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 이바노비치 볼스키

Аркадий Иванович Вольский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 1932–2006 ○ 백혈병

소련 기계공업을 총괄하고 탈소비에트 자본을 조직한 실무자

1991년 8월 쿠데타 때, 가택연금 중인 고르바초프와 전화 연결에 성공한 볼스키는 쿠데타파가 퍼뜨린 '고르바초프 건강 이상설'이 거짓임을 세상에 알렸다.

중앙위 기계제작부장,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의 경제 보좌관, 그리고 소련 말기 산업 관료에서 탈소비에트 기업 로비로 이행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러시아 산업가·기업가 연합(RSPP)의 창립자이자 15년간 회장을 맡으며 '붉은 디렉터'들을 조직화된 로비 세력으로 전환시켰고, 이는 러시아 시장경제 이행의 조건을 크게 규정했다.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고르바초프와 접촉하여 쿠데타파가 내세운 '건강상 무능'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특별관리위원장(1988~1990)과 체첸 평화협상 부대표(1995)를 지냈으며, 1986년 체르노빌에서 석 달간 산업 대응을 지휘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RSPP와 대기업 정치

볼스키는 스스로 사업을 경영하지는 않았다. 1991년 이후 그는 공산당을 떠나 국영공업의 관리자들을 집단적 로비 세력으로 조직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1990년 소련 과학아카데미의 예브게니 벨리호프와 함께 과학산업연합을 세웠고, 이 단체는 뒤에 러시아 산업가·기업가 연합(RSPP)으로 개칭되어 그가 1990년부터 2005년까지 회장을 맡았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이 연합의 창립을 1992년으로 적었다. 이 신문은 RSPP를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 집단으로, 대기업과 주요 올리가르히를 대표하며 크렘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기적으로 만나 경제 재편에 참여한 조직으로 묘사했다.

RSPP는 '붉은 디렉터'들에게 상설적 제도 발언권을 주고 이들을 독자적 정치 행위자로 만들었다. 볼스키는 연합의 수장인 동시에 그 정치적 통로의 선두에 섰다. 1993년 두마 선거에서 '시민연합' 블록 명부를 이끌었고, 1995년 선거에서는 '노동조합-러시아 산업가-노동연합' 명부 3번에 올랐으나 두 블록 모두 봉쇄조항을 넘지 못했다. 1995년에는 연합의 정치적 날개로 러시아통합산업당 창당에 참여했다. 1999년 선거에서는 '조국-전러시아'의 톰스크-옴스크 지역 명부 선두에 섰으나 역시 당선되지 못했다.

크렘린과의 결별은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문제에서 왔다. 볼스키는 당시 러시아 최대 부호였던 그에 대한 사기·탈세 혐의가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고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크렘린의 미움을 샀다. 2005년 9월 그는 RSPP 회장직에서 크렘린에 더 우호적인 인물로 교체되고 대신 명예회장 직함을 받았다. 그는 2006년 9월 오랜 병환(급성 백혈병) 끝에 사망했으며, 푸틴은 조전에서 그가 새 러시아 경제의 형성과 기업가들의 결집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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