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논』 — 남성을 사랑하는 우르닝의 성 본성
인물카를 하인리히 울리히스, 오토 폰 비스마르크, 요한 루트비히 카스퍼, 루돌프 피르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용어우르닝, 성적 중간 단계론, 독일 형법 제175조 사건독일 성개혁 운동과 나치의 파괴 (1897~1935)
주석
- [옮긴이] 1866년 런던에서 바이런의 이름으로 나온 장시 「돈 레온」(Don Leon)이다. 오늘날에는 바이런이 아닌 익명의 저자가 쓴 것으로 본다. ↩
- 누마 누만티우스, 『포르마트릭스』 §§ 85–105 참조. ↩
- 마르티알리스의 것이 아니다. ↩
- 생리학, 해부학 또는 산과학의 어느 교과서에서나 – 여기서 고른 “원초적 자웅동체” 등등의 표현은 쓰지 않더라도 – 알 수 있다. 예컨대 히르틀의 『인체 해부학 교본』, 1859. ↩
- [옮긴이] 원문의 Naphe는 Raphe(봉선)의 오식으로 보인다. ↩
- 부지의 『생리학 교본』. – 마이어의 『해부학』. – 히르틀의 『해부학』. ↩
- 예컨대 『포르마트릭스』에서 언급한 뮌스터의 자웅동체 우르닝이 그렇다. ↩
- 우르닝의 본래적인 몸의 생김새 자체, 곧 골격과 형태는 아마 결코 여성적인 데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여성적인 것은 오직 움직임, 몸짓, 거동에서만 드러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우르닝은 사진에서나 잠잘 때 ↩
- 철저히 남성적으로 보이지만, 직접 사귀어 보면 더없이 여성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 헨케(『법의학』, 1829, § 154, 주)에 따르면 남자를 닮은 여자, viragines(남자 같은 여자들)가 있는데, 남자처럼 골반이 좁고 가슴이 납작하며 (그것도 이미 과숙기 이전에) 수염이 난다. 그러나 그의 사례들이 여기에 속하는지, 오히려 우르닝긴에 속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 자웅동체 여자에게서는 이런 일이 자주 있다. 『아라 스페이』 § 50에서 언급한 프라하의 자웅동체 마리아 체르마크가 그렇다. ↩
- 예는 『포르마트릭스』 § 15와 주 12를 보라. ↩
- 티불루스는 자기 애인 마라투스를 가리키며 – 다른 곳에서는 그를 “puer”(소년) 또는 “meus puer”(나의 소년)라고 부른다 – 이렇게 말한다(I. 8).
Carior est auro juvenis, cui laevia fulgent
Ora, nec amplexus aspera barba terit.
(매끈한 얼굴이 빛나고 거친 수염이 포옹을 긁지 않는 젊은이는 황금보다 귀하다.) ↩ - 젊음의 타고난 선물인 가슴과 허벅지의 털 없음을, 로마에서는 이미 다 자란 젊은 남자들도 – 우르닝에게 그만큼 더 오래 사랑스러운 존재로 남으려고 – 기술로 대신하려 했다. (여러 가지 인공적 수단이 언급되는데, 예컨대 속돌로 털을 문질러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마르티알리스는 이에 반발한다(14. 205). ↩
- Puer는 (시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소년”(Knabe)으로 옮길 것이 아니라 “젊은이”(Jüngling)로 옮겨야 한다. 티불루스와 마르티알리스에게서는 사랑받는 puer가 이미 제 애인을 가진 경우가 많다. 마르티알리스에게는 스무 살 된 puer도 나오고, 간통 현장에서 붙잡히는 pueri도 나온다. 이들을 “소년”이라고 부를 수는 도저히 없다. ↩
- puer와 comatus의 예는 로마의 거의 모든 고전 작가에게서, draucus의 예는 중세 라틴어 시기에 와서야, 특히 마르티알리스에게서 보인다. “Lycidae crinitus Jolas ignis erat.”(머리채 긴 이올라스는 리키다스의 불꽃이었다.) (칼푸르니우스 XI. 3.)
