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발렌티노비치

Anna Walentynowicz
연안 자유노조 반체제 인사 폴란드 폴란드 1929–2010 ✕ 추락사

해고당한 조선소 노동자에서 '독립 폴란드의 어머니'로

파업 3일째 바웬사가 종료를 선언하자, 그는 피엔코프스카와 함께 문을 막고 떠나던 노동자들을 돌려세워 임금 투쟁을 연대 파업으로 바꾸었다.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의 크레인 기사로, 1980년 8월 해고가 연대(Solidarity) 탄생의 불씨가 된 폴란드 노동운동가이다. 16년간 용접공으로 일하며 작업량 기준의 270%를 채운 '노동 영웅'이었지만, 상사의 비자금 횡령을 고발하며 당국과 맞서 반체제 인사가 되었다. 파업 3일째 바웬사가 파업 종료를 선언하자 알리나 피엔코프스카와 함께 문을 막고 노동자들을 돌려세워 임금 투쟁을 연대 파업으로 바꾸었다. 이후 바웬사의 독주와 노조의 변질을 비판하며 거리를 두었고, 2010년 스몰렌스크 항공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지하 노조 활동과 국가의 탄압

발렌티노비치는 1978년 해안자유노조(WZZ)에 가입하고, 지하 신문 『해안의 노동자』의 편집자로서 조선소에 비합법 신문을 배포했다. 그녀의 집은 WZZ의 연락 거점이었고, 이 때문에 국가보안부의 감시와 48시간 구금, 압수수색 같은 탄압을 겪었다.

발렌티노비치는 여러 차례 국가 폭력의 대상이었다. 1980년 8월 해고는 정년을 5개월 앞둔 시점에 '노동자 의무의 중대한 위반'을 구실로 이루어졌다. 연대 탄생 이후에도 그녀는 계엄령 시기 조선소 파업을 공동 조직했다가 구금되었고, 1982년 7월까지 연금된 뒤 다시 체포되어 그단스크와 모코투프, 그루지온즈의 감옥에 갇혔다. 1983년 3월 그루지온즈 법원은 그녀에게 징역 1년 3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고, 그해 12월 '부이에크' 광산 학살을 기리는 명판을 세우려 한 일로 다시 체포되어 1984년 4월까지 루블리니에츠 감옥에 갇혔다. 합계 19개월에 이르는 구금과 수감 기간이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1981년 10월 라돔에서 일어났다. 노동자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보안경찰 장교 두 명이 밀고자와 공모하여 그녀를 독살하려 시도했다. 이후 폴란드 국민기억원(IPN)은 2009년 관련자들에게 혐의를 제기했고, 2010년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피고인들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85년 예지 포피에우슈코 신부 암살에 항의하는 단식 투쟁을 주도한 뒤, 그녀는 자신이 받은 모든 국가 훈장을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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