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네스트르를 먼저 건너고 베를린 중심까지 들어간 아르메니아인 기갑군 총원수
옐리자베트폴현 차르다흘리의 아르메니아인 농가에서 태어나 1925년 붉은 군대에 들어갔다. 1942년 제3기계화여단장으로 ‘화성’ 작전과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했고, 1944년 3월 드네스트르를 먼저 건넌 공으로 소련 영웅이 되었다. 1944년 8월부터 제11근위전차군단을 이끌고 베를린 중심까지 진격했다. 1956년 헝가리 봉기 진압에 참가했고, 1969년 소련군 전차병 총감이 되어 1975년 기갑군 총원수에 올랐다.
다른 이름: 하마자스프 바바자냔
주요 활동과 소속
- 1925–1977
-
1928–1977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925.09붉은 군대 입대
- 1941.08제395소총연대장, 스몰렌스크 전투·옐냐 공세
- 1942.08–1944.08제3기계화여단장(1943년 10월 제20근위기계화여단)
- 1944.04.26소련 영웅(드네스트르 도하)
- 1944.08.25제11근위전차군단장, 비스와-오데르·베를린 작전
- 1956.05제8기계화군 사령관, 헝가리 봉기 진압
- 1959.06–1967.09오데사 군관구 사령관
- 1969.05소련군 전차병 총감
- 1972회고록 『승리의 길』
- 1975.04.29기갑군 총원수
제11근위전차군단장 ‘아르모’
바바자냔의 제20근위기계화여단은 1944년 여름 리비우-산도미에시 작전에서 서부 부크·산·비스와강을 건너며 싸웠다. 카투코프 부부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 기자 유리 주코프에게 보낸 편지는 이때 특히 잘 싸운 부대로 그의 여단을 꼽았다. 그는 이 싸움에서 목을 다쳐 입원했고, 카투코프는 1944년 9월 1일 편지에서 그가 회복하면 게트만의 자리, 곧 제11근위전차군단장을 맡게 된다고 미리 알렸다. 문서상 그는 8월 25일 군단장에 임명되었다. 군단은 1945년 1월 비스와-오데르 작전에서 우치·쿠트노 등을 지나 그달 말 독일 국경에 이르렀고, 카투코프는 편지에서 그가 “또다시 놀라운 용기를 보인다”고 썼다. 베를린 작전에서 군단은 여러 방어선을 뚫고 베를린 중심까지 싸워 들어갔다. 카투코프는 이 공으로 그를 두 번째 소련 영웅 칭호에 추천했으나, 상급 기관에서 수보로프 훈장으로 바뀌었다.
카투코바는 그를 “바그라티온처럼 용감했다”고 평하며, 군 안에서 모두 ‘아르모’라 불렀고 그가 싸우는 곳에는 늘 성공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도 1972년 회고록 『승리의 길』은 게트만이나 포펠의 책처럼 자기 공을 앞세웠다고 보았다. 특히 게오르기 주코프가 전투를 어떻게 이길지 그에게 의논했다는 대목은 사실이 아니라 아첨이라고 했다.
전후 그는 1947년 1월 보로실로프 고등군사아카데미에 진학했다. 카투코바에 따르면 카투코프가 그의 진학을 밀어주었는데, 독일에 남고 싶었던 바바자냔은 일부러 모스크바로 보낸 것이라며 서운해했다고 저자에게 직접 말했다. 카투코프는 이 말을 전해 듣고 “공부를 마치면 그에게 빛나는 앞날이 기다린다”며 놀랐다고 한다. 바바자냔은 결국 카투코프보다 한 계급 높은 기갑군 총원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