐? 우리가 생김새가 서로 닮아 보이느냐? 너는 곱슬하게 만든 머리(말거나 지져서 곱슬곱슬하게 만든 머리)로 멋을 내고 거닐지만, 나는 머리 손질에 반항하는 히스파니아 머리털을 하고 있다. 너는 날마다 경석으로 문질러 매끈하지만, 나는 허벅지와 뺨에 털이 수북하다. 네 입은 혀짤배기소리를 내고 네 혀는 힘이 없지만, 나는 속삭여도 더 힘차게 말한다.” (이 말에서는 물론 농조의 과장을 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 나를 형제라 부르지 마라. 내가 너를 ‘누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그렇다면 마음의 힘이 실제로 몸의 영역까지 넘어 미치는 일은 내가 위에서 생각한 것만큼 드문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에 따라 위의 둘째 자연의 기적과 비슷한 셋째 자연의 기적을 말할 자격이 있다. 곧 겉으로 완전히 여성의 각인이 찍힌 남성의 몸이다. 이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본래적 여성형 우르닝일 것이다. 남성형 우르닝에게서 영혼의 여성스러움이 남성의 몸 때문에 자라는 데 방해를 받듯이, 여성형 우르닝에게서는 아마 몸의 남성스러움이 여성의 영혼 때문에 방해를 받을 것이다. 중간형 우르닝에게서는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난다.
XVII. 몇몇 집안의 우라니즘
§ 93. 『인클루사』에서 내 이론을 위해 든 근거들에 여기서 눈에 띄는 현상 하나를 덧붙이겠다. 이 현상은 우라니즘이 타고난 것이라는 데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이 역시 타고났다는 결론을 허락할 것이다.
몇몇 집안에서는 우라니즘이 여러 사람에게서, 때로는 심지어 여럿에게서 거듭 나타나는 것을 본다. 그런 집안을 많이 입증할 수 있었다.
특히 형제가 우르닝인 경우가 있다. 둘, 아니 셋이, 그것도 서로 떨어져 자란 형제들이 그렇다. 다른 경우에는 사촌이나 더 먼 혈족이어서 서로 이름조차 거의 모른다. 이를테면 1865년에 나는 괴팅겐 장크트 알바니 교회의 전임 목사 S., 곧 나의 먼 친척이 우르닝이라는 소식에 놀랐다. – 이런 집안 가운데는 심지어 독일의 한 왕가도 꼽힌다.
XVIII. 동물계와 식물계의 우라니즘
§ 94. 런던 인류학회(anthropological socicty of London)의 한 회원이, 몇몇 새 종류에서, 나아가 식물계에서도 우라니즘에 관해 이미 이루어진 놀라운 관찰들이 있다고 내게 알려 준다. 식물계라 함은 수술의 꽃실과 꽃밥, 곧 수컷 생식 기관의 특별한 행태를 뜻하는 것 같고, 어쩌면 수컷 개체나 암컷 개체 어느 한쪽으로만 이루어진 속(屬)에서 수컷 식물 개체들의 특별한 행태를 뜻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속의, 물에 떠다니는 수생 식물, 예컨대 발리스네리아에서는 그러니까 수컷 식물 개체가 수컷 식물 개체에게 다가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이렇게 쓴다.
“런던, 1868년 4월 13일. 식물에서 이 현상에 관한 저명한 다윈의 논문은 런던 린네 학회 회보의 첫 몇 권에, 새에서 이 현상에 관한 논문은 앤더슨의 저작들에 실려 있습니다. 이런저런 관찰들로부터 입증해야 할 것은 다음입니다.
곧 우라니즘이 하나의 자연법칙으로서 동물계와 식물계 전체를 꿰뚫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확보된 자료만으로도 이를 입증하기는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자고새 수컷에게서 볼 수 있는 우라니즘의 놀라운 예는 아래 § 107에 있다. 우르닝이 아닌 내 친구(§ 89 참조)는 1868년 4월 20일에 이렇게 쓴다. “새에서만이 아니라 더 높이 발달한 동물, 네발짐승과 특히 네손짐승”(원숭이)“에게서도 우라니즘의 흔적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뚜렷하게요.”
XIX. 영국 자연 연구자의 태아 이론
§ 95. 바로 그 사람(다름슈타트 근처의 B. 박사)이 내 태아 이론과 절반은 완전히 일치하는 가설 하나를 알려 준다. 영국에서 유명해진 저작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 1854)[80]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이란 오로지 발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은 이제 완전히 입증된 사실이다. 배아 과정의 어느 일정한 단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암컷이다. 그 가운데 일정한 수만이 나중에 수컷으로 나아간다. 이로부터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참된 차이가 없으며, 사람들이 상정하는 차이는 모두 오히려 겉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가설은 우라니즘이 타고난 것임을 설명하는 데 내 가설과 꼭 같이 들어맞을 것이다. 곧 우르닝, 우르닝긴, 자웅동체는 모두 – 저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 남성으로 일부만 나아가고, 일부는 여성으로 남은 것이 될 터이다.
§ 96. 가설이 내놓는 이 결과가 아무리 눈부시다 해도, 나는 가설 자체를, 적어도 절반은 물리칠 수밖에 없다. 나는 “존재의 어느 일정한 단계에서 모든 생명체는 암컷이다”라는 명제를 물리친다. 이 명제는, 남성의 특유한 표지인 membrum virile(남성 성기)가 원초적 태아에 이미 있다는 단순한 사실로 반박된다. 이것은 결코 몸속 공간과 자궁이 억눌리고서야, 결코 몸이 남성으로 나아가고서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다. [81]
반면에 나머지 명제들은 내 이론과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성이란 오로지 발생의 문제일 뿐이다. 배아로 존재하는 어느 일정한 단계에서 포유류 세계 등의 모든 생명체는 자웅동체이다. 그 가운데 일정한 수는 나중에 남성으로 나아가고, 다른 일부는 여성으로, 셋째 일부는 우라니즘으로 나아간다. 이로부터 이 여러 성 사이에는 일차적 차이가 없으며, 있는 차이는 모두 오히려 이차적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참된 차이는 분명히 있다.”
XX. 우라니즘 영역에서 나온, 자연 과학적 의의가 있는 삶의 보고들
런던, 빈, 베를린, 작센, 스위스, 헝가리, 보헤미아에서.
덧붙이는 말. 우르닝의 맞짝으로서 여자를 사랑하는 참된 남성에게 내가 예전에 쓰던 이름 “디오닝”을 이로써 되살린다. “디오닝의”는 디오닝에게 고유하다는 뜻이다.
아래 보고들을 나는 아주 자세히 싣는다. 이론을 전혀 보태지 않고 실제 삶에서 곧바로 끌어낸 우라니즘을 독자의 눈앞에 생생히 보여 주기 위해서다. 특히 지금껏 우라니즘을 전혀 모르던 독자에게. – 연구자들에게는 이 보고들 모두를 원래 편지로 보여 줄 용의가 있다.
§ 97. 여성적 외양의 특징들. (위 § 15.) 이미 언급한 나의 독일인 통신원이 1868년 1월 12일 런던에서 이렇게 써 보낸다.
“여드레쯤 전에 비올라가”(상류층의 젊은 영국인 우르닝) “저를 위해 우르닝 야회를 열었습니다. 참석한 스무 명 가운데 넷이 그야말로 훌륭하게 숙녀로 차려입었습니다. 누구라도 진짜 여자들을 눈앞에 보고 있다고 맹세했을 겁니다. 한 사람은 긴 자락을 끄는 진홍빛 벨벳 옷을 입고 나왔고, 다른 사람은 검은 무아레 옷을, 셋째는 레이스를 단 흰 비단에 초록 장식을 단 옷을, 넷째는 장밋빛을 곁들인 빛나는 흰 공단 옷을 입었습니다. 셋은 가슴과 어깨를 드러냈고, 넷 모두 머리에 꽃을 꽂았습니다. 한 사람은 심지어 진짜 다이아몬드 장신구를 했습니다. 그 애인이 선물한 것인데, 지난여름 그 애인과 함께 오래 파리에 있었지요. 파리에서 그녀는 그와 함께 늘 숙녀로 나타나 믿기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모든 사람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황홀한 소년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름다움은 참으로 믿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섭니다. 초대는 밤 열두 시부터였고, 한 시에 야찬을 들고, 아침 일곱 시까지 춤을 추었습니다.”
같은 편지는 앞서 언급한, 거리에서 무례한 짓을 했다는 이유로 즉결 판사 녹스 씨 앞에서 열린 “케이트 스미스”, 곧 “메리 앤”, 다시 말해 헨리 몰트래버스에 대한 심리에 관해서도 놀라운 사실을 알려 준다.
(해당 사건은 1867년 여름에 일어났다. 위의 언급은 《선》(Sun)에서 따온 것이다. 《스탠더드》도 이 사건을 전했다. 덧붙여 “몰트래버스”는 내가 지어 붙인 이름이다.) 이 책의 § 1~§ 72를 나는 1월 4일 통신원에게 보냈다. 그래서 그는 12일에 이렇게 쓴다.
“제가 막 그 인쇄물을 다 읽었을 때, 저녁에 우르닝 여섯이 우리에게(비올라와 저에게) 왔습니다. 그 가운데는, 저는 몰랐지만, 《선》이 언급한 그 두 “메리 앤”, 곧 “헨리 몰트래버스”와, 다이아몬드 장신구를 했다는, 이미 말씀드린 그 미인 아다만티우스가 있었습니다. 비올라가 두 사람과 다 가까운 사이거든요. 그건 그렇고 몰트래버스도 매력적인 소년입니다. [82] 저는 물론 방금 독일에서 받은 우라니즘에 관한 책 이야기를 했고, 몇 대목을 즉석에서 영어로 옮겨 읽어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 15를 옮기고 있었는데, 거기에 《선》의 대목이 나옵니다. 그 신문의 남부끄러운 기사는 참석한 모두가 잘 알고 있었지요. 제가 그 대목에 이릅니다. 비올라가 멈칫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놀라 말을 잃습니다. 제가 지어내고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졌고, 정말 인쇄된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 신문을 선생님께 보낸 죄인 비올라는 무덤처럼 잠자코 있었습니다! 몰트래버스는 다행히 어마어마하게 화장을 하고 있어서 얼굴 붉어진 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때 그는 이렇게 쓴다. “몰트래버스를 브뤼셀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우리는 극장에 갔는데, 그가 아름다움과 여자 같은 몸가짐으로 어찌나 눈에 띄었던지, 사람들은 그를 남자로 변장한 숙녀로 여겼습니다.”
3월 22일. “얼마 전 저녁 무렵 몰트래버스와 팔리에누스가”(다른 우르닝에게 지어 붙인 이름) “검은 벨벳 숙녀복을 입고 우리를(비올라와 저를) 찾아와, 하인들은 질겁하고 우리는 놀랐습니다. 같은 날 밤늦게 둘은 이 차림으로, 아주 좋은 집안의 우르닝들이 특히 드나드는, 손님이 가장 많은 카페 한 곳에 공공연히 나타나 그 자리에 있던 아는 사람들을 경악시켰습니다. [83] 그 전에 둘은 저녁을 극장에서 보냈습니다. 거기서 막간마다 낯선 신사들에게 젊은 숙녀로서 구애를 받았고, – 생각해 보세요 –, 화류계 여자들처럼 설탕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대접받았답니다!
“1868년 1월 28일 자 《스탠더드》에서 여자 옷을 입은 열여섯 살 소년이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런 일은 여기서 전혀 드물지 않습니다. 이 소년 헨리 보웬은 복스홀 다리 위에서 (자살을 궁리하는 것처럼) 이상한 행동을 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끝내는 스스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날 내버려 둬요. 나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예요.’
“얼마 전 어느 공개 가면무도회에는 우르닝 쉰 명가량이 숙녀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올해 2월, 비올라와 제가 참석한 우르닝들의 개인 가장무도회에서는 열둘에서 열다섯이 숙녀로 나타났는데, 몇은 더없이 매력적이고 값비싼 차림이었습니다. 팔리에누스는 다른 어느 무도회에서라도 젊은 숙녀들 사이에서 미의 상을 차지했을 겁니다. 그야말로 황홀했습니다. 곧이어 또 우르닝 가장무도회가 있었는데, 거기는 우리가 가지 않았습니다. 거기서는 여자 차림의 화려함이 더했다고 합니다. 이곳 우르닝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는 거의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파리를 훨씬 능가합니다. 게다가 그들 가운데는 결혼한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2월의 가장무도회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성직자의 주례로 온갖 예식을 갖추어 혼인했습니다. 신부, 신랑, 성직자, 셋 다 우르닝입니다. 하지만 신부와 신랑은 정말로 사랑하는 한 쌍이었습니다. 그는 연미복 차림, 그녀는 흰 공단 드레스에 면사포를 쓰고 머리에 신부의 오렌지꽃 화관을 얹었습니다. 야찬이 끝난 뒤 그녀는 갑자기 스코틀랜드 고지 사내 차림으로 나타났는데, 오로지 애인에게 더 매혹적으로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애인은 아무래도 숙녀보다는 제대로 된 사내아이에게 더 끌렸으니까요.” (그러니 애인을 극단적인 남성형 우르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이라면 여자 차림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 편지에서 이것이 분명히 확인된다. “신랑은 선생님이 남성형 우르닝이라 부르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1868년 1월 12일 자 편지에서 이것도 전한다. “런던의 우르닝 생활은 상상을 넘어섭니다. 주로 밤 열한 시부터 한 시까지 손님이 붐비는 어느 호화로운 카페 샹탕(노래하는 카페)에서는 탁자 여러 개를 통째로 우르닝들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티에는 젊은 상인들의 클럽이 하나 있는데, 저도 두 번 손님으로 소개받아 갔습니다. 여기는 우라니즘이 어찌나 많은지 그것이 규칙이 되어, 독일에서 우르닝을 그러듯 여기서는 디오닝을 남몰래 손가락으로 가리킨답니다!” – 영국에서는 우라니즘을 뿌리 뽑으려고 지금 우르닝의 사랑을 15년의 무거운 중금고, 대략 징역형으로 법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온 자연이 이 야만을 비웃는다!
§ 98. 나의 베를린 통신원은 이렇게 쓴다. “베를린, 1868년 2월 23일. 며칠 전 백작 부인이”(이 사람은 또 다른 백작 영애다. 위 § 15 참조) “제게 이야기하기를, 그보다 여드레 전에 이곳에 머무는 부유한 폴란드 백작 한 사람이(우르닝) 어느 레스토랑에서 우르닝 가장무도회를 열었답니다. 골라 뽑은 잘생긴 병사 열 명, 곧 디오닝들이 와 있었고, 우르닝 가운데서는 여섯이 숙녀 차림으로 나타났답니다.” [84] [85]
§ 99. 나의 빈 통신원은 이렇게 쓴다. “빈, 1867년 11월 6일. 이곳 우르닝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남자 옷을 여자 취향으로 꾸며 걸치고 나서면 이따금 환상적인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여기 빈에는 이런 부류의 견본 몇이 대단한 솜씨를 보입니다. 이를테면 ‘백작 영애’는 금빛 술이 달린 구두를 신습니다. ‘가정 교사’는 매우 기묘하게 재단한(곧 반쯤은 숙녀용인) 벨벳 망토를 입는데, 온갖 시적인 잎 덩굴 장식을 달았습니다.”
스물여덟 살쯤 된 같은 사람이 또 이렇게 쓴다. “빈, 1868년 4월 9일. 제가 열일곱 살 때 스무 살 된 친구가 있었는데, 저처럼 뚜렷한 여성형 우르닝이었습니다. 우리 둘은 몇 시간씩 제 누이들이 옷 짓고 치장하는 것을 거들었습니다. 우리가 숙녀 옷에 좋은 안목을 보였기 때문에 환영받았지요. 다 지어진 옷이 그렇게 아름답고 하늘하늘하게 놓여 있으면, 우리는 입어 보게 해 달라고 조르지 않고는 못 배겼습니다. 그러면 다들 재미있어하며 정말 입어 보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고운 옷을 입고 사람들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잘 처신했습니다. 옷자락을 어찌나 위엄 있게 휘두르고 부채나 양산을 어찌나 우아하게 드는지, 어머니는 제가 딸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자주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숙녀 옷을 입고 거리에 나가 남자들의 눈길을 끌어 보고 싶은 욕망이 깨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니베르줌’[86]으로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당시 우리 둘의 애인과 함께, 물론 애인들은 신사 차림으로요. 그런데 그러자면 옷을 먼저 누이들 옷장에서 몰래 손에 넣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꾀를 짰습니다. 늙은 고모가 일요일에 부모님과 누이들을 커피에 초대하도록 일을 꾸몄지요. 시녀는 우리 편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시녀는 웃으며 우리 머리를 예쁘게 매만져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일요일이 왔습니다. 누이들이 너무 느릿느릿 단장하자 우리는 연거푸 외쳤습니다. ‘아니, 고모님을 그렇게 오래 기다리시게 하다니! 엄청 투덜대실 거야!’ 그러면 물론 ‘어머, 고모님을 참 잘도 챙기네!’ 하는 대꾸가 돌아왔지요. 마침내 다들 나갔습니다! 이제 우리는 집 안에서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뒤질 수 있었습니다. 문은 모두 잠그고, 옷장은 모두 열었습니다. 옷, 구두, 리본, 숄, 모든 것을 뒤죽박죽 헤집어 가장 아름다운 것을 골라냈습니다. 아, 그걸로 치장하는 즐거움이란! 마침내 시녀가 우리 차림을 보고 완전히 넋을 잃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이윽고 마당에 마차 구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우리 숭배자들이 우리를 데리러 온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눈부신 겉모습에 깜짝 놀랐고, 우리가 옷을 입은 맵시와 위엄에는 더욱 놀랐습니다. 우리는 두 거만한 공주처럼 마차에 올랐습니다.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췄습니다. 음악 소리가 우리를 향해 밀려왔습니다. 신사들이 우리를 훑어보고 손잡이 안경을 들이댈 때 우리 가슴은 남몰래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우리는 노루처럼 마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우리 신사들의 팔을 끼고 줄지어 선 사람들 사이를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홀에 나타나자 이목이 쏠렸습니다. (우리 차림이 실은 우니베르줌에는 너무 우아했거든요!) 우리는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때 늠름하고 잘생긴 남자 하나가 다가와 간청하는 눈빛으로 말했습니다. ‘아가씨, 한 곡 청해도 되겠습니까?’ 한 춤 상대가 우리를 놓아주자마자 다른 두셋이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환희에 젖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두 신사는 아예 놓쳐 버렸습니다. 대신 아주 멋진 춤 상대 둘을 만났는데, 그들이 야찬에 초대하자 우리는 그들이 잘생겼다는 이유로 정말 황홀해하며 응했습니다.” (이 장면의 뒷이야기는 다음 절에.)
