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푸틴에 의존해 제정 말기 정치를 좌우한 마지막 황후
남편의 퇴위 소식을 듣고 알렉산드라는 단 한마디만 남겼다. "신이시여, 이것이 러시아를 구하게 하소서!"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로 태어나 1894년 러시아 황후가 된 알렉산드라는, 신이 내린 전제군주권을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신앙으로 니콜라이 2세를 움직였다. 혈우병을 앓는 황태자 알렉세이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리 라스푸틴에게 의존했고, 제1차 세계대전 중 니콜라이 2세가 총사령관으로 전선에 나간 사이 라스푸틴의 조언을 받아들여 각료를 거듭 교체하며 내정을 좌우했다. 독일계 출신이라는 의심과 라스푸틴 스캔들로 민중의 분노를 샀고, 전제정치 고수와 개혁 거부로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앞당겼다. 1918년 7월 17일 예카테린부르크의 이파티예프 하우스 지하실에서 남편과 다섯 자녀와 함께 볼셰비키에 의해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894–1917 군주·왕실 · 러시아 제국
경력 연표
- 1894니콜라이 2세와 결혼, 러시아 황후
- 1904황태자 알렉세이 출산
- 1905라스푸틴과 첫 만남
- 1915–17니콜라이 2세 부재 중 라스푸틴과 함께 내정 통제
- 1917.3가택연금
- 1918.7예카테린부르크에서 가족과 함께 처형
관련 역사 사건
전시 내정 개입과 각료 교체
1915년 9월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군 총사령관을 맡고 본부에 머무르자, 알렉산드라는 수도에서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라스푸틴을 신뢰하고 그의 조언을 들으며 각료와 차관을 잇달아 바꾸도록 압박했다. 1916년 초 비트머는 고레미킨을 대신해 총리가 되었고, 외무장관 사조노프는 그해 8월 해임되어 비트머가 그 직책까지 맡았다. 사조노프는 영국·프랑스와의 동맹을 지키고 전쟁을 계속하자는 입장이었으며, 비트머는 대중 대표와 지방 자치에 적대적인 반동파로 평가되었다. 9월에는 프로토포포프가 내무장관 대행에 임명되었다. 이 인사들은 니콜라이의 재가와 제정 정부의 제도적 권한 아래 이루어졌으므로, 알렉산드라가 정부를 단독으로 장악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군사정보 지도까지 그녀에게 전달됐다는 우려가 군 지휘부에서 나왔고, 총사령관의 아내와 라스푸틴이 국정에 개입한다는 인식은 전선과 수도에서 정권에 대한 신뢰를 더 훼손했다. 독일계 황후가 라스푸틴 및 비트머와 함께 독일과의 단독강화를 추진한다는 소문도 확산했지만, 이는 당대의 미확인 정치적 비난이었다. 알렉산드라는 니콜라이의 전제 권력을 옹호하고 반대파의 요구를 억누르려 했으며, 이러한 정책적 선택과 인사 압력은 제정 말기 정권의 고립을 심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