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일리치 두토프

Александр Ильич Дутов

오렌부르크 카자크를 이끌고 소비에트 러시아와 투르키스탄 사이를 차단한 백군 아타만

러시아는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마지막 숨결을 지켜보고 있다.

오렌부르크 카자크 아타만이자 백군 중장. 1917년 11월 소비에트 권력을 불인정한 최초의 군사 지도자로서 오렌부르크-타슈켄트 철도를 차단해 소비에트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20개월간 갈라놓았다. 콜차크 휘하에서 오렌부르크 독립군을 지휘했고, 패배 후 '기아 행군'을 거쳐 중국으로 탈출했으나 1921년 체카 요원에게 암살당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소비에트 권력에 최초로 맞선 아타만

두토프의 이름을 전국에 알린 것은 1917년 두 달 사이의 정치 행보다. 3월 제1차 전(全)카자크 대회에 연대 대표로 참석한 그는 무명의 대위에서 6월 제2차 대회 의장, 이어 전러시아 카자크군 연합 이사회 의장으로 급부상하며 카자크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8월 코르닐로프 사건 때 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총사령관 쪽으로 기울었고, 공화제와 민주주의를 내세운 뒤 9월 오렌부르크 카자크군 아타만 겸 군사(軍事) 정부 수반에 선출되었다.

10월 혁명 닷새 뒤인 26일 오렌부르크로 돌아온 그는 같은 날 「군령 제816호」에 서명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볼셰비키가 강제로 권력을 장악한 것을 인정할 수 없으며, 임시정부의 권한이 회복될 때까지 군(軍) 정부가 군내(軍內)의 전(全) 행정권을 접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써 두토프는 소비에트 권력에 전쟁을 선포한 최초의 군 아타만이 되었다. 그가 장악한 오렌부르크는 중앙 러시아와 투르키스탄, 시베리아를 잇는 교통의 요지였기에 그의 봉기는 곧 소비에트 러시아의 목을 조르는 전선이 되었다. 두토프는 볼셰비키와 생도당을 뺀 각 정파가 참여한 「조국 구제 위원회」의 군사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지역 볼셰비키 지도부를 체포하고 친볼셰비키 수비대를 해산했으며 볼셰비키 클럽을 폐쇄했다.

그의 봉기는 카자크의 광범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전선에서 돌아온 카자크 대다수는 싸우려 하지 않아 두토프가 규합한 병력은 장교와 학생 자원병 2천 명 안팎에 그쳤다. 1918년 1월 블류헤르가 이끄는 적위대에 오렌부르크를 빼앗긴 두토프는 투르가이 초원으로 물러났다가,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봉기와 카자크 반란을 타고 7월 오렌부르크를 탈환했다. 제헌의회 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일단 코무치(Komuch)에 합류했으나 실제로는 이에 맞섰고, 오렌부르크를 「오렌부르크군 특별구역」으로 선포한 뒤 콜차크를 가장 먼저 지지하며 1919년 전 카자크군 행진(行進) 아타만에 올랐다. 패배 후에도 그는 중국 국경 너머까지 투쟁을 이어가려 했고, 이 집념이 결국 체카의 암살 작전을 부른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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