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미하일로비치 마이스키

Иван Михайлович Майский
소련 러시아 1884–1975 ○ 자연사

멘셰비키에서 소련의 대영제국 외교관으로, 전향과 회유 속에서도 세계대전 외교의 중심에 선 인물

1918년 11월, 멘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보낸 편지에서 "민주주의가 혁명을 구하려는 마지막 영웅적-절망적 시도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다"고 썼다. 2년 후 그는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멘셰비키에서 볼셰비키로 전향한 소련 외교관이자 역사가. 1932년부터 11년간 영국 대사로 재임하며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 외교의 핵심 창구로 활약했고, 마이스키-시코르스키 협정으로 소련-폴란드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종전 후 외무인민부위원으로 얄타·포츠담 회담에 참여하고 독일 배상 문제를 주도했다. 그의 런던 외교 일기는 전간기 및 전시 소련 외교의 내막을 담은 독보적 사료로 평가된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스페인 내전과 불간섭위원회 외교

1936년 스페인 내전 발발 직후, 마이스키는 런던에서 열린 불간섭위원회의 소련 대표로 임명되었다. 이 위원회는 유럽 각국이 스페인 내전에 개입하지 않기로 한 국제적 약속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나, 독일과 이탈리아가 이미 프랑코 측에 병력과 무기를 보내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허구에 가까웠다.

1936년 9월 9일 첫 회의에서 마이스키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먼저 개입했으므로 소련의 개입 역시 정당화된다고 주장했고, 이후 위원회는 각국 대사들인 마이스키,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독일), 디노 그란디(이탈리아)가 어느 쪽이 더 많이 개입하고 있는지를 놓고 언론 앞에서 설전을 벌이는 정치 연극으로 전락했다. 마이스키는 소련이 다른 강대국들이 불간섭 원칙을 지키는 만큼만 지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마이스키에게 스페인 문제는 단순한 외교 임무 이상이었다. 그는 후일 역사가로서 『스페인: 1808–1917』(1957)과 『스페인 수첩』(1962)을 출간하며 스페인 근현대사에 대한 소련의 대표적 권위자가 되었다. 불간섭위원회에서의 경험은 그의 학문적 관심과 외교 현장이 교차한 지점이었으며, 파시즘의 확장에 맞서 공화국을 지원하려는 소련의 시도가 서구 열강의 유화 정책에 좌절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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