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역정보를 모스크바로 흘려보낸 베를린 레지덴트
베를린에서 코불로프가 심은 첩자 '리체이스트'는 실제로는 게슈타포가 조종하는 이중간첩이었다. 그의 보고는 NKVD 정보분석관을 건너뛰고 베리야를 거쳐 스탈린의 책상에 직행했고, "독일의 침공 위험은 없다"는 확신을 강화시켰다.
보그단 코불로프의 동생으로, 형과 베리야의 후원에 힘입어 NKVD에서 출세했다. 1938년 서른둘에 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 대행, 이듬해 베를린 NKVD 레지덴트로 파견되었으나 독일어도 작전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의 주력 첩자 '리체이스트'는 실제로는 독일이 심은 이중간첩으로, 1940~1941년 나치의 역정보가 코불로프를 통해 모스크바로 흘러들어갔다. 전쟁기에는 우즈베키스탄 보안 총수, 전후에는 포로관리총국과 굴라크 부수장을 지냈으며, 1953년 베리야 몰락 후 체포되어 1955년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 1937–1938가그라 시 NKVD 부장, 이어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NKVD
- 1938–1939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 대행
- 1939–1941베를린 주재 대사관 참사관, NKVD 합법 레지덴트
- 1941–1945우즈베크 국가보안인민위원, 이어 내무인민위원
- 1945–1951포로·억류자 관리총국 부국장, 이어 제1부국장
- 1951–1953포로관리국장 겸 굴라크 제1부수장
- 1953–1955체포, 별도 재판과 처형
관련 역사 사건
히틀러 죽음 수사: 작전명 '미프'
1945년 말, 소련 지도부는 히틀러의 죽음을 둘러싼 모순된 정보 속에서 새로운 조사에 착수했다. 작전명 '미프(Миф)'로 명명된 이 수사는 코불로프가 이끌었는데, 당시 그는 NKVD 포로·억류자 관리총국(GUPVI) 작전국장으로서 전쟁 포로로 잡힌 독일 주요 인사들에 대한 접근권을 갖고 있었다. 수사팀은 히틀러의 카메르디너 하인츠 링게, 부관 오토 귄셰, 전속 조종사 한스 바우어 등 벙커 생존자들을 재소환해 심문했고, 1946년 여름에는 증인들을 대동한 채 베를린으로 이동해 제국수상부 정원을 재발굴했다. 코불로프는 히틀러가 살아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지휘했으나, 자살을 반증할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수사 자료 6권 분량과 두개골 파편·소파 직물 등 물증은 모스크바로 이송되어 '특별 보관'되었고, 1962년이 되어서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었다. 이 수사는 실체적 진실 규명보다는 NKVD와 SMERSh 간의 기관 경쟁, 그리고 스탈린 주변 권력 구도 속에서 전개된 내부 정치의 산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