드라우쿠스는 젊고 굳센 나이의, 특히 남성적으로 발달한 남자다. 마르티알리스(XI. 73). “Natta (한 우르닝의 이름) drauci sui....”(나타가 자기 드라우쿠스의….) 셸러의 사전에서 draucus의 뜻을 의심스럽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다. 우르닝에 관한 글에 대해서는 그런 이해를 물론 우르닝만이 지니고 온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오늘날에도 남성형 우르닝에게 사랑받는 젊은이들이 곱슬머리를 기른다. 그곳에서 곱슬머리를 기른 젊은이는 아예 곧바로 어느 우르닝의 애인으로 여겨진다. ↩ - 아름답지는 않지만 매우 적확한 이 표현을 되풀이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
- [옮긴이] 아우구스트 폰 플라텐(1796~1835). 남성에게 바친 연애시를 많이 남긴 독일 시인. ↩
- 더없이 사랑스럽고 조금도 음탕하지 않은 이 비가를, 비우르닝인 티불루스의 학식 높은 편자 디세니우스는 (1835년에) ars amandi(사랑의 기술) 또는 praecepta amoris(사랑의 가르침)라고 부른다. 이 비가는 실로 “우르닝의 사랑의 기술”이라고 불릴 만하다. ↩
- 반면에 그 밖의 점에서는 그들이 서로 얼마나 단호히 대립하는지는 아래(주 20)에서 마르티알리스가 여성형 우르닝들을 대하는 태도로 밝혀질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관계는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 덧붙여 말하면, 근시안적인 눈만이 여기서 같은 극끼리의 성적 끌림을 볼 것이다. 모든 성적 끌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극은 서로 다르다. 여기서도 여성적 영혼이 남성적 몸에 끌리는 것이지, 영혼이 영혼에, 몸이 몸에 끌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르마트릭스』 § 114 참조. ↩
- 물론 오늘날 자연에 대한 박해는 모두 법을 잘못 적용한 데서 비롯할 뿐이다. 법의 뜻은 자연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자연으로 되돌려 놓는 것 말고는 결코 다른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 박해를 당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변명거리가 물론 지극히 아무래도 좋은 것일 수 있다. ↩
- 이 인간 형성 계획이 인류를 창조할 때 창조의 회의에 “개선안”으로 제때 제출되었더라면, 채택될 가망이 없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은 어쨌든 너무 늦었다. ↩
- 물론 네로의 본성은, 그에 대해 우리가 매우 자세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도, 벗어나는 것 같다. 그의 본성은 내가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본성 가운데 가장 수수께끼 같다. 스포루스와 올린 성대한 혼례에서 그는 남성형 우르닝이고, 도리포루스와 올린 혼례에서는 여성형 우르닝이다. 이에 따르면 그는 카스퍼를 놀라게 한 그런 종류의 중간 단계일 뿐일 것이다(위 § 23). 그러나 이 모든 것과 나란히 그는, 매우 높은 개연성으로, 여자들에게 다시 진짜 남자처럼 느끼기도 한다(『포르마트릭스』 § 113, 5; 아우렐리우스 빅토르).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더해 다시 카시우스 디오의 기록이 나오는데, 한 브리타니아 여왕이 그를 여러 가지로 바꿔 가며 “비천한 여자”라고 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욕설은 단지 도리포루스와의 혼례를 가리킨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벌거벗은 젊은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을 구경했다는 아우렐리우스 빅토르의 아주 뒤늦은 기록은 믿을 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여기가 아니라 남성화된 자들(아래 § 35 이하)에 속할 것이다. ↩
