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제를 무너뜨린 풀주 출신 야당 지도자
1988년 11월 7일과 1989년 11월 20일, 사수응게소 대통령에게 전국 원탁회의 개최를 제안하는 서한을 보냈다.
풀주의 킨칼라구 음볼로키 출신의 콩고 정치인으로, 일당제 시절에 콩고민주통합발전운동(MCDDI)을 창설하고 다당제 도입을 요구했다. 1991년 주권 국민회의에서 정당 연설을 개막하고 앙드레 밀롱고의 과도 총리 선출을 지지하는 등 민주화 이행의 야당 축이었다. 1992년 대선 결선에서 리수바에게 패했고, 1997년 내전 중 리수바의 민족통합정부 총리가 됐다가 사수응게소 충성 세력에 축출되어 망명했다.
다른 이름: 베르나르 바카나 콜렐라
주요 활동과 소속
-
1989–2009
콩고민주통합발전운동당수대표
정치·당 지도
경력 연표
- 1989콩고민주통합발전운동(MCDDI) 창설, 당 규약을 내무부에 제출
- 1991주권 국민회의에서 정당 연설 개막
- 1992대선 1차 20.32%로 2위, 결선에서 리수바에 패배
- 1994브라자빌 시장 선출
- 1997리수바에 의해 민족통합정부 총리로 임명됨, 사수응게소 충성 세력의 점령으로 축출·망명
- 2000콩고 법원에서 궐석 사형 선고
- 2005사면으로 귀국, 의회 사면법 채택
- 2007총선에서 국회의원 당선
관련 역사 사건
닌자 민병대와 1993~1994년 무장 대결, 그리고 망명기의 계속된 전쟁
1993년 5~6월 의회선거를 둘러싼 다툼은 콜렐라의 닌자 민병대와 리수바 진영의 무장 충돌로 번졌다. 1992년 대선에서 리수바에게 패한 콜렐라는 민주갱신연합(URD)을 이끌어 이전에 적대하던 콩고노동당(PCT)과 연합을 맺고 리수바 정부에 맞섰다. 프랑스어 자료는 닌자가 이 의회선거의 부정을 이유로 코브라와 함께 코코예 민병대에 맞서 내전을 일으켰다고 기술하며, 이 충돌로 2,000명이 죽고 다수가 삶의 터전을 잃었다. 폭력 사실이 서술된 방식은 자료마다 다르다. 프랑스어 위키백과는 양 진영이 통제 지역에서 약탈과 파괴, 살육을 저질렀다고 적고, 닌자는 풀주와 브라자빌의 바콩고·마켈레켈레에서, 리수바 측 민병대는 니아리·레쿠무·부엥자주 등에서 활동했다고 밝힌다. 영어 위키백과는 1993~1994년 정치 폭력으로 약 2,000명이 사망했다고만 적어, 사망자 수치가 두 진영의 행위를 모두 아우르는 값임을 보여준다.
1994년 1월 정부군은 콜렐라 세력의 근거지인 바콩고구를 봉쇄하고 중화기로 닌자를 공격했고, 같은 달 30일 합의로 충돌이 줄었다. 콜렐라와 리수바는 1994년 6월 공개적으로 화해했으며, 콜렐라는 1994년 7월 브라자빌 시장에 선출되어 1997년까지 재임했다. 요컨대 무력 충돌과 권력 분배가 맞물린 타협이 이 시기 콩고 정치의 형태였다.
1997년 10월 사수응게소 진영이 브라자빌을 장악하면서 콜렐라는 리수바와 함께 축출되어 망명했지만, 그를 따르는 닌자 부대는 계속 싸웠다. 1998년 11월 콜렐라는 정부의 대화 제안을 거부했고, 같은 해 12월 콜렐라 지지 세력은 브라자빌 장악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당시 미국에 있던 콜렐라는 자기 부대가 사실상 도시를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귀국해 국가를 이끌 수도 있다고 밝혔으나, 정부는 이를 부인하고 군대가 우세하다고 맞섰다. 콜렐라는 며칠 뒤 이 반란을 청년들의 봉기라고 규정하고, 정부를 도운 앙골라 군대의 개입 때문에 진압되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가 닌자에 대한 정부군의 지속적인 공세로 이어졌고, 라리계 중심의 은칠룰루 민병대가 결성되는 등 무장 대결은 다른 조직들까지 끌어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