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말기와 러시아 초기의 중앙은행가
1994년 10월 11일 '검은 화요일', 루블화가 하루 만에 27% 폭락했다. 사흘 뒤 게라셴코의 중앙은행은 환율을 거의 원상 복구시키며 통화 투기세력을 응징했다. 동료 은행가는 "중앙은행도 이를 드러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고 평했다.
소련 고스방크 총재와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를 각각 두 차례씩 지내며 네 번에 걸쳐 국가 주요 은행을 이끈 러시아 역사상 유일한 인물이다. 1989년 고스방크 총재로 취임해 소련 해체기의 통화 체계를 관리했고, 1992년 러시아 중앙은행 초대 총재로서 1993년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998년 금융위기 때 다시 중앙은행 수장으로 복귀해 IMF 협상과 루블 안정화를 추진했으며, 푸틴 집권 초기까지 중앙은행을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블록 '로디나' 소속으로 국가두마 의원과 대통령 후보로도 나섰다.
경력 연표
- 1960s–1970s소련 대외은행과 국제금융 부문에서 성장
- 1980s브네슈토르그방크 등 대외금융기관을 거쳐 국가은행 지도부로 진입
- 1988–1991국가은행 총재, 말기 소련 통화체계와 공화국 금융분열을 관리
- 1991 이후러시아 중앙은행에서 전환기 금융위기를 다룸
- 1998 이후러시아 금융위기 뒤 다시 중앙은행 수장으로 복귀
관련 역사 사건
1998년 금융위기와 중앙은행 복귀
1998년 8월 러시아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루블이 폭락하자 세르게이 두비닌 중앙은행 총재가 물러났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은 위기 수습을 위해 게라셴코를 다시 불렀고, 그는 1998년 9월 11일 중앙은행 총재로 재취임했다. 1992~1994년 총재 시절의 경험을 가진 그에게는 무너진 은행 시스템을 재건하는 임무가 맡겨졌다. 게라셴코는 IMF와의 협상을 이어가며 루블화 안정을 도모했고, 프리마코프, 스테파신, 푸틴, 카시야노프 등 네 명의 총리 아래에서 중앙은행을 이끌었다. 푸틴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비교적 자율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했으나, 2002년 3월 대통령의 제청으로 국가두마가 그의 사임을 승인하면서 4년 가까운 두 번째 임기가 끝났다. 후임으로 세르게이 이그나티예프가 임명되었다. 미국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그를 '세계 최악의 중앙은행 총재'라고 혹평했고, 예고르 가이다르는 1992년 게라셴코를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한 것이 자신의 가장 심각한 실수였다고 회고했다. 게라셴코는 소련 말기 고스방크 총재와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를 각각 두 차례씩 지낸, 러시아 역사상 유일하게 네 번 주요 은행을 이끈 인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