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혁명론을 공동 창안하고 레닌의 봉인열차 귀환을 주선한 '혁명의 상인'
1917년 12월, 레닌은 파르부스의 귀국 요청을 거부하며 답했다: '혁명의 대의는 더러운 손이 만져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독일 사민당(SPD)의 저널리스트로, 1904~1905년 레프 트로츠키와 함께 '영구혁명론'을 공동 발전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정부 자금으로 러시아 혁명 조직망을 구축했으며, 1917년 4월 레닌의 '봉인열차' 귀환을 주선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볼셰비키 집권 후 레닌은 '혁명의 대의는 더러운 손이 만져서는 안 된다'며 그의 귀국을 거부했고, 파르부스는 독일에 남아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 지도자들의 고문이 되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현실정치 사이에서 자신의 원칙을 상품화했다는 비판을 받는,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에서 가장 논란적인 인물 중 하나다.
경력 연표
- 1891바젤대 박사학위, 독일 사민당 입당
- 1894–1897『디 노이에 차이트』 필진, '파르부스' 필명 채택
- 1897–1898『젝지셰 아르바이터차이퉁』 편집장
- 1900레닌·마르토프와 『이스크라』 창간 지원
- 1904–1905트로츠키와 영구혁명론 공동 정식화
- 1905상트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전략가, 「재무선언」 기초
- 1915독일 외무부에 러시아 혁명 계획 제출, 코펜하겐 작전망 구축
- 1917레닌의 '봉인열차' 귀환 주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