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해제된 전쟁 손실의 계량자
2002년 「군사역사잡지」에 실은 글에서 그는 역사가의 의무를 이렇게 적었다: "역사가는 자기 민족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해야 한다."
그리고리 크리보셰예프는 소련군에서 출발해 총참모부 부총참모장까지 오른 군인이자 군사역사가였다. 그는 1988년부터 군사역사 연구단을 이끌어 비밀 해제 자료를 바탕으로 소련과 러시아 군대의 전쟁 손실을 통계화했고, 그 결과는 1993년 저서로 출간됐다. 이 연구는 겨울전쟁에서 소련군의 회복 불가능한 손실을 12만 6,875명으로 제시해 널리 인용됐지만, 후속 연구자들은 누락과 중복 가능성을 지적하며 더 높은 수치를 제시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9소련군 입대, 포병연대 복무
- 1953튜멘 군사보병학교 졸업, 소대장
- 1964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졸업
- 1973제161차량화소총사단 사단장
- 1979투르키스탄 군관구 참모장 겸 제1부사령관
- 1984소련군 서부집단군 참모장 겸 제1부사령관, генерал-полковник
- 1987소련군 총참모부 조직·동원총국장, 부총참모장
- 1988–1993군사 손실 통계 연구단 책임자
관련 역사 사건
전쟁 손실 통계 연구와 그 논쟁
크리보셰예프는 1988년부터 군사역사가 연구단을 이끌며 소련·러시아군의 인적 손실과 전투장비 손실을 통계로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연구단은 총참모부와 각 군종 참모부, 내무부, 국가보안위원회, 국경수비대 등 여러 기관의 문서고 자료에 접근했는데, 이들 자료는 1980년대 말 비밀이 해제된 것이었다. 여기에는 쉬테멘코가 이끈 총참모부 위원회와 가레예프가 이끈 국방부 위원회가 앞서 수행한 손실 산정 작업의 결과도 함께 활용됐다.
1993년에 나온 『비밀 딱지를 떼다: 전쟁과 전투행동, 군사분쟁에서의 소련군 손실』은 1917~1923년 내전부터 1979~198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를 다루며 111개의 상세 표를 실었다. 하산호(1938), 할힌골(1939), 소련-핀란드 전쟁(1939~1940)의 손실 수치가 처음 공개된 것도 이 책에서였다. 1997년에는 에릭슨의 서문을 붙여 영어로 번역·출간됐고, 2001년 『20세기 전쟁에서의 러시아와 소련』에서는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 제국 시기 손실과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의 국지 분쟁 손실까지 포함해 229개 표로 이전 계산을 다시 검토했다.
이 수치는 학계의 폭넓은 인용과 함께 반론도 불러왔다. 인구학자 엘만과 막수도프는 소련의 총 회복 불가능 손실 2,600만~2,700만 명 추정 자체는 대체로 신뢰할 만하다고 보면서도, 소련 탄압 희생자와 독일 편에 선 소련 시민, 이민자를 포함시킨 점은 과대평가 요인으로, 전쟁 전후 합병 지역 인구를 불완전하게 반영한 점은 과소평가 요인으로 지적했다. 글란츠는 이 작업이 대체로 '직선적이고 정확하다'고 평하면서도 여러 대규모 작전의 손실이 분석되지 않은 점을 뚜렷한 누락으로 꼽았고, 크리보셰예프는 서한에서 그런 작전들이 더 큰 작전의 일부라 총계의 신뢰성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답하며 후속 판에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미할레프는 징집 총수와의 정합성을 근거로 사망자 870만 명 추정을 반박하며 1,090만 명 이상, 총 회복 불가능 손실 1,370만 명을 제시했고, 젬스코프는 포로 통계를 두고 '계산치'라 비판하며 붉은군대의 회복 불가능 손실 866만 8,400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로 다른 추정치가 병존하는 상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