“그 뒤로 우리는 호화롭게 차려입고 가장 우아한 무도회에 자주 다녔는데, 남자로 알아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곧 우리는 이른바 ‘페시한 녀석들’을 만날 수 있는 춤집을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페시’란 곧 멋지고 쾌활하되 지체가 높지는 않은 것을 말합니다.) 이들도 우리를 못지않게 상냥하게 대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도발적인 행동으로 엄청난 이목을 끌곤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변두리에서 삯마차꾼 무도회가 열렸는데, 빈의 삯마차꾼들 가운데는 말쑥하고 멋진 사내들이 있거든요! 삯마차꾼은 식탁에 ‘멋진 아가씨’를 앉히는 것을 꽤 자랑으로 여깁니다. 춤 상대로는 대개 ‘빨래하는 아가씨들’이 나오는데, 우스꽝스럽게 치장했지만 몇은 진짜 미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버팀 치마를 네 겹에서 여섯 겹 껴입어서, 린츠의 크레들처럼 서 있게 되었고, 장딴지까지 다 보였는데 거기서 요염한 빨간 리본이 늘어졌습니다. 그 위에 빨간 꽃무늬 빨래꾼 치마를 걸치고, 허리를 감싸도록 벨벳 재킷을 입고, 머리카락은 뾰족뾰족하게 이마에 붙이고, 눈이 아리도록 주황빛 비단 수건을 머리에 감고, 얼굴은 –- 그래요, 얼굴은 – 희고 붉게 화장하니, 그림처럼 예쁜 빨래꾼 아가씨가 완성되었습니다! 숄을 둘러쓰고 이제 삯마차꾼 무도회로 갔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들어섰습니다. 동행 없는 빨래꾼 아가씨 둘이! 여자들은 심술궂은 눈초리로 우리를 훑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내들은 모두 감탄을 터뜨렸습니다. 탁자마다 몇 사람이 일어나 그 귀엽고 당돌한 두 ‘고델’을 보려고 다가왔고, 그동안 우리는 한 탁자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를 무슨 신기한 짐승처럼 쳐다보았습니다. 여자들은 물론 우리에게 그야말로 약이 올라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아무도 감히 우리와 춤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아한 (진짜) 신사 둘이 우리 탁자에 앉아 우리와 수다를 떨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신사들도 이런 종류의 무도회에 즐겨 나타나는데, 오히려 구경꾼으로서입니다.) 이게 사내들의 비위를 건드렸습니다. 벨벳 웃옷을 입은, 당돌하고 잘생긴, 눈이 검은 사내 하나가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다정하게 제게 말했습니다.
“어이, 노란 수건 쓴 귀염둥이, 한 곡 어떠슈?”
(노란 ‘슈네프’: 노란 머릿수건이나 그 끝자락.) 저는 일어나 치마를 털고 그의 품에 안겼습니다. 탁자마다 모두가 일어서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주르카 폴카가 연주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 춤에 익숙한 사람은 아직 몇 안 되었습니다. 우리가 홀을 한 바퀴 돌자마자 큰 소리로 브라보가 터지고, 극장에서처럼 그야말로 박수갈채가 폭풍처럼 일었습니다. 이제 얼음이 깨졌습니다. 사내들이 우리에게 날아들었습니다. 우리는 승리자로 남았습니다. 아가씨들은 분해서 이를 갈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늘어놓은 수다란 그보다 더 당돌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자정이 지나 우리 빨래꾼 아가씨들이 삯마차꾼 사내들과 함께 치터 반주에 맞춰 맑은 소프라노와 알토로 요들까지 부르기 시작하자, 환호는 끝이 없었습니다. 녀석들은 실컷 우리에게 입 맞추고, 왕후처럼 대접하고, 우리가 무릎에 앉아 주면 행복해했습니다. 하나는 제게 멋진 숄을 사 주려 했고 – ……, 다른 하나는 진지하게 사귀자고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때 어떻게 그렇게 들뜨고 대담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이를테면 사내들과 신사들이 빽빽이 우리를 에워싸고 서 있을 때, 우리는 연거푸 외쳤습니다. ‘자, 구혼자 가운데 누가 샴페인 값을 낼래요?’ 그러자 사내들과 신사들이 그 ‘영광’을 두고 거의 주먹다짐을 벌였습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였습니다! – 이런 영역으로도 우리는 자주 나들이를 되풀이했는데, 우리 둘만이 아니라 다른 ‘자매’들도 아주 많이 그랬습니다.”
이 보고들은 내적인 여성스러움, 곧 여자 옷을 입으려는 욕구만이 아니라, 남자들이 그처럼 완벽하게 속을 수 있었으니 분명 외적인 여성스러움, 곧 겉 외양의 완전한 여성다움도 증명한다. 디오닝이라면 그렇게 완벽하게 속이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빈에서 – 그리고 거기서만이 아니라 – 얼마나 많은 디오닝이 사랑스러운 아가씨와 춤추었다고 믿었겠는가, 그가 품에 안고 있던 것은 사랑스러운 우르닝이었는데! – 그러나 이 모든 것에서 나는 앞서 내가 세운 명제(『포르마트릭스』 § 115)가 확인되는 것을 본다. “성적 색채의 양극단은 우르닝들 사이에서, 남자와 여자를 한데 합칠 때의 바깥 두 극단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 100. 일시적 우르닝화. 여기서 나는 지금까지 전혀 짐작도 못 했고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던 현상 하나를 알려야 한다. 그러나 내 빈 통신원의 믿음직함과 성실함이 그 진실을 보증한다. 게다가 그 진실은, 이제야 그 의미가 내게 분명해진 다른 현상들로도 뒷받침된다. 이때 나는 학문이 요구하는 자유, 곧 성적인 일들도 적어도 암시는 할 자유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빈 통신원은 이어서 쓴다.
“‘우니베르줌’에서 우리를 야찬에 초대한 그 친절한 두 신사는 분명 우리를 화류계 여자로 여겼습니다. 그들과의 대화는 점점 허물없어졌고, 우리도 벌써 꽤 교태를 부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함께 호텔로 가자고 했습니다. 이제야 물론 우리는 온갖 핑계를 댔습니다. 그러나 소용없었고, 마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겁에 질려 거의 기절할 지경으로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정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사기꾼이었고, 더없이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입니다. 신사들과 함께 방에 들어서자 제 동무는 울기 시작했고, 저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몹쓸 장난을 용서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우리는 아가씨가 아니라고! 보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들은 당황해서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딱 잘라 말했습니다. 이제 자기들한테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우리는 남아야 한다고! – 그리고 – 우리는 아름다운 밤을 꿈결처럼 보냈고 – 아침에 찢어진 옷을 입고 집에 돌아왔는데, 물론 거기서는 한바탕 난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 그러니까 처음의 호감이 정체가 드러난 뒤에도 거부감에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나들이에서 우리가 동행 없이 집에 돌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내들이 마지막에 속은 걸 알아채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래도 우리와 즐겼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착각이 깨진 뒤 거부감 대신 일시적 우르닝화가 일어난 것이다. 반면에 이런 경우들도 있다.
a) 디오닝인 내 친구 하나를 어느 날 저녁, 아주 앳된, 여자 옷을 입은 사람이 정자로 꾀어 들였다. 거기서 똑같이 정체가 드러나자 거부감이 일었고, 우르닝화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이것은 그 디오닝 자신의 입에서 들은 것이다.
b) 마찬가지로, 거꾸로 나에게서도, 마인츠의 춤 천막에서 귀여운 사내아이 모습을 한 사람이 처녀로 드러났을 때(『인클루사』 § 82) 완전한 냉담함이 일었고 남성화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c) 기대했던 남성화 대신 거부감이,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일어난 경우는 우르닝 에리히 폰 자노미르에게서도 볼 수 있다. 젊고 아름다운 레오노르를 향한 그의 불타는 열정과 쓰라린 환멸은 『세 가지 기이한 추억』(엠. 슈타디온 백작 지음, 보흐니아, W. 피시, 1868, 64쪽)에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일시적 우르닝화의 사례 둘을 아는데, 둘 다 심지어 여자 옷 변장이 전혀 없이 일어났으므로, 위의 경우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만큼 더 쉽게 설명해 준다.
a) 베를린에서 한번은 밤에 뚜렷한 디오닝 하나가 젊고 잘생긴 우르닝을 거리에서 쫓아와 성적인 목적으로 자기 집에 데려갔다. 그의 열정은 몇 시간 계속되다가 갑자기 일종의 냉담함과 거부감으로 바뀌었다. 그 우르닝이 나중에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b) 다른 경우는 한 우르닝이 아주 믿을 만하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스물여섯 살쯤 되었을 때, H.에서 오후에 묵고 있던 호텔 방에서 스물세 살쯤 된 경기병, 의심할 여지 없는 디오닝을 성적으로 애무하며 만졌습니다. 그는 마지못해 허락했을 뿐입니다. 그는 무도장을 찾아간다며 저를 떠났습니다. 자정 무렵 그가 전혀 뜻밖에 다시 호텔 앞에 나타나 초인종을 울리고, 들여보내 달라며 제 방으로 안내하라고 요구합니다. 방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제 침대 위, 제 위로 몸을 던집니다. ‘아가씨를 하나도 구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때 그의 격렬한 행동은 결코 다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서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가슴과 가슴을 맞대는 포옹 말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더 강한 경우를 여러 번 알고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옮겨 적기가 어렵다. – 예전 나폴리의 스위스 연대에 있던 독일 병사 두엇은 디오닝인데, 거기서 한번 순전히 호기심에 우르닝 유곽을 찾아갔다. 그들 가운데 셋째 사람이 나중에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위의 빈 사례들에서는 여자 옷 말고도 변장한 사람들의 뚜렷한 여성형 우르닝 외양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그 외양은 정체가 드러나기 전에 그처럼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나타났고, 드러난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는 특히 여성스러움의 몸에 속한 부분들, 곧 부드러운 처녀 같은 몸매 등도 들어 있다.
– 런던 통신원이 1868년 4월 11일에 알려 준 경우 하나는 내게 분명하지 않은데, 여기 덧붙인다. “아름답고 처녀 같은 아다만티우스의, 이미 말씀드린 애인은 풍채 좋고, 아주 눈에 띄고, 엄청난 부자이며, 씀씀이도 후한 신사인데, 아다만티우스 이전에는 오로지 여자들하고만 관계했지만, 그 뒤로는 완전히 여성형 우르닝 쪽으로, 곧 속속들이 여자이고 얼굴에 화장하는 진짜 여성형 우르닝 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나는 곧 이것이 망설여진다. 여기서 우르닝화가 일어난 것인가? 그렇다면 단지 일시적인 것보다는 더한 것이다. 아니면 결합형 우라노디오니즘인가? 아니면 끝으로, 원래는 순수한 우라니즘, 그것도 남성형 우르닝 성향이었는데, 남성화로 밀려났다가 결국 원래 성향이 다시 나타난 것인가? 빈의 사례들을 보면 우르닝화가 있을 법하지 않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습관에 의한 우르닝화다. 어쨌든 주목할 것은 § 40에 붙인 내 마지막 메모, 곧 가장 완전한 남성형 우르닝 유형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 101. 우르닝 자웅동체. § 97에서 언급한 편지에서 나온 보고.
“런던, 1868년 3월 31일. 여기 아주 기이한 우르닝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결혼했는데,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요. 잘 자란 딸 둘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그를 자주 보았습니다. 그의 성적 욕구는 주로 수동적입니다. 그러나 외양은 거의 완전히 남성적입니다. membrum virile(남성 성기)는 정상으로 발달했습니다. 그 아래에 여성의 몸 구멍의 뚜렷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는 물론 이 이상을 될 수 있는 대로 숨기려 합니다. 그런데도 언젠가 그것을 본 한 우르닝은 질겁했습니다. 저는 이것을 그 우르닝 자신의 입에서 들었습니다.”
이른바 이 우르닝은 틀림없이 내가 앞서 언급한 우르닝 자웅동체 셋(예컨대 위 § 43)과 꼭 같은 몸을 가졌다. 주목할 점은 첫째, 그가 베를린의 우르닝 자웅동체처럼 우르닝들에게 자기네 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이고, 둘째, 그가 남자 옷을 입고 자라서 남자로 통하며 실제로 남편으로 결혼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뮌스터의 그 사람은 여자 옷을 입고 자라 아내로 결혼했었다.
§ 102. 순수한 우라니즘. 1868년 3월 24일, 외덴부르크(Oedenburg) 주에 사는 독일계 헝가리인으로, 평생 우르닝과 접촉해 본 적이 없는 서른두 살 남자가 내게 이렇게 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제 충동은 남성을 향했습니다. 여자와 성적으로 접촉하는 것에는 늘 억누를 수 없는 혐오를 느꼈습니다. 꽤 자주 시도해 보았지만 헛일이었습니다. [87] [88] 남자의 몸과 성적으로 접촉해야만 온전한 쾌락을 느낍니다. 밤의 꿈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남자 모습만 나타납니다.” 3월 17일에 그는 이렇게 썼다. “아, 좀 더 일찍 우라니즘에 관해 깨우침을 받았더라면! 17년 동안 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자주 제 건강을 해쳤습니다.” (성적인 존재에게 억지로 지운 금욕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리고 처음 내게 편지를 보낸 3월 10일에는 이렇게 썼다. “선생님의 글이 제게 마음의 평화를 되돌려 주었습니다.”
§ 103. 프로이센 작센 주에 사는, 당시 스물아홉 살 된 한 우르닝이 1867년 10월 18일 내게 이렇게 쓴다. “저는 저를 열렬히 사랑하는 아내의 행복한 남편이고, 세 살 난 귀여운 딸의 아버지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느끼는 것은 – 우정입니다. 혼인을 맺은 것은 사정이었지 사랑의 충동이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잘생긴 젊은 남자를 보면 저는 참된 성적 흥분인 저 열정적인 흥분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청년 시절부터 남자와도 결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늘 품어 왔습니다. [89] 이렇게 저는 마음속으로 남몰래 사랑하는 남자들을 헛되이 그리워합니다. 아, 모든 것을 억눌러야 하다니! 아무도 이것을 눈치채서는 안 되니까요.” 1868년 2월 21일에는 이렇게 쓴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제게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혼자서 저를 만족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제 사랑의 남성 이상형은 생각 속에서만 눈앞에 둡니다.” 오, 가엾은 사람이여! 이것이 우리에게 그토록 자주, 그토록 다급하게 권하는 결혼의 행복이다! 이 사람이 좀 더 일찍 자기 자신에 관해 깨우침을 받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고문대 위에 누워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 104. 내가 위(§ 30)에서 분리형 우라노디오닝으로 분류한 취리히의 내 친구는, 내 소책자들이 나오기 전인 1864년에는 나를 몰랐다. 그 앞 시기인 1862년, 당시 열아홉 살이던 그는 스물세 살쯤 된 순수한 우르닝 하나를 알았는데, 역시 스위스인으로, 나는 그를 비네아라고 부르겠다. 비네아는 열여섯 살에 아라우 근처 엥겔베르크의 가톨릭 김나지움 학생이던 시절, 바덴의 오펜부르크에서 온 열네 살 동급생을 깊고 격렬하게, 그러나 불행하게 사랑했다. 이 가엾은 비네아에 관해 내 친구는 1862년 8월 22일 일기에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말을 적었다.
“고난의 학교가 그를 덮쳤을 때 그는 흔들렸다. 이 고난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 바탕은 한 아름다운 소년을 향한, 실패로 끝난 순수하고 정결한 사랑이었다. 그 소년은 끝내 그의 우정을 물리쳤다. 이 사랑이 그를 불행하게 했다. 그는 이 끌림을 버릴 수 없었다. 거기에 성직자들의”(곧 성직자 교사들의) “매정한 처사가 더해졌으니, 그들은 그의 사랑에 울타리를 치려 했다. 그는 울분에 차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아, 무신론자가 되었고, 다시 신성 모독자가 되었으니, 한마디로 말해 미쳐 버렸다.
“오늘 나는 그의 엥겔베르크 일기를 읽었는데, 거기서 다음 두 대목을 여기 옮겨 적는다.