- [옮긴이] 14세기 페르시아의 서정 시인. ↩
- 한의 진술이 중요한 까닭은, 그가 오스트리아 영사로서 현지에서 몸소 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 이때 남쪽 사람들은 일찍 성숙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꼭 같은 나이이되 튀르크인들에게는 관능적으로 사랑받는 앳된 총각들과 비교해 보라. 『아라 스페이』 VIII쪽. ↩
- 혹시 그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수치심 – 나는 이것을 저 horror naturalis(자연적 혐오)와 나란히 가는 본능이라고 본다 – 도 더 약하다는 현상이 이와 관련된 것은 아닐까? ↩
- 그가 그와 함께, 북극이 남극과 마주 서듯 자기와 마주 서 있는 여성형 우르닝들에게 조롱의 뜨겁고 매운 잿물을 끼얹는 모습은 흥미롭다! 예컨대 언젠가 그를 형제라고 불렀던 여성형 우르닝 카르메니온에게 준, 짓궂기는 하지만 아직 아주 순한 경구시(10. 65)를 참조하라. 그 시는 이런 말로 끝난다. Quare desine, me vocare fratrem: Ne te, Carmenion , vocem sororem(그러니 나를 형제라고 부르지 마라, 카르메니온, 내가 너를 자매라고 부르지 않도록). ↩
- 케스토스는 동시에 사랑의 여신 베누스의 마법 띠 이름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이 띠를 둘러 주면 그 사람은 띠를 둘러 준 이에게 사랑으로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베누스는 우르닝들에게도 그들 사랑의 여신으로 숭배받았다. 그러니 마르티알리스는 젊은이 케스토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 목에 둘러 다오, 오 소년아, 순전한 사랑을, 케스토스를,
사랑의 여신의 품에서 데워진 것을. 키테라의 넥타르로
마법의 힘을 얻은 케스토스를 받아라!” ↩ - 그런 결혼이 독일에는 수백 쌍 있다! ↩
- 그런 “남편”이 내게 보낸 편지 두 통을 참조하라. 나는 그것을 『포르마트릭스』 머리말 VII쪽과 『아라 스페이』 머리말 XXI쪽에 실었다. ↩
- 마르티알리스도 그런 결혼을 여러 번 경구시의 소재로 삼는데, 그 시들은 우리에게 참된 심연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 자신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했다. 일찍이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12. 76).
Invitus puerum fatetur Hypnus,
Mollis Dindymus est, sed esse non vult,
Amphion potuit puella nasci.
Horum delicias superbiasque
Et fastus querulos, Avite, malo,
Quam dotis mihi quinquies ducena!
(휘프누스는 마지못해 소년임을 인정하고, 딘디무스는 여리지만 그렇기를 바라지 않으며, 암피온은 소녀로 태어날 수도 있었다. 이들의 응석과 오만과 투정 섞인 콧대를, 아비투스여, 나는 지참금 백만보다 더 바란다!)
