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자하로비치 슈먀츠키

Борис Захарович Шумяцкий
소련 러시아 1886–1938 ✕ 처형

소련 영화산업을 설계한 혁명가 출신 문화행정가, '소비에트 할리우드'를 꿈꾸다

1934년 11월 15일 크렘린. 《차파예프》를 아홉 번째 본 스탈린이 슈먀츠키에게 물었다. "전국 모든 군 단위 중심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나?" 소련 전역의 음향 영사기는 겨우 4~5백 대뿐이었다.

볼셰비키 철도노동자로 1905년 크라스노야르스크 무장봉기를 지휘했고, 1917년 첸트로시비리 의장으로 시베리아 전역에 소비에트 권력을 선포했다. 극동공화국 총리, 페르시아 주재 전권대표, 동방노동자공산대학 총장을 거쳐 1930년부터 소련 영화산업을 총괄하며 《차파예프》《치르크》 등 사회주의 리얼리즘 고전을 만들어냈다. 크림 반도에 연간 200편 제작을 목표로 한 '소비에트 할리우드'를 구상했으나 1938년 숙청으로 총살, 1956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소련 영화산업의 설계자: 소유즈키노에서 '소비에트 할리우드'까지

슈먀츠키가 1930년 소유즈키노 이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소련 영화산업은 만성적인 제작 부진과 재정난에 빠져 있었다. 그는 중앙집중적 생산체계를 구축하고, 각본 검열과 제작 승인을 일원화했으며, 창작 인력을 국가 주도로 양성하는 시스템을 정비했다. 그의 지휘 아래 《차파예프》(1934)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의 전범이 되었고 개봉 첫해에 3천만 명이 관람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어 《즐거운 친구들》(1934), 《청년 막심》 3부작(1934–1939), 《치르크》(1936), 《13인》(1937) 등이 제작되어 국내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935년에는 소련 최초의 국제영화제인 모스크바 국제영화제를 창설하여 직접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크렘린에서 스탈린과 정치국 위원들을 대상으로 정기 영화 상영회를 열고 토론 내용을 속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기록은 소련 영화정책의 이면을 보여주는 1차 사료로 남아 있다. 1934년 미국 시찰 이후 할리우드의 분업화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영감을 받아 크림 반도 라스피 만에 연간 200편 제작 규모의 '소비에트 할리우드' 건설을 구상했으나, 1937년 인민위원회의에서 예산 문제로 거부되었다. 그가 저술한 《수백만의 영화》(1935)는 사회주의 영화의 대중적 사명을 이론화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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