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루빈

Gayle Rubin
미국 미국 (유대계) 1949–

「여성 거래」에서 섹스/젠더 체계 개념을 세운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1975년 「여성 거래: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에서 한 사회가 생물학적 성을 인간 활동의 산물로 바꾸는 장치를 「섹스/젠더 체계」라 부르고, 여성 억압은 마르크스주의의 가부장제 개념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종 분리 시대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 태어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이론가·활동가. 미시간 대학에서 페미니즘 의식 고양 모임과 레즈비언 페미니즘 단체에 참여했고, 1975년 「여성 거래」로 섹스/젠더 체계 개념을 세워 제2물결 페미니즘과 초기 젠더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78년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남성 동성애자 가죽 하위문화를 연구했고, 미국 최초의 레즈비언 BDSM 단체 「사모아」를 함께 세웠다. 1984년 「성을 생각하기」는 레즈비언·게이 연구와 퀴어 이론의 창립 텍스트로 꼽힌다. 1994년 미시간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그곳에서 인류학과 여성학을 가르쳤다.

주요 활동과 소속

「여성 거래」에서 「성을 생각하기」까지

1949년 1월 1일에 태어나 인종 분리 시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마지막 해에야 학급이 통합된 분리 학교를 다녔고, 그 경험이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에 대한 변함없는 증오를 남겼다고 썼다. 1968년 미시간 대학의 초기 페미니즘 의식 고양 모임에 들어가 여성 운동 신문과 《앤아버 아거스》에 글을 썼고, 1970년 초기 레즈비언 페미니즘 단체인 앤아버 래디컬레즈비언스를 함께 세웠다. 1975년에는 미시간 대학 대학원생 노동조합 결성에도 참여했다.

같은 해 발표한 「여성 거래: 성의 ‘정치경제’에 관한 노트」는 페미니즘 이론에 큰 자극을 주었다. 루빈은 이 글에서 한 사회가 생물학적 성을 인간 활동의 산물로 바꾸고 그렇게 바뀐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장치를 「섹스/젠더 체계」라 부르고, 젠더를 「사회적으로 부과된 성의 구분」으로 정의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친족 이론,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 모스의 증여론을 비판적으로 다시 읽었고, 노동력의 재생산이 상품을 노동자의 생계로 바꾸는 여성의 가사 노동에 기대고 있다고 보면서도 젠더 억압은 마르크스주의의 가부장제 개념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78년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남성 동성애자 가죽 하위문화를 임상이나 개인 심리가 아니라 현대 공동체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의 눈으로 연구했다. 그해 6월 13일 팻 캘리피아 등과 함께 1983년까지 이어진 미국 최초의 레즈비언 BDSM 단체 「사모아」를 세웠고, 같은 해 샌프란시스코 레즈비언·게이 역사 프로젝트에, 1985년에는 GLBT 역사학회 창립에 참여했다.

1982년 페미니즘 「성 전쟁」의 시작으로 꼽히는 바너드 성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성을 생각하기」는 1984년 글로 나와 레즈비언·게이 연구, 섹슈얼리티 연구, 퀴어 이론의 창립 텍스트로 꼽힌다. 루빈은 이 글에서 사회가 어떤 성행위는 좋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동성애나 BDSM 같은 다른 성행위는 나쁘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가르는 가치 위계를 따져 묻고, 특권을 누리는 성을 「매혹의 원」으로 그렸다. 같은 글에서 성 노동자·동성애자·BDSM 실천자와 함께 「남성-소년 연애자」를 옹호한 대목은 그 뒤 거센 비판을 받았고, 루빈은 2011년 회고에서 그 언급이 1980년대의 도덕적 공황이라는 다른 맥락에서 나온 것이며, 자신이 사춘기 이전 아동에 대한 강간을 지지했다는 주장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1994년 미시간 대학에서 샌프란시스코 가죽 문화에 관한 논문으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