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압두가니예비치 카리모프

Islom Abdugʻaniyevich Karimov

독립과 주권을 앞세운 권위주의적 국가 건설자

1991년 연방 존속 국민투표에서 우즈베키스탄은 잔류를 택했지만, 그는 같은 해 독립을 선언했다.

이슬람 카리모프는 소비에트 체제의 경제관료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으로 전환한 정치가였다. 그는 독립 직전 연방의 틀을 둘러싼 협상에 참여하면서도 우즈베키스탄의 주권과 국가적 선택권을 우선했고, 1991년 독립 뒤에는 이를 국가 건설의 중심 원리로 삼았다. 그의 통치는 산업 기반과 국가 통합을 지키려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야당과 언론을 억누르고 이슬람주의와 대중 시위를 강경하게 통제하는 권위주의로 굳어졌다. 따라서 카리모프는 탈소비에트 중앙아시아에서 주권 국가를 세운 지도자인 동시에 정치적 다원주의를 희생시킨 통치자로 기억된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소련 정치국

1991.11 당 활동 금지까지 재임

관련 역사 사건

독립 전환과 권력 독점의 시작

카리모프는 소비에트 연방의 존속 여부가 걸린 1991년 3월 국민투표에서 우즈베키스탄 주민에게 연방 잔류를 지지하도록 선전했고, 공화국은 투표율 95.4퍼센트에 찬성 93.7퍼센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모스크바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지 열흘 뒤인 8월 31일 그는 키르기스스탄에 이어 중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했고, 우즈베키스탄 최고회의는 해당 법률을 채택했다. 9월 14일 그가 이끌던 우즈베키스탄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 탈퇴를 선언했고, 11월 1일 창당대회를 연 우즈베키스탄 인민민주당은 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그를 당 의장으로 선출했다. 11월 18일 최고회의가 대통령 선거법을 통과시키면서 12월 29일 선거가 대안 후보 방식으로 치러졌고, 카리모프는 86퍼센트를 얻어 민주당 '에르크'의 무함마드 살리흐(12.3퍼센트)를 눌렀다. 같은 달 13일 그는 중앙아시아 지도자들과 함께 소련 해체를 확정한 벨로베자 협정을 지지했고, 8일 뒤 알마아타 선언에 서명해 독립국가연합 창설에 참여했다. 1992년에는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새 헌법과 대통령 직접선거를 도입하면서도 최고회의가 임명한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이어갔다. 1995년 3월 국민투표로 임기를 2000년까지 연장했고, 1996년 6월에는 인민민주당 의장직과 당적을 모두 버리고 초당적 대통령을 자처했다. 이 시기에 독립의 외형과 실제 권력 구조가 함께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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