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말 이크라모비치 이크라모프

Акмаль Икрамович Икрамов
소련 우즈베키스탄 1898–1938 ✕ 처형

우즈베크 공산당 초대 우즈베크인 제1서기로 집단화와 목화 단작을 이끌고 대숙청에 희생된 중앙아시아 볼셰비키

«나는 지금 발가벗겨진 인간 형상의 짐승이다.» 1938년 제3차 모스크바 재판 최후 진술에서, 우즈베키스탄을 건설한 이크라모프는 조작된 죄목을 자백하며 이 말을 남겼다.

타슈켄트의 우즈베크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1918년 볼셰비키당에 입당했다. 내전기 페르가나·시르다리야에서 당 기관을 이끌며 반혁명 세력 진압에 참여했고, 1921년 투르키스탄 공산당 서기가 되었다. 1924년 중앙아시아 민족 획정에서 공화국별 분할을 지지하며 우즈베크 공산당 창당에 핵심 역할을 했다. 1929년 제1서기로 임명되어 강제 집단화와 목화 단작화를 이끌었고, 1934년 소수민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전연방 당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1937년 '경계심 부족'으로 해임·체포되어 제3차 모스크바 재판에서 사형 후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민족 획정과 우즈베크 소비에트 공화국의 탄생

1920년대 초 투르키스탄 공산당 내에서는 중앙아시아의 미래를 둘러싼 치열한 노선 투쟁이 벌어졌다. 투라르 리스쿨로프가 이끄는 한 진영은 '투르키스탄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틀 안에서 범튀르크적 통합을 주장했고, 파이줄라 호자예프와 아크말 이크라모프가 이끄는 다른 진영은 중앙아시아를 개별 민족 공화국으로 분할할 것을 주장했다. 이크라모프는 모스크바의 스베르들로프 공산대학에서 수학하던 시절에도 당내에서 투르키스탄의识字率 향상과 학교 건설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며 문화적 자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24년 중앙아시아 민족 획정이 개시되면서 후자의 노선이 승리했다. 이크라모프는 우즈베크 공산당 창당 조직국의 일원으로서 새 공화국의 당 기반을 구축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고, 이후 타슈켄트 주당위 서기, 중앙위 제2서기를 거쳐 1929년 마침내 우즈베크 공산당 중앙위 제1서기(우즈베크인으로는 최초로 이 직책에 오른 인물)가 되었다. 그가 주도한 공화국 건설은 타슈켄트를 중심으로 한 영토적 통합뿐 아니라 당·국가 기구의 토착화(코레니자치야)를 수반했으며, 이는 이후 우즈베키스탄이 소련의 주요 목화 생산지로 변모하는 제도적 기초가 되었다. 1924년의 민족 획정은 오늘날까지도 중앙아시아의 국경을 규정하는 역사적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이크라모프는 범튀르크주의를 '민족적 허무주의'로 비판하면서, 각 민족의 언어와 문화에 기반한 공화국 체제만이 사회주의 건설을 중앙아시아 현실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모스크바 중앙의 정책을 충실히 집행하는 당 간부이기도 했으며, 그가 세운 우즈베크 공산당은 이후 강제 집단화와 반이슬람 캠페인을 현지에서 집행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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