돤치루이

段祺瑞

안후이파를 세운 북양군 최후의 지도자, 1910년대 베이징 정부를 좌우한 총리

안후이 허페이 출신으로 톈진 무비학당을 나와 독일에서 군사학을 배웠고, 위안스카이 밑에서 신군 포병 지휘관이 되었다. 1911년 양샤 전투에서 청의 제2군을 이끌고 한커우와 한양을 되찾았으나, 1912년 초 북양군 장군들을 앞세워 청 황제의 퇴위를 요구하는 전보를 쳤다. 위안 정부의 육군총장과 총리를 지냈고 위안의 제정에는 반대했다. 위안이 죽은 뒤 총리로 북중국을 장악해 1917년 장쉰의 복벽을 진압하고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이끌었으며, 일본 차관으로 안후이파를 키웠다. 1918년의 비밀 군사협정과 산둥 문제는 5·4 운동을 불렀고, 1920년 직환전쟁에서 패해 물러났다. 1924~1926년 임시 집정을 지낸 뒤 1936년 상하이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단기서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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