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불가닌

Никола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Булганин
소련 러시아 1895–1975 ↓ 실각 1958

군복을 입은 총리, 흐루쇼프에게 밀려나다

1941년 서부전선, 독일 폭격기들이 머리 위로 모스크바를 향해 날아가자 불가닌은 안절부절못하며 외쳤다. "왜 저것들을 격추하지 않는 거요?" 지도를 보던 주코프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여기서 격추하면 아군 진지를 폭격할 테니, 후방의 담당 부대가 처리하게 두는 게 낫습니다."

체카 출신 행정가로 모스크바 시장과 공화국 총리를 거쳐 스탈린의 신임을 얻었다. 전쟁 중 주코프와 함께 복무했고, 종전 후 민간인 최초의 국방장관으로 1,100만 대군의 평시 전환을 주관했다. 군사 전략가가 아니라 충실한 집행자로서 원수 계급을 받은 인물이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와 'B&K' 2인 체제를 이루어 해빙기 외교의 얼굴이 되었고, 1955년 총리로서 유고·인도·영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1957년 반당 그룹 사태에서 흐루쇼프에게 등을 돌렸다가 패배한 뒤 총리직과 원수 계급을 모두 빼앗겼다. 독자적 권력 기반 없이 충성만으로 버틴 실무형 인물의 궤적이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반당 그룹과 몰락

스탈린 사후 불가닌은 흐루쇼프와 함께 'B&K'로 불리는 이인조를 이루었다. 1955년 말렌코프를 대신해 각료회의 의장에 오른 불가닌은 흐루쇼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인도·영국을 공동 방문하며 해빙기 소련 외교의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1957년 6월 말렌코프·몰로토프·카가노비치 등이 흐루쇼프 축출을 시도한 '반당 그룹' 사태에서 불가닌은 이들의 편에 기울었다. 흐루쇼프는 주코프 원수의 도움으로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역전에 성공했고, 불가닌은 공개 자리에서 자신의 배신을 자백해야 했다. 한동안 자리를 지켰지만, 1957년 말 태국 방문 후 귀국 집회에서 불가닌이 흐루쇼프보다 더 큰 박수를 받자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무너졌다. 1958년 3월 불가닌은 총리직에서 해임되고 흐루쇼프가 직접 정부 수반을 겸하게 되었다. 불가닌은 국가은행 총재로 강등된 뒤 스타브로폴 지역 인민경제회의 의장으로 좌천되었고, 1958년 11월 원수 계급을 박탈당하고 상장군으로 격하되었다. 1960년 연금 생활에 들어갔고, 이후 모스크바에서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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