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안토노비치 이바시코프

Владимир Антонович Ивашко
러시아 우크라이나 1932–1994 ↓ 당 해체 1991

해체 직전 공산당의 마지막 부서기장

1991년 8월 21일 아침, 쿠데타가 무너지는 것이 확실해지자 이바시코는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야나예프에게 전화해 "고르바초프를 만나러 갈 비행기를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당한 그는 결국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쿠데타 주역들—야조프, 루키야노프 등—과 같은 비행기에 올라 포로스로 향해야 했다.

하르키우 광산대학 출신의 경제학자로, 우크라이나 당 기구에서 20년간 경력을 쌓은 뒤 1989년 셰르비츠키의 후임으로 우크라이나 공산당 제1서기가 되었다. 1990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신설된 부서기장직에 선출되어 모스크바로 옮겼다. 1991년 8월 쿠데타 직후 고르바초프가 총서기직을 사임하자 당 역사상 마지막 지도자가 되었으나, 불과 닷새 만에 당 활동이 정지되면서 소비에트 공산당은 그와 함께 막을 내렸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91년 8월: 병상에서 쿠데타와 당 사이에 서다

1991년 8월 4일, 고르바초프가 포로스의 다차로 휴가를 떠날 때 당 업무는 올레크 셰닌 서기에게 맡겨졌다. 이바시코는 당시 수술을 받고 모스크바 근교 요양소에서 회복 중이었다. 8월 19일 국가비상사태위원회(GKChP)가 출현했을 때, 이바시코는 셰닌이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를 막았다. 그는 총서기 없는 전원회의는 당 내 쿠데타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셰닌은 사무국 명의로 각지 당 조직에 GKChP 협력 지시 전문을 보냈지만, 이바시코도 고르바초프도 서명하지 않은 문서였다. 이바시코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고 나중에 주장했다.

8월 20일 밤, 드자소호프 서기가 요양소로 찾아왔고, 둘은 '부서기장이 총서기와의 면담을 요청했다'는 짧은 성명을 내보내기로 합의했다. 8월 21일 아침 GKChP가 사실상 실패하자 이바시코는 모스크바 중앙위원회 청사로 향했다. 그는 야나예프에게 전화해 고르바초프 면담을 위한 비행기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결국 GKChP 측 인사들과 함께 포로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8월 22일, 이바시코는 쿠데타 책임이 '당 지도부 몰래' 행동한 일부 중앙위원에게 있다는 사무국 성명에 서명했다. 같은 날 셰닌은 체포되었다. 8월 24일 고르바초프가 총서기직을 사임하면서 이바시코는 권한대행이 되었으나, 8월 29일 최고회의가 당 활동을 정지시켰고 11월 6일 옐친의 포고령으로 당은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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