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공화국의 창설자이자 수반, 스탈린의 절친
1902년 3월, 모스크바. 19세의 표도르는 '신체의 불가침,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라 적힌 손수 만든 붉은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학생 시위의 신호였다. 체포, 투옥, 퇴학 — 그렇게 '아르툠'이 탄생했다.
1901년 입당한 구볼셰비키로, 돈바스 광부·철도 노동자에서 출발해 오스트레일리아 이민 노동자 조직을 거쳐 1918년 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공화국을 직접 수립하고 이끌었다. 스탈린·키로프와 절친했으며, 내전기 우크라이나에서 중앙군사혁명위원회와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모스크바 당 책임서기를 역임했다. 독일 점령군과 데니킨 백군에 맞서 소비에트 권력을 수호했으며, 1921년 아에로바곤 탈선 사고로 38세에 사망했다. 갓난아들은 스탈린이 입양해 키웠다.
경력 연표
- 1901–1902RSDLP 입당, 모스크바 기술학교 학생 시위 주도 후 퇴학·투옥
- 1903–1905돈바스·하리코프 지하 혁명 활동, 12월 하리코프 무장봉기 지도
- 1906–1910IV 대회 대표, 페름·모스크바 당 활동, 종신 시베리아 유형 선고, 탈출
- 1911–1917오스트레일리아 브리즈번에서 러시아 노동자 조직, 총파업 주도, '에코 오스트레일리아' 발행
- 1917–1918VI 대회 중앙위원 선출, 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인민위원회 의장
- 1918–1919전우크라이나 중앙군사혁명위원회 의장, 전우크라이나 중앙집행위원회 의장
- 1920바시키르 전권위원, '검은 독수리' 봉기 진압, 모스크바 당위원회 책임서기
- 1920–1921전러시아 광산노동자조합 중앙위원회 의장, 국제광산노동자조합 조직
관련 역사 사건
- 1905–19071905년 혁명하리코프 12월 무장봉기 지도자하리코프에서 1905년 12월 무장봉기를 지도했고, 봉기 진압 후 체포되어 감옥에서 탈출했다. 1906년 RSDRP 제4차 대회 대의원.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공화국 창설자이자 전우크라이나 중앙군사혁명위원회 의장1918년 2월 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공화국을 수립해 인민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제1 도네츠크 군대를 조직했으며, 전우크라이나 중앙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서 우크라이나 내전 전선을 지휘했다. 1920년에는 바시키르 전권위원으로 '검은 독수리' 봉기를 진압했다.
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공화국
1918년 2월 12일(구력 1월 30일), 하리코프에서 열린 제4차 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지역 대회에서 도네츠크-크리보이로크 소비에트 공화국(DKSR)이 선포되었다. 아르툠은 이 공화국의 인민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국가원수 역할을 수행했다. 공화국의 이념적 토대는 '민족적 원칙이 아닌 경제적·생산적 공동체 원칙에 따라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도네츠크 탄광 지대와 크리보이로크 철광 지역을 하나의 자족적 경제 단위로 보고,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 아닌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RSFSR)의 자치 공화국으로 편입시키려는 구상이었다.
공화국은 하리코프 현, 예카테리노슬라프 현, 헤르손 현 일부와 현 로스토프주 지역까지 포괄했으며, 당시 러시아 제국 산업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중공업 중심지였다. 수립 사흘 전, 우크라이나 중앙라다는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체결했고, 이는 독일군의 우크라이나 진주를 초래했다. 아르툠은 중앙라다의 영유권 주장에 맞서 '도네츠크 분지는 우크라이나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했으며, 블라디미르 안토노프-오브세옌코의 지시에 따라 제1도네츠크 군대를 조직해 카레딘의 코사크와 독일 점령군에 맞섰다.
그러나 공화국은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했고, 레닌과 스베르들로프는 그 창설을 지지하지 않았다. 1918년 3월 20일 제2차 전우크라이나 소비에트 대회에서 공화국의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편입이 결정되었고, 4월에는 독일-오스트리아군이 전 영토를 점령하면서 실질적으로 소멸했다. 공화국의 존속 기간은 불과 두 달 남짓이었으나, 이 경험은 후일 아르툠이 1920년 도네츠크 현 집행위원장으로 복귀해 광산 복구와 행정 재편을 주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2015년, 자칭 도네츠크 인민공화국(DPR)은 이 공화국을 자신들의 역사적 선례로 언급하며 아르툠을 '건국의 아버지'로 지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