‘나는 몹시 몽상적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하나의 이상을 위해서라면 피와 목숨을 바치겠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한 학생이’ 곧 김나지움 학생이 ‘있었는데, 그런 아이는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재능 있고 순진했다. 겨우 첫마디를 나누었을 뿐인데 나는 벌써 그를 사랑했다. 그는 아름다웠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의 순진함 때문에 나는 그를 숭배했다. …… 나는 그의 손이 쥐는 힘을, 그의 입김을 느꼈다. 나는 그의 훌륭한 얼굴을 바라보며 황홀해했다. 우연히 그의 몸이 내 몸에 닿으면 나는 전기에 맞은 듯 움찔했다.’”
“이상한 일이다.” 내 친구는 덧붙인다. “아름다운 형상, 특히 아주 흔하게는 소년의 형상이 마음에 그토록 큰 작용을 하다니. 그리고 왜 하필 아름다운 소년이 어떤 사람들을 아름다운 처녀보다 더 매혹할 수 있는가?”
§ 105. 분리형 우라노디오니즘. 이 지극히 기이한 우르닝 변종(위 § 29 이하)에 관해 여기서 귀중한 세부 사항을 전한다. 체코 혈통으로 고귀한 집안 출신인 스물여섯 살의 보헤미아 친구가 1867년 10월 25일 독일어로 내게 이렇게 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 달콤한 비밀을 혼자 짊어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자주 가슴이 그토록 아프고 불안했던지. 그런데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사랑스러운 소년의 얼굴을 바라볼 때 가장 높고 순수한 기쁨을 느낍니다. 반면에 젊은 남자와 성적으로 접촉한다는 것은 소름이 끼칩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형언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아름답게 피어나는 소년들에게 끌어당깁니다. 처녀들보다 훨씬 더요. 처녀들도 사랑할, 곧 성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처녀들에게도 이따금 열을 올렸지만, 소년을 사랑하듯 그렇게 깊고 그렇게 다정하게 사랑한 적은 없습니다. 내가 사랑한 처녀들은 시간이 지나자 무덤덤해졌습니다. 나중에 그들을 떠올린 일은 드물었고, 떠올려도 특별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반면에 내가 사랑한 소년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숙녀들은 나를 잘생겼다고 하고, 나는 – 아름다운 성(性)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 아무 빌미도 주지 않았는데 연애편지를 여러 통 받았습니다. 얼마 전 한 젊은 부인이 내 누이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젊은 남자는 이 여자 마음에 들고, 저 젊은 남자는 저 여자 마음에 들지만, 당신 오빠는 모든 여자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도 그는 그런 데 별 관심이 없지요.’ 나는 아직 춤을 춘 적이 없고, 결혼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성에 대한 사랑에서 관능의 측면 말고는 본질적인 것이 별로 남지 않는 듯하다.) “내 환상을 깨뜨리는 유일한 것은 아름다운 소년이 나이가 들어 수염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열정은 식습니다. – 내 끌림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은, 그것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보증합니다. [90] 덧붙이면 나를 끄는 것은 아주 어리고, 연약하고, 수줍고, 처녀 같은 소년들뿐이지, 억세고 튼튼한 소년들이 아닙니다. 그것도 얌전하고 마음이 깨끗한 소년들뿐입니다. – 아름다운 소년을 가슴에 꼭 안고 그 맑은 눈을 뜨거운 입맞춤으로 덮고 싶은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열일곱 살 때, 우르닝이던 한 동급생을 사랑한 일에 관한, 슬프지만 더없이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다음 책 《네무스 사크룸》에 실릴 것이다.
1867년 11월 29일 그는 내게 이렇게 쓴다. “사랑하는, 소중한 친구여, 나의 유일한 믿을 사람인 자네와 내 비밀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내가 우리 카를 앞에서 얼마나 거의 어린애처럼 구는지 자네가 안다면, 자네는, 아니, 자네는 웃지 않겠지. 얼마 전 나는 그의 모자에서 그 아름다운 아폴론 같은 머리에서 빠진 머리카락 한 올을 보았네. 나는 그것을 몰래 가져와 성물처럼 간직하고 있네. 그리고 그 착한 아이 때문에 내가 벌써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 그 아이는 – 비유를 비웃지 말게 – 꼭 밀랍이나 설탕으로 빚은 것 같다네! 그리고 그 착한 천사 같은 눈을 자네가 한번 보아야 하는데! 나는 사랑스러운 천사 얼굴들이 있는 라파엘로의 성모를 보았고, 그 그림이 내 마음에 남긴 깊은 인상을 지금도 기억하네. 하지만 카를의 눈이 그보다 비할 바 없이 더 맑고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도 나는 안다네!”
XXI. 보유(補遺). 그리스인에게서 보는 여성적 외양. 동물계의 우라니즘
§ 106. 저 영국 젊은이 넷(§ 97)은 머리에 꽃을 꽂았다. 꽃으로 몸을 꾸미기 좋아하는 것은 본래적 여성형 우르닝만이 아니라 우르닝들 사이에 워낙 널리 퍼져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우르닝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열두 살 소년 때 나는 파란 수레국화 화관을 엮어 머리에 써 보고 몹시 흐뭇해했다. 다 큰 사람 중에도 적어도 단춧구멍에 장미 한 송이는 꽂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이가 많다. 하물며 본래적 여성형 우르닝이야. 이 현상을 그리스인에게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아테나이오스(15권 32장)는 크라티노스[91]의 없어진 희극 「ύι μαλδαχοί」(곧 바로 「여성형 우르닝들」)의 한 조각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데, 거기서 여성형 우르닝들은 이를테면 마르티알리스에게서와 비슷하게 신랄하게 조롱당한다. [Μαλδαχοί 또는 μαλαχοί], 곧 “부드러운 자들”, 흔히 “effeminati”(여성화된 자들)로 옮기는 말이 바로 이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신약 성경에서도 μαλαχοί는 여성형 우르닝을 뜻한다. 로마에서도 이들은 똑같이 molles(부드러운 자들)라고 불린다. 그래서 역시 이들의 신랄한 적수인 유베날리스는 이들에게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Magna inter molles concordia!”(부드러운 자들 사이의 단결은 대단하다!)이기 때문이다. 크라티노스에게서는 그러니까 한 “부드러운 자”가 이렇게 말하는데, 여기서도 과장이 실로 효과적이다.
“나는 온갖 꽃으로 머리에 화관을 씌운다. 백합, 장미,
제비꽃, 봄에 돋아난 아네모네 꽃받침, 크로커스 꽃,
붓꽃, 헬리크리숨 가지, 크리눔, 코스모산달룸, 시심브리움, 세르필룸,
오이난테, 헤메로칼리스, 안트리스쿰, 멜릴로투스, 그리고 키티수스로!”
디오게네스는 언젠가 말을 탄 한 사람이 턱을 매끈하게 면도하고, 향유를 바르고(향수를 뿌리고), 그에 걸맞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옮겨 적을 수 없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그 이름은 그가 그 사람에게서 곧바로 여성형 우르닝을 알아보았음을 알려 준다. 턱을 매끈하게 면도한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자연이 너를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만들었다고 자연을 고발해야 하겠느냐?” (아테나이오스 13권 18장.)
곧 모든 사람이 수염을 깎은 것은 결코 아니었고, 보아하니 자연이 준 선물인 수염이 속으로 못마땅했던 우르닝들만 깎았던 것이다. 여러 번 언급한 유대인 여성형 우르닝 블랑크에게서도 자기 수염을 없애 버리려는 충동을 본다(『인클루사』 § 18). 이런 우르닝들은 실로 자연을 혹독하게 고발한다. 자연이 자기들에게 여성의 몸이 아니라 남성의 몸을 주었다고, 그 몸 안에서 그들은 왼손 장갑에 낀 오른손처럼 불편하다고. (『인클루사』 § 105 이하.)
여기에 아테나이오스(13, 15)에서 한 가지를 덧붙이고자 한다. 스토아학파도(위 § 79의 플라톤만이 아니라) 이렇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Δεί μή των σωμάτων, άλλά τής ψυχής, έραν.
(몸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해야 한다.)
§ 107. 마침 인쇄 중이던 1868년 4월 22일에 이런 책이 내게 보내져 왔다. “Alcibiade, enfant à l’école; traduit de l’italien de Ferrante Pallavicini; Amsterdam chez P. Marteau; 1866.”(『학교에 다니는 아이 알키비아데스』, 페란테 팔라비치니의 이탈리아어에서 옮김, 암스테르담, P. 마르토 발행, 1866년) 서문 XV쪽, 본문 128쪽. (이탈리아어 원본은 1652년에 익명으로 나왔다. 1743년에 언급된 우라니즘 옹호론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아라 스페이』 § 39.) 여기서 몇 군데를 인용한다.
a) (우르닝의 사랑의 행위가 자연에 반하지 않는다는 위의 내 논증, §§ 50–57, 83, 84 참조.) 36쪽. 저자의 말:
“Les lois, dictées par la nature elle même, ne peuvent pas être contre la nature. Un acte est naturel, quand la nature y pousse.”(자연 스스로가 정한 법칙은 자연에 반할 수 없다. 어떤 행위는 자연이 그리로 떠밀 때 자연스럽다.)
b) (오스트리아 군대 안의 우라니즘 또는 우르닝화에 관한 내 보고, § 40 참조.) XI쪽. 프랑스어 역자의 말:
“Les appréhensions sur l’armée prussienne”(지난 세기의 이야기다. 심한 과장이다) “seraient de mise aujourd’hui sur l'armée française. Dans la dernière session du sénat le marquis de Boissy a, sans ambages, exprimé ses craintes sur l’invasion des moeurs arabes dans nos régiments.”(프로이센 군대를 두고 하던 걱정은 오늘날이라면 프랑스 군대에 들어맞을 것이다. 지난 원로원 회기에 부아시 후작은 우리 연대들에 아랍 풍습이 스며드는 데 대한 걱정을 에두르지 않고 털어놓았다.)
c) (동물계의 우라니즘, § 94 참조.) 45쪽. 저자의 말. 여기서는 먼저 사자·개·수탉에게서 보이는 현상들을 드는데, 이것은 분명 우르닝화일 뿐이다(개들 사이에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은 나도 위 § 40에서 이미 내비쳤다). 그다음에 매우 주목할 만한 기록이 뒤따른다. 나는 거기서 물론 순수한 우라니즘을, 그것도 폭력의 길로 얻어 낸 우르닝의 향락을 본다.
“Le perdreau”(자고새 수컷) “a guerre avec les mâles de son espèce, pour arriver à la conquête du tribut d’amour. Le vaincu se soumet au caprice du vainqueur et satisfait ses désirs. L’autre n’emploie contre lui que les armes d’amour, et ne le fait pas mourir.”(자고새 수컷은 사랑의 공물을 차지하려고 같은 종의 수컷들과 싸운다. 진 쪽은 이긴 쪽의 변덕에 굴복하여 그의 욕망을 채워 준다. 이긴 쪽은 진 쪽에게 사랑의 무기만을 쓸 뿐 그를 죽이지 않는다.)
XXII. 그리스와 로마에서 우르닝의 사랑을 정당화한 방식
§ 108. 사람들은 그 사랑을 간단하고 소박하게, 자연에 맞게 정당화했다. 남성의 젊은 아름다움이 우르닝의 마음에 미치는 자연스러운 끌림으로.
루키아노스에게서는 프리아포스가 젊고 아름다운 바쿠스를 탐낸다. 아폴론이 말한다.
“프리아포스는 참으로 용서받을 만하네. 오 바쿠스여, 그대처럼 아름다운 이를 그리워한다면 말일세.” (「신들의 대화」 23.)
신들의 왕 제우스 자신이 “결혼한 우르닝”(실은 우라노디오닝)이었고, 유노는 그와 결코 “행복한 결혼”을 하지 못했다. 질투에 찬 그녀가 날카로운 혀로 그의 가니메데스 사랑을 나무라자, 그는 아주 태연하게 대답한다.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젊은이에게 입 맞추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내가 당신에게 그의 입맞춤을 단 한 번만 허락한다면, 그가 건네주는 달콤한 술을 이 즐거움보다 덜 귀하게 여긴다고 당신은 더는 나를 탓하지 않을 거요.” (「신들의 대화」 5.)
마르티알리스도 이렇게 푸블리우스 아페르에게 자신을 변호한다(9. 26).
Dantem vina tuum quoties aspeximus Hyllum,
Lumine nos, Afer, turbidiore notas.
Quod, rogo, quod scelus est, pulchrum spectare ministrum?
Aspicimus lunam, sidera, templa, Deos!
Avertam vultus? tanquam mihi pocula Gorgo
Porgeret, ac oculos oraque nostra tegam?
“네 힐루스가 내게 잔을 건넬 때 내가 그를 바라볼 때마다 네 눈길이 나를 꿰뚫는다. 하지만 아름다운 술 시중꾼을 바라보는 것이 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내가 눈길이라도 돌려야 하는가? 고르고의 무시무시한 메두사 눈길은 맞은 자를 돌로 바꾼다. 그러니 힐루스가 다가오면, 마치 고르고가 내게 잔을 건네러 오기라도 하는 듯이 나는 몸을 돌리고 눈과 얼굴을 가려야 하는가?”
또 다른 곳에서(10. 98):
Perdet te pudor hic! Habere, Publi,
Mores non licet hos et hos ministros!
“이런 술 시중꾼들을 두고서 이런 가혹함을 부리는 것은, 맹세컨대, 허락되지 않는다!” [92]
XXIII. 우르닝과 여성의 결혼. 남편으로서의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 왕자. 우르닝의 사랑의 결합.
위 § 38.
§ 109. 하드리아누스와 프랄랭의 결혼에 이어, 뷔르템베르크의 프리드리히 왕자와 브라운슈바이크 공녀 마리아 카롤리네의 결혼을 언급한다. 이 프리드리히 왕자는 훗날의 뷔르템베르크 국왕 프리드리히 1세다. 1868년 3월 6일 자 《노이에 뷔르츠부르거 차이퉁》 문예란은 이 공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수수께끼처럼 슬픈 운명을 겪었다. 거칠고 자연에 반하는 악덕에 빠진 남편이 아직 핀란드 총독이었을 때, 그녀는 러시아 황후의 보호 아래로 피신했고, 황후를 통해 그 역겨운 남편에게서 강제로 떼어 내졌다고 한다. 이 설에 따르면 그녀는 러시아의 한 수도원에서 죽었다. 반면 뷔르템베르크에서는 그녀를 더 비밀스러운 이야기와 연결한다. ‘슈트라스부르크의 사형 집행인이 어느 날 자기 집에서 강제로 끌려가 여러 날 길을 간 끝에 눈이 가려진 채 어느 지하 방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한 아름다운 여인의 목을 베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더 이른 시대의 것이니, 여기서 되풀이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은 이 사랑스러운 공녀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녀의 사연을 밝히려는 온갖 노력에도, 사람들이 장담하는 대로라면, 그녀의 최후는 오늘날까지 깊은 어둠에 싸여 있다.”
두 번째 설이 내비치는 바는 거의 믿기지 않는다. 어쨌든 그 결혼은 지극히 불행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르닝인 남편이 아내에게서, 그리고 눈에 띄게 아내 편을 드는 한 디오닝에게서 “거칠다”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다른 이들은 그를 정력적이라고, “풍부한 개성”이라고 부르고, 그의 운명을 비극적이라 한다. 그가 우르닝이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자기가 속하지 않은 시대와 모순 속에 서 있었다. 그는 다네커의 손을 빌려 대리석으로 에로스를 빚게 했다. 그러나 반달족에게 이 조각은 한낱 돌이요 조롱거리다! 그의 시대는 그에게 잃어버린 시대였고, 그는 그의 시대에, 아니 자기 자신에게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 그의 탓 없이!”
회슬리는 그를 이렇게 평한다. (『에로스. 남자들의 사랑』 등, 제1권, 글라루스, 1836년, 296쪽.)
§ 110. 우르닝과 여성의 결혼에 대해 회슬리는 이렇게 말한다(앞의 책, 269쪽).
“우리 성직자들이 주의 성전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본성상 영원히 서로 밀어내는 존재들을 피할 수 없는 파멸로 한데 묶어 버린다면 그것은 모독이다. 인간 본성의 이 부분에 대해 우리 학자들이 진작 빛을 찾고 널리 퍼뜨렸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 문제 위에 아직도 이런 어둠이 드리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제 본성을 알기 전에 맺은 이런 결혼을 나는 “앞질러 맺은 혼인(Ehe ehe)”이라 불렀다. 그 위에 대고 “화로다, 화로다(wehe, wehe)!” 하고 외쳐야 할 것이다.
티불루스(1. 9)도 불행한 우르닝 결혼 하나를 이야기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
또 하나의 예를 영국에서 내게 알려 왔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 침묵하기로 한다. 두 배우자가 – 남편은 유명한 소설가다 –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별거하고 있다.
부부로 한데 묶인 이런 존재들,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제 마음을 상처 입힌 사슬을 다시 끊어 버리고 이제는 모든 공동생활을 피해 달아나는가!
