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샤 에르네스토브나 라치스

Asja Lācis
소련 라트비아 1891–1979 → 수용 10년

벤야민을 마르크스주의로 이끈 프롤레타리아 아동극의 개척자

벤야민은 『일방통행로』(1928)를 이렇게 헌정했다: 「이 거리는 아샤 라치스 거리라 이름 붙여졌다, 기술자로서 이 거리를 저자를 관통해 낸 그녀의 이름을 따서.」

라트비아 출신 연극연출가.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 아동극을 개척했고, 1924년 벤야민을 마르크스주의로 이끌었으며 브레히트·피스카토어와 협업했다. 수용 10년 후 발미에라 극장을 이끌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벤야민과의 만남: 마르크스주의로의 전회

1924년 여름, 라치스는 이탈리아 카프리에서 독일의 문학비평가 발터 벤야민을 만났다. 당시 벤야민은 유대 신비주의와 독일 관념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으며,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라트비아 노동자 계급 출신의 볼셰비키 연출가였던 라치스는 그에게 완전히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벤야민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그녀는 리가 출신의 라트비아 볼셰비키였고, 볼셰비키로서의 실천이 그녀에게 주는 확신 속에서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연인 관계와 지적 교류가 동시에 전개되었다. 벤야민은 라치스의 초청으로 1925년 리가를, 1926~27년 겨울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며, 이 경험을 바탕으로 『모스크바 일기』를 남겼다. 이 일기에는 소비에트 일상과 라치스의 연극 작업, 그리고 무엇보다 볼셰비키 현실을 마주한 지식인의 내적 갈등이 생생히 기록되어 있다.

라치스는 벤야민에게 프롤레타리아 아동극의 정치적·교육적 의미를 설명했고, 이에 감명받은 벤야민은 1928년 「프롤레타리아 아동극 강령」을 집필해 그녀에게 바쳤다. 같은 해 출간된 『일방통행로』의 헌사는 두 사람 사이의 지적 빚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벤야민의 마르크스주의로의 전회는 1920년대 후반 그의 사상 전개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었고, 그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아샤 라치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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