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궁전에 두 번 들어간 군사혁명위원회 인민위원, 항복 협상으로 방어선을 무너뜨리다
겨울궁전 안에서 팔친스키가 그를 체포하자 사관생도들이 항의했다. 「그의 구금은 우리 명예의 훼손이다. 신변을 보장했다.」 인민위원은 풀려났고, 생도들도 곧 무기를 버렸다.
10대에 혁명운동에 뛰어든 예카테리노슬라프 출신 유대인 청년으로, 트로츠키와 함께 망명 생활을 거쳐 1917년 메즈라이온치를 통해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10월 군사혁명위원회 인민위원으로 겨울궁전에 두 차례 직접 들어가 협상했고, 그가 약속한 무사 통행으로 방어선이 무너지며 유혈 충돌을 피할 수 있었다. 곧 남서전선 특별인민위원으로 임명되어 우크라이나에서 독일군 및 중앙라다에 맞서 싸우다 1918년 4월 류보틴 근처에서 포위, 자살했다.
경력 연표
- 1905–1910혁명운동 입문, 멘셰비키; 예니세이현 유형
- 1913–1916망명: 파리(『나셰 슬로보』), 코펜하겐, 뉴욕(『노비 미르』)에서 트로츠키와 활동
- 1917.05–08귀국; 메즈라이온치 → 볼셰비키 합류; 군대 내 반전 선동
- 1917.10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인민위원; 프레오브라젠스키 연대 담당; 겨울궁전 협상, 풀코보 전투
- 1917.11–12남서전선 특별인민위원; 중앙라다에 체포되어 사형 선고
- 1918.01–04소련군에 구출; 키예프 민사위원; 류보틴 근처에서 포위되어 자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