그렇다면 이 숱한 잘못된 결혼은 어디서 오는가? 거듭 말하거니와, 지배적인 체제가 불행한 맹목 속에서 우라니즘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한갓 앎마저 자물쇠와 빗장 뒤에 가두었기 때문이다. 우르닝들에게서 자기 자신, 자신의 본성과 본성이 정한 사명에 대한 앎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묻거니와, 이 은폐 체제가 디오닝들에게 이로운가? 딸을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을 부모들에게 이로운가? [93]
§ 111. 우르닝 결혼과 우르닝의 사랑의 결합. 도덕적 정당성. 그런데 우르닝과 여성의 결혼이라도, 그 여성이 우르닝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가 자기 본성과 사명을 의식하면서도 이 사랑에 자기 사랑의 삶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런 경우에도 나는 그 결혼을 단죄할 수 없다. “그런 경우에도”란 주 27의 경우, 곧 후손을 얻으려는 이성적 결혼 말고도 그렇다는 뜻이다. [94]다만 이 결혼은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우르닝이 평생 자기 사명에서 떼어져 있지 않도록 말이다. 그는 자기 사랑의 삶 가운데 일부만을 한 여성에게 바쳐도 된다.
이 희생은 내가 이미 『아라 스페이』에서 기린 것, 곧 디오닝이 한 우르닝에게 스스로 몸을 내주어 우르닝의 사랑의 결합을 맺는 일과 짝을 이룰 것이다. (이 결합도 우르닝 결혼과 똑같이 해소할 수 있다.) 위 §§ 49, 52에서 밝혔듯이, 사랑받는 젊은 디오닝은 바로 자연의 목적에 들어맞으며, 그러므로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르닝에게 사랑을 허락한다 해도 자연에 반하는 것도,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그의 허락은 도덕률 앞에서도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 사랑받되 마주 사랑하지 않는 여성이 디오닝에게 사랑을 허락하거나 디오닝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사랑을 허락할 때와 똑같은 정도로 – : 곧 신의 있는 사랑의 결합 안에서라면. [95] “그러나 그것을 인가하는 형식이 없다.”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을, 이 결여가 사랑을 허락하는 젊은 디오닝에게 부도덕한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이 형식은 여기에 아직 아예 없고, 그 없음은 그의 탓이 아니며, 자연의 권리는 피조물이 세운 어떤 형식보다도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이 자연의 권리에 따라 살고 자연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은 그에게도 인권이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약혼자 사이에 불가능한 결혼을 대신하여, 신의에 기초한 사랑의 결합이 대리하는 힘을 가져야 한다. 인가받지 못한 이 우르닝의 결합은, 사제가 없는 무인도에서 디오닝과 처녀가 맺는, 인가받지 못한 디오닝의 비상 혼인과 도덕적으로 동등하다. 이 비상 혼인은 개신교 교리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우르닝과 그의 연인은 영원히 무인도에 있는 셈이다. (『아라 스페이』 §§ 6, 51, 53, 주 28.)
이것이 내 확신이다. 반박해 보라. 어떤 이들은 자연의 존재들에게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것을 검토도 없이 죄스럽다고 선언하는 것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일이라 여긴다. 이런 이들과는 논쟁하지 않는다.
이미 말했듯이 인가하는 형식의 단초가 고대 로마에 나타났고,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교 지역인 에페이로스에 다시 나타난다(『아라 스페이』 XXIII쪽). 내가 전해 들은 바로는, 샌드위치 제도와 남태평양의 다른 섬들에는 사제가 정식으로 축복한 우르닝의 사랑의 결합이 수백 년 전부터 많이, 그리고 완전히 관습에 맞게 존재한다. 젊은 연인은 “마요”라 불린다. 그는 약혼자와 식탁과 침상을 함께한다. 둘은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 그들은 사제에게 가고, 엄숙하게 축복이 내려진다. 출처로는 뒤몽 뒤르빌의 『남태평양과 남극 여행기』를 일러 주었다.
XXIV. 누가 너희에게 그 권리를 주었는가?
§ 112. 왜 우리에게 사랑의 행복이 약속되었던가? 성숙이 깨어나면서 예감하지 못한 감정의 첫 봄바람이 어린 가슴을 스쳐 갔을 때, 그토록 감미롭게 아양 떨며, 그토록 나직하고 부드럽게,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왜 우리에게 사랑의 행복이 거짓으로 약속되었던가?
내 가슴에도 자연은 속삭였다.
“나는 모두를 위해 사랑을 지었다. 네 가슴에도 그 싹을 심었다. 보라, 나는 한없이 선하니.”
그리고 자연이 약속한 것을 운명은 이루어 줄 채비가 되어 있다. 마음이 응답받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에게 헛된 망상이 아니다.
끝으로 도덕률은 도덕적인 절제만을 요구한다. 자연의 권리를 가로막지는 않는다.
그러니 자연은 약속하고, 운명은 베풀고, 도덕률은 허락한다. 그런데 너희의 증오가 짓밟는다! 누가 너희에게 우리를 속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받은 우리의 권리를 빼앗을 권리를 주었는가?
§ 113. 우르닝은 사랑한다! 불타는 영혼의 온 힘으로 사랑한다. 오늘도 일찍이 그리스와 로마의 우르닝들과 똑같은 열정과 간절함으로.
너희는 사라져 간 더 행복한 세기들의 이 우렁찬 목소리들을 잘 안다. 짐짓 모르는 체하려 해도 말이다. 이 사랑에 대해 그토록 진실하게, 그토록 가슴 저미게, 그토록 환희에 취해 증언하는 그 목소리들을.
Ω παί παρδένιον βλέπων,
Διζημαι σε, σύ δ' ού χλύεις
Ούχ είδώς, οτι τής έμής
Ψυχής ήνιοχευεις!
아나크레온의 그리움이 그의 바틸로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테나이오스 13, 17.)
“오 처녀처럼 바라보는 소년이여,
나는 너를 부르건만 너는 듣지 않는구나.
너는 모르는구나, 네가 얼마나 거세게
내 영혼을 다스리는지!”
“그는 연인에게서 자기 모든 고통을 고칠 유일한 의사를 본다.”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하는 말이다.
테오크리토스가 그의 연인에게(『목가』 12, 1–2):
Ηλυδες, ω φίλε χούρε, τριτά σύν ωθχτί χαί αω,
Ηλυδες. Οί δέ ποφοίντες έν αματι γηράσχοθσίν!
“왔구나, 오 사랑하는 젊은이여, 사흘째 밤과 새벽이 지나서. 네가 왔구나! 하지만 그리움을 품은 자는 [헛되이 기다리는] 단 하루 만에 늙은이가 되는 줄 안다.”
베르길리우스가 알렉시스에게:
Huc ades, o formose puer!
Jam sol crescentes decedens duplicat umbras;
Me tarnen urit amor!
“오 내게로 오라, 아름다운 소년이여! 기우는 해가 벌써 자라나는 그림자를 두 배로 늘이는데, 나는 사랑에 타는구나!”
칼푸르니우스 시쿨루스: [96]
Quisquis amat pueros, ferro praecordia duret!
Nil properet, discatque diu patienter amare;
Perferat et fastus. Tum demum gaudia sumet,
Si modo sollicitos [97] aliquis Deus audit amores.
“소년들이 네 마음을 흔든다면 쇠로 마음을 둘러라! 아무것도 서두르지 말고 오래 참으며 사랑하기를 배우라. 숱한 오만도 견뎌 내라. 그러면 언젠가 기쁨을 맛보리라. 자애로운 신이 애타는 사랑을 들어주기만 한다면.”
페트로니우스:
Qualis nox erat illa, Di Deaeque!
Quam mollis torus! Haesimus jacentes
Et transfudimus hinc et hinc labellis
Errantes animas. Valete, curae
Mortales; ego sic perire coepi!
(신들이여 여신들이여, 그 밤은 어떤 밤이었던가! 침상은 얼마나 부드러웠던가! 우리는 누운 채 서로 엉겨 붙어, 이쪽에서 저쪽으로 입술을 통해 떠도는 영혼을 서로 부어 넣었다. 잘 있거라, 덧없는 근심들이여. 나는 이렇게 죽어 가기 시작했다!)
(하인제의 독일어 번역, 『포르마트릭스』 § 122에 실음.)
그리고 우리 기원 14세기의 페르시아인 하피즈: [98]
(가잘.)
네 뺨의 붉은빛보다 더 고운 것은,
사랑스러운 소년이여, 없도다.
여기 이끼 위의 쉼 자리보다
더 부드러운 것은 없도다.
불타는 입맞춤이 두려우냐?
거리낌 없이 굴어 보아라.
오 내 사랑, 너와 나누는 속삭임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도다!
우라니데는 사랑한다. 그들은 결합을 맺는다. 그에게 허락된다 – 사랑받는 이가 스스로 허락한다! –, 사랑의 지복을 마음껏 들이켜는 것이! 자연이 힘차게 손짓한다. 그는 따른다! 자연이 공물을 요구한다. 그는 바친다! 자연이 제물을 원한다. 그는 제물을 드린다! 처음으로 그는 느꼈다. 그 말의 가장 그리움에 찬 뜻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
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이 세상에도 낙원이, 아니 모든 낙원 위의 낙원이, 모든 하늘 위의 하늘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는 안다. 지상에서 지복이 머무는 곳은 오직 한 곳, 사랑하는 이의 가슴뿐이라는 것을.
“이제껏 나는 인간으로서 느꼈다. 그런데 너는 내게 넥타르를 마시게 해 주었다!” 신에게처럼!
그는 사랑으로 말미암아 자기 영혼이 얼마나 높여지고 얼마나 고귀해졌다고 느끼는가! 모든 이기심이 그에게서 녹아 사라진다. 떠오르는 아침 해에 알프스 바위 위의 눈이 녹듯이. 보라, 이기심은 사랑의 녹이는 힘 앞에 녹아 없어진다. 처음으로 그는 한 사람을 위해, 곧 제 마음의 소중한 이를 위해 진심으로 기꺼이, 용감히 희생할 줄 알게 된다. 우리의 사랑에도 이 말이 들어맞는다.
“사랑은 자기 것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거짓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제부터 그의 마음은 다른 모든 이웃을 위해서도 더 맑게, 더 사심 없이 뛴다. 제 삶의 모든 슬픔과 수고, 그리고 온 세상과 화해한 채로. 그래서 우르닝은 사랑하는 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하늘의 인사처럼 바라본다,
내가 기대는 나의 별로,
내가 믿고 따르는 거룩한 빛으로.
너로 말미암아 나는 바른 길을 찾는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이 황홀의 봄을, 천 송이 꽃을 단 이 움트는 오월을, 자연의 손에서 나온 이 풍요롭고 충만한 작품을,
너희는 감히 모독하는 손으로 부수려 하는가? 모독하는 발로 이 꽃봉오리들을 무참히 짓밟으려 하는가?
묻거니와, 누가 너희에게 그럴 권리를 주는가?
너희는 감히 사랑하는 자를 중금고에 처넣거나, 겁에 질린 노루처럼 이 피난처에서 저 피난처로 몰아대어 머리 둘 곳조차 찾지 못하게 하려는가?
그것도 오로지 그의 사랑 때문에?
XXV. 1867년 12월 20일의 브레멘 판결. 글자 셋과 숫자 둘. “브레멘은 캅카스에 있는가?” 등대의 불빛.
“정직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깊이 상하게 하는 불의는 법률을 통해, 재판의 형식 아래 저질러지는 불의다.”
베리예, 1868년 2월 14일 입법원에서.
§ 114. 주된 피고인(위 § 69 참조)인 우르닝 펠트만은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그것도 분명히 “자연에 반하는 음행의 죄로”였다. 물론 법원은 징역형을 선고하던 관행에서 처음으로 벗어났다. 법원은 그에게 1년의 단순 금고형만을 선고했다. 내게 온 편지에 따르면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젊은 디오닝 셋 가운데 자이프와 뵈뇨는 책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되었고, 그루너는 4주 금고형을 받았다.
이 사건의 판사들과 배심원들, 그리고 검사와 변호인에게(또 브레멘의 모든 판사와 모든 참사 의원에게도) 이 글의 처음 72개 절을 원고본으로 인쇄하여 내 서명을 붙여 며칠 전에 보내 두었다. 그런데도 이틀에 걸친 심리 전체에서도, 판결에서도, 바로 이 사건의 핵심 문제인 물음은 한마디도 제기되지 않았다. “여기 드러난 남자와 남자의 사랑의 표현이 자연이 심어 놓은 성향으로서 자연에 반함이라는 개념에 들어가는가, 아닌가?” 이 물음을 따지지 않은 것은 변호인 모어 박사의 참으로 무책임한 처사로 보인다!
판결은 사실관계로, 상대의 몸 안에 들어가는 일 없이 서로 만져서 만족을 얻은 것을 든다. “하지만 이것도 형사상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이며, 특히 보통법 관행에 따라서도 그러하다.” 그 근거로 불행히도 골트다머(『프로이센 형법 문고』 제11권, 1863년, 425–432쪽)를 인용하는데, 골트다머는 바로 베를린 최고 법원이 정반대를 자세히 논했다고 전한다. 곧 삽입을 지향하지 않는 남자와 남자의 사랑의 표현은 무엇이든 프로이센 법률로도 보통법 관행으로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레멘 판결은 대체로 인용에 운이 없다. 아래를 보라.)
“형량을 정하는 데에는 다음을 고려한다. 펠트만은 공공질서와 풍속을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 젊은 남자들을 그 만지는 행위로 유혹했다.” 그 젊은 남자들은 열아홉 살이었다! 맙소사, 공공질서와 풍속을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 열아홉 살 처녀를 유혹한 사람을 대체 누가 처벌한단 말인가? 처벌할 수 있는 “유혹”은 미성년자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문명 유럽 어디서나 인정된다. 브레멘에서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브레멘에서는 이런 원칙에 따라 아마 쉰 살 남자를 “공공질서와 풍속을 위태롭게 하는 방식으로” 유혹한 처녀도 처벌하겠다는 말인가?
“그 단순한 만지는 행위에 대해서도 형벌은 브레멘 관행상 본래 징역형이다.” (오, 브레멘 관행이여!) “그러나 관행이 음행 범죄를 더 관대하게 다루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고, 금고형만을 정한 최근의 입법들도 고려하여 징역형은 피한다.” (그러니 프랑스, 바이에른, 1867년 오스트리아 형법 초안이 처벌을 아예 폐지했다는 사실은 완전히 무시된 것이다!)
§ 115. 그런데 이 판결의 글자 셋과 숫자 둘은 참으로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 1867년 12월 20일 자, 19세기의 이 브레멘 형사 판결은 – 제 눈을 거의 믿을 수 없을 지경인데! – 분명히 다음 세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1) 형사 재판 법령,[99]
2) causa 32, quaestio 7, caput 13. 14. X.(제32사안, 제7문, 제13·14장), 곧 아득한 옛날 교황이 법률의 효력을 부여한 수도사 그라티아누스의 종교 판례집. 두 대목, 제13장과 제14장은 교부 가운데 한 사람인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다. 둘 다 우르닝의 사랑이 자연에 반한다는 통속적 오류를 따른다. 둘은 「로마서」를 인용하니(위 § 58, c 참조), 우르닝이 자연을 떠났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순전히 종교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둘은 이렇게 규정한다(아마 판사보다는 입법자에게): 우르닝의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처벌하라.” (이 인용에서도 판결은 별로 운이 좋지 않다. 판결문 기초자 양반은 분명 그라티아누스 교령집에 들어 있는 두 대목을 그레고리오 9세의 교령집으로 옮겨 놓는다! 그가 그 대목들을 미리 들여다보기는 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아도 될까?)
3) 글자 셋과 숫자 둘, 곧
“nov. 77.”(신칙법 제77호)
아, 유스티니아누스의 신칙법 제77호여! 너를 다시 만나는구나! 더없이 순진한 미신이 낳은 가련한 자식이여! 그것도 문명 세계의 한 형사 판결에 유효한 법률로 올라, 제 본성의 권리를 따른 한 인간을 가두는 일을 너로써 정당화하려 하다니? 이런 처사를 네가 정당화해야 한다고, 네가?
이전부터의 내 독자들은 내가 놀라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옛 여자 친구를 만날 것이다. 이 신칙법은 다름 아닌 서기 538년(1538년이 아니다!)의 그 야만적 포고, 『인클루사』 § 62에서 내가 조명한 그 포고다. 거기서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더없이 기상천외한 동기에 이끌려 콘스탄티노폴리스 시에 우르닝들을 상대로 한 전면적인 경찰·형사 사냥을 명한다. 그 감동적인 동기란 무엇이었던가? 황제는 문자 그대로 이렇게 말한다.
“Injungimus istis, abstinere ab hujusmodi luxuriis, ne propter hos impios actus civitates pereant cum habitatoribus. Docemur enim divinis scripturis: propter hos actus clvitates periisse cum hominibus.... Propter talia enim delicta et fames et terrae motus fiunt et pestilentiae.”
곧 “우리는 그들에게 이런 정욕을 끊으라고 엄히 명한다. 이 불경한 짓 때문에 도시들이 주민과 함께 멸망하지 않도록. 거룩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도시들이 이 짓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멸망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범죄 때문에 기근과 지진과 역병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고서 그는 사냥을 명한다. “ne et civitas et respublica laedatur”,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도 로마 제국도 해를 입지 않도록”, 다시 말해 제국에 기근이나 지진이나 역병이 생기지 않도록, 또 화려한 도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소금 호수 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팔레스타인 사해 기슭의 죄 없는 아스팔트와 나프타 샘들은 잘 알려져 있듯이 끊임없이 저절로 불이 붙는다. 그런데 유스티니아누스는 아주 진지하게, 그 불을 일찍이 거기서 멸망했다는 저 유명한 두 자매 도시 주민들의 그 숱하게 입에 오르는 우라니즘 탓으로 돌려야 한다고 믿는다! 신칙법 제141호(6년 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Justum Deus supplicium his, qui olim in Sodomis habitabant, propter hunc furorem intulit, ut in hunc usque diem ea terra igni conflagret inextinguibili.”
