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지상군 지휘관
1944년 6월 12일 노르망디에서 병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과 나는 곧 함께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버나드 몽고메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병사 훈련에 대한 집착을 바탕으로 지휘관이 된 영국 육군 원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엘알라메인에서 제8군을 재건해 승리를 이끌었고, 이후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전선을 지휘했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을 앞두고 제21군집단을 맡아 초기 연합군 지상군을 통솔했으며, 상륙 규모를 확대하고 해안 교두보를 넓히는 구상을 추진했다. 그의 신중하고 통제적인 작전 방식은 병력 손실을 줄이는 장점과 전쟁을 느리게 한다는 비판을 함께 남겼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8왕립 워릭셔 연대 임관
- 1914–1918서부전선 참전, 제47런던사단 참모장
- 1942–1943제8군 사령관, 엘알라메인 전투 지휘
- 1943제8군 사령관, 시칠리아·이탈리아 침공 지휘
- 1944제21군집단 사령관, 노르망디 상륙 초기 연합군 지상군 지휘
- 1944–1945제21군집단 사령관, 북서유럽 전역 지휘
- 1946–1948제국참모총장
- 1951–1958유럽연합군 최고사령부 부최고사령관
관련 역사 사건
전후 서유럽 방위 체제 편입, 1948~1958
전후 몽고메리는 라인 영국군 총사령관을 거쳐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제국총참모장을 지냈고, 1946년 1월에는 엘알라메인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48년부터 1951년까지는 서유럽연합(Brussels Treaty Organisation) 지휘관위원회 의장으로서 서유럽 방위 기구의 군사 협의체를 이끌었다. 1951년에는 NATO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부(SHAPE)의 초대 부사령관에 임명되어 1958년 퇴역할 때까지 재임했다. 이 시기 그의 경력은 전시의 야전 지휘에서 냉전기 서유럽 군사 블록의 지도부로 옮겨간다. 서유럽연합은 1948년 브뤼셀 조약에 뿌리를 둔 반공 방위 기구였고 NATO의 전신 조직이었으며, 몽고메리가 이끈 위원회는 그 군사적 축이었다. 따라서 이 재임 기간은 노동계급의 진지가 아니라 대서양 양안의 자본주의 진영을 군사적으로 조직하는 자리에 있었다. 동시에 다큐멘터리 사료가 남긴 바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의 그는 방위 예산 삭감, 징병제와 상비군 규모, NATO 내부의 지휘권 문제를 둘러싸고 동맹 정치와 부딪혔고, 이는 그가 지휘한 군사적 성과의 성격과 별개로 검토되어야 할 대목이다. 1958년 회고록 The Memoirs of Field Marshal Montgomery를 간행하고 같은 해 퇴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