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산업을 이끈 최후의 GKChP 생존자
1991년, 나는 우리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하리코프 계기공장의 조립공으로 출발해 소련 로켓·우주산업 전체를 총괄하는 일반기계공업부 장관까지 오른 기술관료로, 에네르기야-부란 왕복우주선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소련 우주개발의 마지막 대역사를 이끌었다. 1988년 CPSU 중앙위원회 국방산업 담당 서기로 당의 군수정책을 주관했고, 1991년 8월에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GKChP) 8인 중 한 명으로 소련 붕괴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 후 1년 반 동안 수감되었다. 2021년 사망 당시 GKChP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경력 연표
- 1950–1962하리코프 계기공장에서 조립공·무선기기 조정사로 근무
- 1963–1972하리코프 계기공장 주임 엔지니어
- 1972–1975하리코프 계기공장 공장장
- 1975–1976생산연합 '모놀리트' 총괄책임자
- 1976–1981소련 일반기계공업부 차관
- 1981–1983소련 일반기계공업부 제1차관
- 1983–1988소련 일반기계공업부 장관
- 1988–1991CPSU 중앙위원회 국방산업 담당 서기
관련 역사 사건
- 1985–1991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우주산업 장관 · GKChP 참여
- 1991노보오가료보 협상과 신연방조약포로스 사절단의 수장국방회의 제1부의장으로서 8월 18일 포로스로 날아가 고르바초프에게 비상사태 선포를 요구한 5인 사절단을 이끌었다. 거부당한 후 GKChP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
- 19918월 쿠데타와 소련의 해체GKChP 8인 위원, 포로스 사절단1991년 8월 18일 볼딘·셰닌·바렌니코프와 함께 포로스로 날아가 고르바초프에게 비상사태 선포를 요구했다. 쿠데타 실패 후 8월 23일 체포되어 마트로스카야 티시나에 수감되었다가 1994년 사면받았다.
에네르기야-부란 계획
1980년대 소련 우주산업의 최대 과제는 미국의 스페이스셔틀에 대응할 다회용 우주수송체계 '에네르기야-부란'의 건설이었다. 셔틀이 궤도상 핵투발 및 위성 포획 능력을 갖춘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되었기에, 이 계획은 전략균형의 핵심이었다. 1976년 각료회의 승인 후 85개 성·청 산하 1,260개 기업이 동원된 초대형 프로젝트가 가동되었고, 바클라노프는 1981년 일반기계공업부 제1차관, 1983년 장관으로 승진하며 부처 간 조정평의회(MVKS) 의장으로서 전체를 총괄했다.
바클라노프는 1987년 5월 15일 바이코누르에서 '에네르기야' 로켓의 첫 발사를 국가위원회 위원장으로 진두지휘했고, 1988년 11월 15일 무인 궤도선 '부란'이 3시간 궤도비행 후 전 자동으로 활주로에 착륙하는 세계 최초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는 첫 발사 시험에 빈 더미만 싣자는 안을 "우주 강국으로서 품위 없는 일"이라며 뒤집고 실질적 탑재체를 요구했으며, 미국도 해내지 못한 에네르기야 탑재량 2배 증대(100→200톤)와 궤도선 독립 운용 방안을 직접 고안했다. 이 과정에서 90종의 신소재가 개발되고 100기의 실험장치와 7기의 복합 모의시험대가 가동되었다. CPSU 중앙위원회 국방담당 서기로 자리를 옮긴 1988년 이후에도 당 차원에서 계획을 계속 후원했으며, 그의 경력 전체를 관통한 것은 군사우주 패권을 건 미소 경쟁의 최전선에서 소련의 기술적 대등을 조직해낸 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