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한 장으로 정부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고트발트의 손을 들어준 마지막 민주 대통령
1948년 2월 25일, 베네시는 공산당 민병대가 프라하 거리를 장악하고 내전이 임박한 가운데 비공산당 장관 12명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로, 1차 대전 중 마사리크·슈테파니크와 함께 민족평의회를 창설했다. 1918년부터 17년간 외무장관으로서 국제연맹과 소협상을 주도하며 프랑스·소련과의 동맹 체계를 구축했다. 뮌헨 협정으로 사임 후 런던 망명정부를 이끌었고, 전후 귀환해 대통령에 복귀했다. 1948년 2월 쿠데타에서 비공산당 장관들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고트발트의 공산당 정부를 승인함으로써 체코슬로바키아의 소비에트 블록 편입을 결정지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5–1918체코슬로바키아 민족평의회 서기
- 1918–1935체코슬로바키아 외무장관
- 1921–1922체코슬로바키아 총리
- 1935–193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 1940–1945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 대통령
- 1945–1948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
관련 역사 사건
베네시령과 독일인·헝가리인 추방 (1945~1946)
1945년 4월 런던을 떠나 코시체로 귀환한 베네시는 전쟁 전 수데텐란트 독일인의 행동을 배신으로 규정하고, 전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계 주민을 축출하겠다는 구상을 이미 굳히고 있었다. 그는 1942년 그리스·터키 간 인구 교환을 모델로 삼아 수데텐란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고, 추방되는 독일인에게 재정 보상을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P63] 1945년 5월 10일 프라하에 도착한 그는 '체코인과 슬로바키아인의 통일 민족국가의 이익'을 위해 독일인과 헝가리인의 '청산'을 요구했다.[P79] 같은 해 발표된 이른바 베네시령(정식 명칭은 '공화국 대통령령')은 독일계·헝가리계 주민의 국적을 박탈하고 사유 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는 내용을 담았다.[P192] 이 법적 틀에 따라 약 300만 명에 이르는 독일인과 헝가리인이 재산을 잃고 추방 대상이 되었다.[P80] 다만 헝가리계 주민의 추방은 소련의 반대로 시작 직후 중단되었고, 독일계 주민 추방은 계속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당국은 포츠담 협정 제12조가 요구한 사전 통보와 인도적 처우를 지키지 않았으며, 수데텐란트에는 거의 독일인이 남지 않았다.[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