그러니 곧 “10만 탈러 지참금을 가진 아내보다 더!”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지참금과 아내를 받아들였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우르닝이 그를 따라 하는가! ↩ - [옮긴이] 1847년 아내를 살해하고 체포된 뒤 독을 먹고 죽은 프랑스 귀족 테오발드 드 슈아죌프랄랭. ↩
- 두 사람이 모두 남편의 우라니즘을 완전히 알고 있으면서도 자손을 얻기 위해 차가운 정략결혼을 맺으려 할 때에만, 어떤 아모르도 횃불을 흔들어 주지 않는 결합을 맺는 일이 겨우 정당화될 것이다. 『아라 스페이』 주 44. ↩
- [옮긴이] 루이 캉레르(1797~1865). 파리 경시청 보안국장을 지냈고 『전 보안국장 회고록』(1862)을 냈다. ↩
- 쇼펜하우어만은 제2권을 인쇄하는 동안 알게 되었고, 카스퍼(1852)와 피르호는 제2권과 제3권 사이에 알게 되었다. ↩
- 아래를 보라. ↩
- 위를 보라. ↩
- 여성의 우라니즘. 위 § 8 참조. ↩
- 옳은 것은 다만 “똑같이 뜨겁다”는 것뿐이다. ↩
- 더 공정하게 생각하는 카스퍼와는 침울한 대조를 이룬다. 카스퍼는 타고났다는 데서 적어도 하나의 면책 사유를 보며, 처벌을 완전히 폐지하는 데 아무런 이의도 없다. 『임상 단편집』 33쪽. ↩
- 남자의 몸을 자기 쪽에서 그리고 스스로 앞장서서 성적으로 만지는 것 앞에서는, 모든 남자가 – 어떤 이에게는 더 강하고 어떤 이에게는 더 약해 극복할 수 있을지언정 언제나 뚜렷한 – 혐오를 느낀다. 반면 남자의 몸에게 성적으로 만져지는 것, 그 몸이 자기를 만지고 애무하게 내버려 두는 것 앞에서는 그 혐오가 어떤 이에게는 훨씬 적어서 쉽게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아예 없다. 이것으로 자발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일이 설명된다. – 이것은 앞에서 말한, 여자의 몸과 능동적으로 접촉하는 것과 수동적으로 접촉하는 것 앞에서 우르닝이 느끼는 혐오의 두 가지 양태에 꼭 들어맞는다(앞의 § 35). ↩
- 여기서는 호의를 베푸는 연인이 그 자신도 우르닝인 경우가 아니라 – 그런 경우라면 사정은 아주 간단하다 – 본래적 남성인 경우만을 말한다. ↩
- 자연은 여러 신체 부위가, 쓸모없거나 없는 다른 부위의 목적을 위해 한 부위가 보조로 대신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한다. 성적 목적을 위한 신체 부위의 대신하기도 있다. 성적 영역에서 자연은 이 대신하기를, 자연 안에 깊이 뿌리박은 다음의 것으로 북돋운다. ↩
- 성적 감각의 대신하기. 『포르마트릭스』 제11절 주 10, 제21절. ↩
- 그렇지 않다면 손과 팔 없이 태어난 사람이 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발로 칼, 포크, 바늘, 실, 가위를 다루는 것도 비난받을 반자연이어야 할 것이다. ↩
- 그러나 이 방식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심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이 방식이 훨씬 적은 경우에만 나타난다(『포르마트릭스』 제12절 참조). 개인의 타고난 기질이 유달리 격렬하거나 일시적인 본성의 충동이 유달리 강할 때뿐이다. 이것은 카스퍼가 이미 1852년 그의 《계간지》에서 폭넓은 경험을 근거로 인정했고(제1권 76쪽), 1863년 『임상 단편집』(34, 35쪽)에서 더없이 단호하게 확인했다. 나머지 방식들은 바깥으로만 닿는, 가슴과 가슴을 맞댄 포옹일 뿐 삽입은 없다. 대부분은 이것으로 완전히 만족한다. ↩
- “도덕”의 이름으로?
“오, 두 개의 저울추로
제게는 너그럽게, 남에게는 가혹하게 다는 순결이여!
오, 차가운 오만으로
사람들에게서 지상의 행복을 속여 빼앗는 미덕이여!” ↩ - 로마에서는 제정 초기부터 이미 우르닝의 사랑의 관계가, 그리스에서도 그랬듯이, 사랑받는 쪽에서는 압도적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한 술 따르는 시종의 직무, 곧 명예직이라는 일정한 형식을 띠었고, 드물게 예외적으로, 그리고 로마에서만 참된 혼인의 형식을 띠었다. 물론 후자의 예도 여럿 있다(『아라 스페이』 제43절 이하 참조. 여기에 유베날리스에서 두 가지 예를 더 보태야 한다). 페르시아인에게서도, 예컨대 하피즈에게서도 연인은 대개 “술 따르는 이”로 불린다. 그러나 거기에는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함축되어 있지는 않은 듯하다. 반면 오늘날의 튀르크인에게서는 그것이 다시 드러난다. 물론 이 점액질의 민족은 – 특징적이게도 – 연인에게 더 산문적인 직무, 곧 담뱃대 채우는 이의 직무를 준다.) 술 따르는 시종 직무라는 형식 아래 사랑의 관계는 세상에, 예컨대 식탁의 손님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말없이 인정되고 정당화되었다. 그래서 예컨대 마르티알리스는 이렇게 말한다(XI, 56).
