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페트로비치 셰볼다예프

Борис Петрович Шеболдае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895–1937 ✕ 처형

대테러 전야에 무너진 아조프-흑해 변경주의 당 주인

1934년 제17차 당대회에서 그는 키로프를 찾아가 '노인들'이 레닌의 유언대로 스탈린을 다른 자리로 옮기고 그대를 서기장으로 세우자고 한다는 뜻을 전했다.

1914년 입당한 고참 볼셰비키로, 니즈니볼가와 북캅카스 변경주 당 제1서기로서 집단화와 곡물 징발을 지휘했고 1932년 쿠반의 '검은 명부' 탄압에 그 이름이 남았다. 1934년부터 아조프-흑해 변경주 제1서기를 지냈으나, 1936년 여름 예브도키모프가 '셰볼다예프파' 숙청을 위해 파견되고 류시코프가 지역 NKVD를 맡으면서 포위되었다. 1937년 2~3월 중앙위원회 총회 보고로 격하되어 쿠르스크주로 밀려났고, 그해 6월 체포되어 10월 총살됐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32년 북캅카스의 곡물 위기와 농민 저항

1932년 북캅카스 변경주 당위원회 서기였던 셰볼다예프는 곡물 조달 목표를 낮춰 달라고 요청했지만, 중앙은 이를 거부했다. D’Ann Penner의 연구에 따르면 셰볼다예프는 스탈린에게 변경주 할당량을 1천만~1천5백만 푸드 줄여 달라고 요청했으며, 그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조치는 지역 곡물 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당 지도부가 할당량을 고수한 사례다. Penner는 1932년 곡물 부족을 강경하게 집행된 중앙 정책과 농민들의 저항이 결합해 낳은 위기로 분석한다. 농민들은 집단화에 대한 반발과 생존의 필요 속에서 파종과 노동을 줄이고, 국가가 수확할 수 있는 곡물의 양도 줄어들었다. Penner는 이를 중앙당이 ‘파업’으로 해석한 갈등으로 다루지만, 이 표현은 농민들의 조직된 단일 행동을 뜻하기보다 당시 당의 해석을 가리킨다.

1932년 가을 수확과 조달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중앙은 지역 지도부에 책임을 물으면서도 할당량을 줄이지 않았다. Penner는 셰볼다예프의 감축 요청이 거부된 뒤, 10월 22일 정치국이 라자르 카가노비치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위원회를 북캅카스에 파견했다고 서술한다. 1933년 2월에 이르러서야 중앙은 북캅카스 변경주에 종자 대부를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셰볼다예프는 조달 압박을 완화하려고 한 지역 서기였지만, 변경주 당 책임자로서 집단화와 곡물 수집을 집행한 당 기구의 일부이기도 했다. 그의 요청은 정책에 대한 제한된 이견을 보여 주며, 그것만으로 그가 조달 체계나 뒤따른 기근의 책임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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