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ücherverbrennungen 1933 („Aktion wider den undeutschen Geist“) · 1933.03–10

1933년 나치 분서

Nazi book burnings

1933년 3~10월 나치당과 그 산하 조직이 독일 곳곳에서 유대계·마르크스주의·평화주의 작가들의 책을 불태운 일련의 행사. 독일 학생연합의 「비독일적 정신에 반대하는 행동」이 5월 6일 히르슈펠트의 성과학 연구소 약탈을 거쳐 5월 10일 베를린 오페라 광장과 18개 대학 도시의 분서로 정점에 올랐고, 반대 작가들에 대한 체계적 박해의 시작이 되었다.

상세

1929~1931년부터 민족주의·반유대주의 세력이 장악한 독일 학생연합은 1933년 4월 초 4주간의 「비독일적 정신에 반대하는 행동」을 선포해, 4월 12일 시작해 5월 10일 공개 분서로 끝내기로 했다. 대학마다 학생 둘, 교수 하나, 로젠베르크의 독일 문화 투쟁연맹 대표, 작가 하나로 「투쟁위원회」를 꾸렸고, 4월 12일 유대인·사회민주주의·공산주의·자유주의 사상을 고발한 「비독일적 정신에 반대하는 12개 테제」를 붉은 프락투어체 벽보로 붙였다. 로스토크 학생들은 5월 5일 히르슈펠트, 투홀스키, 슈테판 츠바이크, 레마르크 등의 책을 「치욕의 기둥」에 못 박았다. 5월 6일부터 마지막 단계로 대여 도서관과 서점을 약탈했고, 베를린에서는 체육대학과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티어가르텐의 히르슈펠트 성과학 연구소에 쳐들어가 1만 권이 넘는 장서를 털었다.

히르슈펠트는 파리의 영화관에서 뉴스 영화로 평생의 업적이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5월 9일 학생연합은 분서 때 외칠 「불의 구호」를 돌렸다. 5월 10일 밤 베를린에서는 횃불 행렬이 책 2만 5000권을 실은 트럭을 따라 부서진 히르슈펠트 흉상의 머리를 막대에 꽂고 오페라 광장으로 갔고, 폭우로 장작이 붙지 않자 소방대가 휘발유를 부었다. 학생 대표 아홉이 구호와 함께 첫 책을 던졌고, 이어 마르크스, 하이네, 투홀스키, 프로이트 등 94명의 책이 불길에 들어갔다.

프로이트의 책은 「영혼을 해체하는」 것으로 불렸다. 약 7만 명이 모였고, 자정 무렵 선전장관 괴벨스가 연설했으며, 에리히 케스트너는 군중 속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들었다. 같은 날 18개 대학 도시에서도 분서가 있었고, 3월부터 SA와 SS가, 그 뒤로는 히틀러 청소년단 등이 곳곳에서 책을 태웠다. 금서 목록에는 브레히트, 아인슈타인, 카프카, 하인리히 만,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루카치 같은 독일어권 작가와 함께 고리키, 콜론타이, 레닌, 트로츠키 등 소련 작가도 올랐다.

이를 정점으로 작가들은 집필 금지와 국적 박탈, 망명과 수용소 죽음으로 내몰렸다. 베를린 대학 총장의 사퇴 경고 같은 반발은 드물었고, 해외에서는 뉴욕의 대규모 행진과 헬렌 켈러의 항의, 망명 작가들의 펜클럽 결성이 뒤따랐다. 오늘날 베를린 베벨 광장에는 빈 서가가 내려다보이는 유리판 기념물이 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1. de.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