Dormiat et tecum, modo qui, dum Caecuba miscet,
Convivas roseo torserat ore puer.
(그리고 방금 카이쿠붐 술을 섞으며 장밋빛 입술로 손님들을 애태우던 소년이 너와 함께 자게 하라.)
이 바깥 형식 아래 그 관계는 거의 왼손 혼인(귀천상혼)과 같았다.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이것조차 열려 있지 않다. ↩ - 『Théorie du code pénal』(형법전 이론), 파리 1835~1842, 제6권 110쪽. ↩
- 미터마이어가 그가 펴낸 포이어바흐의 『형법』(1847) 제467절 대목에서 분명히 그렇게 단언한다. ↩
- 『바이에른 왕국 형법전(1813) 주해. 의사록 등 등에 따라』(관보판) 제2권 59쪽. ↩
- 『형법학』 1798, 제559절. ↩
- 상인 뮐베르크, 시민, 40세(미혼), 병사 3명과 관계를 맺었다는 혐의로 기소. ↩
- [옮긴이] 미겔 세르베투스(1511~1553). 에스파냐의 의사·신학자. 삼위일체론을 부정했다가 칼뱅이 이끈 제네바에서 화형당했다. ↩
- 피고인은 다음과 같다.
1) 사랑하는 쪽으로서 브레멘의 극장 감독 펠트만. 사랑받는 쪽으로서
2) 하노버 왕국 에리히스부르크 출신 그루너,
3) 브레멘 출신 자이프,
4) 뉴올리언스 출신 벵노. 세 사람 모두 19세. ↩ - 최근 바이에른 의회가 매개(뚜쟁이질)에 대한 처벌을 폐지할지, 어디까지 폐지할지를 심의했다. 그때 더없이 엉뚱한 제안들이 나왔는데, 개별 사건에서 기소 여부를 경찰의 재량에 맡기자는 제안까지 있었다! 위에서 정식화한 원칙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이 물음에 아주 간단히 이렇게 답할 것이다. “매개는 그것으로 추문 유발이나 권리 침해에 방조가 이루어질 때에만 처벌한다.” 어떤 행위 자체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면서, 이 처벌받지 않는 행위에 대한 방조는 처벌 대상으로 선언하는 것은 내게는 아무래도 무분별해 보인다. 긴 토론에서 연사 누구도 이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는 것은 기이하다. ↩
- [옮긴이] 프랑스 귀족원 의원 프랄랭 공작(쇼아죌프랄랭)은 1847년 파리에서 아내를 살해하고 체포된 뒤 음독해 죽었다. 이 사건은 7월 왕정 말기의 큰 추문이었다. ↩
- [옮긴이] 에아리누스는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총애한 환관 출신 시종이다. 스타티우스의 『실바이』 제3권 4편이 그의 머리카락 봉헌을 노래한다. ↩
- “우르닝 족속”(Urningthum)이라는 표현을 처음 쓴 영예는 내가 아니라 한 비(非)우르닝, 앞에서 이름을 든 빈의 카세러 박사에게 돌아가야 한다. ↩
- [옮긴이] 카리톤과 멜라니포스는 아크라가스(아그리젠토)의 참주 팔라리스를 죽이려다 붙잡힌 연인들로,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려 한 이야기로 전해진다. ↩
- [옮긴이] 아일리우스 스파르티아누스. 로마 황제 전기 모음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의 필자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안티노우스는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사랑한 비티니아 출신 젊은이로, 130년 나일강에서 죽은 뒤 황제가 그를 신격화했다. ↩
- [옮긴이] 10세기 비잔티움에서 엮은 그리스어 백과사전 『수다』를 당시에는 수이다스라는 저자의 책으로 여겼다. ↩
- [옮긴이] 베르길리우스 『목가』 제10가 52–54행. 사랑에 버림받은 시인 갈루스의 탄식이다. ↩