“하느님은 이 광란 때문에 소돔의 옛 주민들에게 정당한 심판을 내리셨으니, 그 땅은 오늘날까지 꺼지지 않는 불로 타고 있다.” 이 불은 잘 알려진 이야기대로라면 심지어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자, 유스티니아누스여, 너는 만족해도 좋다. 너는 네 신칙법 가운데 하나에서 캅카스의 어느 작은 야만 민족 차니인이 네 형법 하나를 받아들였다고 우쭐댄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바로 이 신칙법 제77호다. 그런데 야만적인 차니인 말고도 야만적인 – 오 맙소사, 고도로 교양 있는 이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 브레멘 사람들까지 538년의 네 지진·역병 예방 칙령에 따라 재판을 한다니, 이제야 너는 아케론 강가 망령들 사이에서 얼마나 환호하겠는가? 이 소식이 망령의 나라에 닿았을 때, 더없이 기뻐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소식을 가져온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브레멘 사람들? 벗이여, 그 작은 겨레에 대해 알려 다오.
말해 보라, 그들은 캅카스의 어느 골짜기에 사는가?”
“형사 법학 풍자 신문”이 있다면 기막힌 기회를 얻을 것이다. 동프로이센의 기근과 우역(牛疫)은 물론, 소금 물결에 삼켜진 토르톨라섬과 펠트만이 받은 유스티니아누스식 판결이 때를 같이한 것까지 서로 엮을 기회를. 그런 신문은 이렇게 대담하게 주장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훌륭한 도시 브레멘은 그 존엄한 ‘관행’에 근거하여, 그리고 유스티니아누스의 저 이름난 자연과학적 권위에 따라, 우역에서, 또 동프로이센과 토르톨라의 운명에서, 우르닝의 사랑에 내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형벌의 최신판을 냄새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브레멘의 행복한 땅에서 동프로이센의 재난과 우역을 막기 위해, 또 마찬가지로 소금 호수에 삼켜지거나 아예 타오르는 유황 못의 꺼지지 않는 불에 삼켜질까 두려워서, 서둘러 가련한 펠트만을 중금고에 처넣었다!”
이 얼마나 기이한가! 가톨릭 국가 오스트리아는 자국 형법을 분명히 학문의 연구에 기초하는데(위 § 70), 개신교 도시 브레멘은 광신적인 중세 이전 초정통주의의 역청과 유황 법에 따라 태평하게 계속 사람들을 가두고 있다! 이것이 우리 세기에 걸맞은가?
판사 세 사람이 불행히도 “브레멘 관행”에 근거하여 19세기에 유모의 옛이야기로 동기를 댄 법률에 따라 사람들을 유죄로 판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고, 그런 법률을 끌어대는 판결에 서명을 거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들의 이름을 알아 두는 것도 흥미로울지 모르겠다. 미고, 부아슬리에, 하이네켄 씨였다.
§ 116. 내게 전해진 바에 따르면 펠트만은 자기 변론을 이런 훌륭한 말로 맺었다.
“판사 여러분, 여러분이 여자를 사랑할 권리가 있는 것과 똑같이 저에게도 남자를 사랑할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둘 다 이 권리를 하느님에게서 받았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하신다면, 여러분의 가슴에 그러셨듯이 제 가슴에도 사랑의 충동을 심어 주신 하느님의 정의를 범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단죄할 힘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럴 권리는 저는 여러분께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것으로 그는 해야 할 말을 다 했다.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곧 자연의 권리에 따라 그는 무죄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권리의 언어 앞에서도 차갑고 귀먹은 채 무자비하게 유죄를 선고하는 “브레멘 관행”에 대해서는 무어라 해야 하는가?
그러나 물론 나는 판사가 아니라 입법자를 고발한다. 이 “브레멘 관행”을 아직 끝장내지 않은 입법자를 고발한다! 펠트만의 무정한 유죄 판결에 대한 책임은 그 혼자 진다!
§ 117. 그렇지만 공정을 위해 한 줄기 빛도 언급해야겠다. 직무를 맡은 검사 파울리 박사에게도 나는 그 인쇄물을 보냈다. 그는 우리 대의의 정당함을 놀랄 만큼 이해했다. 그는, 바로 그가, 이 처벌이 자연의 권리 앞에서 정당한지는 적어도 의심스럽다고 인정했다. 공식 고발인인 그가 논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고인은 자신이 기소된 것 자체를 야만이라 부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옳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에서 처벌을 폐지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이 폐지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브레멘에서 그렇게 될 때까지는, 저는 제 입장에서 법률을 대변해야 합니다.”
알다시피 검사는 현행법을, 그것이 펠트만이 호소한 더 높은 권리에 들어맞아서가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대변해야 한다. 그러니 파울리 씨는 이것을 인정한 셈이다.
“이 기소가 야만이라는 것은 더 높은 권리의 입장에서는 옳을지 모른다.”
우라니즘에 대해 공직자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던가? 검사들, 법의들, 교수들 등이 지금까지 우라니즘에 대해 한 말은 길게 인쇄되어 나와 있다! [100] 그런데 이제, 이제야 마침내, 그런 입에서 처음으로 이해의 말이, 마음으로 느끼는 정의의 말이 나왔다! 참으로 우리는 깨지기 쉬운 배를 타고 캄캄한 밤 울부짖는 폭풍을 뚫고 외로운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수평선 위로 구원을 알리는 등대 불빛이 떠오른다!
브레멘 검사의 이 말은 이론의 첫 승리요, 연구의 첫 열매다. 그것은 자유의 꽃봉오리다.
그러므로 체제가, 브레멘 관행이 펠트만의 자기변론을 꺾고 거둔 승리는 피로스의 승리일 뿐이다! 승자의 목덜미에 단검이 꽂힌 승리, 승자가 “이런 승리가 되풀이되면 나는 피 흘려 죽으리라” 하고 혼잣말할 수밖에 없는 승리다.
그러니 지배적인 박해 체제가 세워진 바탕은 파고드는 이성의 논거에 끝내 버티지 못하고, 이미 지금 여기저기서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듯하다. – 우리에게는 무너질 때까지 힘차게 일을 계속하라는 웅변적인 권고다.
디오닝 쪽에서 공공연히 이렇게 고백한다면, 체제는 실로 이미 받침이 되는 바탕을 발밑에서 빼앗긴 것이다.
“처벌은 정당화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식 박해자들 자신이 박해를 두고 지팡이를 꺾는다면 말이다!
잘 새겨 둘 것은, 처벌을 실제로 떠받치는 바탕은 처벌을 규정한 법률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처벌이 정당하다는 대중의 확신, 도둑·위조범·마법사·우르닝이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확신이라는 점이다. 이 확신이 크게 흔들리면, 그때부터 처벌은 폐병 든 목숨을 겨우 이어 갈 뿐이라고 믿어도 좋다. 처벌이 생명을 빨아들이던 동맥은 피를 쏟고 있다. 그 순간들은 헤아려져 있다. 체제는 썩어 가고,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 있다. 마녀와 이단자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확신이 고발인과 판사들 사이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 형벌들은 이미 끝장난 것이었다. –
물론 그 배심 법원의 재판장이었던 앞서 말한 판사 미고는 우라니즘에 대한 이 반가운 이해와는 아직 거리가 먼 듯하다. 휴정 중에 펠트만이 그에게 말했다.
“학문이 확인한 것을 법률이 인정하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인간은 제 정념을 억눌러야 하오.”
미고 씨! 당신이 디오닝이 아니라 우르닝으로 태어났다면, 평생 마음과 본성에게서 그 권리를 속여 빼앗으라는 요구에 뭐라고 하겠습니까? 당신은 결혼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마음과 본성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정의의 저울은 두 접시를 똑같이 단다! –
그러니 우리는 굳은 걸음으로 입법자 앞에 나서서 단호하게 요구해도 좋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요구한다. 이제 말할 만큼 말했고 쓸 만큼 썼다. 우리는 더는 박해받지 않겠다.”
“너희에게는 묻지 않는다”고 대꾸할 것인가? 오, 아니다! 우리는 물음을 받지도, 귀 기울여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너희가 우리 말을 듣도록 강제할 것이다!
§ 118. 네 가지 덧붙임.
1) 위에서 나는 브레멘이 우르닝 박해에 얼마나 두각을 나타냈는지 확인했다. 펠트만 판결에 따르면 나는 그때 이 도시의 실제 공적에 한참 못 미쳤다! 곧 이 참된 자료의 보고에서 나는 브레멘이 1837년 이래 다음 우르닝들을 가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1) 1837년 랑에와 공범들, 2) 1843년 보데, 3) 1852년 뫼레, 4) 1861년 시렌베크, 5) 1864년 알렉사와 그의 디오닝 연인 베버(위에서 언급), 6) 이번에 또 1867년 펠트만과 그의 디오닝 연인 그루너. 여기에 증거가 모자라서든 우르닝이 자살로 자유를 얻어서든 유죄 판결 없이 끝난 수사들이 더해진다.
2) 여기에 참담한 소식을 덧붙인다. 1867년 11월 민덴에서 그곳 상인 T.가 자연에 반하는 짓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1868년 2월 11일 그곳 배심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자세한 소식은 없다. 체포와 판결을 보도한 신문들은 이 일이 경건주의자에게 일어났다는 것을 고소해했다. 《베를리너 뵈르젠차이퉁》은 이렇게 빈정댔다. “신앙심 없는 우리 시대에 경건한 자들에 대한 박해”(!) “는 갈수록 가혹한 형태를 띤다.” 얼마나 순진한가! 마치 모든 영혼들 가운데 우르닝이 없다는 듯이. 그리고 이 조롱은 얼마나 양날의 칼인가! 언젠가 그 신문 사람 가운데 하나가 우르닝으로 체포된다면 그때는 무엇으로 비웃으려는가?
3) 펠트만 형사 수사에는 서막으로 털이꾼 짓이 먼저 있었다. 실패한 것으로, 내가 『글라디우스 푸렌스』(부록 VI)에서 묘사한 샹퇴르들의 소행과 짝을 이루는 작은 사례다. 다만 이 털이꾼 자신이 우르닝이고 펠트만이 믿던 사람이었다는 점이 다르다!!! 아니, 펠트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 자신도 연루되었다! 이 명예로운 인물의 이름은 카를 빌헬름 오토 필징어다. 그는 열아홉 살, 배우, 프로이센 출신이다. 그는 펠트만에게 브레멘을 떠날 여비로 50탈러를 요구한다. 그를 대하는 필징어의 태도 때문에 펠트만이 그가 떠나기를 고집했던 것이다. 그는 돈을 받지만 떠나지 않고, 이번에는 80탈러를 더 요구한다! 그 돈이 오지 않자 그는 펠트만의 한 친구에게 이렇게 쓴다. “펠트만은 나를 기억하게 될 거다.” 그래도 돈이 오지 않자, 관청에 익명의 상세한 밀고장이 들어온다! – 그 뒤로 우르닝들 사이에서 이 필징어에 대한 분노는 끝이 없다. 나는 이 진술들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4) 앞서 말한, 브레멘에 보낸 인쇄물 몇 부는 더 넓은 대중에게까지 흘러 들어가, 거기서 내가 기대한 것보다 큰 이해를 얻었다. 이에 대해 이런 편지를 받았다.
“브레멘, 1867년 12월 21일. 선생님의 인쇄물이 브레멘 대중 사이에 그야말로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모두가 그 이야기를 합니다. 뷔르츠부르크에서 변호 문서 4000부가 이리로 보내졌다는 소문이 돕니다. 모두가 실제로 보내진 것 가운데 한 부를 손에 넣으려 애씁니다. 그것은 빌려지고 또 빌려집니다. ... 판사, 배심원, 검사도 결국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게 된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대중조차도요. 이런 말까지 들었으니까요.
‘정작 처벌받아야 할 건 펠트만이 아니라 그 젊은이 셋이야. 그들에게는 그 일이 자연에 반하는 것이지만, 펠트만에게는 자연에 맞는 것이니까.’
이것이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디오닝이다.
그 말은 실로 많은 이해를 보여 준다. 그러나 나는 §§ 49, 52, 109를 가리키며, 그 젊은이 셋도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XXVI. 자살. 살인.
단편.
(베를린에서 내게 보내온, 한 우르닝의 자살을 두고 쓴 시에서.)
여기서 네 창백한 뺨을
적신 눈물 한 방울마다
나는 언젠가 하느님 앞에서
박해한 자들에게 셈을 묻으리라.
그때 나는 너를, 죽은 벗이여,
심판자의 얼굴 앞에 안고 가
말하리라. “주여, 그도 당신의 것이었나이다.
그런데 이자들이 그를 쳐 죽였나이다!”
그리고 나처럼 천 명이 다가오리라,
피로 물든 소중한 주검들을 안고.
그리고 나처럼 천 명이 외치리라.
“주여, 이자들이 그들을 죽였나이다!”
§ 119. 앞선 책들에서(『빈딕타』 §§ 8–10 참조) 나는 근래 우르닝들의 자살 다섯 건을 언급하거나 이야기했다.
1. 다름슈타트의 궁내 대신, 프랑크푸르트, 1857년경,
2.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근처 긴하임의 목사, 1855년경,
3. 프랑스 작가 제르미니,
4. 프랑스 의원 마르탱 뒤 노르,
5. 유대인 수공업자 블랑크, 데사우, 1853년, 그리고
6. 한 우르닝에게 사랑받은 젊은 디오닝의 자살,
곧 쿠르헤센의 한 병사, 카셀, 1860년경(『아라 스페이』 § 130). 위 § 68에서 나는 7. 브레멘의 상인 뮐베르크, 1866년의 자살을 이야기했다. 그 뒤에 들은 바로는, 뮐베르크는 감옥이 아니라 자기 집에서 목숨을 끊었다. 곧 그와 앞서 말한 다른 우르닝과 병사 셋을 상대로 한 수사가 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 체포가 임박했을 때였다. 그는 독을 마셨다. 그는 쉰다섯 살이었다. 그러니 감방만은 물론 흠 하나 없이 깨끗하다! – 다른 우르닝, 그 역시 브레멘 사람과 병사 셋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되었다.
다음 사례를 내게 알려 왔다.
8. 마그데부르크, 1856년, 자살. 스물두 살쯤 된 젊은 농장 관리인으로 우르닝인 사람이 어느 날 저녁 잘생긴 포병 하나를 호텔 방으로 데려갔다. 이튿날 포병이 나타나 돈을 요구하며, 안 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그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포병은 편지로 위협을 되풀이했다. 그것이 소용없자 그는 위협을 실행했다. 저녁에 경찰이 움직이자 그는 성벽으로 올라가 거기서 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 120. 다음 살인들도 나는 적어도 간접적으로는 체제 탓으로 돌린다. 체제는 우라니즘에 대한 난폭한 분노와 경멸을 가르치고 키우기 때문이다. 디오닝의 사랑에서는 이런 살인이 이처럼 끔찍한 규모로 보이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우르닝의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9. 타르디외는 지난 10년 사이 파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한다. 한 나이 든 우르닝이 밤중에 한 병사, 그가 방으로 데려간 젊고 힘센 창기병에게 살해된 일이다.
10. 프랑스 화가 알라르(우르닝)가 열아홉 살 마르게리티에게 살해된 일(로마, 1864년)은 『포르마트릭스』에서 이야기했다.
11. 파리, 1857년, 살인. 노트르담 성당 제단 앞에 서 있던 쉰아홉 살의 파리 대주교 시부르가 젊은 사제 베르제에게 살해되었다. 시부르는 우르닝, 베르제는 디오닝이었다. 그리고 베르제에 대한 공판에서 우르닝과 관련된 동기가 드러났다.
다음 두 사례도 내게 알려 왔다.
12. 마인츠, 1850년 무렵, 살인. 우르닝인 예순 살의 부유한 금리 생활자가 스물여섯 살쯤 되는 힘센 젊은 남자를 자기 방으로 데려가 밤새 곁에 두었다. 그는 악명 높고 이미 여러 번 처벌받은 자였는데, 노인은 아마 그것을 몰랐을 것이다. 밤에 젊은 남자는 그를 살해했다. 그것도 잔인한 방식으로, 칼로 스무 번가량 찔러서. 그러고는 상당한 돈과 귀중품을 차지했다. 그는 살인과 강도로 기소되었다. 그는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고, 곧 노인이 자기 정조를 폭력으로 덮치려 해서 막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어 그는 살인에 대해서는 무죄가 되었고 강도로만 유죄가 되어 징역 7년을 받았다.
13. 제네바, 1867년 여름, 살인 미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 젊은 남자가 제네바에 머물고 있었다. 그 자신도 우르닝으로, 우르닝들과 많이 사귀었고 그들의 집에서 함께 자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키나이도스(남창)였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성채 산책로에서 나이 든 우르닝 하나를 알게 되어, 시내에서 10분 거리인 아르브강과 론강의 합류점까지 그를 데려가더니, 갑자기 머리를 내리쳐 정신을 잃은 그에게서 시계와 돈을 빼앗고 강물에 밀어 넣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정신을 차려 물 위로 떠 있으면서 도와 달라고 외쳤고, 구조되었다. 젊은 남자는 달아나 그날 저녁 서둘러 시내의 한 우르닝을 찾아갔는데, 그에게 밀회와 하룻밤을 약속해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집에서 잤다. 그러나 사흘 뒤 그는 체포되었다. 중죄 법정에서 그는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고, 그 시간에는 시내의 그 우르닝 집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자가 그를 확실히 알아보았고, 그는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알고 보니 그는 툴롱 도형장에서 탈주한 중형수였다.
