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군국주의의 전쟁 책임을 따지다 망명길에 오른 평화주의 교육학자
1869년 베를린에서 천문학자 빌헬름 율리우스 푀르스터의 아들로 태어난 독일의 철학자·교육학자·평화주의자다. 1898년부터 취리히에서 가르쳤고 1914년 뮌헨 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 지배층의 군국주의와 전쟁 책임을 비판해 민족주의 세력의 공격을 받았고, 1918년 아이스너의 바이에른 자유국 대사로 베른에 갔다. 『군국주의적·민족주의적 독일에 맞선 나의 투쟁』(1920) 뒤 살해 위협을 받아 1922년 교수직을 내놓고 스위스로, 1926년 프랑스로 떠났다. 1933년 분서에서 “지조 없는 비열함과 정치적 배신에 반대하여”라는 구호로 저작이 불탔고, 나치 첫 국적 박탈 명단에 올랐다. 1940년 게슈타포를 피해 미국으로 갔고 말년을 스위스에서 보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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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1922
독일 국가기관대표
교육
경력 연표
- 1893칸트 윤리학 연구로 박사 학위
- 1898–1912취리히 대학·취리히 공과대학 사강사
- 1913–1914빈 대학 원외 교수
- 1914–1922뮌헨 대학 교육학·철학 정교수
- 1918바이에른 자유국 대사로 베른 부임
- 1920『군국주의적·민족주의적 독일에 맞선 나의 투쟁』
- 1922교수직을 내놓고 스위스로 망명
- 1926프랑스로 이주
- 1933.05.10분서에서 저작이 불탐
- 1933.08.23나치 첫 국적 박탈 명단에 오름
- 1937『유럽과 독일 문제』
- 1940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
- 1953회고록 『겪은 세계사』
- 1963스위스로 돌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