- 『인클루사』(§§ 30, 34)는 부정확하게 “사춘기의 시작”만을 말한다. 마치 그것이 이를테면 한순간에 시작되는 것처럼, 그리고 우르닝의 사랑의 방향이 열네 살에서 열여섯 살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처럼 말이다. – 그렇지만 『인클루사』 § 36 참조. 그것이 이미 아주 이른 나이에 나타난다는 증언들이 있다. ↩
- [옮긴이] 독일 김나지움의 옛 학년 이름. 맨 아래 섹스타에서 위로 퀸타, 콰르타 순으로 올라가므로 퀸타는 둘째 학년, 콰르타는 셋째 학년이다. ↩
- [옮긴이] 실러의 시 「종의 노래」(1799)의 한 구절. ↩
- 영혼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없애는 데 의지력은 완전히 무력하다. 의지력 자체가 그 법칙의 지배 아래 있다. 그러므로 의지력은 이미 있는 사랑의 불길을 무관심이나 혐오로 바꿀 수 없으며, 무관심이나 혐오를 사랑의 불길로 바꿀 수도 없다. ↩
- 이 혐오는, 보아하니,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 §§ 35, 36.) 그러나 그것이 있는 곳에서는 결정적이다. ↩
- 이미 옛 저술가들이 여성형 우르닝의 수동적 욕망을 여자의 그것과 꼭 같이 분명하게 “prurigo”(가려움, 음욕)라 불렀고, 그것을 아주 올바르게 그들이 ↩
- νούσος δήλεια(여성의 병) ↩
- 라고 부른 것의 증상에 넣었다. (위 § 15.) 로젠바움, 『……의 역사, 아울러 ……에 관한 연구』 ↩
- νούσος δήλεια(여성의 병) ↩
- …… 1845년. ↩
- 그런데 『포르마트릭스』 §§ 107–112는 능동적 욕망과 수동적 욕망을, 사랑하는 몸에 대해 대체로 능동적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행동하려는 방향이라는 뜻으로만 쓰며, 꿰뚫으려 하거나 꿰뚫리려 하는 욕망을 특별히 가리키지는 결코 않는다. 위 §§ 35, 36의 주 34도 마찬가지다. ↩
- 나도 그것을 못 한다. 『포르마트릭스』 § 42. ↩
-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
- 유베날리스가 이미 “Vultu incessuque”(얼굴과 걸음걸이로) 우르닝을 알아본다. ↩
- 이 뒤의 것은 이미 여러 번 관찰되었다. ↩
- 헬리오가발루스 황제가 눈을 굴리던 것과 비교하라. 『인클루사』 § 112. ↩
- [옮긴이] 진화 사상을 대중에게 퍼뜨린 익명의 책. 초판은 1844년이며, 저자는 뒤에 에든버러의 출판인 로버트 체임버스로 밝혀졌다. ↩
- 카를 포크트도 이 가설을 반박했다. 어떤 방향에서인지는 물론 아직 모른다. (K. 포크트, 『동물 조직 설계의 발달』.) 그 영국인은 꿀벌 관찰에 근거한다. ↩
- 그 재판에서 증인 미클버러는 그를 “a fair and effeminate young man”(살결이 희고 여자 같은 젊은이)이라고 부른다. – “메리 앤”이라는 말은 덧붙여 한정된 무리에서만 쓴다. 차려입고 산책로를 어슬렁거리는 화류계 여자들, 과일 파는 아낙들, 그 비슷한 부류가, 얼굴에 칠하고 마찬가지로 차려입은 젊은 우르닝들이 교태를 부리며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a Mary Ann!”(메리 앤이다!) 하고 외친다. 그들의 성향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
- 녹스 씨는 증인들에게 “몰트래버스가 여자 옷을 입고 외출하느냐?”고도 신문했다. 대답은 “아니요”였다! ↩