14. 브레멘, 1865년 7월, 살인. 브레멘에서 제2회 독일 연방 사격 대회가 열리던 중, 어느 날 아침 사격장 근처에서 진흙이 거의 가득 찬 도랑에서 남자 시신 하나가 발견되었다. 시신은 머리와 상체가 진흙에 박히고 다리가 삐죽 나와 있었다. 결혼한 브레멘 시민으로 재단사 장인인 마흔에서 쉰 살 사이 남자의 시신이었는데, 전날 밤늦게까지 어느 특정한 젊은 남자와 산책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때 브레멘에 있었고 지역 신문에서 이렇게 읽었다. 그 젊은 남자는 그에게서 많은 은혜를 입었으니 그가 범인이라는 것은 전혀 믿기지 않는다고. 나중에는 그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고. 이어서 그가 다시 풀려났다고. 그 뒤 그는 아메리카로 떠났다고. 끝으로, 그가 이미 그전에 한 애인에게 자신이 살인자라고 털어놓았는데, 그가 그녀를 버리고 떠나자 그녀가 복수심에서 그를 고발했지만 너무 늦었다고. 그런데 1867년 12월에야 브레멘의 그 디오닝이 내게 이렇게 써 보낸다. “살해된 사람은 우르닝이었습니다. 살인자는 그의 연인이었습니다! 살인의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살해된 사람의 이름은 내게 알려 주지 않는가?)
§ 121. 15. 샤토티에리(프랑스) 근처, 1867년, 치욕을 피하려다 죽음. 메스의 배우로 우르닝인 루이 데샹이 1867년 9월 11일에서 12일로 넘어가는 밤에 파리에서 오는 기차 객차에 타고 있었다. 객차에는 다른 승객들 말고도 그의 맞은편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이 하나가 앉아 있었다. 제10연대 흉갑기병 로랑 오르넥으로,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데샹은 병사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압도되고, 유혹적인 가까움과 밤의 장막에 홀려, 그를 쓰다듬으며 부적절한 제안을 한다. 몇 번 되풀이되자 오르넥은 다음 역에서 그를 체포하게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그 말에 죽을 만큼 겁에 질려 남몰래 문을 연다. 그리고 기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사이 밖으로 몸을 던진다. 뛰어내리는 순간 흉갑기병이 그를 붙잡기는 한다. 그래도 사람 된 마음에서 그 끔찍한 추락만은 면하게 해 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 흉갑기병도 함께 끌려 나간다! 둘은 두 번째 선로 위로 떨어진다. 떨어진 것만으로는 어쩌면 크게 다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분 뒤, 불운한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그 선로 위로 화물 열차가 달려온다. 두 희생자는 으스러진다! ... 프랑스 신문들이 이 소식을 실었다. 그 신문들을 내게 보내 준 통신원은 이렇게 덧붙인다. “기차가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아니면 – 구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랑에서 저지른 그의 탈선이 공개되는 치욕에서, 다른 한 사람은 ‘네가 한 사람의 목숨을 망쳤다’고 일러 주었을 의식의 고문에서.” – (이 비극적 사건은 《에코 드 렌》 9월 15일경, 《앵데팡당스 벨주》 9월 18일경, 그리고 파리의 《피가로》 1867년 9월 20일, 21일, 22일 자에 실렸다.) – 데샹의 지갑에서는 우르닝의 사연을 담은 편지 한 묶음이 통째로 나왔다. – 《피가로》는 그를 “écrasé sur les rails vengeurs”(복수하는 선로 위에서 으스러진 자)라고 부른다. 그러니 《피가로》는 1554년 뮈레를 위해 피워 올린 톨로사의 “ultrices flammae”(복수의 불길)[101]를 그에게는 아쉬워하기라도 하는 모양이다. 다른 instrumentum mortis(죽음의 도구)를 붙잡아 “복수자”로 만들려 하니 말이다.
XXVII. 자연 과학 이론과 사회 문제에 대한 보유
§ 122. 변형된 영혼의 여성성. 내 이론은 다음 말로 요약된다. Anima muliebris virili corpore inclusa(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의 영혼). 그러나 이렇게 내세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르닝들 안에서 사랑의 충동이 발달해 나타난 실제 모습은 여자들의 사랑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모습과 눈에 띄게 다르지 않느냐고. 특히 여자들의 사랑과, 아주 어리고 소녀 같은 젊은이를 향한 남성형 우르닝의 사랑의 동경, 그리고 남성형 우르닝의 완전히 능동적인 성적 욕구를 맞대어 볼 때 그렇다. 이 차이는, 고백하건대, 크다. 그것으로 이론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우르닝의 영혼은 여성이라는 이론을? 아니다! 그럴 수 없는 것은, 고운 살결과 부드럽고 둥근 몸매에 수염이 없고 여자 목소리 따위를 지닌 몇몇 여성형 우르닝의 몸이(§ 92) 그럼에도 남성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우르닝의 사랑이 여자들의 사랑과 다른 그 점들은, 여자의 영혼은 바로 여성의 몸에, 우르닝의 영혼은 남성의 몸에 갇혀 있다는 차이로 완전히 설명된다. 우르닝의 사랑의 충동이 지닌 여성성은 남성의 몸에서 흔히 강한 영향을 받고 그 발달이 억눌렸다. 그 때문에 이 사랑의 충동은 많든 적든 남성의 옷을 입고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이 그토록 잦은 것이다. 다른 한편, 우르닝의 남성의 몸은 여성의 영혼을 품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역시 여러모로 영향을 받고 순수하게 남성적인 발달을 방해받는다는 점도 붙들어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르닝의 영혼은 흔히,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경우에,
변형된 채로만 여성이다. 곧 남성형 우르닝과 여러 중간형 우르닝에게서 그렇다. 또 그의 몸은 흔히 변형된 채로만 남성이다. § 92에서 묘사한 여성형 우르닝에게서, 그리고 아마 몇몇 중간형 우르닝에게서도 그렇다. 그러나 예외가 규칙을 굳혀 주듯, 이런 변형은 우르닝의 실제 신체적 남성성과 실제 정신적 여성성을 오히려 굳히고 보증해 줄 뿐이다.
§ 123. 찾아내야 할 자연법칙. 개개 우르닝의 성 본성을 이루는 요소들은, 앞서 보였듯이, 극히 다양하다. 우리는 극단적인 남성형 우르닝, 극단적인 여성형 우르닝, 그리고 중간형 우르닝을 만나며, 그것도 흔히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더없이 기묘하게 섞인 모습으로 만난다. 이 변종들의 겉보기 혼돈에 대해 장래의 연구자는 아마 아주 확정된 법칙을 찾아낼 것이다. 그 법칙에 따라 혼합의 겉보기 자의(恣意)는 자연의 필연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각 변종에 속하는 개인들을 두루 관찰해야 하고, 물론 조합해 내는 재주도 조금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법칙을 위해서는 공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일찍이 케플러가 행성과 혜성의 운동 법칙에 대해 찾아낸 그 공식들만큼 정확한 공식을. 그리하여 예컨대 이 구성 요소들, 곧 이 원소들 가운데 이미 알려진 두 가지로부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셋째를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르닝의 성 본성의 원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두 서로 필연적인 상호 관계에 있다. (우르닝 본성의 원소들은, 바로 anima muliebris virili corpore inclusa이기 때문에, 디오닝과 여자의 본성의 원소들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성정과 정신적 외양이 뚜렷이 남성적이면 사랑의 동경의 종류도 뚜렷이 남자와 닮은 것이 될 것이다. 곧 그 동경은 소녀 같은 젊은이를 향하지, 청년이나 drauci(억센 장정)를 향하지 않을 것이다. 개별 경우에 그럼에도 마침 그렇다면, 그 개인의 본성에 아주 확정된 이유가 있을 것이며, 바로 그것을 연구가 아직 찾아내야 한다. 마찬가지로, 뚜렷한 여성형 우르닝의 특징을 지닌 우르닝이 소녀 같은 젊은이나 소녀 같은 여성형 우르닝에게 끌리는 경우도 그렇다. 이에 대해서는 나의 다음 책 『역사 속 우르닝들에 대한 서술』이 루이 14세의 아우 오를레앙 공에게서 한 가지 예를 들 것이다. 지금 말한 것은 특히 원소들의 여러 단계에 대해서 들어맞는다. 예컨대 우르닝의 성정이 남성적일수록 그를 끄는 젊은이들은 더 소녀 같을 것이다. – 이 원소들 가운데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성정과 정신적 외양: 남성적인가, 여성적인가?
2. 사랑의 동경의 종류: 소녀처럼 여린 젊은이를 향하는가, 청년을 향하는가, 남성적으로 억센 drauci를 향하는가? 더 어린 모습을 향하는가, 더 원숙한 모습을 향하는가?
3. 성적 욕구의 종류: 남성적·능동적인가, 여성적·수동적인가?
4. 신체적 외양: 남성적인가, 여성적인가?
다섯째 원소가 하나 더 덧붙을지도 모른다. 얼핏 전혀 동떨어진 것, 곧 근육의 짜임새다. 억센가, 약한가? 나는 아주 분명히 관찰했다. 우르닝의 근육이 덜 억셀수록 그를 끄는 모습들은 더 억세고, 그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 그런데 법칙을 정식화할 때는 관능적 끌림과 몽상적 끌림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우르닝의 마음에 관능적 끌림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억세게 피어나는 모습이고, 몽상적 끌림을 일으키는 것은 주로 이미 꼴이 갖추어진, 특히 얼굴과 눈의 아름다움을 타고난 모습이다.
§ 124. 위 §§ 28, 34에 대한 보유. 결합형 우라노디오닝의 뚜렷한 남성형 우르닝 성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호라티우스에게 더 확실한 이런 구절이 있다.
Nunc, gloriantis quamlibet mulierculam
Vincere mollitie,
Amor Lycisci me tenet.
(이제는, 부드러움에서 어떤 계집아이보다 낫다고 뽐내는 리키스쿠스에 대한 사랑이 나를 사로잡고 있다.)
결합형 우라노디오닝에게서는 사랑의 충동이 자웅동체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포르마트릭스』에서 내가 “정해지지 않은 방향으로”라고 부른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흔적』(위 § 95)이 객관적으로 가정한 것이 주관적으로 들어맞는다. 곧 성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일시적으로는, 이쪽저쪽으로, 역시 혐오(Horror)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아라 스페이』 § 133, b 참조). 이 변종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이 연구될 때까지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변종은 보이는 것만큼 널리 퍼져 있지 않다.
§ 125. 한 우르닝이 18살 반에 김나지움을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한 해쯤 전부터 두 살쯤 어린 동급생을 격렬한 동경으로 사랑했지만, 그때까지 관능의 기색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두 사람의 몸이 닿는 일은 피하지도 찾지도 않았다. 그런 일은 거의 없다가, 마지막 순간 작별이 입맞춤과 짧지만 절절한 포옹을 불러왔다. 그것도 방 안이 아니라 계단에서였다. 그때 갑자기, 우르닝은 이때에도 관능 따위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잠들어 있던 본성이 관능적 측면에서 드러났다. 곧 발기였다. 사랑하는 이가 가까이 있다고 해서 그런 작용이 일어난 일은 전에 한 번도 없었다. – 폰 람도르는 『베누스 우라니아』(제2권 106쪽)에서 똑같은 일을 두 젊은 대학생에 관해 전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 질투 때문에 서로 토라졌다가 격렬한 포옹으로 화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 126. 우르닝과 여자 사이의 혼인은, 위의 전제 아래(주 27과 § 111), 우르닝이 가족의 사랑, 가족의 신의, 가족의 보살핌, 무릇 가정의 행복을 누리려고 혼인하는 경우에도 나는 비난받을 일로 여기지 않는다. – 그러니 우르닝에게는 얼마나 큰 내면의 싸움, 얼마나 큰 갈등이 기다리고 있는가! 우리 가운데 누가 언젠가는 – 아니면 괴로운 수십 년 내내 – 이 물음에 결단을 요구받지 않겠는가. 가정의 행복을 누리며 몸서리치면서 여자를 껴안을 것인가, 아니면 홀로 살다가 홀로 죽되 제 본성에 충실하게 남을 것인가? 너희 디오닝들이여, 너희는 얼마나 부러운 자들인가! O fortunatos nimium, sua si bona norunt!(오, 너무도 행복한 자들이여, 제 복을 알기만 한다면!)
혼인한 뒤에야 남편이 자신이 우르닝임을 깨닫는다면, 이는 그에게 무조건 이혼 사유가 되어야 한다. 아내에게도 우르닝에게 손을 내주었음을 알게 된 것이 마찬가지로 이혼 사유가 되어야 한다.
자연이 심어 놓은, 뿌리 뽑을 수 없는 우르닝의 사랑의 충동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멀리까지 미치는지 이제 이해되는가?
XXVIII. 인정(認定)들
§ 127. 『멤논』 제1부는 비매품 원고로 인쇄되어, 몇 부가 개인들에게도 보내졌다.
그 결과 런던의 anthropological society(인류학회)에서 이 주제에 관해 이미 강연이 있었고 토론이 벌어졌다. 또 이 학회는 이 작은 책에 그 도서관 한 자리를 내주는 영예를 베풀었다. 나의 앞선 다섯 권의 책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편지들도 원본을 내보일 용의가 있다.)
§ 128. 나아가 앞서 말한, 편견 없는 다름슈타트의 재야 학자 볼프가 1868년 3월 30일 『멤논』 제1부에 관해 이렇게 써 보냈다.
“내가 아는 한 검사에게 당신의 최신 저서를 주었더니, 그는 그 책에 대해 아주 호의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2월 10일에는
“나는 오래전부터 남자와 남자의 사랑은 도덕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형법이 그것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확신해 왔습니다.” (이와 일치하는, 다른 디오닝들의 말을 『글라디우스 푸렌스』에서 참조하라. 슈투트가르트의 포이어바흐 씨, 브레멘의 지들러 박사 등.) “사람을 타고난 성향에서 떼어 놓으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실험입니다. 하물며 학대라는 방법으로라니요!”
그리고 2월 12일에는
“의사가 이 사랑의 자연스러움에 관해 당신의 최신 저서보다 더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129. 그라츠의 법학 교수 테베스는 디오닝인데, 내가 4월 25일 『글라디우스 푸렌스』 제1쇄지를 보내자 이렇게 써 보냈다.
“그라츠, 1868년 5월 1일. …… 그러니 자네 길을 힘차게 계속 가게, 고개를 들고! 하기야 자네에게 용기가 모자라지는 않지. 저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 못 박으라!’ 하고 외치게 내버려 두게. 승리의 관은 자네에게 반드시 올 걸세. 혹 오지 않더라도, 자네는 그것을 자랑스러운 자각과 함께 가슴속에 쓰고 있을 걸세.”
§ 130. 런던 근처에 사는 한 영국인 우르닝이 1868년 3월 22일 이렇게 써 보냈다.
“Though J cannot in words express my gratitude, I am true, that, could J write with my heart instead of my hands, J should make you feel how gratiful J am, not only on my own account, but for the sake also of poor Fritz”(제 고마움을 말로는 다 나타낼 수 없지만, 진정으로 말하건대, 손 대신 마음으로 쓸 수 있다면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당신이 느끼게 해 드릴 텐데요. 저 자신 때문만이 아니라 가엾은 프리츠 때문에도 말입니다) (곧 펠트만) “towards whom you have so nobly acted”(당신이 그토록 고결하게 대해 주신 그 사람) 등.
또 다른 영국인 우르닝은 다음과 같이 써 보냈다. (덧붙이자면 이 사람도 방금 말한 사람도 위의 두 인물, § 94와 § 97의 인물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Londres, 1. Janvier 1868. ..... Vous me permettrez de vous écrire quelques lignes pour vous exprimer la sympathie profonde que j’éprouve pour la tache que vous avez entreprise: l’émancipation d’une classe nombreuse et innocente d’un joug si cruel, des lois injustes et du mépris immérité. Vous méritez, monsieur, les rémercimens de tous vos confrères sexuels, surtous de ceux qui se cachent derrière la visière. Il me semble qu’il ne faut que de la capacité et du courage tels que les vôtres pour poser nettement – devant la raison publique de tous les pays – les suites logiques de votre appel à l’argumentation, du moins avec la persévérance et l’honorable hardiesse que vous n’avez pas eu peur de montrer” 등. (런던, 1868년 1월 1일. …… 당신이 떠맡은 과업, 곧 수많은 죄 없는 한 부류의 사람들을 그토록 잔인한 멍에, 부당한 법과 받을 까닭 없는 경멸에서 해방하는 일에 제가 느끼는 깊은 공감을 몇 줄 적어 보내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선생, 당신은 성(性)을 같이하는 모든 동료들, 특히 투구 면갑 뒤에 숨어 있는 이들의 감사를 받을 만합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이 논증에 호소한 데서 나오는 논리적 귀결을 – 모든 나라의 공적 이성 앞에 – 분명히 내세우려면 당신과 같은 역량과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적어도 당신이 두려움 없이 보여 준 그 끈기와 명예로운 대담함만 있다면 말입니다.)
§ 131. 내가 『멤논』 제1부를 보낸 뷔르츠부르크의 의학 교수 궁정 고문관 폰 밤베르거 박사가 이렇게 써 보냈다.
