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다비도비치 캄코프

Борис Давидович Камков
소련 몰도바 1885–1938 ✕ 처형

좌파 사회혁명당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이론가, 볼셰비키 연정에서 7월 봉기까지

"혁명적 사건이 벌어지는 역사적 순간에 우리는 도덕적 평가를 할 여유가 없었다. 우리의 자리는 혁명과 함께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 1917년 11월 PLSR 제1차 대회

좌파 사회혁명당(PLSR)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이론가. 볼셰비키와 연정을 구성했으나,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 반대로 1918년 7월 봉기를 주도했다. 진압 후 유배를 거듭하다 1938년 처형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좌파 사회혁명당의 이론가: 볼셰비키와의 논쟁

캄코프는 PLSR의 수석 이론가로서 볼셰비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에 맞서 '민주주의 독재'를 주장했다. 1917년 11월 PLSR 제1차 대회에서 그는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혁명적 민주주의 전체의 독재를 원한다"고 선언하며, 노동자뿐 아니라 농민과 도시 중간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혁명 연합을 역설했다. 이는 농민에 기반한 사회혁명당 전통에서 출발한 입장이었다.

브레스트-리톱스크 조약 문제에서 캄코프는 레닌의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였다. 1918년 3월 제4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그는 조약을 '세계 혁명의 무덤'이라고 규정하며, 독일 제국주의에 대한 전면적 무장 저항을 촉구했다. PLSR은 조약 비준에 반대하며 인민위원회에서 전원 사퇴했고, 캄코프는 카렐린, 프로시얀 등과 함께 남부로 가서 대독 항전 조직에 나섰다.

1918년 7월 제5차 소비에트 대회에서 캄코프는 레닌과 정면으로 맞붙었다. 그는 곡물 징발대와 빈농위원회가 농민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곡물을 바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지방 소비에트뿐이며, 무장한 식량 징발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레닌의 정책을 '관료적 중앙집권'으로 규정한 캄코프는 PLSR 당파를 대표해 소비에트 인민위원회 정책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 연설은 좌파 에스에르 봉기 직전, 양당 결별의 이론적 선언이었다.

이후 지하 활동과 유배 속에서도 캄코프는 자신의 신념을 철회하지 않았다. 1918년 10월 PLSR 제6차 대회에서 그는 "세계 혁명이 도래할 때 기회를 잡을 것은 볼셰비키가 아니라 좌파 에스에르일 것"이라고 말했다. 1938년 부하린 재판에서 증인으로 소환되었을 때도 1918년 레닌 암살 음모 혐의에 대해 끝내 거짓 증언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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