- “그런데 무도회는 꽤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젊고 잘생긴 마르스의 아들들이 차츰 취하더니, ‘숙녀’들과 춤추는 대신 악사들과 시비가 붙어 급기야 주먹다짐까지 벌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뮤즈의 아들 하나에게 모욕당했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 숙녀 하나가 웨이터장에게, 무도회가 별나더라도 놀라지 말라, 그저 사육제 장난일 뿐이라고 일러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별일 아닙니다. 그런 건 저도 잘 압니다. 저도 그만큼은 아주 분별이 있으니까요.’” ↩
- “분별 있다”(vernünftig)는 말에는 여기서 묘미가 있다. 두 가지 뜻이기 때문이다. 우르닝들 사이에서는 이 말이 바로 “우르닝의”라는 뜻이다. ↩
- [옮긴이] 빈의 무도장 이름. ↩
- § 82에서 나는 이 혐오를 꾸밈없는 타고난 우르닝 본성의 결정적 표지로 꼽았다. 디오닝들도 이미 같은 확신에 이르렀다. 어떤 경우에도 진리를 탐구하는, 존경할 만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다름슈타트의 재야 학자 볼프는 ↩
- 편견 없이 내 이론을 검토하고 다른 사람들과 논의했다. 그는 내게 이렇게 쓴다.
“다름슈타트, 1868년 2월 17일. … 그 자리에 있던 의학을 하지 않는 사람 하나가 훨씬 알아듣기 쉬운 견해를 펼쳤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년이 성숙한 뒤 여성에게 의심할 여지 없이 혐오를 드러낸다면, 이 혐오를 타고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을 시험해 보라. 청년이 한 처녀를 마주하고 그 혐오를 이겨 내지 못한다면, 이 거부감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혐오의 자연스러움과 정당성이 증명된 것이다.’” (그런 시험은 물론 몹시 쓸데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 위의 혼인 예식에도 분명 같은 깊은 끌림, 곧 차라리 우르닝과 디오닝, 또는 우르닝과 우르닝 사이의 혼인을 바라는 끌림이 깔려 있다. 아래 § 111, 위 § 58 a 및 주 40 참조. ↩
- 여기서 나는 취리히의 내 친구와 유일한 차이를 본다. 그 취리히 사람이 아름다운 청년이나 소년을 향해 품던 애틋한 그리움은 예전에는 그를 자주 우울하게, 때로는 정말 불행하게 만들었는데, 그가 쓰기로는 지난 2~3년 동안 크게 누그러졌다. 이것은 아마 그가 1868년 2월 18일 자기 꿈에 관해 써 보낸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제 꿈에 나오는 모습은 늘 여자입니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소년들을 보는 일도 있었는데, 언제나 관능의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오래전 일입니다.” – 그 체코 사람에게도 밤의 꿈에는 여자 모습만 나타난다. “이따금,” 그는 1867년 11월 25일 내게 쓴다, “내 귀염둥이 꿈을 꾸기도 하네. 하지만 기껏해야 그의 입술에 입 맞추는 정도라네. 성적 흥분의 흔적은 그때 전혀 없다네.” ↩
- [옮긴이]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희극 시인. 아테나이오스는 2~3세기 그리스 작가로, 『식탁의 현자들』에 옛 문헌 조각을 많이 남겼다. ↩
- 오늘날이라면 영국 의회를 훨씬 더 날카롭게 그 가혹함으로 탓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의회는 우르닝의 사랑의 행위를 15년의 중금고로 위협하면서, 한편으로는 – 예산에 여왕의 근위 기병대(life guards와 horse guards) 경비를 승인하고 있다. 안티노오스 같은 이 모습들은 우르닝의 눈에는 저 로마의 술 시중꾼들보다 아마 더 괴로울 만큼 유혹적일 것이다!
