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의 창설자, 이견을 멈추지 않은 당내 독립적 마르크스주의자
「코바, 그만둬, 창피한 꼴 당하지 말게. 이론이 자네 분야가 아니란 건 모두 알고 있네.」 — 당 회의에서 스탈린에게 던진 말.
오데사 출신의 유대계 러시아인 마르크스주의자로, 17세부터 혁명운동에 투신했다. 1921년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ИМЭ)를 창설하여 세계 최고의 마르크스 문헌 컬렉션을 구축했고, 마르크스·엥겔스의 미발표 원고를 직접 발굴·편집하여 《독일 이데올로기》 제1장과 《자연변증법》을 최초로 출판했다. 소비에트 아카데미 정회원(1929)이자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 학자였으나, 제헌의회 해산·브레스트 평화·당내 이견 탄압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독립적 성향 때문에 1931년 체포·추방되었고, 1938년 사라토프에서 총살되었다.
경력 연표
- 1887–1889오데사에서 노동자 서클 조직, 초기 마르크스주의자로 활동; 첫 파리 체류, 플레하노프·라브로프와 교류
- 1891–1899체포·18개월 구금 후 4년 강제노동형, 이후 키시뇨프 유형; 총 5년을 크레스티 교도소에서 복역
- 1901–1905그룹 「보르바」 이끌며 RSDLP 제2차 대회 참가; 레닌의 당 중앙집권화·분파주의를 공개 비판
- 1905–1907러시아로 귀국, 페테르부르크 최초 노동조합 조직; 제2두마 사민당 분파에서 활동
- 1907–1917해외 망명; 독일 사민당 기록보관소 연구, 카우츠키의 학술비서; 마르크스·엥겔스 미출간 원고 다수 발굴·출판
- 1917–1918귀국 후 메즈라욘카 합류, 볼셰비키와 통합; 제헌의회 의원 당선; 무장봉기·제헌의회 해산·언론탄압에 반대
- 1918–1920브레스트 평화 반대로 일시 탈당 후 복당; 국가기록관리총국(글라바르히프) 국장, 과학총국장
- 1921–1931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ИМЭ) 창설·소장; 《독일 이데올로기》 제1장(1924)·《자연변증법》(1925) 최초 출판
- 1929소비에트 아카데미 정회원 선출(역사학, 27/30표); 적기노동훈장 수훈
- 1931–1938멘셰비키 연계 혐의로 체포·제명·사라토프 유형; 1937년 재체포, 1938년 1월 21일 총살
관련 역사 사건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와 MEGA
1921년 랴자노프가 창설한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ИМЭ)는 그의 생애 최대의 업적이다. 중앙위원회는 처음에 '마르크스주의 박물관'을 구상했으나 랴자노프는 연구와 출판을 겸하는 본격적인 과학연구소를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연구소의 토대는 랴자노프가 유럽에서 직접 수집한 방대한 컬렉션이었다. 1921년 그는 빈의 변호사 테오도어 마우트너와 빌헬름 파펜하임이 40년간 수집한 2만 권의 사회주의·아나키즘 문헌, 그리고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카를 그륀베르크의 1만 권 장서를 일괄 구매했다. "이 세 도서관을 사면 모스크바에 세계 최고의 사회주의 도서관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여기에 독일 사민당 기록보관소에 보관된 마르크스·엥겔스의 육필 원고를 대대적으로 사진 촬영해 들여왔다. 1925년에는 프랑스에서 바뵈프의 미출간 친필 원고 300점을 발견·구매했고, 헬페르트 컬렉션(1848년 혁명 관련 5,000권) 등 희귀 문헌을 연이어 입수했다. 연구소 장서는 1931년까지 40만 권을 넘어섰다.
랴자노프가 지휘한 가장 야심 찬 사업은 《마르크스-엥겔스 역사비판 전집(MEGA¹)》이었다. 원어原文 그대로 42권으로 기획된 이 세계 최초의 마르크스·엥겔스 학술전집은 1927년 첫 권이 출간되었다. 이에 앞서 랴자노프는 1924년 베를린에서 베른슈타인이 은닉한 《독일 이데올로기》 원고 전체를 발견했고, 그해 제1장을 최초로 출판했다. 이어 1925년 엥겔스의 《자연변증법》 미출간 원고를 정리해 세상에 내놓았다. 두 저작 모두 그때까지 극히 일부만 알려져 있던, 마르크스주의 문헌학의 획기적 성과였다. 또한 1928년부터는 28권짜리 최초의 러시아어판 마르크스·엥겔스 전집(Sochineniya¹)을 편집하기 시작했다.
랴자노프의 편집 원칙은 원본에 대한 절대적 충실성이었다. 그는 베벨·베른슈타인이 생존 인사를 배려해 편지를 삭제·변개한 관행을 강하게 비판했고, 자신의 연구소에서는 모든 텍스트를 변형 없이 출판할 것을 고집했다. 연구소는 독일·프랑스·영국·철학·정치경제학·사회학 등 분야별 '케비닛(кабинет)' 체제로 조직되었고, 각 캐비닛마다 전담 연구진이 배치되어 문헌의 수집·정리·연구를 병행했다. 1920년대 말 이 연구소는 세계 마르크스 연구의 중심지로 인정받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와도 긴밀히 협력했다. 랴자노프가 1931년 체포된 후 연구소는 레닌 연구소와 강제 통합되어 마르크스-엥겔스-레닌 연구소(ИМЭЛ)로 재편되었고, MEGA¹는 1935년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