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 복귀를 주장하며 달러 준비 체제를 비판한 드골의 경제 자문
파리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시앙스포에서 경제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1930년대 초 런던 주재 재무관으로 프랑스 은행의 파운드 준비금을 관리했고, 프랑스 은행 부총재로 있다가 1941년 비시 정부의 반유대인법으로 해임되었다. 전후 자유주의 경제학자 모임인 몽펠르랭 협회의 중심 인물이 되었고, 1952~1962년 유럽사법재판소 판사를 지냈다. 1958년부터 드골에게 자문해 예산 균형과 프랑 태환을 이룬 뤼에프-피네 계획을 세웠다. 1960년대에는 달러를 준비 통화로 쓰면 세계적 인플레이션이 온다며 금본위 복귀를 주장했다. 평생 케인스의 반대자였고, 196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41프랑스 은행 부총재에서 해임(비시 반유대인법)
- 1952–1962유럽사법재판소 판사
- 1958드골 자문, 뤼에프-피네 계획
- 1964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 선출