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북쪽에서 반격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실행하지 않은 무장친위대 장군
1945년 4월 베를린 북쪽에서 소련군을 협공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았으나, 열 배나 많은 적을 앞에 두고 반격할 힘이 없다고 밝혔다.
동프로이센에서 태어나 1차 대전에 참전했고 자유군단을 거쳐 국가방위군 소령으로 1933년 전역했다. 1934년 돌격대, 1935년 친위대에 들어갔고 나치당원이 되었다. 친위대 「도이칠란트」 연대를 맡아 무장친위대의 훈련과 조직을 다졌고, 1940년 말부터 「비킹」 사단을 지휘했는데 이 사단은 1941년 우크라이나 즈보리우에서 유대인 600명을 학살했다. 1945년 4월 21일 히틀러는 그에게 베를린 북쪽에서 반격하라고 명령했으나 병력이 없어 공격하지 않았고, 22일 이를 안 히틀러는 전쟁에 졌다고 선언했다. 1948년 풀려난 뒤 HIAG 창립에 참여하고 무장친위대를 변호하는 책을 냈다.
다른 이름: 펠릭스 마르틴 율리우스 슈타이너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14.03–1918프로이센군 사관후보생, 1차 대전 참전
- 1921–1933국가방위군 장교, 소령으로 전역
- 1936.07.01–1940.12친위대 「도이칠란트」 연대장
- 1940.12.01–1943「비킹」 사단장
- 1943.03.30–1944.10제3 SS 기갑군단장
- 1945.04.21–27슈타이너 분견군 사령관, 해임
- 1945.05.03–1948.04.27미군 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