“뷔르츠부르크, 1868년 5월 26일. …… 고백하건대, 당신이 이 주제를 다룬 재기 넘치는 방식은 그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주 알맞습니다. 진지한 토론이라면 실마리가 여러 군데 있을 것입니다. …… 이 이상(異常)이 타고난 것이며 개인의 신체 조직에 근거한 본성이라는 당신의 주장은, 적어도 일정한 수의 경우에 대해서는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
그다음에는 우라니즘의 도덕적 정당성에 맞서는, 오래전에 반박된 반론들이 이어진다. 나는 큰 소리로 되풀이한다. 우르닝의 사랑은 디오닝의 사랑과 마찬가지로 도덕 법칙 앞에 정당하며 도덕적 세계 질서 안에서 권리를 지닌다. “같은 성(性)의 개인들 사이의 관계는 우정의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적 관계는 자연 자체가 배제했으며, 그러므로 제 감정으로는 무조건 비난받을 일입니다.” 그런가? 그러나 우르닝과 디오닝은 결코 같은 성의 개인이 아니며, 둘 사이의 성적 관계를 자연은 배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그것을 원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은 애초에 어떤 젊은 남자에게도 우르닝의 마음에 사랑의 불길을 지필 능력을 주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우르닝의 마음에도 젊은이를 향한 동경의 싹을 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의 감정으로는 비난받을 일이라! 그렇겠지. 그러나 우리의 감정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무의식적이라 하더라도, 디오닝들의 주관적 감정이 결정해야 한다는 해묵은 오만이다. “…… 법적 판단에 대해서는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들은 바로 본래의 소질이라는 변명 때문에 가장 관대한 판단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기꺼이 인정하겠습니다.” 폰 밤베르거 씨는 이상하게도 타고난 우라니즘은 드물다고 보고, 반면 “비로소 비난받을 방식으로 얻게 된” 우라니즘은 “대단히 흔하다”(!)고 본다. 그것도 “이 주제가 지금까지 자기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인정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에게 이미 답장했다. 여러 해 동안 이 주제에 연구를 바치고 풍부한 자료를 손에 쥔 사람이라면, 전해 내려온 오류와 비방에 맞서 한마디 거들 권리쯤은 있지 않겠느냐고. 어쨌든 이로써 중요한 것은 학문적 관심과 타고남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 132. 『글라디우스 푸렌스』에 대해 슈투트가르트의 전 고등 법원 판사 포이어바흐가 1868년 5월 24일 나에게 답장했다.
“…… 법률가 대회 일부가 당신에게 저지른 부당함에 관한 당신의 논술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입법의 필요한 개선에 관한 당신의 견해에 나는 완전히 공감합니다. 뷔르템베르크에서는 입법이 본질적으로 이미 당신의 견해와 일치합니다.” 그곳에서는 그롤만의 원칙(『글라디우스 푸렌스』 32쪽)이 지배하는데, 이 원칙은 실제로 우라니즘을 처벌하는 한 디오닝의 사랑과 법 앞의 평등을 우라니즘에 주지는 않는다. “‘공공의 분노를 일으켰는가?’라는 물음에서는 물론 여기서도 당신이”(『글라디우스 푸렌스』 27쪽과 30쪽) “날카롭게 지적한 법적 불확실성이라는 폐단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 당신이 그토록 근거가 탄탄한 제안으로 법률가 대회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입법을 바꾸려는 당신의 노력이 성과 없이 끝나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굳게 확신합니다. …… 그러므로 내가 그 제안에 서명하지는 않더라도, 사안에서는 전적으로 당신과 같은 의견입니다. …… 온갖 두려움 가운데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모릅니다. 그러니 뮌헨에서 내가 입으로 한 말과 내 편지의 한 대목을 인용한 것으로”(『글라디우스 푸렌스』 9쪽과 10쪽) “조금이라도 나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 쓰는 것은 언제나 누구 앞에서든 책임질 수 있습니다.”
§ 133. 『글라디우스 푸렌스』에 대해 슈투트가르트의 오토 자이퍼 교수가 1868년 5월 26일 나에게 답장했다(『멤논』은 하나도 읽지 않은 채로).
“…… 당신이 그토록 많은 재기와 솔직함으로 이끌어 가는 사안에 우리가 공감을 표하는 것은 정의가 요구하는 바입니다. 내가 여러 명망 있는 인사들에게 전해 준 당신의 글들은 나와 내 벗들에게, 형사 입법의 이 대목에 커다란 오류가 있으며, 사람들이 오랜 편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당신이 이끄는 사안은 승리를 거두며 관철되리라는 더없이 확고한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 이 문제의 심리학적 측면은 나에게 분명합니다. 그와 관련해 당신의 논의와 나란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당신과 같은 처지였던 한 노인의 말입니다. 그는 오래전에 죽었는데, 그것에 관해 터놓고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고, 그렇게 태어났다는 당신의 입장에 전적으로 섰습니다. …… 나는 오히려 순수하게 정신적인 감수성을 가정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 이상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타고난, 독특한 정신적 감수성으로서, 본래적 남성의 감수성과 반대되며 따라서 여성의 것일 수밖에 없는 감수성이다. 곧 anima muliebris virili corpore inclusa다. “그러나 어떻든 나는 그 안에서 처벌받을 만한 것이나 명예롭지 못한 것을 찾아내던 생각을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탈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탈선인 것이 저 사람에게는 삶의 행로의 필연입니다.”
XXIX. 토론란
§ 134. 1) 런던에서 이런 편지가 왔다. “우라니즘의 이익을 위한 정식 잡지를 창간하면 좋겠습니다. 우선 자료를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일부는 편지로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이미 1866년에 『우라누스』라는 잡지를 구상했으며, 동지들에게 그들의 의견과, 이 계획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에 관한 더 많은 제안을 청한다.
2) 여러 곳에서 나에게 이런 물음이 온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처벌 폐지가 아직 시행되지 않았느냐?” 매우 달갑지 않은 지연이 생겼다! 거기서는 최선을 찾다가 선(善)의 도입이 막히고 있다. 그 폐지를 담은 법안은 아직 법무 장관 폰 코메르스가 낸 것이었다. “의회파” 법무 장관 헤르프스트는 그것을 다시 손보려는 모양이다. 새 형법의 실제 시행을 그는 1870년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니까 무슨 학교 규칙 하나를 위해 자연을 몰아붙이는 해묵은 사냥을 두 해나 더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이 야만을 특별법으로 당장 내던져 버려라! – 그동안 적어도 빈에서는 우라니즘이 경찰과 검사에게 거의, 또는 전혀 시달리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정의이지 경찰의 은혜가 아니다!
3) 1868년 5월 20일(5월 28일에 고친 문구로 되풀이하여) 나는 뮌헨의 독일 법률가 대회 상임 위원회에 다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법률가 대회는 우르닝의 사랑 행위에 대한 처벌을 지체 없이 폐지해야 할 필요성을 표명할 것.
그 근거는
1. 고유한 성 본성을 뿌리 뽑을 수 없게 타고났는데도 법적 근거 없이 지금까지 박해받아 온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정의를 베풀어야 할 필요성,
2. 자살의 한 원천을 막아야 할 필요성,
3. 오스트리아, 바이에른, 프랑스의 본보기,
4. 이루어야 할 독일의 법 통일.
나는
5월 28일 그 아래에 이렇게 썼다.
“나는 상임 위원회의 정의감에 호소하며 청합니다. 작년에 울리히스-테베스 제안을 그렇게 했듯이 이 제안마저 다시 묵살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수천 사람의 삶의 행복 전체가 걸린, 가장 진지하고 가장 멀리까지 미치는 사안들을 굳이 법률가 대회에서 빼앗아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법률가 대회를
골수도 힘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품위 없고 사내답지 못한 모임으로 떨어뜨리려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이것을 보내자마자 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구원을 애원하는, 내 본성의 동지들 가운데 쫓기는 희생자 하나가 보낸 것이었다. 편지는 프로이센에서 왔다. 법원 집달리가 그의 집을 수소문했다고 했다.
오, 하늘의 하느님! 숨죽인 평온의 이 한 해조차 운명에게는 벌써 과분한 은혜였단 말인가?
한 명예로운 사람이 이렇게 쓴다. 나는 이것을 곧바로 상임 위원회에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이 박해가 짜내는 숨죽인 한숨들을 모두 들으실 수 있다면!” 하고 나는 그때 썼다. “오, 여러분이 그 깊이를 짐작도 못 하는, 이름 없는 비참의 이 심연을 내려다보실 수 있다면! 이것 또한, 마침내 한번은 단호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절박한 필요성을 여러분께 다시 증명하지 않습니까? 이 제안마저 다시 묵살하라고 여러분께 권할지 모를 그 거짓 도덕을 이겨 내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심사해 달라는 우리의 청을 차갑고 말없이 질식시킬 만큼 부당하고, 잔인하고, 무자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밤베르거, 마코버, 포이어바흐, 자이퍼, 테베스 같은 울림 있는 이름들이, 신칙법 제77호와 카롤리나 형법전을 지은 자들이나, 학문적 심사란 전혀 없이 무지로 가득 찬 채 처벌을 요구한 포이어바흐(노 포이어바흐), 헨케, 타르텐, 미터마이어 같은 이름들보다 존중받을 가치가 덜하단 말입니까? …… 나의 「법률가 대회에 대한 도전」, 나의 『글라디우스 푸렌스』는 1868년 5월 14일 카셀의 프로이센 왕국 경찰에 의해 압수되었습니다. 독일 법률가 대회는 정의를 부르짖는 모든 외침을 짓누르는 그 같은 입장에 서려 합니까?”
상임 위원회는 다음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칼프, 슈텡글라인, 루반들, 포이스틀레(뮌헨), 리치, 베르거(현 장관), 글라저, 폰 켈러(빈), 바르텐슬레벤, 그나이스트, 마코버(베를린), 슈바르체 드레스덴, 폰 슈테르넨펠스 슈투트가르트, 플랑크 하노버의 메펜, 슈퇴셀 바덴의 뢰라흐, 예링 기센, 폰 그로스 예나, 베커 올덴부르크. 이분들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4) 펠트만 소송에 관해 덧붙인다. 펠트만은 재판장 미고 씨에게 나를 제2 변호인으로 허가해 달라고 청했으나, 미고 씨는 법적으로 허가할 권한이 있었던 이 청을 말로 거절했다. “그 인쇄물을 나에게 보낸 그 양반만은 안 됩니다.” 『글라디우스 푸렌스』에서 나는, 우르닝의 사랑 행위를 재판하는 법정이 모두 디오닝으로 채워져 있고 절반이 우르닝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는 데 깃든 부당함을 증명했다. 그런데 기소된 우르닝에게 본성의 동지를 변호인으로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것에 화룡점정이 아닌가!
5) § 118, 1에 대하여. 시렌베크는 1867년 12월 11일(1861년이 아니다) 과연 우라니즘 때문에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 사례는 나의 논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실제로 처벌받을 만한 행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제 이성을 자유로이 쓸 수 없는 소년 셋을 유혹했다. 열 살, 열한 살, 열세 살이었다.)
6) 박해. 함부르크, 베를린, 파리.
a) 함부르크에서 한 비법률가가 그곳 우르닝들이 겪는 경찰의 괴롭힘에 관해 써 보냈다. 곧 단순한 혐의나 익명의 고발만으로 경찰이 소환한다는 것, 그러면 관리가 출두한 사람에게 이를테면 이렇게 말을 건다는 것. “자, 당신은 보자마자 무슨 족속인지 알겠군!” 다른 우르닝들을 대라고 요구한다는 것, 그다음 소환된 사람은 100마르크나 150마르크를 내야 하고(경찰이?), 돈이 없으면 4주, 심지어 8주 동안(경찰이?) 온갖 불한당과 한 감방에 갇혀 간수들의 끊임없는 욕설을 듣는다는 것이다. “1868년 카니발 때 가면무도회에서 우르닝 둘이 여자 옷차림으로 아무 까닭도 없이(?), 단지 ‘그런 사람’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이튿날 아침 가면 의상을 다 입은 채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심문을 받기 전에 꼬박 한 시간 동안 그곳을 드나드는 거친 사람들의 조롱에 내맡겨져, 마침내 한 사람은 기절해 쓰러졌습니다. 그들을 나흘 동안 미결 구금해 두었다가 풀어 주었습니다.” – 함부르크에서는 “그런 사람”이라는 혐의를 받는 이의 명예를 이렇게 다룬단 말인가?
함부르크에서는, 최근 다른 곳에서 전해 온 바에 따르면, 다시 우라니즘 때문에 형사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 거기에 연루된 사람으로 배우 템메와 바데의 이름이 들린다. 너희 경찰과 형사 관리들은 정말로, 자기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본성의 감추어진 성의 비밀을 들쑤시는 것보다 더 쓸모 있는 할 일이 없단 말이냐?
b) 베를린에서 이런 소식이 왔다. “이곳에서는 우르닝 박해가 한창입니다. 슈판다우에는 6개월 형을 받은 장교 하나가 갇혀 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여러 민간인을 상대로 경찰 수사나 탐문이 진행 중이고, 향토방위군 장교 하나를 상대로 명예 법정의 조사가 진행 중입니다.”
c) 파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끔찍한 소식이 왔다. “1863년쯤 이곳의 한 우르닝 드 레쿰 남작이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 연적과 심지어 자기 애인(!), 곧 많은 이가 탐내던 근위병 하나를 해당 기관에 밀고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 간접적 결과로, 민간인과 연애 관계를 맺고 있던 군인 한 무리의 이름이 그 밖에도 상관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부대 지휘부는 법이 형사 절차로는 막아 놓은 것을 징계 조치로 메우려 했습니다. 200명이 넘는 군인이 알제리로 전출되었고, 그것도 그곳의 징벌 중대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니 그곳에서는 징계라는, 늘어나는 고무 외투 아래서 법으로 폐지된 우르닝의 사랑에 대한 광포가 고스란히 되살아난 것이다! 복무가 그것을 요구하는가? 맙소사, 그렇다면 여자들과 관계를 맺는 군인들은 징계로 어디로 전출시키며, 자기 filles entretenues(첩)를 두는 장교들은 어디로 보낸단 말인가? [이 잔혹함의 큰 부분은 아마 저 유명한 타르디외 박사의 책임일 것이다. 그의 「attentats aux moeurs」(풍속 침해)는 그런 잔혹함을 단연코 부추긴다. 독과 침을 뚝뚝 흘리고 오류가 우글거리는 이 타르디외의 책(제3판, 파리, 1859)은 이미 카스퍼가 힘차게 반박했는데도 프랑스에서는 권위가 되었다. 그리고 독일인인 바이마르의 의무관 타일레 박사마저 1860년 독일어 번역으로 서둘러 이 권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 모든 박해와 앞선 비슷한 박해들도 여기서 그저 성과 없이 끝났다. 참된 본성은 모든 박해를 비웃기 때문이다. 그것을 고문할 수는 있어도 뿌리 뽑을 수는 결코 없다. 아니면 부아시(위 § 107)가 원로원에서 프랑스 연대들에 관해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는 마당에 성과가 있다는 말인가? 1861년 귀스타브 브뤼네는 아래에 말할 dissertation sur l’Alcibiade(『알키비아데스』에 관한 논고)(77쪽)에서 이렇게 쓴다. le vice(물론 vice, 악덕이다!) c’est développé d’une façon effrayante(그 악덕은 무서운 방식으로 퍼졌다). (그런데 무엇이 무섭단 말인가?) 앞서 말한 이탈리아어 『알키비아데스』 번역의 서문(XIV, XV쪽)은 1866년 파리에 퍼진 우라니즘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Jamais ce fléau(물론 vice와 fléau, 곧 악덕과 재앙이다!) n’avait eu l’expansion et l’intensité qu’on lui voit dans la société moderne, où l’on peut dire qu’il s’est démocratisé(이 재앙이 근대 사회에서 보는 만큼의 확산과 강도를 가진 적은 결코 없었으니, 거기서 그것은 민주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864년 affaire de la rue Marboeuf(마르뵈프 거리 사건)의 결과로 파리 경찰이 우라니즘 때문에 벌인 조사는 여러 달 계속되었고, 그 규모가 하도 커서 qu’elle n’a pu être entourée du silence que la policse sait garder en pareil cas(경찰이 이런 경우에 지킬 줄 아는 침묵으로 감쌀 수 없을 정도였다). 파리와 지방의 신문들이 그 일을 다루었다. 이를테면 1864년 10월 22일 자 《프티 르뷔》(「Les échappés de Sodome」(소돔에서 빠져나온 자들)이라는 기사에서), 그리고 《프로그레 드 리옹》이 그랬다. 이 조사에는 (그 기사 「les échappés」가 전하는 대로) plusieurs corps de troupes(여러 부대)가 걸려 있었다! (『알키비아데스』 번역, 앞의 책, XII~XV쪽.) [단서. 이 보도는 어쩌면 징벌 중대로 전출된 일이 레쿰 사건이 아니라 마르뵈프 사건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에 관한 아주 정확한 소식은 파리에서 얻기가 무척 어렵다.] – 그런데 묻노니, 어째서 하필 우르닝은 자유로이 사랑을 구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자연이 모든 존재를 부른 사랑의 행복을 두 사람이, 비록 군인과 민간인일지라도, 혼과 몸으로 서로에게 속하며 느끼는 것을 무슨 권리로 막으려 한단 말인가?
