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전기공업을 지휘하고 수소폭탄의 리튬-6을 낳은, 소련의 마지막 스탈린 시기 대외무역장관
1953년, 카바노프는 전자기 동위원소 분리법과 리튬-6 생산으로 스탈린상 1등급을 받았다. 그 기술로 소련은 이윽고 수소폭탄을 완성했다.
페름 현 노동자 가정 출신으로, 자물쇠공에서 출발해 내전 정치위원을 거쳐 전기공업 관료로 성장했다. 1941년 전기공업인민위원이 되어 전시 소련의 발전설비 대피와 재건을 총괄했고, 1945년부터 원자폭탄 계획에 참여해 우라늄 동위원소 전자기 분리법과 열핵무기용 리튬-6 생산기술 확립을 주도하여 1953년 스탈린상 1등급을 수상했다. 같은 해 대외무역장관이 되어 흐루쇼프 시기 소련 대외경제의 방향 전환을 집행했으며, 1958년 파톨리체프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경력 연표
- 1937–1938러시아SFSR 공공주택인민위원 → 러시아SFSR 인민위원회 부의장
- 1938–1939소련 식품공업인민위원 (수개월 만에 강등)
- 1940–1941'디나모' 공장 주임기사 → 공장장 (모스크바)
- 1941–1951소련 전기공업인민위원 → 전기공업장관 (1946년 개칭)
- 1951–1953국가물자기술공급위원회(고스스나프) 제1부의장 → 의장
- 1953소련 국내·대외무역부 제1차관
- 1953–1958소련 대외무역장관
- 1958–1962소련 각료회의 대외경제활동위원회 부의장 — 소련 장관
관련 역사 사건
원자폭탄 계획: 전자기 분리와 리튬-6
카바노프는 1945년 소련 원자폭탄 계획에 투입되었다. 라브렌티 베리야가 총괄하는 제1총국(PGU) 체제 아래, 보리스 반니코프 및 국가계획위원회의 니콜라이 보리소프와 함께 '엘렉트로실라' 공장에 특별설계국(SKB)을 설치하는 초안을 작성했고, 이는 1945년 12월 27일 소련 인민위원회 비밀 결의 제3176-964сс호로 확정되었다. 카바노프는 또한 아나스타스 미코얀이 이끄는 위원회의 일원으로 니콜라이 보즈네센스키, 반니코프, 아브라함 자베냐긴 등과 함께 노긴스크 제12공장(현 엘렉트로스탈 소재)에 우라늄 광석 용해용 진공 고주파 전기로를 공급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전기로들은 소련 최초의 원자로 Ф-1용 우라늄 봉을 생산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의 핵심적 공헌은 전자기 방식에 의한 우라늄 동위원소 분리 기술의 산업적 확립이었다. 이는 맨해튼 계획의 캘루트론과 유사한 경로로, 카바노프는 자신이 관장하는 전기공업성의 제조 역량을 동원해 전자기 분리 장치를 개발·생산하였다. 이 작업은 곧 열핵무기로 이어졌다. 수소폭탄에 필수적인 리튬-6 동위원소의 전자기 분리·농축 기술을 확립하고 산업 규모로 실현한 공로로, 그는 1953년 스탈린상 1등급을 수상했다. 이는 그해 8월 소련 최초의 열핵폭탄 РДС-6с(이른바 '슬로이카') 실험 성공의 기술적 토대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