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크 드미트리예비치 바클라노프

Олег Дмитриевич Бакланов
소련 러시아 1932–2021 ○ 자연사

우주산업을 이끈 최후의 GKChP 생존자

1991년, 나는 우리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하리코프 계기공장의 조립공으로 출발해 소련 로켓·우주산업 전체를 총괄하는 일반기계공업부 장관까지 오른 기술관료로, 에네르기야-부란 왕복우주선 계획을 진두지휘하며 소련 우주개발의 마지막 대역사를 이끌었다. 1988년 CPSU 중앙위원회 국방산업 담당 서기로 당의 군수정책을 주관했고, 1991년 8월에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GKChP) 8인 중 한 명으로 소련 붕괴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 후 1년 반 동안 수감되었다. 2021년 사망 당시 GKChP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에네르기야-부란 계획

1980년대 소련 우주산업의 최대 과제는 미국의 스페이스셔틀에 대응할 다회용 우주수송체계 '에네르기야-부란'의 건설이었다. 셔틀이 궤도상 핵투발 및 위성 포획 능력을 갖춘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되었기에, 이 계획은 전략균형의 핵심이었다. 1976년 각료회의 승인 후 85개 성·청 산하 1,260개 기업이 동원된 초대형 프로젝트가 가동되었고, 바클라노프는 1981년 일반기계공업부 제1차관, 1983년 장관으로 승진하며 부처 간 조정평의회(MVKS) 의장으로서 전체를 총괄했다.

바클라노프는 1987년 5월 15일 바이코누르에서 '에네르기야' 로켓의 첫 발사를 국가위원회 위원장으로 진두지휘했고, 1988년 11월 15일 무인 궤도선 '부란'이 3시간 궤도비행 후 전 자동으로 활주로에 착륙하는 세계 최초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는 첫 발사 시험에 빈 더미만 싣자는 안을 "우주 강국으로서 품위 없는 일"이라며 뒤집고 실질적 탑재체를 요구했으며, 미국도 해내지 못한 에네르기야 탑재량 2배 증대(100→200톤)와 궤도선 독립 운용 방안을 직접 고안했다. 이 과정에서 90종의 신소재가 개발되고 100기의 실험장치와 7기의 복합 모의시험대가 가동되었다. CPSU 중앙위원회 국방담당 서기로 자리를 옮긴 1988년 이후에도 당 차원에서 계획을 계속 후원했으며, 그의 경력 전체를 관통한 것은 군사우주 패권을 건 미소 경쟁의 최전선에서 소련의 기술적 대등을 조직해낸 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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