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의 퇴위를 받아낸 옥토브리스트 지도자, 보어전쟁 의용군에서 임시정부 장관까지
1917년 3월 2일, 구치코프는 슐긴과 함께 프스코프의 황실 열차에 올라 니콜라이 2세로부터 퇴위 조서를 받았다. 로마노프 왕조 300년은 그 열차 안에서 막을 내렸다.
알렉산드르 구치코프는 '10월 17일 동맹'(옥토브리스트)을 이끌며 입헌군주제와 스톨리핀 개혁을 지지한 보수적 자유주의자였다. 제3대 두마 의장과 중앙군수산업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라스푸틴과 궁정을 공개 비판하며 니콜라이 2세의 적이 되었다. 1917년 3월 2일 바실리 슐긴과 함께 프스코프에서 차르의 퇴위를 받아냈으며, 임시정부 초대 육군해군장관이 되었으나 4월 위기로 사임했다. 이후 코르닐로프와 백군을 후원했다. 보어전쟁 의용군, 티베트 여행, 수차례 결투로 점철된 모험가적 삶을 살았고, 1936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경력 연표
- 1899–1902보어전쟁 의용군, 부상 후 영국군 포로
- 1906'10월 17일 동맹' 중앙위원회 의장
- 1907–1912제3대 두마 의원, 국방위원회 위원장
- 1910–1911제3대 국가두마 의장
- 1915–1917중앙군수산업위원회 의장
- 1917.3니콜라이 2세 퇴위 접수
- 1917.3–4임시정부 육군해군장관
- 1919–1936백군 후원, 파리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