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그단 자하로비치 코불로프

Богдан Захарович Кобулов
소련 그루지야 1904–1953 ✕ 처형

베리야의 가장 가까운 부관이자 카틴·민족이주의 집행자

메르쿨로프는 회고했다 — "베리야는 밤늦은 업무를 마친 뒤 언제나 코불로프만 데리고 집이나 다차로 향했다." 루뱐카의 그 누구보다 코불로프는 베리야의 사적인 영역에 속한 인물이었다.

아르메니아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베리야의 손에 발탁된 뒤 스탈린 공포정치의 핵심 설계자가 되었다. NKVD 수사국장(1938–1939)으로서 대숙청의 심문과 처형을 지휘했고, 1940년 카틴 학살을 집행한 '3인조'의 일원이었다. 전시에는 NKVD·NKGB 차석으로서 체첸·인구시·크림 타타르 등 민족 전체의 강제이주 작전을 현장에서 지휘했으며, 베리야의 개인적 고문 전문가로도 악명 높았다. 스탈린 사후 베리야와 함께 제1내무차관으로 복귀했으나 1953년 6월 체포되어 12월 베리야 등과 함께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베리야의 개인 고문사 — '코불리치'

베리야는 코불로프를 '코불리치'라고 다정하게 불렀고, NKVD의 그 누구보다 가까이 두었다. 코불로프는 육중한 체구(180kg에 달했다는 증언이 있다)의 소유자로, 심문실에서 주먹과 고무 곤봉으로 죄수를 때리고 전신으로 짓누르는 것을 즐겼다. 물리학자 야코프 테를레츠키는 1945년 루뱐카에서 '달걀형'의 코불로프를 목격하고 몸무게가 180kg은 넘었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베리야의 아들 세르고는 코불로프의 '크고 털 많은 손과 짧고 굽은 다리'를 회고하며 그가 본질적으로 '고문과 살인의 기계'였다고 평했다.

코불로프의 잔혹성은 단순한 폭력 이상이었다. 그는 피의자를 때리라는 베리야의 지시를 열성적으로 수행했고, 1930년대 후반 트빌리시에서 베리야의 지시로 그루지야 농업인민위원 마티카슈빌리를 직접 구타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1953년 여름 심문 조서에서 코불로프는 이렇게 진술했다: '베리야의 지시로 나는 전 그루지야 농업인민위원이었던 체포된 마티카슈빌리를 구타하는 데 직접 참여했다.' 한 노바야 가제타 기사에 따르면, 그는 '주먹으로 때리고... 위로 뛰어올라 자신의 엄청난 체중으로 내리찍었으며, 가장 좋아하는 고문 도구는 곤봉이었다.' 한 심문 중에는 베리야에게 달려드는 피의자의 목을 맨손으로 꺾어 죽이기까지 했다.

영국 역사가 사이먼 시백 몬테피오레에 따르면, 코불로프는 메르쿨로프, 로도스, 베리야와 함께 원동군 사령관 바실리 블류헤르 원수를 고문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블류헤르의 눈을 뽑아내는 데 가담했다고 전해진다. 헤로니모라는 암호명의 스페인 공화국 망명자는 코불로프에게 18개월 동안 심문당하며 '나를 의자에 묶고 고무 곤봉으로 때렸다'고 증언했다.

역설적이게도 코불로프는 자신의 행위가 언젠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동료들은 그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훌쩍이곤 했으며, 언젠가 자신과 동료들이 저지른 모든 일에 대해 답해야 할 날이 올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전한다. 그 예감은 1953년 12월 23일, 그가 스스로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내렸던 것과 똑같은 총살형으로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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