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동맹에서 인터내셔널 총평의회까지 마르크스 곁을 지킨 독일인 재단사
1825년 바이마르 근처 블랑켄하인에서 태어난 재단사로, 런던에서 정의자동맹과 공산주의자동맹에 들어가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알게 되었다. 1848~1849년 혁명 때 독일로 돌아가 「신라인 신문」 일을 돕고 쾰른 노동자협회에서 활동했으며, 1852년 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에서 3년 요새 금고형을 받았다. 1856년 영국으로 망명해 1864년부터 1872년까지 인터내셔널 총평의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바쿠닌과의 대립에서 마르크스 편에 섰다. 1893년 독립노동당 창립에 참여했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수정주의 논쟁에서는 정통 마르크스주의 쪽에 서서 「옛 근위대」의 상징이 되었다. 1910년 런던에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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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7–1852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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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1872
사회운동·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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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사회운동·조직
경력 연표
- 1852쾰른 공산주의자 재판에서 요새 금고 3년 선고
- 1856영국으로 망명
- 1864–1872인터내셔널 총평의회 위원
- 1893독립노동당 공동 창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