7) § 120, 14에 대하여. 브레멘, 1865년, 모살. 그 우르닝의 이름은 린데만, 그를 살해한 애인은 쾨니히였다. 그 범행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단순한 강도 살인이었다. 쾨니히가 체포된 것은, 린데만이 그 밤 전날 저녁에 지니고 있던 100탈러 지폐를 그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심 판사에게 린데만과의 연애 관계를 아주 터놓고 이야기했으며, 그 지폐는 린데만이 자기에 대한 큰 애정의 증표로 선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자기 애인에게 털어놓은 것을 비교해 보라. 선물이라고? 그렇다면 그는 고마운 나머지 그를 죽였어야 했다는 말이다!) “이 연애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하고 내게 써 보낸 사람은 말한다, “여기 어디서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놈은 사내들을 사랑했어. 그러니 당해도 싸지!’” 무엇이 너희 체제의 비난받아 마땅함을 증명한다면 바로 이 민중의 말이다. 학문이 널리 퍼져 가는 가운데서도 우르닝의 사랑에 관한 앎을 자물쇠와 빗장 뒤에 가두어 두고, 증오에만 말할 자유를 주고, 그렇게 민중을 무지 속에 붙들어 두면서, 끊임없는 형사 수사로 대중의 분노에 맞장구를 쳐 주는 체제, 마치 지난날 비슷한 박해 체제가 이단자와 마녀를 향한 대중의 분노에 맞장구를 쳐 주었듯이 하는 체제다. 그런 체제가 어떤 열매를 맺는지 너희는 이 말에서 눈앞에 보고 있다. 너희 학자들은 인간 본성의 이 부분에 관해 진작 빛을 찾고 퍼뜨렸어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엉겅퀴를 뿌렸다! 그런데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둘 수 있는가? 이 점에서 오늘의 브레멘은 1415년의 콘스탄츠가 서 있던 자리에 서 있다. 그곳 천민들은 화형대 위의 이단자 후스를 모욕했다. 1415년의 천민은, 너희가 그토록 즐겨 말하듯, “사제 놈들”이 길렀다. 1868년의 천민은 – 너희가 길렀다!
8) 1865년 2월 28일 나는 『아라 스페이』에 마지막 펜 획을 그었다. 1866년 2월 12일 나는 스위스에서 벗의 손을 거쳐 보내온 하인리히 회슬리의 『에로스. 남자들의 사랑에 관하여』(1836년과 1838년)를 받았다.[102] 회슬리와 내가 살아서 서로 손을 맞잡는 것을 운명은 바라지 않았다. 우리 둘은 서로 모르는 채로 같은 싸움을 시작했고, 같은 도전을 싸움터에서 이 세기를 향해 외쳤다. 그는 이제 없다. 그러나 그가 죽음으로 내려놓아야 했던 사안을 이미 나의 약한 힘이 이어받았고, 다른 이들도 쳐든 깃발 둘레로 나와 함께 모여든다. 우리는 이미 싸움 한복판에 서 있다. 자, 형제들이여, 앞으로! 모든 슈바르체와 피르호와 미고에도 아랑곳없이!
“아무리 단단히, 높이 걸린 관이라도,
용감한 투사는 끝내 싸워 얻으리라!”
회슬리의 저작에 대해 내가 나무라는 점은, 지루할 만큼 장황하다는 것(두툼한 두 권에 이른다), 박해자들을 공격하는 데 미사여구는 조금 너무 많고 근거는 조금 너무 적다는 것, 그리고 소재를 나누어 짜는 구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나에게처럼, 남자들의 사랑의 타고남은 그 사랑의 정당성을 세우는 토대다. 다만 그는 이 토대를 주장만 할 뿐 증명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가 그 근거로 드는 것, 곧 그리스·로마·페르시아 등의 우르닝 연애시는 증명이 아니다. 그것들은 남자들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아무도 다투지 않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주제의 자연 과학적 측면 전체, 특히 여성성(Muliebrität)은 건드리지 않는다. 단 한 번 그는 이 점을 적어도 스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출구 없는 미로로 자기를 끌고 갈까 두려워한다. 제1권 296쪽에서 그는 랍비의 영혼 윤회설(위 § 45, II 참조)의 놀랄 만큼 옳은 명제를 인용한다. “남성의 몸 안의 여성의 영혼은 여자들과 서로 밀어낸다.” 그러나 그는 의심을 품고 이 명제에서 몸을 뺀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이지 허공에서 붙잡아 낸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억센 뷔르템베르크 왕 프리드리히는 우리가 여성의 영혼이라고 이해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위 § 122 참조.) 그럼에도 이 책에는 빛나는 대목이 많다. 그 몇몇 견본을 나는 『글라디우스 푸렌스』와 위에서 보였다. 숭고한 분노 곁에서 거의 모든 문장에서 비쳐 나오는 한없이 깊은 짓눌림이 가슴을 친다. 그것은 오직 자유를 미리 느끼는 데서만 주어지는 그 내적 확신과는 아직 아주 멀다. – 이 책은 이제 스위스 여기저기서 헌책으로만 구할 수 있다. 베른에서 우리는 우리 공동 도서관을 위해 그곳에 남아 있던 마지막 8부를 사들였다.
9) 1868년 5월 28일 나는 비교적 새로 나왔지만 벌써 더 귀해진 책 한 권을 받았다. Dissertation sur l’Alcibiade fanciullo a scola(학교에 다니는 소년 알키비아데스에 관한 논고)(위 § 107 참조), traduite de l’italien de Baseggio et accompagnée de notes et d’une postface par un bibliophile franpais(바세조의 이탈리아어에서 옮기고 한 프랑스 애서가가 주석과 후기를 붙임)(보르도시 도서관 사서 귀스타브 브뤼네). 파리, J. 게, 1861. 번호를 매긴 254부 한정 인쇄. 78쪽. 브뤼네 씨가 몸소 아주 친절하게 애써 준 덕분에 우리는 파리에서 이 작은 책 한 부, 제1번을 (9프랑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브뤼네 씨가 그 안에 담아 놓은 꼼꼼한 역사 연구 때문에 이 책은 나의 다음 책 『역사 속 우르닝들에 대한 서술』을 위한 자료로 매우 귀중하다.
10) 1868년 4월 13일 나는 런던에서 다음 책을 받았다.
Don Leon, a poem by the late
Lord Byron, .... forming part of the private journal of his lordship, supposed to have been entirely destroyed by Thomas Moore. .... London, printed for the booksellers, 1866.(『돈 레온』, 고(故) 바이런 경의 시 …… 토머스 무어가 완전히 없앤 것으로 여겨지던 경의 개인 일기의 일부를 이룸. …… 런던, 서적상들을 위해 인쇄, 1866.) 130쪽. 우르닝의 사랑을 변호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런던에서 그 지은이 때문에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그 견본 하나는 역사 속 우르닝들 가운데 싣는다.
11) 위에서 말한 책 『알키비아데스』는 1866년 암스테르담 chez l’ancien Pierre Marteau(옛 피에르 마르토 서점)에서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나는 이 주소로 그곳에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는 집배원 12명이 서명한 “Onbekend te Amsterdam”(암스테르담에 그런 곳 없음)이라는 확인과 함께 되돌아왔다. 그러니 책을 읽는 사람은 속는 것이다! 훑어보니 이 책에는 과연 숨을 곳을 찾을 만한 까닭이 좀 있다. 나의 책은 이 책과 같은 날 함께 거론되고 싶지 않다. (출판인으로는 이제 브뤼셀의 P. M. 씨라는 이름이 들린다.)
12) 『역사 속 우르닝들에 대한 서술』에는 1500년부터 1868년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러시아, 스웨덴, 잉글랜드, 스위스, 독일의 이름 80개쯤이 해당 세부 사항과 역사적 증거와 함께 실릴 것이다. 그 가운데는 다음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 왕 앙리 3세, 프랑스 왕 루이 13세, 오를레앙 공 필리프, 베르망두아 백작(루이 14세의 아들), 뮈레(학자), 콩데 공(위그노의 수장), 콩데 공(장군), 몰리에르(적어도 당대의 한 진술에 따르면), 방돔(장군), 제2통령 캉바세레스, 파리 대주교 시부르(1857년 사망); 파르마 공 피에트로 파르네세(1547년 사망), 베네벤토 대주교 델라 카사(1556년 사망), 본파디오(역사가, 우라니즘 때문에 1559년 제노바에서 화형), 교황 율리오 3세; 곤살로 데 코르도바(에스파냐의 장군), 돈 카를로스(펠리페 2세의 아들, 적어도 그럴 개연성이 크다);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우라노디오닝), 러시아 황제 파벨 1세; 스웨덴 왕 칼 12세, 스웨덴 왕 구스타브 3세;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 잉글랜드 왕 윌리엄 3세, 윌리엄 셰익스피어(여린 사랑의 동경이라는 뜻에서 우르닝, 어쩌면 분리형 우라노디오닝), 워터퍼드 주교 존 애서턴(우라니즘 때문에 1640년 더블린에서 처형), 바이런 경(마르티알리스처럼 강하게 남성화된 우르닝(위 참조), 또는 결합형 우라노디오닝); 테오도르 드 베즈(종교 개혁가, 제네바에서 칼뱅의 후계자), 요하네스 폰 뮐러; 1700년 무렵의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자 하나, 친첸도르프 백작(1705년 파리 주재 황제 사절), 빙켈만(이름난 고고학자), 이플란트,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2세와 그 아우 하인리히 왕자가 우르닝이었느냐는 물음에 답하기 위한 자세한 역사 자료, 뷔르템베르크 왕 프리드리히 1세, 아우구스트 폰 플라텐할러뮌데 백작(시인), 콜로브라트 백작(오스트리아 국무 장관, 1850년 사망), 케펜휠러메치 백작(오스트리아 육군 중장, 1867년 사망), 크로아티아의 반(太守) 옐라치치(우라노디오닝, 어쩌면 남성화된 우르닝일 뿐, 1856년 사망). 다른 이름들, 특히 더 가까운 시대의 이름들은 제시할 증거와 함께 비로소 밝히는 편이 낫겠다.
13) 『글라디우스 푸렌스』 주 12에서 말한, 1867년 11월 1일 이래 들어온, 『글라디우스 푸렌스』와 『멤논』 출간을 위한 동지들의 기부금은 다음과 같이 나뉜다.
| 독일: | ||||
| 브레멘 | 43 | = | 75¼ 굴덴 | |
| 메클렌부르크 | 2 | 〃 | = | 3½ 굴덴 |
| 할버슈타트 | 4 | 〃 | = | 7 굴덴 |
| 베를린 (나의 통신원) 3 또 한 사람 20 셋째 사람 2 | 25 | 〃 | = | 43¾ 굴덴 |
| 뮌헨 | 4 굴덴 | |||
| 뷔르츠부르크 | 5 | 〃 | = | 8¾ 굴덴 |
| 빈의 한 함부르크 사람 오스트리아 통화 5굴덴 | 5 굴덴 | |||
| 빈 사람 10명(원문대로) 오스트리아 통화 12굴덴 | 12 굴덴 | |||
| 다름슈타트 근처의 한 디오닝 | 2 굴덴 | |||
| 외국: | ||||
| 헝가리 오스트리아 통화 은화 5굴덴 | = | 5 5/6 굴덴 | ||
| 스위스 1굴덴 스위스의 한 함부르크 사람 5 바젤의 한 독일인 10굴덴 | = | 19¾ 굴덴 | ||
| 파리 10, 파리의 한 메클렌부르크 사람 6 | 16 | 〃 | = | 28 굴덴 |
| 런던 5파운드 스털링, 그곳의 둘째 사람 5파운드, 그곳의 나의 통신원 10파운드와 5파운드 | = | 196¼ 굴덴 | ||
| 합계 | 411 1/12 굴덴 |
그 밖에도 슈테틴, 런던, 파리, 콘스탄티노플에서 기부금이 약속되어 있다.
1848년 8월 3일과 5일, 나의 학위 논문 「de pace Westphalica」(베스트팔렌 평화에 관하여)는 베를린 대학 법학부에서 왕립 상(금메달)을 받을 만하다고 인정받았으나, 형식상의 결함 때문에 그 대신 honoris causa(명예로서) 돈 한 몫(50 [***])만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때 이를 받기를 거절했다. 지금 나는 그 돈의 값진 쓰임새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1868년 2월 12일 그것을 받아들였고, 이에 프로이센 왕국 문교 장관이 지급을 명했다. 그 돈이 3월 19일 내 손에 들어온 뒤, 나는 이 50 [***]를 오로지 《네무스 사크룸》에, 곧 이미 앞서 예고한 우르닝 시 모음집에 쓰기로 정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목적을 나는 알지 못한다.
14)
비네아가 죽었다! (위 § 104.) 그는 두 해쯤 전에 죽었다. 1868년 5월 23일 스위스에서 이렇게 알려 왔다. 너 많이도 시달린 영혼이여! 그 소식에 소년 시절 어머니의 입에서 귀 기울여 듣던 말이 떠오른다.
가엾은 마음이여, 이 세상에서
숱한 슬픔에 시달리다가,
안식과 평화를 찾는 곳은
오직 더는 뛰지 않는 곳뿐.
Have, pia anima. Sit tibi terra levis.(잘 가라, 경건한 영혼이여. 흙이 네게 가볍기를.) – 그의 이름은 바인개르트너였다. (덧붙이자면 엥겔베르크는 아라우 근처가 아니라 운터발덴주에 있다.)
15) 시도니우스에게.
잘 있느냐!
네가 아직 장밋빛 빛 속에서 숨 쉬고 있다면,
이 떠도는 말이 언젠가 네 눈에 띈다면,
내가 너를 결코 잊지 않는다는 전갈이 되기를.
카를.
XXX. 맺음말
§ 135. 하느님, 창조주시여! 당신의 피조물들이 당신이 주신 본성의 이끌림을 따른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들을 박해하는 것을 언제까지 참으시렵니까? 당신이 어머니 태 속에서 심어 주신 본성 때문에 박해하는 것을? 그들의 사랑 때문에 박해하는 것을?
공공연히, 내 이름을 밝히고, 독일과 유럽 앞에서, 도덕과 정의의 법칙의 가장 높은 원천을 부르며, 나는 이로써 짓밟힌 자연의 권리의 이름으로, 타고난 우르닝의 사랑을 박해하는 근거가 되는 아직 남아 있는 모든 법률에 맞서, 특히 오스트리아, 헝가리, 프로이센, 작센, 바덴, 헤센다름슈타트, 브레멘 등과 잉글랜드에 아직 남아 있는 법률에 맞서 엄숙히 항의한다.
나는 또, 자연의 권리에 따르면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은 우르닝 펠트만을 브레멘에서 범죄자로 가두어 두고 있는 데 항의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서 티롤 파세이어 계곡 모스의 주임 사제 호퍼를 아직도 감옥에서 시들어 가게 두는 데 항의한다. 그는 (『빈딕타』 XIX~XXI쪽 참조) 1864년 9월 3일 보첸의 제국·왕국 지방 법원에서 우르닝의 사랑 행위 때문에 9년의 중(重)중금고를 선고받았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릅니다!
온 유럽 앞에서 나는 그러한 잔혹함에, 참으로! 우리 세기의 치욕인 야만에 항의한다! 나의 외롭고, 부서지기 쉽고, 어쩌면 박해에 내맡겨질 목소리로 항의한다.
타고난 사랑 때문에 법에 따라 처벌받다니! 오, 너 인간의 정의여! 부끄러움의 붉은빛이 네 뺨에 오르지 않느냐?
그러나 나는 보이지 않는 정의에 기댄다. 너는 그 거울상이어야 할 뿐이다. 헤시오도스가 이렇게 말한 그 강한 정의에.
“정의는 영원한 제우스의 딸이니,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거룩하다. 여기서 그가 상처 입으면,
아버지에게 올라가 그 앞에서 범행을 알리고,
왕들의 불의를 고발한다. 그것이 속죄될 때까지.”
(Εργα χαί ήμέραι(『일과 나날』), I, 252 이하)
그렇다, 올림포스의 정의여, 그대를 나는 부른다. 그대가 나의 방패가 되어 다오! 그대의 강한 팔로 나를 붙들어 다오!
“Eripe me populis et habenti nubila terrae!
Namque potes!”
(나를 사람들에게서, 구름 덮인 땅에서 건져 내어 다오! 그대는 할 수 있으니!)
너희는 그리스도인 박해자 가운데 마지막 사람이 운명에 쓰러지며 무대에서 내려갈 때 남긴 유명한 말을 알 것이다. 율리아누스 황제는 죽어 가며 외쳤다.[103]
“나사렛 사람이여, 네가 이겼다!”
자연의 박해자들이여, 입법자들이여, 그리고 타고난 사랑을 감옥에 처하고 겁에 질린 희생자를 자살로 몰아넣는 법률을 옳다 하고 기리는 너희여, 내 말을 들어라.
저 보이지 않는 정의가 다스리는 것이 참인 것처럼, 너희가 이렇게 외칠 날이 오리라는 것도 참이다.
“박해받은 자들이여, 너희가 이겼다!”
나는 날개를 접는다. 나는 행복하다. 벌써 나는 자유를 숨 쉰다. 먼 알프스의 저녁놀처럼 나는 그것을 본다. 오, 아침놀이여! 귀에는 나직한 승리의 노래처럼 울려 온다. 그리고 황량한 사막에서 나의 목소리는 멤논의 석상처럼 아침놀을 향해 울린다.[104]
뷔르츠부르크, 1868년 5월 4일.
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