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지 벌라주

Nagy Balázs
볼셰비키에 대한 좌파 비판 헝가리 헝가리인 1920–2003 ○ 자연사

노동자평의회를 기록한 망명 역사가

너지가 기록한 10월 31일 결의문에서 노동자평의회는 첫 조항으로 '공장은 노동자의 재산이다'라고 선언했다.

너지 벌라주는 헝가리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이자 망명 저술가로, 1956년 혁명에서 노동자평의회가 국가기구와 당 관료제 바깥에서 독자적인 정치·경제 조직을 세운 과정을 기록했다. 그는 11월 4일 이후 부다페스트 중앙노동자평의회의 결성과 파업, 정부와의 협상을 다룬 당사자 기록을 남겼으며, 이 연구는 1961년 브뤼셀에서 프랑스어로 출판되었다. 그의 저술은 노동계급의 자기조직이 혁명의 패배 속에서도 대안적 정치 형태로 작동한 방식과 그 한계를 함께 보여 준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미셸 바르가라는 이름: 망명과 사망 연도의 문제

이 인물의 활동 상당수는 '미셸 바르가'(Michel Varga)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런던대학교 상원도서관이 소장한 자료 목록은 생성자를 '너지 벌라주(1927~2015), 트로츠키주의자'로 적고 그가 미셸 바르가라는 가명을 썼다고 밝히며, 같은 기록은 그가 1956년 4월 헝가리 지식인들이 결성한 페퇴피 서클의 서기 세 명 가운데 한 명이었고 러시아군 개입 뒤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망명지에서 그는 피에르 브루에와의 논의를 거쳐 트로츠키주의자가 되었고, 1962년 국제주의 공산주의 조직(OCI)에 가입했으며 1963년 창설한 헝가리 혁명적 사회주의자 동맹을 제4인터내셔널 국제위원회에 가맹시켰다. 이후 그는 동유럽에서 트로츠키주의를 재건하는 활동에 무게를 두었고, 1972년 OCI와 갈등 끝에 제명된 뒤 1973년 제4인터내셔널 재건 국제동맹을 결성했으나 1984년 내부 분쟁으로 다시 제명되었다. OCI는 그를 소련 국가보안위원회와 미국 중앙정보국 요원이라고 주장했으나, 1976~77년 루트 우브리에르, 혁명적 공산주의자 연맹, 미국 사회주의 노동자당, 국제 스파르타쿠스 경향 대표로 구성된 국제 조사위원회는 이 주장을 입증되지 않은 것으로 기각했다. 한편 이 항목의 연도 표기(1920~2003)는 위 자료 목록과 마르크스주의 인터넷 아카이브가 제시하는 1927~2015년과 어긋난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 이번 작업에서 확정할 수 없었으므로 두 설을 모두 병기하며, 사망 시점과 장소 역시 추가 사료로 확인되어야 한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