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리 이바노비치 레벤코

Григорий Иванович Ревенко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36–2014 ○ 자연사

키예프 주당위 지도자에서 고르바초프 마지막 비서실장까지

1990년 고르바초프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날, 레벤코를 불러 "소비에트 백만장자를 보고 싶나?"라고 한 뒤 상금 전액을 아동 종양센터와 체르노빌 지역에 배분했다. 다 쓴 뒤 고르바초프가 말했다: "이제 백만장자는 없네."

우크라이나 출신 소련 당·국가 관료로, 키예프 주당위 제1서기에서 소련 해체기 고르바초프 대통령 비서실장(대통령장)으로 옮겨가며 당권에서 대통령제로 넘어가는 행정 전환을 실무적으로 떠받쳤다. 콤소몰과 당 기구를 거쳐 1985년 키예프 주당위 제1서기, 1986년 CPSU 중앙위 위원이 되었다. 1990년 대통령자문위원회 위원을 거쳐 1991년 8월 대통령장으로서 고르바초프의 최측근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소련 해체 후 고르바초프 재단 부총재로 일하다 키예프로 돌아갔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85~1990년 키예프 주당위 제1서기와 체르노빌 수습

레벤코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키예프 주당위 제1서기를 지내며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남긴 지역 문제를 직접 다뤘다. 1986년 4월 사고 직후 키예프 주 당조직은 주민 대피와 재정착, 방사능 오염 지역 관리를 맡았다. 그가 1989년 4월 30일자 당 기관지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사고로 키예프 주는 기본자산 5억 7,500만 루블, 농경지 5만 8,800헥타르, 주택 150만 제곱미터를 잃었고 9만 명 이상이 이주했으며 그 절반 이상이 주 안에서 재정착했다. 대피 주민의 정착은 1987년 초에야 사실상 마무리됐다.

그는 같은 글에서 통제구역에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주당위와 주집행위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구역에 천 명 이상이 다시 정착한 상황과 중앙 언론이 안전한 마을 15개가 있다고 보도한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발전소는 안전한 운영을 우선하고 설비 자원이 소진되는 대로 원자로를 단계적으로 가동 중단하자는 것이 주당위의 입장이었다. 새로 세운 슬라부티치 시에 대해서는 기반시설과 일자리 대책의 실책으로 도시의 매력이 흐려지고 있다고 비판했고, 주택 대기자가 천 명을 넘고 건설 노동자 주택 문제가 풀리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대피 주민 정착지의 가스·학교·문화시설 확충을 위한 재정과 물자가 배정되지 않은 문제는 중앙 정부와 공화국 정부에 계속 제기했다.

이 시기 그의 활동은 주도성과 한계를 함께 남겼다. 우크라이나 콤소몰 제2서기였던 발레리 치부흐의 증언에 따르면, 1986년 4월 28일 레벤코의 50세 생일 자리에서 레벤코는 그에게 직접 체르노빌에 가서 상황을 보라고 말했다. 같은 증언은 사고 초기에 당 간부도 일반 시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보만 받았다고 기록한다. 레벤코는 1989년 2월 23일 고르바초프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방문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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