Perdet te pudor hic! Habere, Britannia,
Severitatem non licet hanc et hos praetorianos!
(이 수치가 너를 망치리라! 브리타니아여, 이런 엄격함과 이런 근위병들을 함께 지니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런던에서 그들을 처음 본 한 독일 우르닝은 황홀해서 외쳤다. “신들이나 볼 만한 광경이다!” ↩ - 우라니즘이 부모의 이해관계와 어떻게 얽히는지를 – 물론 철저히 디오닝 쪽에서 일방적으로 다루었지만 – 그린 책이 『무슈 오귀스트』(Monsieur Auguste, 미발표 소설, 메리 작, 파리, 1860년경)다. 메리는 여기서 우라니즘을 놀랄 만큼 날카롭게 알아보았고,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증오에 차서 그렸지만, 군데군데 정의감 비슷한 것을 내비치며 판단한다. 타고났다는 점이 인정되고, 여성의 손길에 대한 혐오가 아주 정확하게 묘사된다. 우르닝인 오귀스트의 사랑의 그리움은 디오닝 옥타브에게 치가 떨릴 만큼 잔인하게 거절당한다. 옥타브가 한 처녀를 열렬히 사모하자, 오귀스트는 제 혐오를 억지로 누르고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딸과의 혼인을 청하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 허락이 떨어진다. 그는 몸서리치며 억지로 신부의 팔을 끼고 걷는다. 장래의 장인은 아주 늦게야 그의 우라니즘을 눈치챈다. 책의 몇몇 대목은 참으로 빛난다. ↩
- 이런 이성적 결혼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흔했다. 칼리크라티다스의 주목할 만한 발언을 참조하라. 『아라 스페이』 XXII, XXIII쪽. ↩
- 『아라 스페이』 §§ 41–64, §§ 114–120 참조. ↩
- 3세기의 목가 시인. 목가 11. ↩
- “sollicitos amores”는 단지 “sollicitum amorem”(애타는 사랑)을 대신한 것이다. 곧 뒤에 모음, aliquis가 오기 때문이다. ↩
- 다우머의 번역에 대해서는 『아라 스페이』 § 153 이하. ↩
- [옮긴이] 1532년 카를 5세의 형사 법전(카롤리나). 제116조가 “자연에 반하는 음행”을 화형으로 다스렸다. ↩
- 제6권 『글라디우스 푸렌스』 부록 II의 1863년 4월 검찰 논고를 참조하라. 또 포이어바흐, 미터마이어, 헨케, 클로제, 타르디외, 피르호 등등, 아니 카스퍼까지도 참조하라. ↩
- [옮긴이] 프랑스 인문학자 마르크앙투안 뮈레는 남색 혐의로 툴루즈(라틴어 톨로사)에서 달아났고, 그 자리에서 그의 인형이 대신 화형되었다. ↩
- [옮긴이] 하인리히 회슬리(1784~1864). 스위스 글라루스의 모자 장인으로, 『에로스』 두 권을 내어 남자들의 사랑을 변호했다. ↩
- [옮긴이]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재위 361~363).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옛 신들을 되살리려 해 “배교자”로 불렸으며, 페르시아 원정 중 전사했다. 이 말은 후대의 전승이다. ↩
- [옮긴이] 이집트 테베 근처의 거상. 고대에는 해 뜰 무렵 소리를 낸다고 여겨,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 멤논이 어머니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했다. 이 책의 제목이 여기서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